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학술교류 협력사업 논의를 위해 청도에 있는 중국해양대학교에 다녀온 적이 있다. 교정 여기저기를 둘러보다가 화강암 바위에 붉은 글씨로 새겨진 교훈을 보게 되었다. ‘해납백천 취칙행원(海納百川 取則行遠)’ 나중에 알아보니 중국 송나라 때 고서 통감절요에 ‘해납백천’의 의미가 실려 있던 얘기라 한다.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이 진나라 귀족들의 이간질로 그의 핵심 브레인인 이사를 포함하여 외국계 중신들을 몰아내려 한 적이 있는데, 이때 이사가 한 말이 바로 해납백천, 즉 ‘바다는 모든 강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이라 한다.  모든 강물을 받아들인 바다는 멀리까지 갈 수 있다는 교훈인 듯하다. 


다른 사람을 탓하지 않고 받아들임으로 해서 언젠가는 바다와 같은 넓은 마음을 품게 된다는 경구로 사용되는 말이다. 또한 이 말은 리더가 되기 위해서 어떠한 부하 직원, 어떠한 상사와도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똑똑한 사람만 모아서 조직을 만들 수는 없는 것이다. 그중에는 업무의 창의력과 추진력은 좀 부족하지만 친화력이 뛰어나 조직의 비공식 결속을 다지는데 큰 역할을 하는 사람도 있고, 정말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도 있으나 그 역시 역설적으로 보면 조직에서는 필요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이런 일하지 않는 사람 때문에 승진의 기회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도 일사분란한 것만이 건강한 사회가 아닐 것이다. 일부의 반대와 그 반대논리를 수용하고 스스로를 수정하는 과정에서 발전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논리주장과 그 반대의 주장이 결국 타협점을 찾고 서로 약간씩의 양보가 이루어질 때 우리는 민주주의의 장점을 향유하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 우리사회만큼 타협과 양보가 어려운 곳이 또 있을 까 하는 생각이 든다. 노동자에서부터 최고 지식층까지 노선과 이념이 다르면 서로 다른 모습의 생명체를 보듯 전혀 타협점을 찾지 못하는 모습을 너무도 자주 보게 된다. 동창모임에서도, 신심단체에서도, 심지어는 오랜만에 만난 가족끼리도 노선과 이념이 다르면 대화의 타협점을 찾지 못해 멋쩍게 이야기하다가는 그냥 묻어두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그러니 한미 FTA같은 사안을 두고 국민의 표 향방의 이해득실을 따지는 정치는 더더욱 말할 것도 없다. 많은 국민이 반대한 4대강 사업, 적절한 절차를 거쳐 결론지었더라면 사회적 비용이 이처럼 커지진 않았을 사안인 동남권 신공항, 열달 넘게 정국을 뒤흔들다 실패로 끝난 세종시 수정안, 이 밖에 과학비즈니스벨트, 첨단의료복합단지 선정 등 대형 국책사업들이 정책적 원칙에 의해 판단되기 보다는 정치적 논리에 따라 표류하면서 지역 갈등, 여야의 대치, 정부에 대한 신뢰상실 등 사회·정치적 비용이 눈덩이처럼 늘어난 사례를 너무도 많이 보아왔다. 정치야 말로 바다와 같이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소위 ‘정치적’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서민층과 부유층, 수도권과 지방, 여당과 야당, 때로는 엇갈리는 이해를 갖고 있는 여러 집단도 정치라는 바다에 들어가서는 하나가 되는 그런 통 큰 그릇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그게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닐 것이다. 가장 낮은 곳에서, 깨끗한 하천이나 더러운 하천, 큰 하천이나 작은 하천 가리지 않고 모두 받아들여야 하니 말이다. 더구나 청탁(淸濁)을 가리지 않고 받아들인 모든 하천을 오랜 기간 동안 묵묵히 정화해야 하는데, 이것이 얼마나 큰 인내를 요구하는 것인가? 힘들고도 고통스런 인내가 필요한 것이다.


중국 자금성의 모든 현판에는 몽고어가 한자와 함께 병기되어 있다. 자금성의 많은 전각, 누각, 대문 등에 걸려있는 크고 작은 현판에는 예외없이 한자와 함께 만주어(만슈리언)가 병기되어 있다. 만주족 누르하치가 세운 청(淸)나라는 한족의 명(明)나라를 정복한 정복왕조이다. 한족의 입장에서 보면 청나라, 그리고 만주족, 만주어는 정복자들이고, 그 잔재인 것이다. 마치 우리나라를 정복한 일본 같은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우리는 일본으로 부터 독립을 되찾았고, 모든 곳에서 일제의 흔적을 청산하였으나, 청나라는 지금도 중국의 마지막 통일왕조로 인정받고 만주어가 중국 황궁 현판에 병기되어 있다는 점이다.


몽고족과 만주족이 중원대륙을 통일하여 원나라 100년, 청나라 300년을 통치 한 동안, 한족에겐 참기 힘든 치욕이었을 것이다. 변발의 치욕을 인내하고 수용하여 자기의 통일왕조로 정화해 낸 것이다. 이민족에게 수시로 정복당한 역사를 지닌 중국에게, 그들의 역사를 자신들의 역사에 편입시키는 방법이자 자신들의 정통성과 명분을 세우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 중화사상이고, 그 중화사상의 핵심 실천전략이 바로 ‘해납백천’인 것이다.


얼마전 타계한 스티브 잡스가 화려한 아이디어로 세상을 바꾸는 선봉에 섰다고는 하지만, 실은 본인의 창조적인 아이디어라기보다는 몇몇 기본을 빼고는 거의 대부분의 아이디어는 다른 이들이 개발한 것을 받아들인 것이라 한다. 즉 스티브 잡스는 창의성이란 여러 가지 요소들을 연결하는 것이라고 했다. 창의적인 사람은 뭔가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전에 본 것들을 새로운 것으로 융합하는 사람으로 본 것이다. 실제로 애플의 독창적인 제품들은 알고 보면 다른 분야에서 가져온 아이디어를 접목시킨 것이 많다고 한다. 결국 잡스의 경영도 정보의 해납백천을 통해 융합된 창의적 아이디어를 만들어 낸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마침 우리는 해운과 항만, 그리고 해양과 선박을 공부하고, 연구하고, 생업으로 삼는 사람들이다. 해운, 항만, 해양, 수산, 조선, 무역, 물류 등 바다를 중심으로 전 세계를 넘나드는  글로벌 경영인들인 것이다. 바다를 공부하고 바다를 중심에 두고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이 간직했으면 하는 경구로 삼기를 바라면서 해납백천의 의미를 새삼 강조하고 싶다. 낮은 곳에 있으면서 모든 것을 수용하는, 그리고 그것을 오래 인내하며 정화해서 더 크고 창의적인 것으로 만들어 내는 바다, 그 바다를 통해 세계 여러 곳까지 멀리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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