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형 조선사를 위한 한국무역보험 공사의 수출신용보증 사례

- 대법원 2018. 12. 27. 선고 2018다243478 판결 및 대법원 2023. 8. 31. 선고 2019다224870 판결 -

 

 
 

1. 서론
조선산업은 거대 장치산업으로서 착공에서 진수에 이르기까지 수년에 이르는 장기간의 공정을 필요로 하고, 그에 소요되는 자금 역시 상당한 고액이라는 특징이 있다. 이에 조선사는 선주사로부터 선수금(先受金)1)을 분할하여 수령하는 한편, 선박 건조에 필요한 비용을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하는 방식으로 그 자금을 조달하고는 한다. 때문에 자금능력과 신용이 부족한 중소형 조선사에 대하여는 이러한 자금조달을 보장할 정부 차원의 시의적절한 무역금융2) 제도의 뒷받침이 긴요하다.

한국무역보험공사는 무역보험법에 따른 무역보험사업을 하기 위하여 설립된 공사로서, 무역보험, 수출신용보증 및 수출용 원자재 수입신용보증, 무역보험기금의 관리 및 운용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무역보험법 제37조, 제53조). 조선 산업에 있어서 한국무역보험공사가 제공하는 무역보험사업은 그 영향력이 상당한데, 신용이 부족한 중소형 조선사의 선박건조계약 이행에 있어서는 특히 중요한 기능을 한다. 조선사에 대한 한국무역보험공사의 무역보험사업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첫째는 국내 은행이 선수금에 관하여 외국의 선주사에 대한 환급보증(Refund Guarantee, RG)3)을 함에 있어서 국내 은행에 ‘수출보증보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둘째는 조선사가 국내 은행으로부터 선박 건조에 필요한 비용을 대출받는 데 있어서 ‘수출신용보증’을 서 주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무역보험사업 중 선박건조계약 실무상 더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은 수출보증보험 사업이다. 선수금은 선박건조계약의 실질적 이행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데, 은행의 선수금 환급보증이 있어야만 조선사가 선수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4) 최근 정부는 글로벌 선박 시장의 호조세가 국내 조선업계의 수주 확대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환급보증 등 금융지원이 뒷받침될 필요가 있다는 전제 하에, 국내 은행들이 환급보증을 순차로 분담하고(분담제) 그에 대응하여 한국무역보험공사도 무역보증보험 제공을 확대한다는 방안을 수립한 바 있다.5) 

대부분의 경우에 한국무역보험공사가 조선사를 위하여 제공하는 무역보험사업은 그 목적을 성공적으로 달성하고 별다른 법률문제를 야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조선사의 부실이나 도산으로 인하여 은행이 환급보증에 따른 선수금 환급의무를 이행6)하게 되거나, 조선사가 은행에 대출금을 갚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은행과 한국무역보험공사 사이에 수출보증보험에 따른 보험금 또는 수출신용보증에 따른 보증금 지급을 둘러싼 분쟁이 발생하게 된다. 수출보증보험을 둘러싼 최근의 분쟁으로서 유명한 것은 ‘SLS조선’의 부실로 인하여 야기된 국내 은행들과 한국무역보험공사 사이의 분쟁이었다.7) 이 사건들에서는 은행들이 수출보증보험계약에 포함된 특별약정의 제한을 위반하였는지 여부와 그로 인하여 한국무역보험공사가 면책되는지 여부가 쟁점이 되었는데, 모두 한국무역보험공사가 승소하였다.8) 한편 수출신용보증을 둘러싸고는 최근 ‘성동조선’의 부실로 인하여 야기된 분쟁이 있었다. 이에 관하여는 대법원 2018. 12. 27. 선고 2018다243478 판결 및 대법원 2023. 8. 31. 선고 2019다224870 판결(이하 통틀어 ‘대상판결’이라 한다)이 내려졌는데, 이 글에서는 중소형 조선사를 위하여 제공된 수출신용보증을 둘러싼 위 분쟁 사례에 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위 수출보증보험을 둘러싼 분쟁 사례에 관하여는 추후 별도의 기회에 다루기로 한다).

 

2. 사실관계
가. 성동조선해양 주식회사(이하 ‘성동조선’)는 조선업 등을 영위하는 회사로서, S-1037 포함 19척 선박의 건조를 수주하였다. 

 

나. 하나은행과 우리은행, 그리고 중소기업은행은 대주단을 구성하여 2009. 1. 21. 성동조선과 사이에 2,000억 원과 미화 2,000만 달러를 합한 금액을 한도로 선박 제작에 필요한 원·부자재 구매자금을 대출하는 계약을 체결하였다(이하 ‘이 사건 대출’). 우리은행은 대주단 계약에 의해 정해진 이 사건 대출의 관리은행으로서 다른 대주단 참여은행들을 대리하여 대출금의 집행·관리, 대출원리금 회수 등 업무를 수행하였다. 

 

다. 한국무역보험공사는 위 대주단 참여은행들과 사이에 위 대출에 의한 대출약정금을 신용보증한도로 하여 성동조선의 대출금채무를 연대보증하는 내용으로 각 수출신용보증계약(이하 ‘이 사건 수출신용보증계약’)을 체결하고, 위 은행들에게 각 수술신용보증서를 발급하였다.

 

라. 이 사건 대출은 ‘직접지급방식’에 의하여 대출실행을 할 것으로 정하고 있었다(이 사건 대출계약서 제3조 제2항 제1호). 즉 관리은행인 우리은행이 선박건조에 사용되는 원·부자재 결제를 위한 매도인의 계좌 등에 구매대금을 직접 입금하거나 또는 결제를 위하여 발행된 신용장 대금을 결제하는 방식으로 대출을 실행할 것으로 정해져 있었다.

 

마. 한편 이 사건 수출신용보증계약서의 약관(이하
‘이 사건 약관’) 제6조 제1호에는 ‘은행이 신용보증조건을 위반한 경우’ 한국무역보험공사가 보증채무의 전부 또는 일부에 대하여 이행할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면책 규정이 정해져 있었다. 이 사건 약관 제6조 제5호, 제11조 제1항에서는 은행으로 하여금 신용보증관계가 성립된 신용보증부 대출과 관련한 채권에 대하여 신용보증관계가 성립하지 아니한 채권과 동일한 주의를 가지고 권리의 보전에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면서, 위 권리보전의무에 위반하여 피고에 손실이 발생한 경우를 면책사유로 규정하고 있었다. 또한 위 계약서의 특약사항(이하 ‘이 사건 특약’)으로 다음 내용들이 규정되어 있었다.

 

1. 이 보증서(수출신용보증서를 말함, 이하 같음)에 의한 대출금은 채무자의 원부자재 해외조달 구매자금 증빙구비건에 한하여 취급되어야 함 
3. 이 보증서에 의한 대출 및 상환 방법은 금융계약서에 정한 바에 따라야 하며, 금융계약서 변경시 피고의 사전승인을 받아야 함 
4. 은행은 채무자로 하여금 상환금계좌(Repayment Account)를 설정하게 하고, 동 계좌로 입금되는 금액은 장래 3개월 이내에 도래하는 상환기일에 상환할 원리금의 상계에 우선 충당하여야 함. 또한, 동 계좌 잔액은 장래 3개월 이내에 도래하는 상환기일에 상환할 원리금의 100% 이상을 항상 유지하도록 관리하여야 함
5. 은행은 채무자로 하여금 별첨의 선박건조계약상 인도시 잔금이 지급될 인도수납금관리계좌(Escrow Account)를 설정하게 하고, 동 계좌로 입금되는 금액은 상환금계좌(Repayment Account)에 우선 충당하여야 함

 

바. 성동조선은 조선업 경기불황 등으로 인하여 유동성 위기에 빠졌고, 성동조선의 채권금융기관들(위 대주단 참여은행 및 한국무역보험공사 포함)은 2010. 4.경 성동조선의 경영정상화를 위하여 자율협약절차(이하 ‘이 사건 자율협약절차’)를 개시하였는데, 위 자율협약절차에서 한국무역보험공사의 수출신용보증서를 담보로 하는 대출금은 한국무역보험공사가 보상심사를 한 후 각 대주단 참여은행에 상환할 것이 결의되었다. 이로써 성동조선이 이 사건 대출금을 변제하지 못하는 수출신용보증사고가 발생하게 되었다. 
사.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은 위와 같이 수출신용보증사고가 발생함에 따라 이 사건 수출신용보증계약에 따른 보증금을 청구하였는데, 한국무역보험공사는 이 사건 약관 제6조 제1호, 제5호 소정의 면책사유가 존재한다는 이유로 보증금액 일부에 대하여 면책을 주장하였다. 

 

3. 사건의 경과 및 법원의 판단 
가. 위 사안을 둘러싼 소송은 두 건이 진행되었다. 하나는 우리은행이 한국무역보험공사를 상대로 보증금의 지급을 구한 소송이었고(대법원 2018. 12. 27. 선고 2018다243478 판결 및 그 하급심 판결 참조, 이하 ‘선행소송’), 다른 하나는 하나은행이 한국무역보험공사를 주위적 피고로, 우리은행을 예비적 피고로 하여 보증금 및 손해배상청구를 한 소송이었다(대법원 2023. 8. 31. 선고 2019다224870 판결 및 그 하급심 판결 참조, 이하 ‘후행소송’).

 

나. 선행소송의 경과는 다음과 같다.
1) 우리은행은 한국무역보험공사를 상대로 위와 같이 한국무역보험공사가 면책을 주장한 보증금의 지급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9) 이에 대하여 한국무역보험공사가 주장한 구체적인 면책사유는 다음과 같다.
① 대주단 은행은 이 사건 대출계약에 따른 (15,)10) 18, 22, 23회차 대출 실행 당시 성동조선의 원·부자재 구입자금 결제일 이후 해당 대금 상당액의 대출을 실행하였는바, 이는 직접지급방식의 대출의무를 위반한 사후대출로서 신용보증조건을 위반한 것임(이 사건 약관 제6조 제1호 면책사유)
② 이 사건 특약에 의하면 ‘대출금은 채무자의 원부자재 해외조달 구매자금 증빙구비건에 한하여 취급’(제1항)되어야 함에도, 대주단 은행은 이 사건 대출계약에 따른 18 내지 24회차 대출 실행 당시 구매자금 증빙구비 금액의 범위를 초과하여 대출을 실행하였는바, 이는 성동조선의 증빙구비 건에 한한 대출의무를 위반한 초과대출로서 신용보증조건을 위반한 것임(이 사건 약관 제6조 제1호 면책사유)
③ 이 사건 자율협약절차의 채권액 산정 기준일인 2010. 3. 31. 당시 우리은행은 성동조선의 상환금계좌(Repayment Account) 및 인도수납금관리계좌(Escrow Account)의 잔액에 관하여 성동조선과의 상계계약 등을 통하여 이 사건 대출금 채권에 우선 충당하였어야 함에도 이를 하지 않아 권리보전의무를 위반함. 이와 같이 권리보전의무에 위반하여 한국무역보험공사에 손실이 발생하였으므로 면책사유에 해당함(이 사건 약관 제6조 제5호, 제11조 제1항 면책사유)

2) 제1심법원은 위 ①, ②항의 신용보증조건 위반을 인정하여 한국무역보험공사의 면책 주장을 받아들였다. ③항의 권리보전의무 위반으로 인한 면책 주장에 대해서는, 이 사건 대출계약에 따른 대출금 채권은 이 사건 자율협약절차의 개시 및 채무상환 유예 결의에 따라 변제기가 연장되어 3개월 이내에 변제기가 도래하는 채권에 해당하지 않았으므로 우리은행으로서는 그 당시 이를 자동채권으로 하여 성동조선을 상대로 위 각 계좌 잔금 중 동액 상당액과 상계할 수는 없었던 사정 등을 들어 이 사건 수출신용보증계약의 해석상 우리은행이 위 각 계좌의 잔금 상당액에 관하여 성동조선과의 상계계약 등을 통하여 이 사건 대출금 채권액의 변제에 우선 충당하여야 할 권리보전의무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위 주장을 배척하였다. 결국 위와 같이 ③항의 면책주장이 배척된 부분에 대해서만 우리은행의 보증금 청구가 인용되었다.11)

3) 이에 대하여 우리은행이 항소하였고, 한국무역보험공사도 부대항소를 하였다. 그러나 항소심 법원 역시 제1심법원과 동일한 판단을 하여 위 항소와 부대항소를 모두 기각하였다. 다만 은행의 신용보증조건 위반행위와 신용보증사고 발생 사이에 인과관계가 존재하지 않아 한국무역보험공사의 면책 주장이 이유 없다는 우리은행의 주장에 대하여, 항소심 법원은 “이 사건 약관 제6조 제1호의 면책사유인 ‘은행이 신용보증조건을 위반한 경우’는 그 문언에 의하면 은행의 신용보증조건 위반행위와 보증사고의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를 요건으로 하지 아니한다고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이러한 해석은 이 사건 약관에 의한 신용보증관계가 은행이 신용보증조건에 부합되게 대출을 실행한 경우에 한하여 성립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이 사건 약관 제4조 제1항이나 담보력이 미약한 수출기업을 상대로 고위험을 인수하여 처리하기 때문에 신용보증조건의 준수가 강하게 요구되는 수출신용보증제도의 성격 등에 비추어 보더라도, 제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인 해석이라고 할 것이다. 따라서 이 사건 약관 제6조 제1호의 면책사유를 이유로 한 피고의 면책은 은행의 신용보증조건 위반행위와 보증사고의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를 요건으로 하지 아니한다고 해석함이 상당하다”고 판단하여 위 주장을 배척하였다.12)

4) 우리은행은 위 판결에 불복하여 상고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위 ①, ②항의 신용보증조건 위반 여부 및 이 사건 약관 제6조 제1호가 규정하는 면책사유인 ‘은행이 신용보증조건을 위반한 경우’라는 문언은 은행의 신용보증조건 위반행위와 신용보증사고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를 요건으로 하지 않는다는 항소심 법원의 판단에 법리오해 등의 잘못이 없다고 판단하여 상고를 기각하였다.

 

다. 후행소송의 경과는 다음과 같다.
1) 하나은행은 한국무역보험공사를 주위적 피고로 하여 위 나. 1)항과 같이 한국무역보험공사가 면책을 주장한 보증금에 대한 지급 청구를 하였다. 한국무역보험공사를 상대로 한 청구에 있어서 당사자의 주장과 쟁점은 선행소송과 동일하였다. 또한 하나은행은 한국무역보험공사의 면책이 인정되는 부분에 관하여는, 대주간 계약에 따른 관리은행인 우리은행을 예비적 피고로 하여 채무불이행 또는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를 하였다.
2) 제1심법원은 한국무역보험공사를 상대로 한 청구에 대해서는 결론과 이유에 있어서 선행소송과 동일한 판단을 하였다. 우리은행을 상대로 한 청구에 대해서는, 대주간 계약에 따라 하나은행의 수임인 지위에 있는 우리은행(관리은행)이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서 성동조선의 인출요청서와 증빙서류를 엄격히 심사하여 대출을 실행할 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위반하여 하나은행에 사후대출 및 초과대출로 인한 신용보증조건위반을 이유로 한국무역보험공사의 면책이 인정된 대출금 상당액의 손해를 가하였음을 인정하여, 그에 대한 손해배상의 지급을 명하였다.13)
3) 하나은행(원고)과 우리은행(예비적 피고)은 제1심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하였다. 항소심에서 우리은행은, 하나은행이 대주간 계약에 따라 우리은행에 성동조선에 대한 대출업무를 위임한 위임인으로서 수임인인 우리은행의 신용보증조건 위반행위를 방지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과실이 있으므로 우리은행의 손해배상책임에 대하여 과실상계가 인정되어야 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공평의 원칙에 따라 우리은행의 책임이 상당부분 제한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였다. 이에 대하여 항소심 법원은 ‘성동조선에 대한 대출 과정에서 신용보증조건을 준수하여 보증인인 한국무역보험공사에 대한 보증채권을 보전할 의무는 전적으로 우리은행이 부담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전제에서, 신용보증조건 위반행위에 관하여 하나은행에게 어떠한 과실이 있다고 할 수는 없고 나아가 이러한 전제 하에 신용보증조건 위반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의무를 우리은행이 전부 부담하도록 하는 것이 공평의 원칙에 반한다고 볼 근거도 없다는 이유로 위 주장을 배척하였다. 이로써 항소심 법원은 쌍방의 항소를 모두 기각하는 판결을 하였다.14)   
4)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은 이에 불복하여 상고하였다. 대법원은 원고의 한국무역보험공사를 상대로 한 상고에 대하여는 이 사건 대출 실행에 한국무역보험공사의 주장과 같은 ①, ②항의 신용보증조건 위반이 존재하는지 여부에 대하여 항소심 법원의 판단에 법리오해 등의 잘못이 없다고 판단하여 이 부분 상고를 기각하였다. 다만 대법원은 우리은행의 하나은행을 상대로 한 상고에 대하여는, 채무불이행 내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사건에서 과실상계나 책임제한 사유에 관한 사실인정이나 그 비율을 정하는 것이 사실심의 전권사항이라고 하더라도, 형평의 원칙에 비추어 현저히 불합리하여서는 아니 된다(대법원 2022. 4. 28. 선고 2019다224726 판결 등 참조)는 법리를 전제로, 원심이 우리은행의 손해배상책임을 제한하지 않더라도 공평의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고 보아 우리은행의 책임제한 등 주장을 배척한 것은 형평의 원칙에 비추어 현저히 불합리하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대법원은 우리은행의 패소 부분을 파기, 환송하였다.15) 

4. 검토
가. 수출신용보증제도
수출신용보증(export credit guarantee)이란 담보력이 미약한 중소기업의 수출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수출거래와 관련하여 외국환은행이 수출자에게 자금을 대출하는 데 따라 발생하는 수출자의 대출금 채무를 한국무역보험공사가 연대보증하는 제도이다. 수출신용보증을 통해 외국환은행에게 대출금 회수에 대한 불안을 제거하여 줌으로써 수출자는 외국환은행으로부터 수출물품을 제조, 가공할 수 있는 자금을 조달받거나(선적전 수출신용보증) 수출물품을 수출한 후 선적서류를 근거로 조기에 수출대금을 회수할 수 있게 된다(선적후 수출신용보증).16) 처음에는 선적후 수출신용보증만을 제공하다가 이후 중소기업이 수출물품의 제조 및 원자재 구매에 필요한 자금을 원활히 제공받을 수 있도록 선적전 수출신용보증도 도입한 것이라고 한다.17)
이 사건 대출계약은 선박 건조에 필요한 원·부자재 구매자금을 대출하는 계약으로서, 이 사건 수출신용보증계약은 ‘선적전 수출신용보증’에 해당한다. 이는 조선사가 선박을 건조하여 인도하는 선박건조계약의 특성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18)

 

나. 수출신용보증의 적정성 보장을 위한
대출 실행 방법의 제한
한국무역보험공사는 비영리정책보증기관으로서 중소기업으로부터 물적 담보를 받지 않고 은행 대출에 대한 신용보증을 제공한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무역보험공사는 수출자나 은행의 도덕적 해이에 따른 부실 대출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그러므로 수출신용보증의 적정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① 선적후 수출신용보증의 경우에는 은행이 보증의 대상인 수출거래의 진정성을 확실히 파악한 뒤 대출(수출업자가 발행한 수출환어음의 매입을 통하여 이루어진다)을 실행하도록 제한하고, ② 선적전 수출신용보증의 경우에는 대출을 받은 기업이 그 대출자금을 엉뚱한 곳에 유용하지 못하도록 충분한 통제가 이루어진 상황에서 은행이 대출을 실행하도록 제한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실제로 선적전 수출신용보증의 경우에는 은행이 수출업자로부터 ‘수출계약서 및 선적서류의 원본 또는 사본’을 받은 다음 실행한 대출에 한정하여 한국무역보험공사가 보증을 하는 내용의 특약이 활용되고 있다. 여기서 ‘선적서류’란 발행인인 운송인이 해당 수출거래의 물품을 선적한 후 이를 증명하기 위하여 발행한 다음 직접 서명한 문서를 의미한다.19) 이처럼 수출거래의 진정성이 확인되고, 대출 은행이 신용장 조건에 따라 발행된 수출환어음을 매입하는 경우에는 위 수출환어음이 실질적인 담보로서 기능을 하게 되어(위 수출환어음은 신용장 개설은행 등의 지급인에 의해 결제될 것이 확실시 되는 유가증권이다) 한국무역보험공사가 보증 책임을 부담하게 될 위험이 상당히 줄어들게 된다.20) 

한편 장래에 수령하게 될 당해 무역금융의 융자대상인 수출대금 채권 외에는 별다른 책임재산이 없을 가능성이 높은 중소기업에 대하여 수출물품의 선적 전에 보증을 서는 것은 상당한 고위험을 인수하는 것인바, 선적전 수출신용보증의 경우에는 대출 실행 방법에 관하여 통제를 할 필요성이 특히 높다.21) 대상판결에서 이 사건 약관과 특약을 통해 관리은행인 우리은행에 오로지 직접지급방식에 의해서만 대출을 실행하거나 증빙이 구비된 경우에 한하여 대출을 실행할 의무를 부담하게 한 것은 이러한 필요에 기초한 것이다. 법원에서도 선적전 수출신용보증의 적정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측면을 중요하게 고려하여, 관리은행인 우리은행의 대출 실행이 위와 같은 방법상의 제한을 준수하였는지를 엄격한 기준으로 심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대상판결의 제1심과 항소심 판결에서는 권리보전의무 위반으로 인한 면책 주장이 배척되었다. 이러한 판단의 근거로는 이 사건 대출계약에 따른 대출금 채권이 이 사건 자율협약절차의 개시 및 채무상환 유예 결의에 따라 변제기가 연장되어 3개월 이내에 변제기가 도래하는 채권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사정이 결정적이었던 것 같다. 수출대금을 별도의 상환금계좌(Repayment Account) 및 인도수납금관리계좌(Escrow Account)로 받아 대출금 채무의 변제에 우선 충당하는 것 역시 수출신용보증사고의 발생 위험을 낮추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다. 만약 자율협약절차의 결의에 의하여 대출금채무의 상환 유예가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라면, 관리은행이 위 계좌들의 잔액을 관리하면서 대출금채무의 상환에 충당하지 않은 것 역시 면책사유로 취급되었을 여지가 있다. 

 

다. 신용보증조건 위반과 수출신용보증사고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 요부 
약관에 의하여 다수의 고객과 사이에 일률적으로 체결되는 각각의 계약에서 동일하게 그 내용이 되는 당해 약관의 해석은 모든 고객이 같은 법률관계에 따르게 되도록 일반적인 제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행하여져야 한다. 그러므로 특히 약관조항의 해석에서는 의사표시 일반의 해석에서보다 그 문언에 상대적으로 더욱 무게를 두지 않을 수 없다(대법원 2009. 7. 9. 선고 2008다88221 판결22) 참조). 

이 사건 약관의 면책사유인 ‘은행이 신용보증조건을 위반한 경우’는 그 문언에 의하면 은행의 신용보증조건 위반행위와 보증사고의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를 요건으로 하지 않는다고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리고 이러한 해석은 이 사건 신용보증약관에 의한 신용보증관계가 은행이 신용보증조건에 부합되게 대출을 실행한 경우에 한하여 성립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이 사건 약관 제4조 제1항이나 담보력이 미약한 중소기업을 상대로 고위험을 인수하여 처리하기 때문에 신용보증조건의 준수가 강하게 요구되는 수출신용보증제도의 성격 등에 비추어 보더라도, 제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인 해석이라고 할 것이다. 따라서 위 면책사유를 이유로 한 한국무역보험공사의 면책은 은행의 신용보증조건 위반행위와 신용보증사고의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를 요건으로 하지 않는다고 해석함이 상당하다(대법원 2010. 9. 9. 선고 2007다5120 판결23)). 대상판결은 선적전 수출신용보증에 있어서 신용보증조건 위반을 이유로 한 한국무역보험공사의 면책 여부와 관련하여 동일한 쟁점이 문제되었던 위 판례를 따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해석은 합리적이고 타당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라. 수출신용보증계약 약관의 해석 원칙 
수출신용보증계약은 한국무역보험공사가 미리 마련한 약관을 이용하여 체결되는 것이 보통이다.24) 그에 따라 보증책임의 면책이 문제되는 사건에서는 면책에 관한 약관 조항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가 종종 문제되고는 한다. 앞서 다.항에서 본 법리는 ‘신용보증조건 위반행위와 신용보증사고의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 요부’라는 쟁점 해결에 특히 적용될 수 있는 것으로 보이고, 약관의 해석 방법에 관하여 적용되는 보다 보편적인 법리는 다음과 같다.

약관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해당 약관의 목적과 취지를 고려하여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해석하되, 개별 계약 당사자가 의도한 목적이나 의사를 참작하지 않고 평균적 고객의 이해가능성을 기준으로 객관적·획일적으로 해석하여야 한다. 그리고 특정 약관 조항을 그 목적과 취지를 고려하여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약관 조항의 문언이 갖는 의미뿐만 아니라 그 약관 조항이 전체적인 논리적 맥락 속에서 갖는 의미도 고려해야 한다. 위와 같은 해석을 거친 후에도 약관 조항이 객관적으로 다의적으로 해석되고 각각의 해석이 합리성이 있는 등 해당 약관의 뜻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에는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하여야 한다. 반면 약관의 목적과 취지를 고려하여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그리고 평균적 고객의 이해가능성을 기준으로 객관적이고 획일적으로 해석한 결과 약관 조항이 일의적으로 해석된다면 약관 조항을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할 여지가 없다(대법원 2018. 10. 25. 선고 2014다232784 판결, 대법원 2021. 10. 14. 선고 2018다279217 판결 등 참조).

한국무역보험공사의 면책에 관한 약관 조항을 해석함에 있어서는 특히 “그 약관 조항의 문언이 갖는 의미뿐만 아니라 그 약관 조항이 전체적인 논리적 맥락 속에서 갖는 의미도 고려해야 한다”는 측면이 중요하다. 필자가 보기에 여기에서 고려할 필요가 있는 ‘논리적 맥락’은 수출신용보증계약의 당사자인 은행과 한국무역보험공사의 상반된 입장과 이익이다. 은행은 수출자에 대한 대출을 통해 이자나 수수료 수익을 얻기도 하지만, 냉정하게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신용이 낮은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은 꺼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행이 수출자에 대하여 대출을 제공하는 것은 무역금융에 대한 협조를 통해 무역을 촉진하고, 그로써 국가경쟁력 강화와 국민경제 발전에 이바지하라는 사회적 요청(보다 적나라하게는 정부와 금융 당국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함이 클 것이다. 그러나 한편 한국무역보험공사의 보증책임이 지나치게 확대되어 무역보험기금의 부실을 초래하거나 무역금융을 제공하는 한국무역보험공사의 기능을 저해하게 된다면 이는 공익적 관점에서 더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수출신용보증에 관한 일련의 판례들을 살펴보면, 한국무역보험공사가 정책보증기관으로서 부실대출에 따른 위험을 최종적으로 인수하는 열악한 지위에 있다는 측면을 고려하여, 대출과 신용보증의 적정성을 보장함으로써 무역금융 제도를 건전하게 운용할 필요가 있다는 공익적 측면을 중요하게 고려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은행은 금융에 관한 고도의 전문성을 가진 기업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신용보증조건에 부합하는 적정한 대출을 실행할 일차적인 책임을 은행에 지우는 경향도 찾아볼 수 있다. 수출신용보증계약 약관을 해석함에 있어서는 이러한 ‘논리적 맥락’을 충분히 고려할 필요가 있고, 문언 상 다소 불명확한 부분이 있더라도 이러한 논리적 맥락을 고려하여 명료한 해석에 이를 수 있다.25) 판례들을 보면 대체로 한국무역보험공사에 유리한 해석이 내려지는 경우가 많았고, 작성자 불이익의 원칙(약관법 제5조 제2항 참조)이 적용될 여지는 적었음을 실증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26) 

참고로, 약관의 해석원칙에 관한 약관법 제5조는 한국무역보험공사가 마련한 무역보험사업의 약관에 적용될 수 있으나, 제7조 내지 제14조의 규정은 약관법 제15조 및 같은 법 시행령 제3조 제3호에 의하여 그 적용이 배제된다. 또한 약관이 구체적으로 무효가 되는 경우들을 규정한 같은 법 제7조 내지 제14조의 규정이 적용되지 아니한다면 약관이 일반적으로 무효가 되는 경우를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제6조의 규정 역시 적용이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므로(대법원 1999. 12. 10. 선고 98다9038 판결 참조), 약관법 제6조의 규정 역시 무역보험사업의 약관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대법원 2002. 5. 24. 선고 2000다52202 판결27) 참조).

 

5. 결론
대상판결은 중소형 조선사의 선박건조를 위한 선적전 수출신용보증계약에서 은행의 신용보증조건 위반에 따른 한국무역보험공사의 면책 여부가 문제된 사안에 관한 것이었다. 중소기업인 수출자에 대한 은행의 대출과 그에 대한 한국무역보험공사의 수출신용보증 제도를 보다 적정하고 건전하게 운용하기 위하여 대상판결로부터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한국무역보험공사가 수출신용보증계약 체결 시 은행에 엄격한 신용보증조건과 그에 따른 면책 기준을 충분하게 고지하고 주지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의사소통을 통해 장래 발생할지 모르는 복잡한 분쟁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는 은행이 대출 실행 과정에서 신용보증조건을 면밀히 검토하여 그에 합당한 대출을 실행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은행의 노력을 통해 일차적으로 부실대출의 발생을 예방할 수 있고, 은행 역시 자신의 대출에 대해서 보증의 이익을 누리지 못할 위험을 회피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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