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경영 책망에 “죄송하다. 회생으로 사죄할 수 있도록 해달라”
채권자 ‘대주주 지분 소각’요청에 ‘창업자 이맹기 공적 인정’

9월 23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별관 제1호법정에서 개최된 대한해운의 제 2,3회 관계인 집회에서 동사가 제출한 수정 회생계획안이 채권자들의 반대로 부결됐다.

이날 대한해운이 제출한 수정안은 채권자들이 요구했던 △현금 변제율 제고, 소액채권 차등변제 △대주주의 주식병합비율 제고 또는 소각 △일반주주의 주식병합 비율 제고 △출자전환 가액 인하 △매연도별 현금변제 비율 조정 및 마지막연도 변제계획 앞당기기 등을 감안한 내용이었으나 많은 채권자들이 이를 수용하지 않아 결국 통과하지 못했다.

회사 측이 제시한 수정안에 따르면, 회사 측은 현금으로 변제할 소액채권자의 경우 1,081만원까지 2년내 변제하기로 하고, 대주주의 주식병합비율은 10주를 1주(당초 9:1), 일반주주의 주식병합율은 5주(당초 4.5:1) 하는 안을 냈다. 또한 출자전환가액을 주당 10만원(당초 14만원)으로 조정하고 변제계획의 조기화를 위해 회생채권자의 경우 현금 변제율을 당초 37%에서 40%로 높여 조정했으며, 모든 채무에 대해 제6차년도부터 제9차년도까지 변제비율을 높이고 마지막 연도의 변제율을 50%에서 43%로 낮추도록 했다.

이날 채무 확정된 대한해운의 채무액은 △회생담보권 38억8,660만원 △회생채권 2조4,326억4,347만원 △조세채권 7억6,991만원 △미확정 채무 1조1,658억2,891만원 등 총 3조6,031억2,890만원으로 밝혀졌다.

대한해운의 2,3차 관계인 집회는 오후 3시 개시 일정이었다. 그러나 채권자들의 출석체크에 근 2시간이 걸려 3시 55분에서야 집회가 시작됐다. 판사의 집회개시 선언이후 공동관리인인 최병남씨가 관리인 보고를 했고 이어서 조사위원(안진회계법인)의 조사의견 진술이 진행됐다.

최병남 관리인은 “7월29일 회생계획안을 제출한 이후 채권자들의 수정명령 신청 등 여러 의견을 감안해 수정안을 작성했다”고 말하고 수정안의 상기 내용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짧지 않은 관리인 보고를 마친 된 관리인은 원고 이외의 발언기회를 요청했다. 이 추가발언을 통해 최병남 관리인은 ‘주주가 채권자보다 유리하다, 대주주의 추가 감자 ...’ 등 그간 회자했던 항간의 요구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먼저 제3자 관리인이자 공적 수탁자로서 공정하고 형평성 있게 회생계획안을 마련했음을 전제하며, ‘이진방 회장이 계획안에 개입했다’는 항간의 추측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님을 밝혔다. 아울러 3자 관리인으로서 주주와 채권자의 유*불리 상황을 공정하게 처리했다고 강조하는 한편, 일부 대주주의 지분 소각을 주장하는 요구에 대해서는 1/10로 감자한 뒤 대주주의 지분율은 극히 미미할 뿐만 아니라 창업자인 이맹기씨의 필생의 업적을 인정해 그 정도의 권리는 남겼다고 언급했다. 끝으로 최병남 관리인은 “각자의 유*불리와 이해득실도 대한해운이 생존해야만 따질 수 있는 것”임을 강조하며 “경영상 잘못을 회생으로 사죄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채권자들에게 회사의 회생절차에 대한 지지를 간곡하게 호소했다.

조사위원의 의견진술에 이어 관계인들의 의견진술 시간에는 8-9명 정도의 채권자들이 입장을 밝혔는데, 대개 대한해운이 수정 제시한 회생계획안에 불만을 표시하는 내용이었다. 그리스 선사와 용선업체의 해외 대리인은 모든 채권자들의 대우에 형평성이 부족하다는 의견을 냈고, 발표자의 대부분은 대한해운이 회생절차를 신청하기 2달여전인 지난해말 유상증자에 투자했던 투자자들이었다. 이들은 회사측의 부도덕성을 거세게 질타하며 주주와 회사채 채권자와의 형평성의 문제를 제기했다. 아울러 소액투자자의 경우 1,081만원까지 우선 변제하고 그 이상 투자자들에 대한 변제는 우선순위에서 배제됨을 수용하기 힘들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한 투자자는 경영부실을 따져물을 작정으로 지난 3월 회사측을 직접 방문했으나 막상 해운업황이 기후변화와 각종 변수에 의해 좌우됨을 알고 또한 그 결과에 대해서도 자기잘못으로 인정하는 경영자의 모습을 보고 ‘멱살을 잡고 싶은 심정이 누그러졌다’고 말한 뒤, 주주들의 피해는 수백배의 손실규모라고 지적하면서 회사를 살리지 않고는 달리 방법이 없으니 회생절차를 지원하자는 의견을 냈다. 이 투자자는 특히 이진방 회장에게 많은 이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힌 만큼 회사의 가치회복에 진력을 다해야 하며 국가와 사회에 봉사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법정에서는 이 투자자에 대한 야유의 분위기가 압도적이었다.

회사 부실의 핵심요인인 용선계약의 경우 잔존계약건에 대해서도 적정성을 따져보아야 한다고 진술한 투자자도 있었고, 경영부실을 들어 이진방 회장의 공동관리인 해임건을 제기한 의견과 일반 금융과 마찬가지로 예금자 보호법처럼 5,000만원까지 변제해달라며 투자자 보호장치를 원하는 요구, 새 회생계획안을 요구하는 의견도 나왔다.

이진방 회장의 공동관리인 직위 유지에 관해서, 이날 집회 주관 판사는 불법사항이 없는 한 직위가 유지된다고 밝히고, 만약 불법사항이 발견될 시에는 즉시 해임됨을 덧붙였다. 이상과 같은 채권자들의 회생계획안에 대한 불만과 책망에 대해, 최병남 관리인은 그저 “죄송하다. 최선을 다했다”는 말로 답변했다.

판사가 대한해운의 수정 회생계획안 찬반을 표결에 부친 시각은 개회후 1시간 30분여가 지난 5시 30분. 판사는 일일이 2,500여 채권자를 호명해 찬반여부를 물었고, 저녁 7시경 담보권자와 채권자, 미확인 채권자 세부분으로 찬반을 나누어 표결을 집계한 결과 부결되었음이 선언되었다. 이렇게 대한해운 제2,3회 관계인 집회는 7월에 이어 또다시 회생계획안을 확정하지 못하고 출석체크 시간부터 총 5시간여가 걸린 마라톤 집회에도 불구하고 채택되지 못했다.

회생 가능하다고 판단하는 선에서 회생계획안이 마련되고 또한 추가 수정을 가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한해운의 회생계획안이 다시금 부결된 것은 그만큼 채무관계가 많고 복잡함하며 많은 이들이 막대한 피해를 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의견진술을 하겠다며 발언기회를 얻은 한 투자자가 단상에 서자 마자 복받쳐 오르는 울분을 참지 못해 주저앉아 통탄하는 모습을 보며, 또한 집회 내내 죄인인양 해명 한마디 못하고 관리인 자리를 지키고 있던 최고경영자의 초췌한 모양을 통해, 현대사회 기업은 대주주만의 것이 아닌 투자자들과 거래자들과 공동의 것임을 통감하게 된다. 기업과 기업가들의 사회적 책임의 막중함이 새삼 상기되는 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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