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연 신한국선박금융(주) 대표이사
김 연 신한국선박금융(주) 대표이사
‘신들의 주사위’는 황순원 선생이 1978년부터 1982년에 이르기까지 집필한 장편소설이다. 작가의 일곱 번째 장편소설이며, 만년작으로 황순원의 대가적 풍모가 여러모로 드러나는 작품이다. 차분히 읽어 나가다 보니 이런 구절이 눈에 뜨인다. 이런 구절이 눈에 얼른 들어오는 것을 보니 역시 직업은 속이기 힘든 것 같다.


1930년대, 춘길이라는 노름꾼이 문진영감이라는 동네 금융업자에게 집을 맡기고 돈을 꾸어 노름을 하다가 실패한 후, 맡긴 집의 담보권을 행사하고 남는 돈을 달라는 요청을 한다. 그 돈으로 리어카 행상이라도 해 보겠다는 결심이다. 문진영감은 이를 거절하는데, 이렇게 말한다.


“내가 그 집을 차지하려구 돈을 준게 아니잖소? 춘길씨가 무슨 장사인지 꼭 해보겠다구 해서 준거지.” 문진영감이 천천히 말했다.


사실 그랬다. 문진영감은 돈놀이에 관해 자기 나름대로의 정견이 서 있었다. 다른 사업은 자금에서 상품, 그리고 이윤의 과정을 밟지만 돈놀이는 돈 자체가 상품이 되어 돈이 곧 이윤을 낳게끔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돈은 그 어느 상품보다도 우위이니까 이윤도 많이 받아야 하므로  고리는 당연하다. 따라서 담보물은 그 고리를 확실히 받기 위한 수단일 뿐, 담보물 그것에 눈길을 돌려서는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 문진영감은 사업이나 장사를 하는 사람에게만 돈을 빌려줘 왔다. 그리고는 때때로 채무자의 사업장이나 상점에 들러 관심을 보이고 경영상 조언같은 걸 해주기도 했다. 그건 상대방의 사업을 잘되게하여 이자를 순조롭게 받아들이는 데에 도움이 되는 동시에 사업의 내실을 탐지하는 효과까지 거두고 있다. 조금만 기우는 기미가 보이면 즉각 돈을 회수해 들이는 것이다.


이 짧은 대화에서 현대 금융업에 적용되는 많은 개념이 나온다.


우선, 여기서 돈을 빌려주는 위치에 있는 문진영감의 업종이 금융업 중에서도 기업금융이 아니고 프로젝트 금융이라는 점이다. 장사를 한다는 사람에게만 빌려주고, 사후에 경영상의 조언이나 사업진행 여부의 확인같은 것들은 오늘날의 은행들이 반드시 하는 일이다. 은행들은 사업의 내용을 따지고, 여러 가지 전제 조건을 걸어두고 일정한 기간마다 그것이 잘 이행되고 있는지 점검한다. 담보물을 확보해 두되, 모든 수단을 다 하여도 원금 회수가 어려울 때에만 담보물을 처분한다.


다음에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고리에 대한 정당화이다. 돈은 모든 상품 중에서도 우위에 있는 상품이므로 고리는 당연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자를 많이 받는 것이 정당한 일인가 부당한 일인가 하는 것은 좀 다른 차원의 질문이다. 종교적 도덕적 관점에서는 이자라는 것이 낮으면 좋다고 보는 것 같다. 이슬람교에서는 아예 이자라는 말이 없다고 하고, 기독교에서도 이자를 별로 탐탁하게 보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돈을 상품으로 보면 이자는 돈이라는 상품의 값이다.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가격이 결정되고, 정보의 불균등한 틈새에서 또한 가격이 결정된다. 황순원 선생이 돈을 상품으로 파악한 것은 탁월한 언술이지만 높은 이자가 그러므로 당연하다는 것은 좀 표현이 잘못되었다. 높은 이자는 “자연스럽다”라고 하였더라면 (소설의 맛은 좀 덜할지라도) 맞는 말이 되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조금만 사업이 기우는 기미가 보이면 돈을 즉각 회수하는 문진영감의 태도에는 문제가 있다. 프로젝트 금융에서는 정해진 현금흐름표대로 원금과 이자가 상환되는 한 금융계약을 해지할 수 없다. 아마 문진영감의 시대에는 금융과 관련된 법률이 발달되지 않아서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요즘에는 잔여 원금과 담보자산의 가치를 비교하여 담보자산의 가치가 잔여원금보다 하락할 때에 원금을 회수하는 권리를 은행에게 주고 있다. 진일보한 방법이기는 한데 실제로 적용되는 모양을 보면, 원래의 의도와 다르게 은행측의 횡포라고 밖에 부를 수 없는 경우가 발견된다. 특히 외국은행들에게서 심하다.


각설하고, 황순원 선생같이 평생 정확한 문장으로 아름답고 의미 깊은 소설을 써오신 분이 어떻게 금융의 한 부분인 프로젝트 금융을 나름대로 이해하고 이것을 소설에 구현하였을까 하는 큰 의문이 남는다. 아직 안 읽어 보신 해양한국 독자들이 계시면 이 여름에 한번 읽어 보시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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