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살리기 국민운동의 진로
나머지 11달과 바꾸지 않겠다는 계절의 여왕 5월. 5월의 콤파스가 어린이날과 초파일의 징검다리 휴일에 걸려 13일에 열렸다. 이날 바다살리기국민운동본부 5대 총재로 취임한 조정제 전 해양수산부장관이 ‘바다살리기 국민운동의 진로’라는 제목으로 발표하였다. 한때는 선진한국이 화두로서 각종 연설문의 단골메뉴였다. 우리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GNP가 우선 올라가야 하겠지만, 그와 함께 국격과 국민의식도 향상되어야 한다. 국격이 높아진다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역할과 비중이 커지고 책임도 무거워진다는 뜻이다.

국제현안인 기아 질병 환경과 국제갈등 및 분쟁 해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정부 차원 뿐 아니라 민간단체와 자원봉사자들의 폭넓은 활동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국민소득이 높은 중동과 아프리카의 산유국들을 선진국이라고 부르지 않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교육수준 질서의식 노약자 특히 장애인에 대한 배려와 봉사정신이 갖추어져야 한다. 외국인에게 바가지요금이나 물리고 시장에 짝퉁이 넘쳐나고 무고와 위증이 횡행하는 신용없는 나라를 선진국이라고 할 수 없듯이, 이기주의와 한탕주의가 팽배하고 소요와 법규 위반이 만연된 무질서한 사회를 선진사회라고 할 수 없다. 선진국이란 물질문명과 함께 의식구조 즉 문화도 발전해야 한다.

조정제 총재는 인사말을 통해 KMI 원장과 해양수산부 장관을 역임하여 대학총장이나 국무총리를 맡았으면 했더니 같은 총자 돌림인 총재를 맡게 되었다며 웃었다. 이왕지사 마지막 공직이라고 생각하고 남은 생애 최선을 다하겠으며, 콤파스클럽이 바다살리기 국민운동본부의 상원 격이니 산하단체처럼 생각하고 물심양면으로 후원해 달라고 말했다. 발표내용을 소개한다.
바다살리기 국민운동본부는 1998년 9월 11일 해양수산부(장관 김선길)의 설립인가를 받고 출범하였다. 초대 총재는 최선영이며 2대 김달환, 3대 임병석, 4대 정태순에 이어 5대에 조정제 전장관이 선출되었다. 서울 중앙본부를 위시한 도 본부가 10곳, 지부가 12곳, 지회 3곳 등 총 25개가 설치되어 있으며, 현재 인천본부와 충북본부 설치가 추진되고 있다. 바다살리기 국민운동은 중앙 보다 도와 시군 차원의 활동이 더욱 활발한데, 대표적으로 포항지회를 들 수 있다.

우리나라 바다 오염의 70 내지 80%가 육상에 기인하고 나머지 20 내지 30%가 바다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바다 살리기는 우선 강 살리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산업폐수, 축산폐수, 생활폐수가 하천을 통해 바다로 유입되고 있다. 서해에서는 물고기 보다 비닐과 폐그물 같은 것들이 더 많이 걸려 올라온다. 새만금 계획이 성공하려면 상류 익산천의 축산폐수가 먼저 해결되지 않으면 한국의 베네치아가 될 수 없다. 우리가 버린 라면봉지 같은 쓰레기가 일본의 니가타 대마도 등에 표류하고 있다. 바다에서 생기는 오염은 주로 어선에서 버리는 폐어망과 가두리 양식장의 바다 바닥 시멘트화이다. 또한 선박에 의한 오염으로 2007년 태안해역에서의 유조선 허베이스피릿호 기름유출로 큰 피해를 입었으나, 아직도 단일선체 유조선들이 연간 300회 이상 우리 해역을 항해하고 있다. 심지어 남극도 오염되고 있는데, 퇴적물에 선박용 페인트에 포함된 유기주석이 발견되고 있다. 이 물질은 해양생물의 성장과 인체에 나쁜 영향을 끼치므로 IMO가 협약을 제정하여 2003년부터 금지하고 있다.

바다를 살리기 위해서는 강의 오염부터 막아야 하는데, 우리 강은 강바닥 물이 1% 밖에 흐르지 않는 실개천이 대부분이므로 자정능력이 생길 수 있도록 유지용수가 잘 흘러야 한다. 자정능력이 없는 오염된 물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면 바다가 죽게 된다. 강에 유지용수를 확보하려면 상류에 댐을 막거나 보나 기존 저수지의 둑을 높이는 길밖에 없으나 환경론자들은 댐과 보 모두를 반대하고 있다. 바다살리기 국민운동본부는 강과 바다 전체를 보는 시각에서 4대강 사업과 지천 오염방지 사업에 찬성하며, 강에 유입되는 오염을 고발하는 등 관심영역을 강으로 확대하고 있다. 청개천이나 한강에서 쓰레기 수거 또는 강 살리기 운동을 전개할 예정이다.
2012년 바다의 날 행사를 한강에서 개최했으면 한다. 그날 한강오염 방제와 요트경기 같은 행사를 전개했으면 하는데, 강과 바다를 잇는 워터프런트(Waterfront) 개발을 적극 추진하고 돛단배도 띄웠으면 좋겠다. 
해양수산부 부활 운동에 관해 언급한다. 해양수산부 창설에 얽힌 일화를 소개한다. 제1회 바다의 날 행사를 준비할 때 당시의 김광일 비서실장에게 대통령의 기념사는 의례적인 것보다 알맹이 있는 내용이 필요하며, 김영삼 대통령의 고향인 부산에서 해양부의 창설을 발표하면 좋을 것이라고 막판에 제의하였으나, 김 실장은 부처를 또 만들면 문민정부의 작은정부에 반하는 것이라며 난색을 표하였다. 그러나 물러서지 않고, 해양부 신설은 해운항만청, 수산청, 과학기술부, 산업자원부에 흩어져 있는 기존의 해양관련 인력을 보다 효율화 하는 것이며, 효율 대비 인력규모로 볼 때 작은정부 정책에도 부합된다고 계속 설득하였다.
 
비서실장도 그랬지만 당시의 분위기로선 해양부 신설은 물건너 갔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김영삼 대통령이 바다의 날  기념사에서 해양수산부를 창설하겠다고 전격 발표하여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였다. 그후 해양수산부 창설이 급물살을 타고 성사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던 것이 이명박 정부로 들어서면서 수산이 나가고 건설교통부와 합쳐 국토해양부가 되었다. 외국의 해양행정과 동향을 살펴보면, 캐나다에 수산해양부(Ministry of Fisheries & Oceans)가 있고, 미국엔 해양대기청(NOAA, National Ocean & Atmospheric Administration)이 있는데, 1970년 내무부의 수산업과 국가과학재단의 Sea Grant 사업과 상무국의 해양환경 업무를 통합하여 출범하였으나 미국의 해양위원회는 2004년 ‘21세기 해양블루프린트’라는 보고서를 통해 NOAA가 당초의 설립의도대로 통합된 해양행정 업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지 못했다고 평가하고 보다 강력한 해양행정을 펼치도록 주문하였다. 일본도 2007년 7월 내각에 종합해양정책본부를 설치하여 해양행정조직을 통합, 여러 부처에 흩어져 있는 해양정책 업무를 통합 조정하는 기능을 수행토록 하였다. 여기에는 총리를 본부장으로 하고 국토교통성 장관이 장관 직책을 겸직하도록 하였으며, 이 조직은 각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참여회의(자문기구)와 8개 관련 성청의 국장급으로 이뤄진 간사회와 38명의 사무국으로 편성되어 있다. 영국은 본래 해양행정이 각 부처에 분산 집행되어 왔으나 2008년 4월 해양관리법 초안을 확정하여 해양관리조직을 신설하여 해양관리의 일원화를 천명한 바 있다. 노르웨이는 총리 산하에 수산연안관리부를 설치하고 있으며, 대만도 해양부를 신설할 예정이다. 중국은 국가해양국에서 해양업무를 관장하고 있다.

해양수산부의 부활이 왜 필요한가? 첫째, 작고 효율적인 정부에 부합되기 때문이다. 국무회의 장관의 수자로만 평가할 것이 아니라 제한된 자원과 인력의 효율성 또는 효율성 대비 직원규모로 평가해야 한다. 둘째, 미래의 신성장 산업의 압축성장을 주도할 통합행정이다. 해양은 미래의 그린 에너지와 블루 에너지의 뉴 프런티어이다. 미국의 미래연구소 앤서니 타운센드 박사는 해양기반 경제를 블루 이코노미(Blue Economy)라고 천명하였다. 해양은 미래기술 발전의 실험장이자 생산공장이다.

미래기술은 INBEC(IT(Information)+NT(Nano)+BT(Bio)+ET(Energy & Environment)+CT(Culture & Cogno Science) 중심으로 차세대 기술혁명을 촉발할 것이다. 이들 기술은 그동안 육지와 육지산업 위주로 발전돼 왔으나 육지자원이 고갈되어 감에 따라 장래에는 해양을 새로운 실험장으로 삼아 그간의 기술을 융합하여 발전하며 나아가 해양이 새로운 압축성장의 경연장이 될 것이므로 육지행정과 별도의 통합 전담부서가 필요하다. 육지는 산업별로 분화시키되 해양은 통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셋째, 현 체제의 문제점은 국토해양부와 농림수산식품부는 조직이 비대해져 장관의 관리 범위를 벗어나고 있어 효율성이 떨어진다. 양 부처의 장관은 해양에 전념할 여유가 없으며, 농림수산식품부에서는 수산이 국 기능으로 축소되어 버렸다. 국토해양부와 농림수산식품부는 해양관련 기능을 놓고 서로 밀고댕기고 있고 어업과 해양미생물을 놓고 관장을 주장하고 있다. 양 부처의 공무원과 관련단체 대부분이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따라서 해양수산부의 부활과 콘텐츠를 확충해야 하며, 단순히 부활이 아니라 발전적인 통합이 전제되어야 한다. 종전의 업무(해운+수산+해양기술)에다가 조선과 기상청의 기능까지 추가해야 한다. 조선분야만 해도 종전의 조선 기능에다가 해양플랜트 산업의 비중이 증대되고 있다.

조선강국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인 크루즈와 위그선 개발에도 힘써야 한다. 해양플랜트 산업은 심해저 시추선, 드릴쉽, 심해용 부유식 생산저장시설 등이 부상하고 있다. 심해저 잠수정은 약 6,000미터를 탐사하는 잠수정 개발에 주력해야 하는데, 심해저 유인 잠수정은 미국 일본 프랑스가 각각 1척, 러시아 2척 등 모두 5척이 있으며 중국도 개발하여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심해저 무인 잠수정 해미래를 개발하여 미국 일본 프랑스에 이어 4번째로 6,000미터급 잠수정을 보유하고 있다. 조선과 해양플랜트 산업은 해양행정과 수요 공급자의 관계이고 조선산업은 해운시황과 해양정책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선박안전 및 해양오염과 관련한 국제협약을 통한 규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어 산업계와 해양행정이 공동대응해야 하기 때문에 해양수산부에 귀속시켜야 한다.

기상청 기능도 해양수산부에 귀속시켜야 한다. 지난 쓰나미와 일본원전 사고는 해양예보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Euro Ocean 2007’ 국제회의에서 합의한 애버딘 선언(Aberdeen Declaration)은 해양예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해양과학조사 연구분야 협력을 강조하였다. 해양예보는 해양관측 위성과 해양기상 측정기기를 갖춘 부표 또는 선박을 이용하는 등 직간접 해양정보의 교환이 필요하므로 통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NOAA가 모델이다. 바다살리기 운동의 당면과제는 조직과 인선을 완성하고 예산과 회원을 확보하며, 1사 1어촌 자매결연 추진, 바다살리기운동의 전개 및 바다살리기운동의 새 진로를 위한 세미나 개최 등이다.
‘글로벌 물류 10%만 잡으면 4만불시대’가 열린다. 어느 경제지의 표제이다. 우리나라 물류기업의 글로벌 물류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1%인 3조7,000억달러이다. 현재 한국의 물동량이 세계의 9%이므로 10%로 올릴 여력은 충분하다. 우리나라 해운물류업의 발전가능성 지표이자 분발이 촉구되는 대목이다.
                  
선상세미나와 나가사키
올해의 바다의 날 기념 선상세미나 및 항만탐방은 카멜리아호를 타고 현해탄을 건너 하카타항을 견학하고 규슈지역을 다녀오는 행사로 거행되었다. 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한 쓰나미와 원전사고로 망설였으나 거리상 부산과 후쿠오카가 무슨 큰 차이가 있겠냐는 말과, 어려울 때 돕는 친구가 진짜 친구라는 말에 용단을 내렸다.
20여년전 일본을 처음 방문했을 때 받은 인상은 청결한 나라 친절한 국민 편리한 시설이었다. 소박하여 뽐내지 않고 조화를 중시하며 특히 남을 배려하는 것이 좋았다. 작은 차들 작은 집들 그리고 공사를 하더라도 먼지나 소음을 일으키지 않도록 가려놓는 짜임새 있는 사회였다. 어린 아들이 있는 집에 거는 잉어연 코히(鯉)가 특이했고 전당포 시치(質)와 중고차시장의 깃발도 시선을 끌었다. 인적이 한적한 밤거리를 유독 환하게 밝히며 성황중인 파친코도 신기했다.

우리는 일본을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부른다. 지리적으로는 대한해협만 건너면 부산의 연장선상인 시모노세키에 닿는다. 넓다 할 수 없는 그 사이에 대마도와 이키 섬이 징검다리처럼 놓여 있다. 해운대에서 주브를 타고 잠깐 졸면 규슈에 닿을 것 같은 곳이 일본 땅이다. 한일간은 그야말로 일의대수(一衣帶水)이다. 그래서 우리가 버린 과자와 라면 봉지가 해류를 타고 후쿠오카와 쓰루가로 이내 흘러들어 간다고 한다. 독도 위안부 과거사 문제가 불거져 나오면 이내 쌍심지를 돋우고 언성을 높이는 것이 양국의 민족적 감정이다. 이번 선상세미나는 카멜리아 배를 타고 현해탄을 건너갔다 오는 승선체험과 함께 규슈의 중부인 구마모토와 서부인 운젠 나가사키를 돌아 가라쓰를 거쳐 후쿠오카를 들러 오는 행사였다. 마을과 거리에서 많은 일본인들과 마주쳤다. 일본 국민성은 섬나라 사람들이라 배타적이고 비판적이며, 특징으로 텃새라고 할 수 있는 이지메와 함께 혼네, 다데마에가 있다고 한다. 혼네(本音)는 본색 즉 속내이고 다데마에(建前)는 한번쯤 던져보는 겉치레 같은 것인데, 일본인들은 다데마에에 익숙해 있다. 그래서 그들의 혼네를 웬간히 친하지 않고선 쉽사리 알아낼 수 없다. 이는 봉건사회에서 오래 살아온 일본인들이 체득한 살아가는 아니 살아남는 비결이라고 한다.

일본인들은 바쿠후(幕府)라는 무신정치 아래 오랜 세월을 살아왔다. 무인사회는 명령과 복종만 존재한다. 거역과 불복종은 곧 죽음을 뜻한다. 그러니 속에 있는 말 한마디도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해야 했다. 말이 곧 생사의 갈림길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일본인들의 성격에 신중함과 다데마에를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일본여행 중에 들은 얘기다. 일본여행중 만난 일본인들의 표정은 쓰나미와 원전사고를 겪어서인지 더욱 조용하고 신중해 보였다.

여러 곳을 다녔지만, 그중에서도 나가사키가 인상에 남는다. 물론 전에도 가본 곳이지만, 미처 못 느꼈던 체험도 하였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데지마와 우라카미 성당, 원폭기념관. 서구를 향한 일본의 첫 개항지이자 해운 무역의 중심지였던 나가사키의 데지마, 일본 제국주의 범죄에 대한 속죄양처럼 원폭을 한몸으로 받고 폭사한 우라카미 성당. 일본에서 가장 기독교인이 많았던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된 이유를 모르겠다. 기독교 국가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 의해 말이다. 원폭기념관을 둘러보며 자문자답하였다. 국가 또는 전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범죄행위와 그에 대한 징계는 어디까지가 정당화될까?

프랑스 작가 에릭 파이의 ‘나가사키’를 단숨에 읽어내려 갔다. 2010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 수상작, “원폭의 폐허를 딛고 힘겹게 살아난 잿빛 도시, 나가사키, 집주인 몰래 이불벽장 속에 숨어 산 일본여인의 충격 실화”라는 신문기사에 내심 끌렸다. 프랑스인이 얼마나 일본을 이해하고 작품을 썼을까 하는 의구심도 생기고......그런데 뜻밖에도 이책에서 요즘 일본인들이 처한 현실과 정신세계의 한 단면을 읽을 수 있었다. 가정을 이끌 자신이 없어 나가사키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직장인 시무라의 집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요거트 간식 과일 같은 음식이 조금씩 없어지는 것이다.

처음엔 자기의 기억력을 의심하다가 나중엔 컴캠을 설치하고 직장에서 자기 방을 감시한다. 이게 왠일인가! 벽장에 숨었던 50대 여인이 요정 같이 나타나 자신이 먹다 남긴 음식을 먹고 설거지를 깨끗이 하여 원상태로 돌려놓은 뒤 사라지는 게 아닌가. 그녀가 살아온 여정이다. 부모를 시마바라 근처에서 태풍으로 여의고 작은아버지 집에서 얹혀살며 학교를 간신히 나와 직장생활을 하다가 불황으로 실직하고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감당하기 힘들어 거리를 방황하며 풍찬노숙(風餐露宿) 하다가, 혼자 사는 시무라의 집 주변을 배회하다가 출퇴근 시간을 알아내어 벽장에 숨어들어 그의 출근과 퇴근시간에 맞추어 드나들며 음식을 훔쳐 먹으며 숨을 죽이고 살아왔다.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사는 시무라의 무미건조한 생활과, 그의 벽장 속에서 제한된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는 여인의 삶에서 현대인에게 내재된 허상 같은 실존과 밀폐된 공간에서 몸부림치다 지쳐버린 나상(裸像)이 머릿속에서 교차된다. 그녀가 숨어든 그 집은 어릴 때 짧게나마 가족과 함께 보낸 행복했던 시절 살던 곳이었다.

그곳이 불안하고 불편했지만 그녀에겐 그 시절을 느낄 수 있는 더 없이 행복한 순간이었다. 시무라는 법정에서 그의 집을 누군가에게 점령당한 기분이라고 진술한다. 그 여인이 6개월의 형기를 마치고 그 집을 다시 찾았을 땐 매물로 나와 있었고, 시무라에게 사과의 편지를 쓰는 것으로 이 책은 끝난다. 그녀는 마지막 죽기 전엔 자기가 어릴 적 살았던 집에 잠시 살아볼 권리를 부여받을 수는 없겠냐고 호소한다. 가족과 함께 보낸 그 시절이 너무도 그리웠던 것이다. 요즘 도시계획 재개발로 오랫동안 살았던 집과 마을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다. 외국에 살다가 돌아온 사람들은 도무지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어릴 적 추억이 서린 집과 거리 동네가 통째로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우리의 정체성도 함께 흔들리고 있다.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에서 살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어느날 갑자기 위성에서 뚝 떨어진 외계인 같다. 개발이든 파괴든 과거로의 회귀를 단절하는 행위는 인간의 정체성을 소멸시키는 진정 우리를 슬프게 하는 일이 아닐까? 

 현대인은 물질위주의 개인주의시대에 살고 있는 외로운 존재이다. 소외는 인간관계 뿐 아니라 사물과의 단절에서도 비롯된다. 나가사키. 원폭의 아픔을 딛고 다시 태어난 나가사키 거리의 구석구석을 다녀 걸어보았다. 예전에 살던 집과 마을, 학교를 한번이라도 더 들러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과거가 그립고 추억이 되살아날 때 꺼내 볼 수 있도록.


                                    <한국해사문제연구소 강영민 전무, timkang@komares.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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