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업 간 계약 실무에 활용 기대”

 

대한상사중재원이 한국 해법 학회에 의뢰해 마련
BIMCO의 1978년판 CONLINEBILL 등에 근거해 작성
국내 최초, 세계 4번째 자국어 표준계약서 제정


국제 무역에서 영문 계약서만을 이용함으로써 초래되는 많은 불편과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만들어진 ‘한국해사표준계약서’에 관한 설명회가 지난 9월 28일 서울의 한국무역협회 대회의실에서 있었다.
대한상사중재원과 한국해법학회, 한국무역협회·하주협의회, 한국선주협회, 한국해운조합, 부산상공회의소가 공동으로 주최한 이번 설명회는 서울(28일)과 부산(29일)에서 양일간 개최되었다. 서울 설명회에서는 한글화 된 해사표준계약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해운업계 실무 관계자 150여 명이 참가했다.

 

영문 계약서 의존의 불편함 해소 위해 추진

 

우리 민족에게도 고유의 문자가 없어 옆 나라 중국의 문자를 빌려 쓰던 시절이 있었다. 한자는 우리말과 너무나도 달라 그 사용이 어려워 많은 백성들이 상거래에서도 정확한 기록을 남기지 못해 시시비비가 잦고 분쟁과 비효율이 횡행하였다고 한다. 이에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하신 덕분에 오늘날 우리들은 많은 혜택을 보고 있다.


하지만 국제화 시대를 맞이하여 산업과 경제가 급격히 변화·발달하면서 한글의 윤택함을 누리지 못하는 분야가 늘어나게 되었다. 해운을 통한 국제무역도 한글이 통용되지 못하고 있는 대표적인 분야 중 하나이다. 현재 우리나라 선박회사와 하주가 국제 무역을 하면서 사용하는 관련 계약서들 대부분은 서구에서 만들어진 영문 계약서들이다. 영문 계약서는 타국 회사와의 국제 거래를 위해 꼭 필요하긴 하나, 복잡한 전문용어들이 산재해 있어 아직까지 우리말로 해석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아 분쟁발생시 대처 방법이 모호해 지는 경우도 많다. 또한 법규해석 및 분쟁발생시 영국 내지 미국법을 적용해야 하기 때문에 외국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불편이 있다. 특히 국내 선사 간에 분쟁이 생겼을 때에도 영문 계약서란 이유 때문에 해외에서 송사를 처리해야하므로 경제적·시간적으로 비효율적이며 외화까지 소모해야 하는 등 적지 않은 불편을 감수해야만 했다.


이런 비용과 시간의 낭비와 불합리함을 해소하기 위하여 대한상사중재원은 한국해법학회에 우리나라의 관련 업계가 계약내용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손쉽게 많이 사용할 수 있는 한글로 된 해사표준계약서를 마련하기 위한 용역을 의뢰했다. 이에 따라 만들어진 한국 해사 표준 계약서는 한국법을 적용하고 분쟁도 우리나라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항해용선표준계약서, △특수(석탄, 광탄선) 항해용선표준계약서, △정기용선표준계약서, △정기선용 표준선하증권, △용선계약 표준선하증권, △복합운송표준선하증권, △선박매매표준계약서, △조선표준계약서 등 8종의 해사표준계약서를 만들게 되었다.

 

 

첫걸음은 영문 계약서의 직역에 중점

 

이 날 설명회는 정기선용 선하증권(KORCONLINE 2006)의 저자인 최준선 교수(성균관대학교 법과대학)의 해상 운송 사고에서 ‘중재’의 효용성에 대한 강의로 시작되었다. 중재는 소송에 비해 신속성과 경제성을 중시하는 분쟁해결 방법으로서 비교적 가벼운 해난 사고발생시 소송에 비해 시간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또한 당사자 간의 관계를 냉각시키지 않고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등 여러 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음을 최교수는 역설하고, 이번 해사표준계약서에서도 소송과 중재 선택란에 별도 표기가 없을 경우엔 문제 발생 시 일단 중재를 먼저 시도하도록 하였다고 설명했다. 이어진 ‘정기선용 표준선하증권’에 대한 해설에서 최교수는 이번 한글 해사표준계약서에선 BIMCO(The Baltic and International Maritime Council)가 채택한 정기선용 표준선하증권 CONLINEBILL을 근거로 작성하였다고 말했다.


CONLINEBILL은 최초 제정 이후 꾸준한 개정이 이루어졌는데, 1978년 개정판 완역을 기본으로 하여 관할 법원을 서울 중앙법원으로 변경하고 제9조(동식물), 제13조(지연손해), 제17조(운송인의 특정) 등 국내법과 상충되는 조항들을 삭제·수정을 해 정기선용 선하증권이 탄생했다.


강의에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엔 많은 참석자들의 열띤 문의가 있었다. 먼저 계약서 양식에서 실무 현장의 단어와 상이하게 표기된 단어들에 대한 변경 요청이 있었으며, 제 6조 하단부의 ‘운송인의 책임 범위’가 실제 관례와는 다르다는 지적이 있었다. 특히 오늘날 해운에서 ‘컨테이너 운송’이 차지하는 비율이 현저함에도 이에 대한 조항을 마련하지 않은 것은 계약서의 효용성을 크게 떨어뜨리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두드러졌다. 이에 최교수는 “이번 정기선용 선하증권이 1978년판을 기초로 하여 시대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고 인정하고 업계의 의견수렴을 통해 지속적으로 개선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 하였다.


이어진 시간에 김인현 교수는 먼저 한국해사표준계약서집을 펴냄에 있어서 많은 노력과 지원을 아끼지 않은 배병태 한국 해법학회 명예회장에 대한 감사의 변으로 말문을 열었다. 김교수가 저술한 정기용선표준계약서(KORTIME 2006)는 발틱 해운집회소 공인 정기용선 계약서(Bal Time)와 더불어 가장 많이 애용되는 1993년 뉴욕 프로듀스(NYPE)를 모델로 하여 작성되었다. 실무적으론 1946년과 1981년 서식도 많이 이용되나 시대적 흐름을 감안하여 1993년판을 기본으로 하였다. 김교수는 우선 많은 실무자들이 복잡하게 여기는 ‘용선 계약’와 ‘운송 계약’구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용선 계약에서 중요시해야할 조항들의 설명을 이어나갔다. 김교수는 제6조(선박소유자가 제공하여야 하는 것)부터 제9조(선박연료)까지의 조항들을 정기 용선이 운송과 가장 크게 구분되는 조항들로 꼽고 선박소유자와 용선자의 의무와 권리 범위를 숙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제17조 (용선료 지급 중단)는 실무적 차원에서 충돌이 잦은 부분으로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이 외에도 제18조(재용선)과 제30조(선하증권) 등 용선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조항들과 제35, 36조(하역 인부에 의한 손해, 선창 청소) 등 선장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조항들에 대해 설명했다.


곧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도 여러 가지 질문이 쏟아졌다. 그중 제23조(유치권)에 대한 부분은 분쟁도 빈번하고 논란의 여지도 많은 조항임에 반하여 여러 모로 부족한 점이 많아 향후 많은 보완이 필요한 부분으로 지적되었다.


항해용선표준계약서(KORGEN 2006)의 저자인 박길준 교수(전 연세대학교 법과대학장)는 오랜 시간 이어진 강의에 지친 실무자들에게 가벼운 농담을 던지며 발표를 진행했다. 일단 이번 항해용선표준계약서(KORGEN 2006)는 발트국제해운동맹의 젠콘(Baltic and International Maritime Council Uniform General Charter, GENCON) 1994년판을 바탕으로 작성했다는 일반론을 시작으로 각 조항에 대한 해설을 덧붙였다. 역시 작성된지 10년 이상 되었고 현재 실정과는 맞지 않는 부분들 예를 들어 제17조 (전쟁위험) 등에 지나치게 많은 지면을 할애한 데에 반하여 현대 해운 상황에 필요한 부분들이 미비 되어 있음을 밝힌 뒤 설명회를 마무리 하였다.

 

 

실무진과의 연계 통한 발전이 중요

 

한국 해법학회의 배병태 회장은 이번 설명회를 마무리 하면서 “우리나라 해운의 지위와 역량에 비해 우리말로 된 계약서가 없다는 건 부끄럽고 후진적인 일”이라며 “이번 해사표준계약서의 제정은 최초로 시도된 우리말 계약서라는 점에서 역사적으로도 큰 의미를 가지며 먼저 국내 업체 간의 거래에 적극 사용하길 권장하고 향후 실무자들과의 활발한 정보교류를 통해 수정·발전시켜야 한다”고 업계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당부했다. 


자국어로 된 해사표준계약서의 작성은 우리나라로서는 최초이고 세계에서는 4번째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번에 발간된 한국해사표준계약서집의 구성은 우리말로 된 계약서식과 영문 계약서 원문, 그리고 각 계약서의 우리말 조문 해설이 포함되어 있다.


아직은 제정 초기 단계라 일부 부족한 점이 있지만, 관련업계의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를 통해 보완·개선해 나간다면 앞으로 계약관련 지식이 요구되는 해운·물류업계와 수출입 하주들 간의 계약실무에 유익하게 활용할 수 있는 실무지침서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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