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치적선 한국정부 과세권 가지나?

여순감옥 안중근 의사 흉상
여순감옥 안중근 의사 흉상
한국인이 관리하는 편의치적선에 한국정부가 과연 과세권을 가지고 있는가?

문제의 제기
지금까지 근대화 이후 정착된 해양질서에 있어서 선박의 특수한 법적지위에 관하여 다각도로 검토해 보았다. 이제는 이러한 해양법상 특수한 지위에 있는 외국선에 대하여 대한민국정부가 어디까지 관할권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하여 검토해 보고자 한다. 우리나라의 국제항에는 하루에도 수백척의 내외국선이 출입한다. 이들 선박을 크게 분류한다면 국적선과 외국선으로 구분할 수 있다. 국적선이란 우리나라 선박법에 의하여 우리나라에 등록하고, 국적증서를 교부받고, 대한민국 국기인 태극기를 게양할 권리를 가진 선박이다.

그리고 이 국적선을 제외한 모든 선박은 외국선이다. 이들 외국선은 누누이 강조한 바와 같이 각기 자기 소속국에 등록하고, 자기 소속국의 국기를 게양할 권리를 가진 선박이며, 자기가 소속한 주권국가의 배타적 관할권에 복종하여야 한다. 이는 태극기를 게양한 국적선이 대한민국의 배타적관할권에 속하는 것과 똑같이 국기게양권을 부여한 국가의 배타적 관할권에 속하는 것이다. 각기 자기가 등록한 등록국의 배타적 관할권에 속함으로써 대한민국의 관할에서 배제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대한민국이 우리나라 항만에 출입하는 선박에 관할권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이들 외국선이 무행통항의 범주를 넘어섰을 경우(즉 유해통항이라고 할 수 있는 명백한 증거가 있는 경우)에 한하고, 그것도 해양법 조약상 명문으로 연안국의 관할권을 인정한 경우에 한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들 외국선들을 등록국가별로 분류해본다면 미국, 영국, 일본 등 정상적인 선박등록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는 정상 치적국과 지난 호에 기술한 바와 같은 편의치적국에 등록한 선박으로 대별할 수 있다. 그 차이에 대하여는 지난 호에 상세하게 설명하였으므로 여기서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결론적으로 편의치적선의 경우, 해운업의 다국적 기업성을 최대한 살리기 위하여 다양한 경영기법을 활용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국제해양법상의 법적지위는 정상치적선과 편의치적선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 법적지위가 똑같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미국선박이든 영국선박이든 일본선박이든 파나마 선박이든 라이베리아 선박이든 국제해양법상 평등한 법적지위에 서는 것은 당연하다. 예외가 있다면 하나 있을 수가 있다. 예를 들면 경제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 선박 등에 관하여는 일부제약이 가해지는 경우정도가 있을 수 있다.

국적취득조건부나용선 선박의 법적지위에 관한 검토
여기서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국적취득조건부나용선 선박에 관한 문제를 검토해보자. 우리나라 해운업 발전 초창기에 선박확보자금의 구득의 편의를 위하여 Hire Purchase BBC(Bare Boat Charter) 방식으로 선박을 도입하면서 이에 관한 정부허가를 받았다. 여기서 정부허가를 받았다고 하면 한국정부가 공권력적인 관할권을 가진 것으로 해석하기 쉽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행정상의 편의에 따른 허가에 지나지 아니한다. 해운업자가 이러한 허가를 받고 해운업을 하려하였던 것은 당시 ①당시 한국정부는 한국선원의 부족을 이유로 한국선원을 외국선에 승선시키기 위하여는 정부의 허가를 받도록 하였고, ②또 수출입화물운송에서 ‘自國貨自國船주의’(우리나라 화물은 우리나라 선박으로 운송하여야 한다는 원칙) 정책을 시행 중이었으므로 우리나라 화물 운송상의 편의를 위한 것이다. 어디까지나 행정상 편의에 의한 것이지 배타적 관할권과 같은 중대한 법적문제가 있어서 그렇게 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Hire Purchase BBC는 정부가 허가하지 아니하여도 얼마든지 유효하게 할 수 있는 개인 간의 국제상거래의 일종에 불과하다. Hire Purchase BBC는 두 가지 요소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BBC(나용선계약 : 선박임대차) 계약이고, 다른 하나는 Hire Purchase 계약이다. Hire Purchase를 우리말로 한다면 소유권취득조건부라고 할 수 있어서 BBC 계약이 완료되면 용선자가 본선에 대한 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선택권(Option) 갖는다는 것이다. 이 계약을 엄격하게 해석한다면 BBC 계약과 매수청구권인 Hire Purchase Option 계약은 긴밀하게 링크되지만 어디까지나 서로 다른 두 가지 계약이 하나의 계약서에 포함되어 있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BBC 계약이 완료되고 나면 용선자가 반드시 Hire Purchase Option권을 행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계약서에 정해진 시간 안에 선택권(Hire Purchase Option)을 행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행사여부는 어디까지나 용선자의 선택에 맡겨져 있는 것이다. 다만 이 계약의 특성상 용선자가 선택권을 행사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얼마든지 그렇지 않을 가능성은 열려 있는 것이다.

특히 강조할 사항은 이 계약은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일방적으로 정부 허가 시에 그 명칭을 임의로 국적취득 조건부라고 하였을 뿐, 계약서의 어느 구석에도 본선의 국적(nationality) 취득과 관련된 문구는 들어있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 말로 이것을 정의한다면 나용선 계약 종료 후 본선매수청구권부 계약이나 본선매수청구권부 나용선계약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정부나 수사당국 혹은 세무당국은 이것을 할부구매라고 해석하는 것 같은데 계약서의 어느 구석을 보아도 할부구매라는 요소는 들어있지 않다. 그러므로 할부구매라는 이론도 억지로 갖다 붙인 논리이지 이 계약의 본질에서 나오는 해석이라고 할 수 없다. 최근 금융제도의 하나로 고가의 장비를 리스하는 리스산업이 발달하면서 리스계약에 리스계약 종료후의 매수청구권이 일반화되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다고 그것이 이 계약의 본질은 해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Hire Purchase Option권을 행사하기 이전에 이것을 할부구매라고 단정하고 각종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외국선박에 대한 과세권이 있는가?
가장 중요한 문제는 정부의 판단이 백번 옳다고 하더라도 ‘다른 나라의 배타적관할권에 속하는 선박에 우리나라가 세법을 적용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선박에 대한 배타적관할권의 성격은 주권국가의 영토에 대한 배타적관할권과 매우 흡사하다는 점을 수차 강조한 바 있다. ‘어떻게 외국의 영토에 준하는 배타적관할권이 있는 선박에 우리나라 세법이 적용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정부의 명확한 해답이 있어야 한다. 정부의 이론은 할부구매이므로 할부금을 지급한 만큼의 소유권은 한국인(혹은 한국해운업체)에게 넘어왔으니까 그만큼의 과세권도 우리나라로 넘어왔다고 하는 논리인 것 같은데, 국제법상 타주권국가의 영토에 준하는 선박의 소유권이 사적인 계약에 의하여 부분적으로 이전될 수 있다는 논리는 도저히 성립될 수 없다.

본선의 소유권이 외국으로 이전되기 위해서는 현행 국제법상 반드시 선박의 국적 이전이 필요하다. 상대국이 가만히 있는데 우리가 50%의 소유권이 우리나라로 넘어왔다고 주장한다는 것은 논리적인 모순이다. 이런 논리를 잘못 주장할 경우, 선박의 이중국적 금지라는 국제해양법상의 기본원칙을 위반하는 중대한 문제가 발생할지 모른다.

이 문제를 영토문제와 관련시켜 생각해보자. 우리나라 사람이 외국에 토지 등 부동산을 살 수 있고, 그 나라 법에 의하여 소유권을 취득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 사람이 미국에 백만평의 토지소유권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토지가 우리나라 영토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는 그 토지를 취득한 사람에게 취득세를 부과한다거나, 재산세를 부과할 수 없다. 마찬가지 논리로 설령 Hire Purchase BBC가 할부구매라고 하더라도 그에 대하여 과세권이 우리나라에 생겨난다고 할 수 없다. 전술한 바와 같이 Hire Purchase BBC는 BBC계약부분이 끝나고 나서 Hire Purchase Option을 하게 되어 있는데 Hire Purchase Option권을 행사하기 전에 이미 ‘소유권을 부분 취득하였다’고 주장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관할권 없음으로 다투어야
이 문제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하여 필자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하였지만, 이 문제의 본질은 우리나라가 외국에 등록되어 외국 국기를 게양하고 있는 선박에 대하여 과연 ‘과세권’과 ‘재판 관할권’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또한 가장 큰 문제는 이 문제가 사법당국이나 세무당국에 의하여 문제가 되었을 때 이해당사자나 그를 보호하여야 할 입장에 있는 사람들(변호사 등)이 관할권 문제를 한 번도 제기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아주 단순하게 결론부터 말한다면 다른 주권국가의 배타적 관할권에 속하는 문제이므로 기국이외의 국가는 과세권을 비롯한 관할권이 없다는 것은 해양법조약을 간단히 한번 읽어보면 명백하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질질 끌고 있다는 것은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할 수가 없다”는 또 다른 법원칙에 의하여 그대로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외국의 사례를 조사해 보자
이 글의 도입부에서도 주장한 바와 같이 국적취득조건부 나용선 제도가 우리나라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 1960년대 말이고 이 문제가 수사당국이나 세무당국에서 문제가 된 것은 1970년대 중반부터이다. 그 이후 심심하면 한 번씩 문제가 되었다가 로비를 잘하면 슬그머니 수그러들기를 수십 차례 반복하고 있다. 이 제도를 비롯한 편의치적선 제도는 우리나라만 유독 이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해운을 하는 거의 모든 국가가 이용하고 있는 제도이기 때문에 다른 선진국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 지를 전문기관을 통하여 한번 조사해보기를 제안한다.

필자는 이 문제에 대하여 과세하고 있는 국가가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알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진실이라고 할 수 없으니, 미국(편의치적선제도를 사실상 창시한 국가), 일본(시쿠미센이라는 형태의 BBC로 일본해운력을 유지하고 있는 국가), 영국(세계의 해운교과서로 통하는 국가) 등에서 이러한 문제가 제기된 사실이 있는 지, 제기된 경우 어떻게 해결하였는 지 등을 조사해서 우리의 입장을 결정하되, 공정성과 객관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관계기관이 납득할 수 있는 전문기관을 선택하여 맡기도록 하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된다. 조사기관으로는 해운관련 연구기관인 해양수산개발원(KMI), 재경부 산하의 조세연구원, 그리고 법무부가 추천하는 연구원에 공동으로 용역을 위탁하면 좋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그 조사연구에 소요되는 비용은 이 문제 때문에 가장 고통을 많이 받는 한국선주협회 같은 곳에서 부담하면 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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