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콤파스의 강사로 대한민국 해양연맹 최윤희 총재가 나와 ‘해양안보의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발표했다. 최 총재는 해군사관학교 31기생으로 해군사관학교 교장을 거쳐 해군참모총장과 합참의장을 역임했다. 요즘 한국해양산업총연합회 회장직도 맡아 해양산업 발전을 위해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해군의 일반현황
대한민국 해군은 1945년 11월 11일 해방병단 창설로 시작됐다. 육해공 3군 중 최초다. 8.15광복 전 중국에서 상선 해기사로서 활동하던 손원일 제독이 반도국인 우리나라의 국토수호를 위해서는 해군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일념에서 해방병단 창설을 주도했다. 해방병단은 1948년 9월 5일 해군으로 명명됐고, 이듬해 해병대가 창설됐다. 그 후 1973년 항공전단과 1995년 잠수함전단, 2010년 기동전단이 각각 창설됨으로써 해군전력이 점차 강화되었다. 해군에는 4성 장군이 참모총장뿐이었으나 최윤희 제독이 최초로 해군 출신 합참의장이 됨으로써 두 명으로 늘어났다. 병력은 총 6만 9,000명이며 장교 9,000명, 부사관 2만 3,000명, 병 3만 7,000명이다. 해군이 4만 1,000명 해병대가 2만 8,000명이다. 전력은 수상함 140여척, 잠수함 10여척, 항공기 70여대, 해병대의 상륙돌격장갑차와 전차 및 K-9 자주포 등 500여대를 보유하고 있다. 북한은 잠수함 70여척을 포함하여 함정 800여척을 보유하고 있으며, 최근 해군력 증강에 더욱 힘을 쏟고 있다.

 

국가와 해군력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역사적으로 그리스가 살라미스해전에서 페르시아에 승리함으로써 나라를 지켰고, 칼레해전에서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하고 트라팔가해전에서 나폴레옹 함대를 제압한 영국이 대서양의 제해권을 장악함으로써 대영제국의 기틀을 세웠다. 우리나라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한산대첩으로 국토를 수호할 수 있었다. 세계 4대 해전의 특징은 승리한 나라 모두 국난을 극복하고 열강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됐다는 사실이다. 임진왜란에서 수군의 참패를 경험한 일본은 훗날 해군을 육성하여 풍도와 쓰시마 해전에서 승리함으로써 극동의 제해권을 장악하고 열강으로 등극했다. 미국도 미드웨이와 필리핀 레이테해전을 이기며 태평양 제해권을 확보하여 세계 패권국으로 부상했다. 해군력이 한국사에 미친 영향은 해군력이 약했을 때 치욕적인 역사를 경험했다. 신미양요, 운요호사건을 통해 우리 해군력이 취약함을 통감했고, 결국은 강화도조약, 수군해산, 을사늑약, 국권침탈로 이어졌다. 일제 식민정치의 최대 피해는 해군 말살이었다. 일본은 1907년 군대해산에 앞서 1895년 수군을 먼저 해산했다. 8.15광복 후 거북선 잔해를 찾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끝내 찾지 못한 것도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찾아 없애지 않았나 하는 의심이 든다.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는 왜군의 침략으로 국가존망의 위기에 처했으나 강력한 수군으로 국난을 극복하고 위기를 모면했다. 최근에도 강력한 해군력으로 국가위기를 극복했다. 6.25전쟁 초기 우리 해군이 대한해협 해전에서 승리하여 북한의 후방침투를 차단할 수 있었다. 초계 중이던 우리 백두산함이 괴선박을 발견하고 추적하다가 교전하여 격침시켰다. 교전후 잔해를 확인해 보니, 괴선박은 북한의 무장함선으로 특수부대원 600여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만일 그때 침몰시키지 않았더라면 중무장한 특수부대원이 부산에 상륙하여 배후지를 교란하고 파괴, 살상하는 등 엄청난 피해를 보아, 나중에 낙동강 방어선도 지킬 수 없었을 것이다. 백두산함은 손원일 제독의 부인을 비롯한 해군장교 부인들이 삯바느질로 모은 성금으로 구입하여 6.25가 발발한 그해에 투입된 군함이며, 그 배엔 최재형 국회의원의 부친인 최영섭씨가 포술장으로 승선하여 전투에 직접 참여하였다. 이렇듯 해군력으로 국가위기를 극복한 사례가 수없이 많았다. 대한해협 해전으로 적의 후방침투를 차단했고,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하여 전세를 역전시켰으며, 흥남철수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중공군에 대한 반격작전의 여건을 조성했다. 만일 흥남철수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지 못했다면 병력손실을 물론, 많은 전투장비를 유실하여 물밀 듯 밀고 내려오는 중공군을 저지하고 반격할 여력을 상실하여, 1.4 후퇴 후 서울 수복과 북진이 어려웠을 것이다. 6.25전쟁 지상전에 투입한 병력은 해군과 해병대 모두 169만명에 달했다.

 

해양안보 환경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어쩔 수 없는 해양국가임에도 아직도 바다에 대한 추상적이며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하다. 우리의 의식 속엔 뱃놈, 물가에 가지 마라, 풍랑에 대한 두려움, 섬이라는 단절과 고립감 등이 여전하다. 따라서 바다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그동안 바다를 적극 활용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정책적 지원이 부족했고, 군사안보적 측면에서도 1차, 2차 연평해전 이전에는 해상작전 및 북방한계선(NLL)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도 미흡했다. 바다를 바라보는 인식 전환과 통찰력 및 혜안이 필요하다. 우리는 바다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해양의 중요성은 두말한 나위도 없다. 우리나라는 해양력이 세계 12위에 속한다. 선박수주량은 점유율 51.7%로 세계 1위이며, 컨테이너 물동량도 2,999만TEU로 4위, 어업생산량은 375.6만톤으로 13위다. 해양 지하자원 매장량도 엄청나 독도 근해에 메탄하이드레이트가 6억톤, 동해 천연가스 500만톤, 원양의 망간과 구리가 5억 1,000만톤이나 되고, 해양관련 종사자도 400만명으로 세계 7위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웃에 해양력 세계 2위인 중국이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고 있어 큰 위협이 아닐 수 없다. 
해양은 국가 경제발전의 새로운 동력이다. 섬나라와 다름없는 우리나라는 해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경제구조다. 2020년도의 국민총생산 대비 대외무역 의존도는 73.3%이며, 수출입 물동량의 99.7%를 해상수송하고 있다. 만일 해상교통로가 차단된다면 총체적인 국가존립 위기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부존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로선 해양자원 개발과 해양산업 발전은 사활적 과제다. 날로 심화하는 해양패권 경쟁 속에서 국가발전의 원천인 바다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가 관건이다. 동아시아의 해양안보 정세는 강대국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에 둘러싸여 있는 대한민국은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특히 2030년대에 미국과 중국의 충돌이 불가피한 국제정세를 고려할 때 국가존망의 기로에 서 있는 우리나라로선 해군의 역할이 매우 중차대하다. 한때 중국은 해양 팽창정책을 추진했던 시절이 있었다. 15세기 초 명나라는 정화함대를 통해 해양력을 과시하며 중화사상을 퍼뜨리려 했다. 그 당시 정화함대와 콜럼버스의 탐험대를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가 난다. 우선, 선박크기만 해도 1,500톤과 250톤이었고, 규모도 240척과 3척, 참가인원 2만 8,000명과 250명으로 정화함대가 월등했다. 하지만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시작되자 돌변하여 대륙중시 사상과 해금정책으로 해상력이 쇠퇴기를 맞았다. 그 후 열강의 침략으로 중국이 계속 패배하여 아편전쟁으로 인한 남경조약, 청일전쟁의 시모노세키조약, 중일전쟁의 난징학살을 겪으며, 국가안보 및 경제발전을 위해 바다가 중요함을 깨닫게 되었다. 중국의 경제구조상 해양은 사활적 요소라는 사실을 절감하였다. 최근에는 남중국해 패권을 둘러싸고 동남아 국가와 분쟁하며 미국과도 충돌하는 양상이다. 중국의 지도자들은 중화사상, 중국몽 실현을 위해 해양팽창정책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덩샤오핑은 섬과 섬을 연결하여 방어하는 도련정책을 폈고, 후진타오는 자국 영해영공을 방어하는 ACAD(Anti Access Area Denial)를 시행했으며, 시진핑도 일대일로를 구상했으나 미국의 적극적인 견제로 현재 답보상태에 있다. 만일 역사적으로 중국이 해양중시정책을 유지했더라면 세계의 패권은 중국이 차지했을 것이다. 
도련은 섬 사슬을 의미하는 해양방위 경계선으로 일종의 열도 선이다. 이는 1980년대 해군사령관 류화칭이 밝힌 단계별 대양해군 건설계획이다. 중국의 단계별 해양팽창정책인 도련선을 살펴보면, 제1도련인 1단계엔 1980년대 중반부터 2000년 초기의 현대화 과정이었고, 제2단계 제2도련은 2001년부터 2020년까지의 원자력 추진 잠수함과 재래식 잠수함의 합동작전으로 근해방어에서 진일보한 방어전략이었고, 3단계 제3도련은 2021년부터 2050년까지 원양함대 구축을 완성하는 전략으로, 사실상 전 세계를 대상으로 작전을 전개할 수 있게 된다.
현재 세계 해군의 60%가 동북아에 집결해 있는데, 동북아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의 해군력은 다음과 같다. 중국은 수상함 약 870척 잠수함 60여척 항공기 680대 국방예산 2,520억달러이고, 러시아는 수상함 40척 잠수함 10척 항공기 30대 국방예산 617억달러, 미국은 수상함 90척 잠수함 40척 항공기 630대 국방예산 7,780억달러이며, 일본도 각각 190척 20척 280대 500억달러이나 우리나라는 140척 10척 70대 457억달러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의 상황은 해양강국인 열강에 둘러싸여 봉쇄된 형국이다. 이들 나라는 자국의 안보와 이익을 위해서는 한반도 주변 해역에 대한 통제가 불가피함을 인식하고 해군력을 더욱 키우고 있다. 

 

미래해군의 임무와 역할
“바다는 지킬 수 있는 자의 것!” 우리나라의 미래해군 비전과 전략은 국가보위와 해양주권을 보장하는 선진 정예해군을 건설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필승해군과 호국해군이 필요하다. 북한의 도발과 주변국 분쟁을 억제하기 위해 국가보위의 핵심군이 되고, 세계 어느 바다에서도 해양산업 활동을 보장하여 국가번영을 이룩하고, 나아가 협력적 안보역량을 강화하여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해군으로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해군력 건설을 위한 과제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로는 기획에서 전력화까지 10년 내지 20년이라는 장기간이 소요된다. 이지스함 건조에 거의 16년이 걸리고 독도함 12년, 잠수함 장보고함-3는 30년이 걸린다. 이에 따라 많은 예산이 들어간다. 이지스함 1조 2,000억원, 독도함 6,000억원, 장보고-3는 1조원이 필요하기에 안정적인 재원확보가 관건이다. 적의 다양한 위협에 대응하려면 제때 함정건조가 필요하지만, 함정의 작전운용 기간은 30년 내지 40년이나 된다. 제한적 재정 여건하에서 획기적인 전력증강을 위해서는 국가적 정책수립 및 범국민적 여론조성이 필요하다. 둘째, 중국의 해양팽창정책에 따른 해양안보환경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 최근 미중 간의 갈등이 심화하고, 주변국의 해군력 중심의 군비경쟁이 촉발되고 있다. 캠프데이비드 회담 여파로 인한 불안정한 안보상황에도 대비해야 한다. 이 회담은 중국의 패권국화 저지가 주요 목적이고, 북한에 대한 위협 대비는 부수적이었다. 회담 이후 한미일이 결속하자 북중러의 노골적인 반발이 세력화했다. 중국의 대만 침공시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농후해져 양안의 동시 분쟁화가 실현될 수 있다. 북한과 러시아의 긴밀한 군사교류가 이루어진다면 우리로선 해양안보에 치명적인 요소가 될 것이다. 이제는 해군의 임무와 역할을 바꿔야 할 시점이 됐다. 즉, 대북 위협 중심에서 국가이익 창출과 보호 임무를 병행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원해 대양작전을 위한 항공모함과 핵추진 잠수함 등을 확보해야 한다. 일관적인 해군력 강화정책도 필요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달라져서는 안 된다. 아울러 범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위한 체계적이고도 적극적인 홍보가 요청된다. 대한민국의 미래와 다가오는 해양안보환경의 격랑에 대비하여 획기적인 해군력 증강 및 운용을 위한 국민적 관심과 협력이 절실하다.

 

대한민국 해양연맹
대한민국 해양연맹은 미국 해군연맹을 벤치마킹하여 1997년에 창립됐다. 해군과 해병대, 해경 예비역, 해양산업 및 학계의 300여명이 발기하여 발족한 해양분야를 대표하는 비영리 사단법인(NGO)이다. 국민의 해양의식을 고취하고 해양력 발전을 위한 연구, 홍보, 장학사업을 시행하며, 해양인력 자원의 복지사업 및 회원 간의 이해와 친목을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아울러 목적사업에 필요한 수익사업 및 해양문화 관련 사업을 전개한다. 주요 추진사업은 대국민 해양사상 고양 및 국가의 해양정책을 건의하며, 독도 등 해양영토에 관한 교육, 문화, 홍보사업을 행하고, 해양수산, 해운, 항만, 물류, 조선 등 해양산업 발전을 도모한다. 해양안전교육 및 체험 행사로 국민의 친해양화에도 이바지할 계획이다. 해양연맹이 구상하는 ‘장기플랜 2030’은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 해양력 강화에 선도적 역할을 한다. 대정부 해양정책을 적극적으로 건의한다. 해양단체 간의 국제협력을 강화한다. 국민과 함께 하는 해양연맹을 조성하기 위해 조직을 개편한다. 해양발전을 위한 기금확충을 지속한다”
미국해양연맹(US Navy League)은 1902년 테오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적극 지원으로 설립됐다. 미국의 해양연맹은 비영리 민간교육 및 지원을 위한 단체로 해군과 해병대, 해안경비대, 미국적 상선에 대한 해상서비스 지원을 목적으로 하며, 회원은 7,000여명에 달한다. 중점업무는 미국 정부 및 의회를 통해 해상서비스 종사자와 가족을 지원하고, 정부와 의회에 국방, 복지, 경제정책을 제안하며, 해상서비스 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청소년 교육사업을 지원하는 것이다. 어제도 우리나라를 방문한 미국해양연맹 리더들과 늦게까지 회합을 갖고 상호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앞으로도 양 연맹은 정보교환과 상호교류 및 협력증진으로 계속 발전시켜 나가기로 약속했다. 
주제발표가 끝나고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해상교통로(Sea Lane)를 지키기 위해 무엇에 중점을 두어야 하는가? 무역과 해외의존도가 절대적인 우리나라는 무역로 즉 해상교통로 확보를 위해 대양해군을 지향해야 한다. 대양해군을 구축하기 위해 항공모함과 핵잠수함은 몇 척이 필요한가? 기본적으로 3척이다. 훈련, 정비, 실전배치에 각각 1척씩이 필요하여 일반적으로 3, 6, 9 단위로 증선한다. 중동전쟁때 일본의 산코라인 선박에 승선하여 호르무즈해협을 무해통과했다. 아마 교전국들이 일본국기와 일본선사 마크를 보고 그렇게 한 것 같다. 우리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청해부대 군함이 한국적 선박에 근접하여 호위할 수는 없겠는가? 전시 무해통항을 위해서는 범정부적인 외교적 노력도 필요할 것이다. 근접호위는 작전구역이 넓기에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선박자동식별장치인 AIS(Automatoc Identification System)에 의해 우리 선박의 위치와 속도, 진행방향 등을 감지하여 보호할 수 있다. 또한 우방들과 공조로 상호 보호한다. 지난 연평해전에서 실시간 전투상황이 지휘부에 전송되어 효율적으로 작전할 수 있었나? 물론이다. 상세히 전송 보고되어 작전을 지시하고 대처했다. 해상교통로 안보를 위해 해협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특히 분쟁 요인이 큰 바시해협, 말라카, 롬복, 쓰가루해협을 이용하는 국가들의 협력체제는 없는가? 말라카해협에는 있으나 여타 해협은 아직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나라로선 매우 중요한 항로이며 분쟁의 소지가 큰 타이완해협과 남중국해 통항에 지장을 받으면 피해가 막심할 것이다. 대책은 있는가? 우리나라 단독으로 대처하기는 쉽지 않고 한미일의 공조와 태평양 연안 우방의 협력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AI 이후의 세계’
유사 이래로 인간은 경험과 환경을 이해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모든 사회는 완전하진 않더라도 현실에 대한 나름의 이해에 도달했고, 그 중심에 인간의 정신과 현실의 상호작용이 있었다. 인간의 정신이 주변환경을 관찰해 지식을 습득함으로써 지식에 의지해 현실을 이해하려 했다. 지금까지 모든 시대에는 현실을 설명하는 특유의 원리가 있었고, 그에 근거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합의가 형성됐다. 개인과 사회를 정의하는 나름의 관념이 있었으며, 개인과 사회가 자연 질서에 어떻게 편입되었는지 설명하는 이론이 존재했다. 새롭게 발견된 이론을 지배적인 패러다임으로 설명할 수 없을 땐 사고의 혁명이 일어나 새로운 시대가 탄생했다. 현재 떠오르는 인공지능 AI는 현실을 설명하는 당대의 관념에 거세게 도전하며 새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현실을 직시할 다른 방법이 없다면 인간의 맹점은 드러날 수 없다. 마땅한 대안이 없으면 인간의 지각과 이성이 현실에 접근하는 최고의 수단이고, 실제로 한동안 그런 지위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AI가 등장하면서 현실에 접근하는, 따라서 현실을 이해하는 또 다른 수단이 등장했다. 현재 우리는 변화의 임계점에 와 있다. 디지털 혁명과 AI의 발전으로 기술이 삶의 경험을 바꾸는데 걸리는 시간이 대폭 단축되면서, 단순히 과거보다 더 강력하거나 효율적인 차원을 넘어 완전히 새로운 것이 생성되고 있다. 디지털화는 각계각층의 인간 조직에 영향을 미친다. 정보에 맥락이 더해질 때 지식이 되고, 지식에 소신이 더해지면 지혜가 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소신이 생기면 홀로 성찰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인간은 소신과 지혜를 갖출 때만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다. 온라인에서 정보가 폭발적으로 늘어남에 따라 우리는 소프트웨어에 의존하게 됐다. 소프트웨어가 정보를 분류하고 정제하며, 패턴을 토대로 분석하여 우리의 질문에 답을 제시한다. 이전의 경험과 행동에 따라 우리가 좋아할 만한 글이나 음악을 직감하는 AI가 삶에 폭넓게 영향을 미치면서 우리의 정신이 홀로 선택하고 체계화하고 평가하던 시대가 저물고 있다. AI는 예측하고 결정하고 결론을 도출할 수 있지만, 자의식은 없다. 자신이 수행하는 역할을 사유하는 능력도 없다. 아직은 인간이 미래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 우리의 가치관에 부합한 미래를 조성해야 한다. 이상은 세기적 지성이요 석학인 헨리 키신저, 에릭 슈밋, 대니얼 허튼로커가 ‘AI 이후의 세계’에 대해 예측하고 토론한 담론이다. 그들은 행정가요 정치인이요 구글의 CEO였고 코넬대학 학장이었다. 

 

튜링의 시대에서 그 너머로
AI는 반도체와 튜링 즉, 연산으로 이루어졌다. 튜링 테스트는 모든 면에서 인간과 구별이 안 되는 기계를 상정하는 것이 아닌, 어떤 기계가 특정한 영역에서 인간과 유사하게 행동하는지를 평가하는 수단이다. AI는 비정밀하고 역동적이고 창발적이며 학습 가능하다. AI를 역동적이라고 하는 이유는 변화하는 상황에 대응하며 진화하기 때문이고, 창발적이라고 하는 이유는 인간이 생각하지 못한 해법을 찾아내기 때문이다. AI의 핵심은 작업을 수행하는 것, 엄밀히 말해 복잡한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방법을 찾고 실행하는 학습능력이다. 최신 AI 알고리즘은 인간의 뇌 구조와 신경망에서 영감을 얻었다. 인간의 뇌는 약 1,000억개의 뉴런을 1,000조개의 시냅스와 연결하여 정보를 부호화하는데, 그 답을 찾기 위해 노드의 가중치 관계를 부호화하는 인공신경망을 설계했다. 신경망은 수많은 노드를 상호 연결하고 각 연결부의 강도를 나타내는 가중치를 지정함으로써 정보를 부호화하는 네트워크다. 생성형 신경망은 또 다른 기술로의 창조가 가능하다. 생성형 신경망은 기존의 텍스트나 이미지로 훈련된 후 새로운 텍스트나 이미지를 생성한다. 생성형 AI를 만들 때 주로 사용되는 훈련기법은 상호보완적인 학습목적을 가진 두 신경망을 경쟁시키는 것이다. 이를 생성형 적대 신경망(GAN)이라고 부른다. 현존하는 생성형 AI 중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예는 인간과 유사한 텍스트를 만드는 GPT-3다. GPT-3는 언어를 번역하는 차원을 넘어 언어를 생성한다. AI는 튜링이 테스트를 설계할 때 생각했던 차원, 즉 인간의 지능과 필적하는 수행능력을 발휘하는 차원을 넘어 인간을 초월하는 능력을 발휘하는 경지까지 나아감으로써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의 한계를 확장한다. 앞으로 AI가 더욱 다양한 작업을 수행하고 확산하며 심지어 독창적 텍스트와 코드까지 생성할 것으로 기대된다. 
개발자들은 이른바 범용인공지능(AGI)을 만들기 위해 머신러닝의 한계에 도전했다. AGI도 AI처럼 정확한 정의가 존재하지 않으나, 특정한 작업만 수행할 수 있는 현재의 협소한 AI와 달리 인간에게 가능한 지능적 작업이 무엇이든 수행하는 AI를 가리키는 말로 통용된다. AGI를 개발하는 한 가지 방법은 다양한 분야에서 전통적 AI들을 훈련한 후 그 전문성의 토대가 되는 요소들을 결합하여 단일한 AI를 만드는 것이다. AI는 자의식이 없어 인간이 볼 때 명백한 착오도 알아채지 못하고 방치하나 AGI는 AI처럼 불안정하게 작동하거나 심각한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 고도로 발달한 AI를 개발하려면 방대한 데이터와 초고성능 컴퓨터, 숙련된 기술자가 필요하다. AI 산업은 집중과 발전의 순환고리를 따른다. 앞으로 통신, 상거래, 안보는 물론 인간의 의식을 포함해 많은 영역에서 AI가 우리의 삶과 미래를 바꿀 것이다. 따라서 AI가 고립된 상태에서 개발되지 않도록 해야 하고, 잠재적 이점만이 아니라 잠재적 위험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글로벌 네트워크 플랫폼
요즘 인간 활동의 저변에 비인간적 지능이 조용히 때로는 은밀히 편입되고 있다. 신속하게 전개되는 이 변화의 중심에 이른바 네트워크 플랫폼이라는 신종 서비스가 존재한다. 네트워크 플랫폼은 수많은 이용자를 유치하여 이용자에게 편익을 제공하는 디지털 서비스로, 그 사업 영역이 대개 여러 국가 또는 전 세계에 걸쳐 있다. 대표적인 네트워크 플랫폼은 미국과 중국에서 탄생했고, 운영자로는 미국의 구글, 페이스북, 우버와 중국의 바이두, 위챗, 디디추싱이 있다. 이러한 네트워크 플랫폼은 서비스 국가에서 일상생활, 정치논의, 상거래, 기업운영은 물론 정부 행정에도 없어서는 안 될 요소가 됐다. 네트워크 플랫폼에 사용되는 AI는 점점 더 고도화하여 국가적 차원과 국제적 차원에서 사회와 상업활동에 점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렇듯 개인정보를 이용하여 네트워크 플랫폼과 AI가 사회정치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위치에 올라섬으로써 커뮤니케이션, 상거래, 음식배달, 교통의 편의성을 향상하는 수단으로 사회생활과 대인관계의 필수품으로 부상했다. 과연 AI 기반 네트워크 플랫폼에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 수많은 이용자가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함으로써 인류가 공통된 문화를 발전시키고 단일한 국가의 문화나 가치관을 넘어서는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아니면 “AI 기반 글로벌 네트워크 플랫폼이 이용자의 행동에서 추출한 특정 교훈이나 패턴을 증폭함으로써 인간 개발자가 의도하거나 예측한 것과 다른 효과, 심지어 그에 반하는 효과를 일으킬 것인가”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우리는 AI 기반 네트워크가 없이는 커뮤니케이션이 불가능한 시대를 살고 있기에, 이런 질문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네트워크 플랫폼 운영자들은 그들이 창조한 가상공간의 역량과 궁극적 목적을 정의하는데 그치지 않고, 네트워크 플랫폼이 사회 각 영역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안보와 세계질서
원자폭탄의 아버지라 불리는 물리학자 오펜하이머는 뉴멕시코의 핵무기 실험을 참관한 후 “이제 나는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고 탄식했다. 그러나 핵무기는 극단적 파괴력 때문에 생존이 백척간두에 몰린 상황이 아니라면 어떤 목적으로도 사용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역사상 안보는 조직 사회가 기본적으로 추구하는 목표였다. 어느 시대나 안보를 중시하는 사회는 더 빠르게 위협을 감지하고, 더 철저한 방비태세를 갖추며, 타국에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전시에 더욱 효과적으로 전력을 동원하여 승리하기 위해 기술을 발전시켜 왔다. 냉전 이후 현재의 강대국을 포함해 많은 나라가 사이버 무기로 전력을 강화했다. 사이버 무기는 그 존재와 사용 여부를 은폐하고 부인할 수 있으며, 허위정보 유포, 첩보, 파괴공작, 전통적 분쟁 사이에 존재하는 모호한 경계선상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즉, 독트린을 명시하지 않고도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 AI는 다양한 차원에서 활용할 수 있는 만큼 머잖아 국방의 필수요소가 될 것이다. 이미 전투기를 조종하는 AI가 모의 공중전에서 인간 조종사를 능가하는 능력을 과시했다. 설령 인간의 승인 없이 스스로 목표물을 정하고 타격하도록 훈련받고 권한을 부여받은 AI 무기, 이른바 치명적 자율무기 LAWs의 확산을 금지한다 해도, AI로 인해 재래식 무기, 핵무기, 사이버 무기가 강화되어 경쟁국 간에 안보위기와 분쟁을 예측하고 방지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따라서 돌이킬 수 없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AI와 관련된 전략적 독트린을 정하고, 그것을 다른 AI 강자들의 독트린과 비교해야 한다. 예측 불가능한 AI 전력을 개발하고 사용하는 행위에 적절한 한계선을 긋고자 서로 협력해야 한다. 냉철하게 AI 무기를 통제하는 행위야말로 인류의 미래를 고려하며 안보를 확립하는 길이다. 상호확증파괴 이른바 매드(MAD)는 목표물의 수를 줄여 파괴 효과를 배가하는 전략으로 엄청난 사상자의 발생을 가정했고, 이에 따라 핵무기의 용도는 적대국을 억지하는 신호 전달로 한정됐다. 억지의 목적은 핵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위협으로 핵전쟁을 방지하는 것이지만, 여기에는 비확산이라는 개념이 동반된다. 비확산은 조약, 기술적 보호장치, 각종 규제를 토대로 핵무기와 그 생산에 관련된 지식과 기술이 기존 보유국 외의 국가로 확산하지 않도록 막는 행위다. 하지만 탈냉전시대에 탄생한 사이버 무기와 AI 무기라는 강력한 무기군에는 이 전략이 진지하게 고려되지 않았다. 핵, 사이버, AI 무기를 확보하려는 세력이 급증하는 현실에서 군비통제는 시급한 과제다. AI 기반 방어 시스템보다 더욱 고민해야 하는 전력은 인간의 개입 없이 목표물을 지정하고 공격하는 자율살상무기 시스템이다. 여기서 중요한 쟁점은 인간의 감독과 적시 개입이다. 따라서 자율 시스템은 인간이 수동으로 파괴하는 ‘온 더 루프(on the loop)’ 시스템과 특별한 행동에만 인간의 승인이 요구되는 ‘인 더 루프(in the loop)’ 시스템으로 나누어 강제적 검증이 가능한 규제책을 모색해야 한다. 인공지능의 시대에도 국제사회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각국의 경쟁이 지속되는 상황을 안전히 막을 수는 없겠지만, 그 근저에는 인류의 생존을 고려한 윤리적 판단이 버티고 있어야 한다. 

 

인간의 정체성과 미래
“2030년쯤이면 우리는 뇌의 신피질을 비생물학적 지능과 결합할 수 있게 된다. 지적 한계는 사라지고, 인간의 지능은 두뇌 바깥으로 나가 클라우드에 도달할 것이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의 말이다. 한때는 인간만 가능했던 작업을 점차 기계가 수행하는 시대에 인간인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정체성을 규정해야 할까? 인간이 독자적으로 현실을 탐색하고 조성하지 않고 AI를 인지와 사유의 보조자로 동원한다면, 자신에 대한 인식과 이 세계에서의 역할에 관한 인식이 어떻게 달라질까? 인간의 자율성, 존엄성 같은 개념과 AI는 또 어떻게 양립할까? 이성과 신앙은 AI의 시대에도 존재하겠지만, 그 성질과 작용범위는 기계가 사용하는 새롭고 강력한 논리의 영향을 크게 받을 것이다. 인간이 여전히 생명체 중에서는 최고의 지능을 보유한 존재로 여겨지더라도, 인간의 이성이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 유일하게 사용되는 지능으로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우리의 위상을 파악하려면 이성을 중시하던 시각에서 벗어나 인간의 존엄성과 자율성에 중심을 둬야 할지도 모른다, AI 혁명은 대부분의 예상보다 빠르게 진전될 것이다. 그에 따르는 변화를 설명하고 해석하고 체계화하는 개념들을 확립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길을 잃고 만다. 도덕적, 철학적, 심리적, 실용적 등 모든 차원에서 우리는 새 시대의 벼랑에 서 있다. 이성, 신앙, 전통, 기술이라는 유서 깊은 자원을 활용해 여전히 인간성이 유지되도록 현실과 우리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 
“우리는 과학혁명의 중심에 있다. 공동체에 인공적 존재를 맞아들이면서 인류의 진보는 대단한 가속을 얻고 모든 분야에서 엄청난 가치가 창출될 것이다” 범용인공지능 AGI의 등장은 지적, 화학적, 전략적 쾌거가 될 것이다. AI는 그 역동성과 창발성, 즉 예상치 못한 행동과 해법을 도출하는 능력 때문에 이전의 기술과 차별화된다. 이제 인간의 이성이 홀로 수행할 수 없는 방식으로 정보를 학습하고 처리하는 AI가 등장한 덕분에 지금껏 인간이 답하지 못했던 질문에 관한 탐구가 진척될 것이다. 하지만 성공은 새로운 질문을 부르고, 우리는 이에 답하여 실용화해야 한다. 지금은 인간의 지능이 인공지능과 연합하여 국가적, 대륙적, 세계적 차원의 일을 도모하는 시대다. 이 변화를 이해하고 그 길잡이가 될 윤리체계를 마련하려면 과학자와 전략가, 정치인, 철학자, 성직자 등 각계각층의 노력과 중지가 모여야 한다. 지금은 우리가 인공지능과 어떻게 협력하여 현실을 탐구할지 규정할 때다.
“전쟁과 재난으로 다사다난했던 2023년이 저물어갑니다. 평화롭고 희망찬 새해 2024년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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