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직업으로 명성을 날린 도선사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도선사가 탄생한 것이 1937년이니 올해로 벌써 86년이 흘렀다. 2023년 10월 말 현재, 그동안 도선사 면허를 받은 사람의 수는 총 571명이며, 이들 중 248명이 전국의 항만에서 도선사로 활동 중이다.
또한 내년 2월 말이면 우리나라에서도 처음으로 ‘여성 도선사’가 탄생할 예정이다. 이 여성 도선사 후보는 현재 부산항에서 도선 실습 훈련을 하고 있으며, 내년 2월 중 최종시험을 거쳐 이변이 없는 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도선사가 될 전망이다. 근현대 우리나라 도선역사 87년 만의 경사가 아닐 수 없다.

 

마크 트웨인
마크 트웨인

도선사로 활동한 사람 중에서 흥미로운 직업을 가지고 우리에게 친근한 유명인 중 하나는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 <왕자와 거지> 등으로 유명한 미국의 소설가이자 미국 문학의 아버지로까지 존경받는 ‘마크 트웨인(1835~1910)’이다.
본명이 ‘사무엘 랭혼 클레멘스’인 마크 트웨인은 젊은 시절 ‘미시시피강’을 운항하는 증기선에서 수로안내인(도선사)으로 일했다. 11살에 아버지를 잃고 인쇄소 견습공으로 시작한 그의 인생 여정은 증기선 선원을 거쳐 수로안내인(도선사)이 되고, 26살에 수로안내인(도선사)을 그만둘 때까지 참으로 다양한 경험을 거친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나이 서른에 문단에 등단한 후 유머와 풍자가 넘치는 작품들을 선보였다.
그가 수로안내인(도선사) 직업을 그만둔 것이 26세 때인 1861년 미국 남북전쟁이 일어나면서였으니, 일찍부터 수로안내인(도선사)을 했었던 것 같다. 그때는 오늘날의 도선사 위상과는 다르게 단순히 물길만을 안내하는 그저 그런 직업으로 여겨졌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는 발명가로도 유명한데, 여성 브래지어 후크와 보드게임 등을 발명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그의 이야기는 MBC의 예능 프로그램인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도 나온 적이 있었다.

 

폴 고갱
폴 고갱

또한 다른 유명인으로는 프랑스 후기인상파 화가인 ‘폴 고갱(1848~1903)’이 있다. 그는 17살 때인 1865년 견습 수로안내인(실습 도선사)으로 배에 올라 3년간은 견습 수로안내인(실습 도선사)으로 그 후 2년은 프랑스 해군에 입대하여 약 5년간 지구촌 여러 곳을 여행했다.
이후 고갱은 증권 중개인을 거쳐 28살인 1876년 전시회에 작품을 내놓으며 화가로 변신한다. 견습 수로안내인(실습 도선사) 시절과 해군에 있으면서 각 항구를 돌며 보고 들은 이국의 문물은 고갱의 예술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고갱은 살아생전 행복한 화가는 아니었다. 말년의 고갱은 돈이 없어서 자신이 그린 그림을 먹을 것과 맞바꾸곤 했는데, 식품점 주인은 그의 데생을 포장지로 사용했다고 한다. 그의 그림은 사후에 가치가 막대하게 치솟은 비운의 화가였다.

 

 

 

고드릭
고드릭

카톨릭 성인 중에도 도선사로 활동한 사람이 있다. 초기 영국 도선사 중 한사람인 ‘고드릭(1065~1170)’은 원래 행상이었는데, 후에 스코틀랜드와 덴마크 사이의 해안을 따라 항해하는 무역상이 되었다. 고드릭은 선박의 도선을 요청받아 항해했던 항로에 대한 풍부한 지식으로 명성이 아주 높았으며, 또한 무역상으로 활동하여 삼십대에 이미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그러던 중 그는 항해 중 가끔 정박하던 섬의 한 수도원을 방문하여 수도자들의 삶을 보고는 감동하여 회개의 길로 들어서서 기독교인으로서의 엄격한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이후 그는 40세에 전 재산을 버리고 세속으로부터 격리되어 기도와 참회 그리고 고행으로 신을 찬미하는 수도자의 삶을 시작하였으며, 거의 60여 년간 ‘핀칼레’라는 외딴 곳에서 수도자로 살았다. 그는 처음에 동굴에 거주하다가 후에는 작은 오두막에서 거친 옷과 맨발로 생활하는 등 엄격한 삶을 살았으며 죽은 후에는 ‘핀칼레의 성 고드릭(Saint Godric)’으로 시성(諡聖)되었다.

 

 

필승 전략 롯데자이언츠, Top Secret
필승 전략 롯데자이언츠, Top Secret

우리나라에도 흥미있는 직업으로 활동한 도선사가 있다. 프로야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지난 1992년 만년 하위권을 전전하던 부산 ‘롯데 자이언츠 야구단’을 그해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송정규(1952~ )’ 단장이 그 사람이다.
어린 시절부터 야구를 좋아했던 송정규는 부산에서 고등학교와 해양대학을 졸업하고 항해사를 거쳐 선장으로 배에 승선한다. 그는 승선하던 중에도 야구에 대한 열정과 관심을 놓지 않았고, 1990년 잠시 하선 중에 만년 하위권에 머물던 롯데 자이언츠의 부진에 대한 답답한 마음을 전하고자 자신이 직접 ‘델타기획’이란 출판사를 만들고 자비로 300여 페이지 분량의 <필승 전략 롯데자이언츠, Top Secret>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한다. 이 책에서 그는 롯데 자이언츠의 제반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필승 전략과 명문구단이 되기 위한 제언을 기술하였다.
때마침 이 책을 읽은 당시 롯데 구단주가 송정규를 영입하여 그는 1991년 롯데 자이언츠 야구단의 단장이 되었고, 1992년 롯데 자이언츠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는데 기여하게 된다. 아마추어에서 열정 하나로 프로야구단 단장이 되어 야구단을 우승으로 이끈 요새 말로 성공한 덕후가 된 것이다.
롯데의 한국시리즈 우승 이후 야구단을 그만둔 송정규는 다시 선장으로 배에 승선한 후 2001년에 도선사가 되어 2020년 퇴직할 때까지 약 20여 년간 부산항에서 도선사로 활동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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