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선사 사다리

사람들은 가슴이 활짝 열리는 느낌을 원할 때나 생활의 활력이 필요할 때, 혹은 마음이 울적하거나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 또는 그 외 여러 가지 다른 이유로 바다를 찾곤 한다. 그들이 찾는 바다는 아름답고 낭만적이며, 마음을 푸근하게 만들고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을 것만 같은 편안함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거센 바람과 소금 냄새가 나는 생활의 바다는 거칠고 만만치 않으며 관대함이 없다. 예로부터 해양의 역사는 험준하고 대담하며 용기와 강인함이 필요한 곳이었다. 

바다가 터전인 도선사들의 업무 역시 편하고 풍족한 것만은 아니며, 때때로 생명을 담보로 하는 위험천만한 작업일 수밖에 없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바다 한복판에서 사다리를 타고 배에 오르내리는 것이 도선사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범선(帆船)시대와 그 이전에는 선박의 크기가 지금과 같이 크지 않았기 때문에 사다리를 타고 오르내리는 것이 지금보다는 수월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도선선(導船船, Pilot Boat ; 도선사를 본선까지 이동시키는 작은 배) 역시 노를 저어서 나가거나 작은 돛으로 움직이는 소형선이어서 먼바다로 나가는 데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예전이나 지금이나 도선사가 선박을 도선하기 위한 과정은 멀고도 험한 길이었다.

 

위 그림은 19세기 말 선장 경력을 가진 스웨덴 출신 화가 ‘브로 앤더스 윅스트롬’의 작품으로 사다리를 타고 범선에 승선하는 도선사의 모습을 담고 있다. 한쪽에서는 난간에 매달린 선원이 도선선에 큰 자루를 건네는 모습도 보인다. 아마도 고향으로 보내는 우편물이 아니었을까? 나쁘지 않은 보통의 날씨임에도 기름먹인 방수복을 입고 뒷챙이 넓은 방수모를 쓴 도선사의 모습이 이채롭다. 이런 복장은 주로 유럽과 호주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위 그림은 1906년 7월 21일자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에 게재된 삽화로 미국 뉴욕항으로 입항하는 화물선에 도선사가 사다리로 승선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거친 파도 속에서 구명동의도 없이 흔들리는 사다리에 매달린 도선사의 모습이 위태로워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역동적으로도 보인다. 도선사 업무는 강인함과 대담함을 가져야만 소화해 낼 수 있었던 힘든 업무였다.

현대에 와서는 좀 달라졌을까? 지금은 퇴직하신 어느 원로 도선사는 도선사 사다리를 타고 무사히 본선에 올라가면 도선 업무의 절반은 성공한 것이라고 했다. 아직도 승하선의 안전은 도선사들에게 중요한 일이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하기 때문이다.

작년 4월 초 여수항에서는 도선사가 사다리를 이용하여 선박에 승선하던 중 거친 바람과 파도로 인해 몸의 중심을 잃고 바다로 추락하여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물론 사고의 원인이 바람과 파도만은 아니다. 안전장비의 불량이나 본인의 실수일 수도 있고, 도선선의 선원이 충분히 보좌하지 못한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도선사의 승하선 안전은 도선사가 본인의 안전을 철저히 지킨다고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도선사가 이용하는 사다리의 설치와 관리, 유지 보수 등은 도선사가 승하선 해야 하는 선박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며, 사고 이후의 구조 조치 또한 선박의 도움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 도선사들의 모임인 국제도선사협회(IMPA)는 매년 10월 초 2주간 동안 전세계 항만에서 도선사 승하선 안전 캠페인을 벌이고 있으며, 우리나라 역시 여기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그러나, 위 사진들의 사례에서 보듯 아직도 많은 선박에서 기준 이하의 도선사용 사다리가 사용되고 있어 안타깝기만 하다. 

어떤 사람들은 불량 사다리 발견시 도선을 거부하고 안 올라가면 되지 않느냐고 이야기 하곤 한다. 물론 안전만을 생각한다면 그것이 정석일 것이다. 그러나 도선사들은 모두 선장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오랫동안 항해하고 항구에 입항하여 조금이라도 빨리 육지에 발을 딛고 싶은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사람 역시 도선사일 수밖에 없고, 그래서 ‘내가 위험을 감수하고 조금 더 주의해야지’ 하는 생각에 거부하지 못하고 올라가다가 다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도선사는 선박과 항만의 안전을 위한 업무를 수행한다. 다시 말하면 도선사 사고는 선박과 항만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제는 제발 큰 돈 안드는 도선사용 사다리에 돈을 아끼느라 귀중한 생명이 다치거나 더 큰 사고로 이어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 연결 줄이 끊김            △ 발판 고정 불량                                  △ 총체적 불량
     △ 연결 줄이 끊김            △ 발판 고정 불량                                  △ 총체적 불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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