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종길 성결대학교 교수
한종길 성결대학교 교수
올해 1월 15일 오전 인도양 북부 아라비아해 공해상을 항해 중이던 ‘삼호주얼리’호의 소말리아 해적에 의한 피랍은 우리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지만 21일, 해군의 성공적인 구출작전은 지금까지 해적들의 노략질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던 우리 선박을 우리 해군이 직접 구출하고 보호했다는 점에서 우리 역사에 길이 남을 쾌거이다. 우리 해군이 왜 목숨을 무릅쓰고 우리 선박을 구출해야 하는지는 우리 국민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충분하겠지만 현실적으로 해운업은 우리 경제의 핏줄이기 때문이다. 국민생활을 지탱하는 석유, 철광석, 곡물, 전자제품 등을 실어 나르는 우리선박에 대한 해적들의 불법행위를 그대로 방치할 경우 우리나라의 생존이 위협받는 심각한 상황이 초래될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해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은 유사 이래 단 한 번도 해양에 대한 주체적 인식을 갖지 못하였고 능동적인 정책을 실시하는 정부를 갖지 못하였다. 조선시대까지 정부는 해적이 무서워 섬에 살고 있는 국민을 내륙지방으로 이주시켰고, 자국민의 해양진출을 막고자 일정크기 이상의 선박건조를 금지하였다. 바다는 두려움과 금기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삼호주얼리’호 피랍과 구출과정에서 일부 매스컴의 해운업과 선원에 대한 왜곡보도는 우리 사회가 아직도 이와 같은 전근대적인 해양 암흑시대에 살고 있음을 증명하듯이 해양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첫째, 사태발생 초기에 일부 매스컴은 해적행위 발생해역에 대한 정확한 파악도 없이 ‘삼호주얼리’호가 소말리아 해역을 지나가다가 피랍되었고 위험해역을 항행하면서도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않았다는 듯이 보도하였다. 하지만 ‘삼호주얼리’호가 피랍된 지점은 호르무즈 해협을 약간 벗어난 이란해역이었고, 이곳은 소말리아로부터는 1200마일 이상 떨어져 있다. 이는 제주해협을 지나가는 선박에게 남지나해에서 일어나는 해적행위를 조심하라는 말과 같다. 또 선내에 안전대피구역을 설치하였는지에 대해서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선사가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했다는 식으로 보도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님으로 밝혀졌다. 안전대피시설을 갖춘다고 하더라도 용접기로 해당구역을 녹여내는 해적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는 2~3시간에 지나지 않는다. 선사와 선원들이 제대로 대응하지 않아서 해적행위가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바로잡기 위해 정부기관이 무슨 조치를 했는지 알고 싶다.


둘째, 사태해결 후 사살된 해적들의 사체를 수장해야 할지 모른다는 보도가 나오자 마자 뱃사람들의 징크스를 들먹이며 배가 전복될까봐 생선조차 뒤집어 먹지 않는다, 심지어 선원의 인터뷰를 가장하여 고용해지를 당하더라도 수장을 거부하겠다, ‘삼호주얼리’호에 승선한 것이 차후 고용계약에 결격사유가 된다는 등 어처구니없는 보도를 늘어놓았다. 도대체 어느 선박회사가 이들 선원에게 불이익을 주는가? 조선시대에나 있음직한 징크스를 가지고 첨단기기를 갖춘 현대의 해양을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해양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가를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선원과 해운업이 아직도 미신에 사로잡혀 있다는 매스컴의 인식을 바로 잡기 위해 정부와 해양관계자는 무엇을 하였는가?


셋째, 해적조사과정에서 일부 매스컴에서는 상선의 무해통항권에 대하여 무지한 것인지 선진국 선박이 소말리아해역에서 불법산업페기물 투기나 불법어로행위를 하기 때문에 해적행위가 이에 대한 자구책이라고 주장하며 쓸데없는 동정심을 유발하고 있다. 상선의 무해통항권은 우리와 같은 무역국가에서는 다른 것과 바꿀 수 없는 국제법상의 권리이다. 더구나 대규모 배후세력이 존재하고 있는 해적에 대한 동정심은 오히려 이들의 해적행위를 더욱 조장할 뿐이다. 따라서 생포해적도 적확한 조사 하에 엄격한 처벌이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 선원을 대상으로 한 해적행위가 어떻게 응징 받는지에 대하여 본을 제대로 보일 필요가 있다. 제대로 된 정부와 해양언론이라면 해적행위 그 자체에 대한 근거가 희박한 동정여론을 경계해야 한다.


차제에 소말리아 해적들이 두 번 다시 우리 선박과 선원을 대상으로 범죄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체계적 대응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해양수산행정을 총괄하는 정책부서의 부활 및 해양경찰의 법적지위 개선과 역할 증대. 둘째, 해적행위 근절을 위한 국제공조의 확대. 셋째, 해양 전문 언론기관의 역량 강화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첫째, ‘삼호주얼리’호보다 앞서 피랍된 ‘금미’호 문제에서도 드러났듯이 현재의 정부시스템은 한계가 있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해적에 대응한 안전항로 정보제공과 선박내 해적대피시설 설치 지원, 소말리아에 대한 해양개발지원 사업 등은 상선과 어선의 구분 없이 이루어져야 할 정부과제이다. 1990년대 후반 해양수산부의 설치는 우리 역사에서 가장 성공한 해양정책이었다. 국가적으로 해운업과 관련 산업에 대한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던 해수부를 폐지한 현 정부하에서 예산, 인사, 정책개발과 집행 등에서 해양분야 경시는 최근 눈에 두드러진다. 아울러 해양경찰의 법적지위 문제도 해결하여야 한다. 현재 수사권을 가진 기관이 법률 근거 없이 운영되는 것은 해경밖에 없다. 해적과 같은 국제범죄를 비롯한 오늘날의 복잡한 해양문제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려면 기존의 육상경찰에 더부살이 하는 법률체계를 가지고는 안된다. 또한 해경은 해양 전문가이어야지 해경청장이 더 이상 육상경찰의 승진인사를 위한 피난처 역할을 해서도 안 된다. 해양국가 대한민국의 위상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 해양경찰청의 법적지위 문제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한다.


둘째, 넓은 인도양과 홍해를 항행하는 우리 선박과 선원을 우리 군함만으로는 보호할 수 없다는 점에서 우리와 유사한 이해당사국들과 밀접한 국제공조체제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현재도 UN을 중심으로 한 해적행위 방지를 위한 국제공조가 있지만 보다 효율적인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해당해역에 우리와 비슷한 이해관계를 가진 국가, 즉 중동에서 원유를 수입하고 유럽으로 제품을 수출하는 구조를 가진 일본과의 공조를 우선적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 EU가 연합하여 독자적인 국제공조체제를 갖추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와 동아시아 국가들이 공조하여 인도양을 항행하는 선박을 보호하는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셋째, 해수부 폐지는 단순히 행정 효율화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역사에서 반복되어 온 해양경시 사상과 그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는 필자의 인식이다. 해양에 대한 중앙정부의 체계적 대응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의 선박은 세계의 바다에 나가지 못했고 우리는 나라를 잃었다. 금번 소말리아 해적피랍 사태에서 보듯이 우리사회의 여론 주도층은 아직도 미신의 바다를 헤매고 있다. 오늘 소말리아 해적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내일 우리나라의 생명선인 해양혈관이 막힐 것이다. 따라서 정부와 해양계의 보다 근본적인 대응을 촉구하려면 이를 감시하고 계도할 해양전문 언론기관의 역량이 보다 강화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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