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 인재양성
말복과 처서가 함께 있어 여름과 가을이 교차하는 8월. 8월은 또한 윌리엄 포크너의 장편소설 ‘팔월의 빛(Light in August)’처럼 뜨겁게 작렬하는 햇빛과 열기로 숨이 막히는 달이다. 태양이 내려 쪼이는 8월의 어느 날, 젊은 여인 리나 그로브가 만삭의 몸으로 자기를 버리고 떠난 한 사내를 찾아 배타적이며 인종편견이 심한 미국 남부의 제퍼슨으로 찾아온다. 그리고 조 크리스마스를 비롯한 외지인들과 함께 원주민들의 냉대와 박해 속에 힘겨운 삶을 살아간다. 인종적 금기를 깨트린 자로 낙인 찍혀 백인사회와 흑인사회 어디에도 끼지 못하고 주변인으로 살아가던 외톨이 조는 술 밀매 사건에 말려들어 살인자의 누명을 쓰고 들쥐처럼 몰아세워져 희생되지만, 리나는 외지인중 유일하게 이 마을을 빠져나와 갖은 고생 끝에 아기를 낳는다. 대립과 집단폭력의 절망 속에서도 새로운 세상, 내일의 희망을 낳은 것이다. 무더위와 폭우의 8월, 그러나 결실의 계절 가을은 온다.

콤파스도 8월에 방학을 했다. 방학이란 말 그대로 날씨가 너무 덥거나 추워 학교에서의 정상수업이 어려우니 집에서 쉬면서 밀린 공부도 하고 자연 속에서 세상을 배우라는 뜻이 담겨 있다. 해운물류업계 인사들이 매달 첫 금요일 아침에 모여 초청강연을 듣거나 세상사와 해운현안에 관해 자유롭게 토론하는 모임 콤파스도 자율학습으로 들어갔다. 휴식(休息)의 한자적 의미는 “사람이 나무 옆에서 숨을 쉬고 있는 상태”를 뜻한다. 인간의 두뇌도 기계와 같아 가끔 쉬며 점검할 필요가 있다. 컴퓨터처럼 불필요한 자료를 버리고 휴지통을 비우고 바이러스도 치료해야만 속도가 빨라지고 능률이 오르기 때문이다. 특히 창의적인 일을 하려면 머리를 맑고 단순하게 만들어 놓아야 한다. 그동안 심신의 피로를 씻어내 이제 새로운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면 좋은 휴가, 생산적인 충전을 한 것이다.  

한국해사문제연구소가 시행하고 있는 교육 프로그램에 선박금융과 해운물류 과정이 있다. 국토해양부와 한국선주협회의 지원으로 이루어지는 이들 교육은 해운물류업계와 금융, 조선업계의 재직자를 위한 실무교육이다. 선박금융교육은 한국해양대학교, 한국금융연수원과 우리 연구소가 컨소시엄 형식으로 작년부터 시행하고 있고, 해운물류교육은 전문인력양성과정으로 우리 연구소가 단독으로 7년째 시행하고 있다. 지난 8월말까지 선박금융과정은 2기, 해운물류과정은 18기를 마쳤으며, 수료생은 선박금융이 34명, 해운물류가 522명에 달한다. 이에 대한 교육성과가 업계 현장에서 나타나고 있어 고무적이다. 전문성을 요하는 해운물류 분야는 이해하기가 어렵고, 업무상 궁금한 것이 생겨도 딱히 물어볼 사람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를 보완할 수 있는 것이 실무 재교육이고, 큰 효과를 보는 나라가 해운강국 덴마크이다. 국토가 좁고 인구도 적고 교역량이 변변치 않은 나라에 어떻게 세계 제1의 해운물류기업 AP몰러와 머스크가 나왔을까? 그 비결은 해운물류재교육에 숨어 있다. 우리가 해운물류전문인력양성교육을 시행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교육(敎育)이란 말 그대로 가르치고 기르는 것이다. 잘 교육시켜 쓸만한 사람을 인재(人材)라고 부른다. 교육은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로써 배울 권리와 배워야 할 의무가 함께 부여되어 있다. 한자의 교(敎)자는 가르친다는 것과 배운다는 의미가 함께 들어있다. 따라서 사람은 스스로 배워야 하고 또 남을 가르쳐야 한다. 한국해사문제연구소의 정관상 업무에 교육사업이 들어 있다. 이에 근거하여 한국해사문제연구소 부설 해운물류교육원이 설립되었고 그간 해운실무교육과 해운물류전문인력양성교육, 선박금융교육을 비롯해 얼마전 해운심화교육도 시작하였다. 심화과정이란 특정분야를 깊이 공부하기 위해 개설한 교육 프로그램이다. 우리 교육원은 우선 용선론을 시작하였는데, 선박관리와 해상보험도 속개할 예정이다. 해운실무교육은 정기선분야, 부정기선분야, 해운경영분야, 항만분야가 있어 현재 10년째 시행하고 있고, 해운물류전문인력양성교육은 2004년에 1단계가 시작되어 2009년 끝났고 2010년부터 2단계가 시작되어 2년째 시행하고 있다.

지난 18기 동안 수료한 교육생들은 현재 해운물류업계의 각계각층에서 활약하고 있다. 또한 선박금융교육과정은 작년에 시작되어 올해까지 2기가 끝났는데, 여기에는 해운물류업계와 금융업계 재직자들이 반반씩 참여하여 교육을 받았다. 해운과 금융계 재직자들이 교육과정을 이수한 후에도 활발히 교류하며 업무적으로 협력하고 있다고 한다. 교육은 백년대계(百年大計)이다. 백년을 내다보고 시행하는 것이 교육이고 백년동안 길러야 하는 것이 인재이다. 해운물류의 성장과 발전은 결국 사람, 인재에 의해 완성된다. 어느 부처보다 인재양성에 힘쓰는 국토해양부, 우리나라 해운물류분야의 전망이 밝은 또 하나의 근거이다.

‘십자군 이야기’와 ‘후흑학’
올 여름엔 비가 참 줄기차게 내렸다. 지난 7월, 장마가 끝났다는 기상청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장마보다 더한 폭우가 8월 내내 쏟아졌다. 모두가 지쳐 이젠 제발 비가 그만 왔으면 하는 푸념소리가 도처에서 터져 나왔다. 오죽하면 기양제(祈陽祭)까지 지냈을까? 가뭄으로 논바닥이 쩍쩍 갈라져 농작물이 타들어가고 식수차와 양수기를 동원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부쩍 심해진 기상이변도 결국 인간이 자초한 것이라니 하늘을 원망할 수도 없다. 한동안 각종 재난이 강릉과 영동지방에 집중되어 미안할 정도였고, 서울 주변은 비켜가 과연 풍수지리의 고장이라고 했으나, 올핸 그게 안 통했다. 서울 특히 부유층이 모여 산다는 강남 3구의 피해가 더욱 컸다. 재해도 순환하는 모양이다.

요즘 책이 안 팔려 출판업계가 울상이다. 독서인구가 줄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민족은 망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독서는 사고의 폭을 넓히고 인격을 높이며 인생을 풍요롭게 한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도 읽을 책 5권을 들고 휴가에 들어갔다고 한다. 비로 인해 책을 읽을 시간이 그만큼 늘어난다면 전화위복이다. 이번에 관심을 끈 책은 ‘십자군 이야기’와 ‘후흑학’이었다. ‘로마인 이야기’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일본의 여류작가 시오노 나나미 작 ‘십자군 이야기’와 천하를 얻고 승자의 역사를 쓰려면 꼭 읽어야 한다는 청말(淸末)의 이종오가 쓰고 신동준이 재편한 ‘후흑학’ 책을 벗 삼아 우기(雨期)를 보냈다.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는 교황의 말 한마디에 열성 기독교인들을 선두로 제후와 기사들은 해가 뜨는 곳 오리엔트로 향했다.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광야를 달려 오직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해, 이른바 십자군전쟁이다. ‘로마인의 이야기’를 읽으며 방대한 자료수집과 세밀한 필치에 내심 감탄했는데, ‘십자군 이야기’도 종군기사 같은 생생한 표현에 또 한번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천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십자군전쟁에 직접 참전한 것 같은 현장감과 생동감을 선사했다. 작가의 사견까지도 논리와 개연성을 충분히 갖추었기에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무엇이 기독교권과 이슬람권을 화합할 수 없는 관계로 만들었을까? 이스라엘의 선민사상 때문일까, 아니면 “코란이냐, 칼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이슬람식 포교방식 때문일까? 십자군전쟁으로 인해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당시의 시대적 상황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 책이 말해준다. 바티칸과 비잔틴으로 대별되는 천주교회, 신성로마와 왕과 제후들, 베네치아 제노바 같은 해양 도시국가들, 칼리프인 이집트와 셀죽 투르크 그리고 팔레스틴의 크고 작은 국가들은 돈과 영토와 지배권이라는 목표를 향해 각축전을 벌였다. 종교적 명분 보다 경제적 실리가 앞섰다. 예루살렘 성지회복을 명령한 교황의 입장과 산식도 복잡했다. 정치는 명분과 실리 모든 것을 포함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은 착하고 양심적인 사람을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겉으로는 칭찬하지만, 속으로는 “남한테 이용당할 사람” 또는 “실속 없어 처자식 굶길 사람”이라며 혀를 찬다. 눈 감으면 코 베어가는 험악한 세상, 남을 타고 올라가지 않으면 내가 짓밟히는 세상, 변칙과 술수가 난무하는 세상에서는 살아가는 방법도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험한 세상 악한 상대와 맞서기 위한 방법을 가르쳐 주는 책 ‘후흑학’이라지만, 평소의 생각과는 거리가 있어 조금은 혼란스러웠다. 다만, 역사인물에 대해 품었던 몇 가지 의문점이 어느 정도 풀리긴 했다. 예를들어 우리의 기대와 달리 초한지제의 항우가 유방에게 패배하고 유비가 조조에게 패퇴하고 장개석이 모택동에게 밀려났는데, 그 까닭을 저자는 후흑(厚黑)과 박백(薄白)으로 풀이했다. 후흑은 큰 목적을 감춘 뻔뻔함과 음흉함이요 박백은 얼굴이 얇아 체면을 버리지 못하고 마음이 맑아 의중을 숨기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명분과 실리라는 말에 비견되나 일치하지는 않아, 명분을 앞세우다 패망하고 실리를 좇다가 소탐대실(小貪大失)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따라서 역사를 보는 긴 안목이 필요한데, 이것은 경서인 주역을 탐독한 장개석과 사서인 자치통감을 손에서 놓지 않은 모택동의 사례에서 확연히 드러났다고 저자는 말한다. 제왕학을 가르칠 때 맹자와 함께 한비자도 읽게 했는데, 원칙과 함께 변칙도 터득해야 사람을 잘 다루고 나라도 경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후흑학’ 책은 난세의 처세술, 역사의 승자-후흑의 대가들, 승자의 전략 후흑술, 후흑으로 오늘에 답하라로 구성되어 있으며, 위기에 빠져나갈 퇴로를 만드는 법과 솜에 바늘을 감추고 때를 기다리는 법, 상하 간에 큰 신뢰를 만드는 법과 같은 후흑술의 9가지 전략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후흑의 최종 목적이 난세에 살아남고 나라를 구하는 후흑구국(厚黑救國)이라고 정리하며, 기업경영에도 이것이 적용된다고 부연한다.
                      
자본주의 4.0과 신경제
“이제는 자본주의 4.0시대다!” 신경제의 탄생(The Birth of a New Economy), 신자유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이라는 거창한 소개에 걸맞게 요즘 우리 사회의 화두는 자본주의 4.0이다. 임기를 1년여 남긴 이명박 대통령도 공생발전 즉 경제발전의 열매를 함께 나누어 성장의 온기가 하부에까지 골고루 스며들 수 있도록 국정을 운영하겠다고 발표했다. 집권초기의 선 성장 후 분배의 기조에서 일부 수정한 셈이다. 혹시 이 논리를 자본주의 4.0에서 원용하지 않았을까? 대기업 위주의 하청구조, 중소기업의 폐업, 고용없는 성장, 청년실업, 중산층의 감소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고민이 반영된 듯하다. 바야흐로 신경제 뉴 버전 자본주의 4.0이 시작되었나 보다.

살아있는 월가의 전설이라 불리는 투자의 귀재 조지 소로스가 “자본주의의 미래를 이해하려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라고 강력 추천한 아나톨  칼레츠키의 ‘자본주의 4.0(Capitalism 4.0)’을 경제학을 공부하듯 밑줄을 그어가며 읽어 내려갔다. 칼레츠키는 러시아 출신으로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한 후 하바드대학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이코노미스트지와 파이낸셜 타임스의 기자와 에디터로 근무하며 균형잡힌 시각과 깊이있는 분석, 통찰력있는 예측으로 높은 명성과 신뢰를 얻고 있는 언론인이다. 칼레츠키는 역사적 관점에서 세계경제를 분석하며, 자본주의는 변화하는 환경에 맞추어 스스로를 적응 발전시킬 수 있고 살아남기 위해 새롭게 진화하기 때문에 민주적 자본주의는 사라지지 않을 시스템이라고 단언했다. 대공황과 금융위기로 인해 자본주의가 붕괴될 것 같았으나 그때마다 위기를 통해 수정 보완하여 등급을 올려가며 진화해 왔다는 것이다.

저자는 컴퓨터 프로그램처럼 자본주의의 버전을 매긴 것이 이채롭다. 즉 자본주의 1은 애덤 스미스에서 후버와 히틀러까지, 자본주의 2는 루즈벨트와 케인스에서 닉슨과 카터까지, 자본주의 3은 대처와 레이건에서 부시와 그린스펀까지, 그리고 자본주의 4는 리먼 브라더스 파산으로 불리는 금융위기 이후 기간을 뜻한다. 자본주의 1.0이 자유방임주의 시대였다면, 2.0은 정부 주도의 수정자본주의 시대였고, 시장이 주도한 신자유주의 3.0에 이어, 2008년 금융위기로 마침내 혼합경제를 특징으로 하는 4.0시대가 열렸다고 풀이했다. 저자는 균형잡힌 관점에서 금융위기를 분석하려면 좌파의 히스테리와 우파의 오만한 자기과신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고 충고하며, 자본주의 4.0에서는 정부와 시장이 상호의존적 관계로 인식되고, 회의주의 실험정신 유연성이 강조되며, 제도적 적응력과 이데올로기적 유연성이 특징으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인간의 행위는 예측불가능성이 내재되어 있기에, 자본주의 4.0과 이전 자본주의와의 핵심적인 차이점은 경제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예측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식하는가의 여부라고 말하고, 순진하게 시장 메커니즘을 믿거나 불변의 경제법칙인양 미래를 예측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자본주의에는 놀랄만한 회복력과 적응력이 있어 위기를 거치면서도 파괴되지 않는데, 구부러지기에 부러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호황과 불황이 순환하도록 되어 있는 경제가 1920년대의 대공황과 지난 금융위기를 불러온 원인은 시장에 맡기면 저절로 문제가 해결된다는, 역대 미국 재무장관 중 가장 무능한 두 사람 멜런과 폴슨의 방임주의 결과라고 말하고, 재무장관과 중앙은행이 금융공황을 진정시키고 예금을 보호하는 역할은 경찰과 군대가 폭도들을 진압하고 재산을 보호하는 것과 비슷하다며,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금융위기를 예측하지 못한 것보다 위기가 일어난 뒤에 정치인과 은행들이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 데에 더 큰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신경제학에서 시장경제는 균형상태의 정적인 시스템이 아닌 끊임없이 진화하는 시스템이고, 효율적인 정부와 역동적인 민간기업은 배타적인 관계가 아닌 협력적인 관계이고, 인간행위와 경제적 사건들이 원래 예측불가능하다는 점에 초점을 맞춰져 있다고 저자는 풀이했다. 그리고 유능하고 적극적인 정부가 있어야 시장경제가 존재할 수 있다며, 현재 금융부문의 존립이 궁극적으로 정부의 지급보증에 달려 있음을 예로 들었다. 자본주의 4.0시대에는 금융자유와 금융혁신을 제한하지 않으면서도 경제의 안정성을 개선시킬 수 있는 새로운 금융시스템이 필요하다며, 4.0 시대에 세계가 겪을 10가지 큰 변화를 제기했다. 1) 미국과 중국의 경쟁, 2) 미국과 유럽의 융합, 3) 서구적 가치와 아시아적 가치의 대립, 4) 비즈니스 이해관계와 새 모델, 5) 무역과 산업의 구조, 6) 성장과 자원의 한계, 7) 환경과 긍정적인 경제 이야기, 8) 성장 없는 번영, 9) 통화와 금융 관계, 10) 글로벌 문제와 글로벌 통치이다.

그는 2010년 1월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행한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의 연설을 그 논거로 인용했다. “우리는 무엇이 자본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자본주의를 원하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시장이 항상 옳으며 시장을 거스르는 요소들을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세계화를 제어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세계화 추세 안에서 일어난 단순한 위기가 아닙니다. 세계화 자체의 위기였습니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새로운 성장 모델을 만들고, 공공부문과 민간부문 간의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는 것입니다.......” 또한 “앞으로 몇년동안 글로벌 정치는 더욱 혼란스럽고 많은 갈등이 나타날 것이며, 국제무역의 불균형과 대립은 심화되고 더 많은 금융거품이 형성되었다가 터질 것이고 민주적 자본주의 진전은 불규칙하게 진행되는 것만은 확실하다. 또한 새로운 자본주의 모델도 모든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못하는 치명적인 모순을 지니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 새로운 자본주의 버전도 결코 합리적이며 완벽하게 효율적이며 영원한 균형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인간의 삶처럼 언제나 예측하기 어려우며 애매모호하고 일관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자본주의 4.0이라고 칼레츠키는 정리했다. ‘국부론’으로 논증한 애덤 스미스의 자본주의 1.0부터 계속  업그레이드하여 출시한 칼레츠키의 혼합경제 ‘자본주의 4.0’도 결국은 불완전하고 불확실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버전 5.0을 또 기다려야 하나. “인간이 만든 제도는 완벽하지 못하다. 다만 진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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