두산엔진 공장 가동 중단.. 기자재업까지 번지나

 
 
 

 

중소조선사의 추락이 끝이 보이지 않는다. 특수선박 제조 업체인 세광중공업이 파산절차를 밟게됐다. 삼호조선에 이어 올 들어 두 번째로 중소조선 업체가 파산한 것. 21세기조선과 신아에스비(옛 SLS조선) 등 다른 중소 조선사들의 상황도 녹록치않다. 업계에서는 “이러다 다 무너진다”는 절망적인 분위기마저 감돌고 있다.


지난해부터 기업회생절차를 진행 중이던 삼호조선이 올 2월 14일 파산절차를 밟게 되면서 중소조선업계의 악몽이 시작됐다. 주로 2만dwt급 탱크선을 주로 건조해 세계 100대 조선소에도 이름을 올렸던 동사는 지난해 4월 법정관리를 신청한 뒤 5월 12일 최종 부도처리됐다. 이후 M&A 등 자구책을 통해 회사를 정상화하겠다는 계획이었지만, 법원은 더 이상의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 2월 14일 법정관리 폐지를 결정했다.

 
그리고 올 3월 세광중공업이 파산절차에 들어갔다. 삼호조선이 파산한 지 한달만이다. 업계 관계자에 의하면 “세광중공업 매각을 위한 채권단의 협상이 최종 결렬되면서 회생계획안이 폐기돼 파산절차를 밟게됐다”는 소식이다. 가스운반선과 화학제품운반선 등을 주로 건조해왔던 동사 역시 수주급감과 자금난의 압박을 버티지 못하고 지난해부터 매각을 추진해왔으나, 최종 매각에 실패해 결국 문을 닫게 됐다.


21세기조선, 신아에스비, 오리엔트중공업 등도 위험
두산엔진, 선박용 엔진공장 가동 중단, 2년간 계열사 임대
세계 100대 조선소안에 이름을 올렸던 이들 업체들이 하나둘씩 무너지면서 중소조선업계의 줄도산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지난해부터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21세기조선과 신아에스비, 오리엔트중공업 등도 연이어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


2008년 말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해운불황이 겹치면서 국내 중소조선 업계는 극심한 수주난을 겪어왔다. 자본력이 탄탄한 국내 대형 조선사들은 해양플랜트, LNG선, 드릴쉽 등 고부가가치 선박으로 업종을 전환하면서 세계 조선업계를 주름잡고 있지만 중소조선사들은 언제 고꾸라질지 모르는 벼랑 끝에 몰려 있다.
여기에 중소조선사들의 위기가 조선기자재 업종으로 번질 수도 있다는 점은 더욱 우려스럽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두산엔진은 선박용 엔진을 생산하는 창원 4공장의 가동을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소조선소의 수주난으로 중소 선박엔진의 수주도 급감했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두산엔진은 동 공장을 화공플랜트 기기를 제조하는 계열사인 두산메카택에 임대했다.

 

키코사태로 유동성 악화에 수주난까지 겹친 최악의 상황
중소조선소들이 이처럼 동시다발적인 위기에 봉착한 가장 큰 이유는 ‘현금유동성’ 때문이다. 거의 모든 조선사들이 선박수주에 필요한 RG(선수금환급보증)을 받기위해 환헤지파생상품인 키코(KIKO)에 가입했으나, 동 상품이 막대한 손실을 입히면서 현금유동성에 빨간불이 켜진 것. 여기에 중소조선사들의 주력선대였던 벌크선 수주가 08년 이후 급감하면서 대부분의 중소조선사들은 ‘돈도 잃고, 일감도 없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


더욱 암울한 것은 이들을 살릴만한 어떠한 방안도 없다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국내 대형조선사들의 인수·합병을 통해 사업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지만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업계 관계자는 “대형 조선사들도 해양플랜트 등으로 지금의 불황을 버티고 있지만 실적이 많이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중소조선사 인수는 분명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에 상선 규모의 대형화로 대형 조선소에는 주로 대형 선박이 발주되고 있다는 점은 주로 중소형 선박을 건조하는 중소조선사의 인수·합병 가능성을 더욱 희박하게 하고 있다.


키코를 운용해 중소조선사 몰락 원인을 제공했던 은행권도 중소조선에 등을 돌리긴 마찬가지다. 중소조선사의 유동성 악화로 RG발급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몇몇 조선사들은 은행권의 RG 미발급으로 이미 체결됐던 수주계약이 취소되기도 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유로존의 재정위기로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현 중소조선사의 위기는 과거와는 다르다. 현금유동성에 수주난까지 겹친 상황에서 은행 입장에서도 맘놓고 RG을 발급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정부지원만이 살길.. 정부는 “나몰라라”
결국 중소조선사의 줄도산을 막을 유일한 방법은 정부지원이라는 것이 중소조선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M&A도 은행권의 지원도 불가능한 상황에서 정부가 나서서 이들 업체의 명맥을 이어줘야 한다는 것. 한 금융권 관계자는 “조선업은 호황과 불황의 싸이클이 존재한다. 올해 극심한 불황기를 버틴다면 내년 말이나 2014년부터는 다시 경기가 회복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국내 중소조선업체들이 그때까지 버틸만한 여력이 없다는 점이 문제다. 무역보험공사나 ECA 기관을 이용해 RG 미발급 문제를 해결하고, 중소조선업체가 버틸 수 있도록 일감을 제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소조선업체들이 몰려있는 통영지역의 한 관계자도 “지금 상황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당장 조선소의 명맥을 유지하는 것이다. 저가수주를 하더라도 일감이 있어야 호황기에 대비할 수있는데 당장 문을 닫을 처지”라면서, “정부지원이 유일한 대책이다. 산업은행을 필두로한 국책은행들이 조선업체의 채권단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들 은행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정부밖에 없지 않는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정부측의 명쾌한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조선산업 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지식경제부 자동차조선과의 한 관계자는 “중국이나 일본도 2009년부터 조선업에 대한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바람을 피할 수 없다”면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없다. 업계 스스로 업종 변환을 한다던지 블록 경영을 한다던지 자구책을 마련해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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