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날’ 기념   해외기행 / 상해·항주·계림을 가다(3)
■ 해사문제연구소 주최 11차 중국항만·사적시찰과 세미나

 

많은 사람들이 중국을 말한다. 또 길고 긴 역사만큼 가는 곳마다 많은 이야기들이 넘실댄다.
사람은 소주에서 태어나고 항주에서 살라.
광주에서 먹고, 계림가서 보고, 서안에서 듣고, 북경에서 걷고, 상해가서 놀고, 유수에서 죽어라.
어느 지방에서나 한두명쯤은 회자되는 전설상의, 또 실존했던 걸출한 인물들.
많은 말, 많은 이야기, 많은 비유, 많은 이름 등등이 넘쳐나는 나라, 중국. 워낙 크고 워낙 사람도 많으니 특별한 사람도, 특별한 일도, 특별한 곳도 많지 않나 싶다.
이번 중국사적 탐방여행의 으뜸은 아직도 가슴에 박혀 화석이 되어버릴 듯한 곳곳의 풍경들이였다.

항주의 영은사, 용정차밭, 송성쇼, 서호유람. 계림의 요산, 이강, 관암동굴, 복파산, 천산공원. 상해의 양산부두항, 황포강, 그리고 상해야경.
세개의 도시를 보며 도시 하나하나가 하나의 국가같이 독특한 이미지와 그 지방만의 특이점을 하나씩 보유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였다. 이는 중국국가가 도시와 도시끼리 경쟁을 하도록 만들어 소국가처럼 경쟁적으로 발전을 하도록 했기 때문이라니 세계대국 중국의 놀라운 발전전략이다.
이번 여행은 항주에서 시작되었다.

 

이번 행사에 참가한 해운조합일행, 서호에서의 기념촬영.
이번 행사에 참가한 해운조합일행, 서호에서의 기념촬영.
배’항’, 배’주’. 도시 이름에 걸맞게 여러 배가 둥둥 떠다니는 서호
전설도 많고 이야기도 많은 곳, 서호가 없다면 항주에 갈 이유도 없다고 일컬어질 만큼 항주의 명물이라는 곳이다.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던 서태후가 서호의 아름다운 풍경에 반해서 베이징에 똑같은 호수를 만들려고 나라의 군비를 남용하여 곤명호를 만들었고, 청나라 강희황제도 서호 10경도를 그려서 곁에 두었을 정도로 유명한 호수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고풍미가 넘쳐나는 호수 전경, 웅장한 와중에도 섬세함을 잃지 않은 돌다리나 정자 등이 어우러져 더욱 아름다운 곳이였다.


비록 서태후만큼, 강희황제만큼 혼이 쏙 빠지지는 않았지만, 서호를 둘러싼 저 수많은 나무들이 여름에는 모란꽃과 석남화, 만수국, 백련화, 홍련이 다투어 피고, 가을에는 난초와 국화꽃이 만발하고 겨울에는 또한 동백꽃과 매화가 흐드러질 생각을 하니 과연 서태후도, 강희황제도 그리워할 항주의 절경답다.


항주에서의 이러한 휘둥그레 절경도 좋았지만, 처음 도착한 중국도시에서 느끼는 독특한 거리풍경도 인상적이였다.
중국의 거리 풍경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차도만큼 널찍하게 뻗은 자전거 전용 도로이다. 편도 2차선 이상의 도로라면 2차선은 대개가 자전거를 위한 길이 되고마는 셈이다. 중국의 자전거 보유대수만 해도 5억4,000만대로 미국 인구의 두배라니 놀라울 뿐이다.


과연 항주에서도 어딜 가나 자전거의 행렬이 이어졌다. 특히 우리 여행단과 함께 때맞춰 당도한 태풍 덕분에 무지개색 오색찬란 자전거 비옷까지 구경할 수 있었다.
자전거 패달을 굴리는 중국 사람들의 다리가 힘차 보이고 팔뚝이 근육져 보이고 표정이 강단져 보였다.


자전거로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는 우리나라 어느 자전거여행 작가가 한 말이 생각났다.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세상의 길들은 몸 속으로 흘러 들어온다. 모든 길을 다 갈 수 없다 해도, 살아서 몸으로 바퀴를 굴려나가는 일은 복되다”
중국사람들은 이렇게 자전거 패달을 굴리며 세상의 길들을 조금씩 밟아나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살아서 몸으로 바퀴를 굴려나가는 그들, 비록 그들에게 자전거가 감상적인 여행수단이 아니라, ‘서민의 발’로 일컬어지는 생계수단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그들의 역동적인 문화이고 그들의 생활 습성을 이해하는 하나의 계기가 될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자신이 사는 지방을 돌아다니며 사랑하게 된 것은 결국 그곳에 살고 있는 함께 하는 사람들이고, 그곳에 있는 풍경이었는지 모르겠다.


계절마다 피는 꽃, 때때로 달라질 풍경, 기분따라 변할 하늘.. 이런 것들이 중국인들이 자전거 패달을 굴리며 느끼는 보람인지도 모르겠다. 또한 그들의 고장이 각각마다 그토록 아름다운 이유일런지도 모르겠다.
“갈때의 오르막이 올 때는 내리막이다. 모든 오르막과 모든 내리막은 땅 위의 길에서 정확하게 비긴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비기면서, 다 가고 나서 돌아보면 길은 결국 평탄하다. 그래서 자전거는 내리막을 그리워하지 않으면서도 오르막을 오를 수 있다.” 
그런 이치를 발로 느끼고 땅을 박차고 사는 사람들, 그들이 중국인들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무서운 경제성장률을 보이며 부상하는 중국의 일원인 그들은 더 이상 그옛날의 만만디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두 번째 도시, 계림
거리에 계수나무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곳이라고 해서 ‘계림’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과연 그 이름답게 계림의 이미지는 나무다. 계림의 도로상에는 차도와 자전거도로를 구분하는 안쪽 가로수, 자전거도로와 인도를 구분하는 바깥쪽 가로수가 양쪽으로 두줄씩 심어져 있다. 도시 전체가 산과 나무로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는, 계획되어 있는, 그래서 무한한 동력이 느껴지는 그런 길들이다.


계림의 특징적 느낌은 산위에서 내려봐도 신기하고, 강위에서 올려봐도 신기한 독특함의 풍경이였다.
봉우리만 있는 듯 깎아지른 절벽으로 서있는 뾰족한 산들. 3만 7,000여개의 이러한 산들이 서로 이어지고 포개지면서 금새 도인이라도 나타나 안개낀 봉우리들을 타넘고 다니며 무술이라도 펼칠 듯한 신비롭고 몽환적인 풍경이다.


깍아지른 듯한 절벽 아래로 유유히 흐르는 이강. 서울과 부산의 길이보다 길다는 강.
이강의 다섯가지 진기한 사항 ‘오진(五珍)’이라 일컬어지는 물소, 대나무 나룻배, 용수나무, 가마우치, 계화 물고기 중 이강유람중 계화물고기를 빼고 다 볼수 있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족한 여행이었다.
아무튼 계림은 산수의 절묘한 조화였다.

이 도시는 3억년 전에 원래 바다였다가 지각 운동으로 인해 바다에 쌓여 있던 석회암이 육지위로 상승한 형태라 풍화와 침식작용을 거친 후에 생성된 3만 7,000여개의 산들이 모두 석회암, 즉 돌산이라고 가이드가 설명한다.
그 와중에 우리가 올라간 요산이 계림내 유일한 흙산이라니 왠지 흙냄새 풀풀 나며 정겹고 폭신하고 따뜻한 발느낌이다.
계림에서 제일 높다는 요산에서 내려다본 계림 시가지와 3만 7,000개 봉우리들이 장관이다.

갑자기 너무 우리의 금강산 일만이천봉이 심하게 미니해져 버렸다. 어릴 때부터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이천봉-을 불러댔더니만...
다음으로 들른 관암동굴, 멋진 종유동굴이다. 얼마전 제주 만장굴에서 혀를 내둘렀던 기억이 무색해진다. 굴을 따라 흐르는 이강이 동굴 내에서 폭포수같이 괄괄한 효과음을 내며 더욱 동굴다운 기분을 자아냈다.


개발 초기부터 관광을 위해 계획적으로 설계되어서 자동 조명, 사운드 조절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다고 한다. 또 관광객들을 위한 모노레일, 유람선, 엘리베이터 등이 과연 관광중국의 대표적 관광도시, 그 속에서도 대표적 관광명소답다.


관암동굴 내에는 1년에 1밀리터씩 바닥에서 자라난다는 도깨비 뿔같은 석순, 천장에서 내려와 물에 닿을듯 말듯 아슬아슬한 종유, 둘이 이어진 석주 등 많은 종유석들이 즐비하다. 옥돌같아 보이는 것들도 빨간, 파란, 초록 조명 속에서 가끔씩 반짝댄다.


늦잠꾸러기 물소, 불(佛)자를 음각해 놓고 기도하는 모양을 새겨 넣은 바위, 커튼 모양의 석주 옆 선녀 침궁, 선녀가 먹는 복숭아란 의미의 선도(仙桃), 그것을 지키는 두꺼비, 사람과 곰이 대화하는 모양, 쌍봉 낙타, 악어 입, 눈 덮인 소나무를 연상케 하는 벽, 서유기의 주인공인 삼장법사와 손오공과 사오정과 저팔계가 모여 있는 형상의 바위 등등 참 이름도 잘도 지었고 형상도 신기하기도 하다.


그 옛날 삼국지와 무협지에서나 등장하던 도인들이 동굴에서 연마하고 도닦고 심신단련하여 수십년 뒤 세상을 평정하기 위해 짠- 나타나는 그런 이야기들이 과연 거짓말만은, 허무맹랑한 읽을거리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이런 엄청난 동굴이 있었다면 세상을 평정할 기가 켜켜이 쌓여 있을런지도, 그 기를 들이마시려는 사람이 숱하게 있었을런지도 모를 노릇이다.


이번 중국여행의 으뜸으로 기억되는 요산, 이강, 관암동굴을 보고 나니 과연 계림관광을 눈 관광이라고 하는 이유가 절실히 이해된다.
관암동굴 구경을 마치고 시내로 돌아오던 도중에 현수막 하나가 눈에 띈다.
“늦게 결혼해서 늦게 낳고, 적게 낳고 총명한 아이를 낳자(晩婚晩育 少生優生)!” “적게 낳고 총명한 아이를 낳으면 일생이 행복해진다(少生優生 幸福一生)”도 있다. 중국이 인구 제한을 위해 한 자녀만 법적으로 인정한다더니 정말 양보다 질을 선호하는 세태인가 보다.
계림시내를 차를 타고 달리는데 가로수들 사이로 보이는 건물들이 한결같이 5층 정도로 나지막하다. 계림의 명물인 산수(山水)를 가리지 않기 위한 자상한 배려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우리의 마지막 도시, 상해.
역시 상해는 야경이였다. 아름답고 화려한 동방명주탑을 비롯하여 우뚝우뚝 다양한 모양으로 솟아있는 건물들. 다양한 빛으로 밤하늘을 장식하고 있는 조명들.
상해시청에서 ‘상하이의 밤문화를 즐겨라’는 취지에서 30분마다 유람선을 띄우고 일정시간 전기를 제공하여 관광객들이 야경을 감상토록 하고 있단다. 가장 건물을 예쁘게 보이게 장식하는 회사는 각종 세금혜택을 주면서 건물미관 조성을 장려하고 있다니 큰나라의 압도적 인구로만 피상적으로 느꼈던 중국이라는 나라의 은근한 힘이 느껴진다.

상해의 엄청난 야경,


그 중 눈에 띄는 이색적인 광경.
한 높은 건물 위에 대형 연이 조명에 너울대고 있다. 우리나라 방패연을 닮은 연은 그 휘황찬란한 조명에도 전혀 기죽지 않고 밤하늘에서 너울대며 춤을 추는 듯 장관을 이루고 있다.
중국에는 유명 관광지나 공원, 광장에서 새나 곤충, 용 등을 형상화한 연으로 하늘을 장식하는 것이 흔한 일이라고 한다. 중국의 거리풍경을 대표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연문화라고도 들은 듯 하다.


중국 사람들은 다양한 종류와 스타일의 연을 만드는데 새, 짐승, 곤충, 물고기 등의 동물모양 연도 있고, 손오공 같은 이야기 속 인물을 소재로 하여 연을 만들기도 하고 매년 국제 연날리기 대회를 열기도 한단다. 자기의 문화를 충분히 체화하고 알리고 발전시키는 중국인들의 저력이 또 한번 느껴지는 부분이다.


우리나라와 중국간 한중 수교가 이루어진지 12년이나 지나고 있다. 또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의 중국여행이 대중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이 와중에 아쉬운 것은 관심있는 분야를 면밀히 관찰하고 연구하는 주제가 있는 중국여행도 무척 뜻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마다 물밀 듯이 몰려가고 있는 중국에서, 우르르 몰려간 사람들이 똑같은 곳에 들러 똑같은 것을 보고 똑같은 느낌을 받고 오는 것은 아무래도 낭비이지 싶다.


이러나 저러나 여러 분야에서 경제성장의 잠재력을 드러내며 성장하고 있는 중국은 이제 관광으로도 각국의 돈을 긁어모으고 있음이 절실히 느껴졌다.
중국 내에서 한국의 노래방만큼 많은 빈도로 있는 공원이나 아파트 단지에서 삼삼오오 모여 있는 사람들. 관광객들이 쳐다보거나 말거나 제각각 저마다의 운동을 하고 무예를 익히고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던 중국사람들의 몰입력과 당당함 앞에서, 휘둥그레 놀라 쳐다보고 사진찍고 ...주눅드는 것을 왜일까.


이번 중국 체험은 다른 여행에 비해 살짝 수월했다는 느낌도 사실이다.
하지만 많은 집단의 다양한 연령대의 제각각의 사람들이 모여 친절한 가이드의 설명을 받으며, 정해진 수순대로 중국의 명승지를 다녀오는 단체 여행에서 팔뚝 근육 불끈대고 오지탐방 체험 삶의 현장 같은 여행의 묘미를 바래서는 안될 일일 것이다.
차창 밖으로 훑고 지나가는 여행지에서, 잠시 머무르는 유랑자로서 그들의 문화를 잠시 엿보고 사적들에 놀라고 경치들에 압도당한 것, 그래서 그 기억으로 마음 한켠이 오랫동안 반짝댈 것만으로도 만족스럽고 보람찬 여행이였다.


일상으로 다시 돌아온 지금, 아직도 중국의 차밭이, 넘실대던 서호가, 불뚝불뚝 봉우리들이, 메아리치던 동굴이, 그리고 우리 일행들이 좀난듯 그리운 여행 뒤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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