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진기 노출로 조종성능 저하된 선박을 무리하게 도선하다가 크레인과 충돌(2)

이 크레인 접촉사건은 추진기 노출로 조종성능이 저하된 선박을 도선사가 적절한 도선계획 없이 무리하게 도선하며 접안을 시도하다가 발생한 것이나, 선장이 도선사의 부적절한 도선을 제어하지 못한 것과 조타실이 혼란에 빠지면서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아니한 것도 일인이 된다고 판시한 사례이다. ※ 이 사건은 대법원 확정(원심 승소)사건으로 사고 주 요인과 함께, 선박내 의사소통, 바람의 영향, 횡추진기 사용 등 다양한 관점의 이슈들이 제기되어 2회에 나누어 연재한다.

 

<사고 내용>

○ 사고 일시 : 2020년 4월 6일 14시 49분경 

○ 사고 장소 : 부산신항 북컨테이너터미널 2부두

○ 피해 사항 : A호 좌현 외판 굴곡, 컨테이너크레인 하부 내려앉음, 크레인 기사 부상 등

○ 사고 경위 

A호는 총톤수 15만 706톤(길이 365.94 × 너비 51.20 × 깊이 29.90 × 높이 71.33 m), 디젤기관 4만 8,900㎾ × 1기를 주기관으로 설치한 13만 900TEU급 강조 컨테이너 전용운반선으로, 도선사 B의 도선하에 추진기가 해면위로 노출된 상태에서 부산신항 2부두에 접안을 시도하다가 2부두의 컨테이너 크레인과 접안중인 다른 선박 D호와 충돌하였다.

사고 주 원인은 A호의 부적절한 입항 흘수, 도선사 B의 부적절한 도선(도선 개시 전 정보교환 및 도선계획 수립 소홀, 조종성능 저하를 고려하지 아니한 도선, 비상상황에서 조타실의 부적절한 의사소통), A호 선장의 도선제어 실패(상세 설명은 23년 12월호 참조) 등이 있으며, 그 외 심판과정에서 제기된 도선사측의 주장에 대해 살펴본다.

 

<주장에 대한 검토>

1) 도선사의 주기관 사용 지시를 따르지 않아 사고가 발생하였다는 주장에 대하여

도선사는 이 크레인 접촉사고의 발생 원인으로, 크레인 접촉사고 발생 전 주기관의 RPM을 이 선박의 최고 속력인 항해 전속(Full sea speed or Nav. Full ahead)까지 올릴 것을 지시하였으나 선박에서 RPM을 44까지 올리고 더 이상 올리지 않았기 때문에 이 접촉사고를 피할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

A호의 조타실에 게시되어 있는 조종특성표의 추진력에 관한 부분을 보면 [그림 3], 주기관 사용 지시(Engine Order)에서 RPM 35인 ‘Full ahead(항내전속)’와 RPM 73.4인 ‘Full sea speed(항해전속)’로 구분하고 있는데 당시 VDR 음성 녹음 데이터 중 주기관 사용과 관련된 도선사의 지시를 들어보면 도선사는 충돌 전까지 주기관과 관련하여 ‘Full ahead’ ‘Sea speed’ 만을 요구하고 한번도 ‘Full sea speed’를 요구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하여 도선사의 심판변론인은 충돌의 위험으로 급박한 상황에서 도선사는 RPM을 최대로 올리라는 의미로 ‘Sea speed’를 요구하였고, ‘Sea speed’는 통상 선박의 최대 속력인 항해 전속(Full sea speed 또는 Nav. Full ahead)을 의미하는 것으로, 특히 영국식 영어권에서는 모두 이렇게 사용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영국식 영어를 사용하는 대표적인 나라 중 하나인 인도국적의 A호 1등항해사는 제1심 조사관 질문조서에서 “Sea speed가 무슨 RPM인지 도선사는 말하지 않았다. 도선사는 Sea speed를 규정해 줘야 하나 기준없이 Sea speed라고만 했다”고 진술하여 Sea speed가 어떤 구간을 의미하고, 그 구간 중 한 곳을 지정해 주었어야 함을 알 수 있다. 

통상 선박에서는 ‘Full ahead(항내전속)’를 ‘Manoeuvring Full ahead’라 하고, ‘Full sea speed(항해전속)’를 ‘Navigation Full ahead’라 하며, ‘Full ahead(항내전속)’에서부터 ‘Full sea speed’ 또는 ‘Navigation Full ahead’(항해전속)’까지의 구간을 ‘Sea speed’라 한다. 만약 도선사가 이 선박의 최대 속력을 요구하려면 ‘Full sea speed’를 요구하여야 하고, ‘Sea speed’라고 하면 ‘Full ahead’와 ‘Full sea speed’ 사이의 구간을 지칭하므로 1등항해사의 진술과 같이 주기관의 특정 RPM이나 속력을 지정해 주어야 한다.

더구나 선장이 작성한 사실보고서(Statement of Facts)에는 14:42경 도선사가 선장에게 Sea speed에 대하여 질문하여, 속력 14.7노트, RPM 44 라고 대답했다는 내용이 있으며, 제1심 조사관 질문조서의 기재에 의하면 도선사에게 ‘Sea speed’는 어떤 의미냐는 질문에 대해 도선사는 ‘Sea speed’는 RPM 64를 의미한다고 답하고 있어, 도선사가 ‘Sea speed’가 RPM 35인 ‘Full ahead(항내 전속)’와 RPM 73.4인 ‘Full sea speed(항해 전속)’ 사이의 구간인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위의 사실과 VDR 음성 녹음 데이터에서 14:43:16경 도선사가 “Sea speed”를 요구하자 선장이 “Set Already Mr. Pilot”이라 답하고, 이어 도선사가 “Sea speed 하란말이야, 씨스피드~”하자 선장이 “Yes, Already...”하고 도선사가 “Captain Collision, Collision”이라 할 때, 1항사가 44 RPM이라고 보고하자 선장이 “Yes, Please 44 RPM”이라고 답하는 순간 도선사가 “포티포”라고 고함치고 선장이 “Already, Already Mr. Pilot”이라고 하자 도선사는 더 이상 RPM에 대해 언급은 하지 않은 채 예선에게 지시를 하고, 그 이후도 ‘Full ahead’와 ‘Sea speed’만을 반복적으로 지시하면서도 RPM에 대해 언급하거나, 조타실의 조종성능표에 게시된 이 선박의 최고속도인 Full sea speed를 요구하지 않았던 점을 보면 도선사도 당시 이 선박이 후진을 포함하여 자유롭게 주기관을 사용할 수 있는 Sea speed RPM 44에 대하여 알고 동의하였거나 묵인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A호가 RPM을 44까지 올리고 더 이상 올리지 않았기 때문에 이 접촉사고를 피할 수 없었다는 주장은 배척한다.

 

2) 돌풍으로 인한 불가항력적 사고라는 주장에 대하여

A호 도선사는 토도를 지나 우회두 할 무렵 돌풍이 불었으며, 추진기가 노출될 정도의 극단적인 공선상태로 풍압면적이 커진 A호가 바람의 영향을 크게 받아 부두 쪽으로 압류되었고, 이로 인해 이 크레인 접촉사고에 이르게 된 불가항력적인 사고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A호의 풍압면적이 커져 바람의 영향을 크게 받는 상태였다는 것은 흘수를 통해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고, 도선사는 이를 고려하여 대비책을 마련한 후에 도선했어야 한다.

부산신항 2부두 2번선석 접안장소로부터 약 100m 떨어진 지점에 부산신항만 주식회사에서 설치한 풍향과 풍속 관측소의 저장된 자료에 따르면 2020. 4. 6. 14:30경부터 14:50경 사이에 풍향은 대략 250∼350도로 일정하고, 풍속은 대부분 2∼4 m/s 내외이며, 10m/s 이상의 풍속은 기록되지 않았다. A호에서 기록된 VDR 자료의 풍향·풍속은 남풍이 10∼18노트(5∼9m/s)로 불었던 것으로 되어 있다. 국립해양조사원의 수치조류도에 따르면, 사고 당시 주변의 조류속도는 남쪽으로 약 0.1 노트로 나타났다.

돌풍이 불었다는 도선사의 주장은 기상청의 기상자료나, 부산신항만(주)의 기상기록 등 객관적인 자료에는 돌풍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고, 크레인 접촉사고가 발생하기 10분 전부터 A호의 VDR에 기록되어 있는 상대풍향과 상대풍속을 진풍향과 진풍속으로 바꾸어 보면, 지속적으로 남풍이 10∼18노트(5∼9m/s)로 불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으며, 이 정도 풍향과 풍속은 이례적으로 부는 돌풍이라고 할 수 없다.[그림 4]

따라서 이 크레인 접촉사고에서 바람의 영향은 도선사가 예측하고 미리 대비했어야 하는 사항으로 판단되어, 돌풍에 의한 불가항력적 사고라는 도선사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3) 선장이 선수횡추진기를 임의로 사용한 것이 사고원인이라는 주장에 대하여

도선사는 A호의 VDR에 의하면 충돌 직전 선장이 선수횡추진기를 도선사의 지시 없이 사용하는 것이 확인되므로 도선사의 과실은 없거나 대폭 감경된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일부 그 사실이 인정된다. 그러나 선장이 선수횡추진기를 사용할 때 선속이 약 5노트 이상으로 효과를 발휘하기가 어렵고, 사용 시간 역시 10여초로 효용이 거의 없었을 것으로 판단되므로 크레인 접촉사고에 미친 영향은 다른 원인에 비하면 매우 제한적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선장이 선수횡추진기를 사용한 시기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조타실이 혼란스러워 의사소통이 어려울 때로 그 책임이 전부 본선 선장에게 있다는 주장은 무리가 있다.

 

<사고 원인 요약>

이 크레인 접촉사건은 추진기가 일부 노출되어 조종성능이 크게 저하된 부적절한 상태의 A호지를 부산신항 북컨테이너터미널에 접안시키기 위하여 승선한 도선사가 적절한 도선계획 없이 과도한 속력으로 도선 하다가 선박의 조종성능 저하 등의 영향으로 선회권이 커지며 부두에 너무 가깝게 접근하여 육상 크레인 4기 및 접안 중인 D호와 잇따라 접촉·충돌하며 발생한 것이나, 선장이 도선사의 부적절한 도선을 제어하지 못한 것과 조타실이 혼란스러워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아니한 것도 일부 원인이 된다.

 

<해양사고 관련자의 책임>

해양사고관련자 도선사 B는 A호의 도선사로서, 선박의 상태와 조종성능에 대한 사전 위험성 평가를 통하여 적절한 도선계획을 수립하고, 도선을 시작한 후에는 선장과 원활한 의사소통을 통해 선박을 안전하게 도선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추진기가 해면 위로 32%나 노출된 선박의 조종성능 저하에 대한 위험성 평가를 소홀히 한 도선계획으로 위험에 충분히 대비하지 아니한 채, 무리하게 빠른 속력으로 우선회하다가 선회반경이 커지면서 접안하려던 부두의 컨테이너크레인 4기와 부두에 접안 중인 D호와 충돌하게 한 것은 이 사람의 직무상 과실이다. 

따라서 이 사람의 이러한 행위에 대해서는 「해양사고의 조사 및 심판에 관한 법률」 제5조제2항의 규정에 따라 같은 법 제6조제1항제2호를 적용하여 이 사람의 도선사 업무를 6개월 정지한다. 

 

<시사점>

○ 선박은 도선사나 선장이 조종성능을 가늠할 수 있도록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조종성능표에 의한 만재상태와 공선상태 사이에서 운항하여야 한다.

○ 조종성능에 문제가 있거나 저하가 예상되는 선박의 선장은 상세한 정보를 사전에 도선사에게 전달하여 도선사가 이에 충분히 대비한 도선계획을 작성하여 승선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 도선사가 승선하면 선장은 본선의 조종특성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도선사에게 제공하고, 도선사는 도선사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도록 접안계획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며, 도선 중 도선 계획이 변경되는 경우 반드시 선장에게 알려 혼란을 피해야 한다.

○ 도선사도 비상시를 대비한 조타실 운영에 대하여 주기적으로 훈련하는 등 적절하게 대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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