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선의 기원

우리나라 수출입 물동량의 99.7%는 항만을 통해 선박으로 움직이며, 이러한 선박을 안전하게 입출항시키는 것이 도선사의 주된 업무이다. 전국 12개 도선구의 약 250명 도선사는 한해 평균 13만척의 선박을 안전하게 입출항시키며, 배 한척 당 수천명의 승객과 수십만톤 화물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 30층 높이의 아파트보다 더 커다란 배가 도선사의 지휘를 받아 항만에서 안전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최소 15년 이상 선박에서 승선 경력을 쌓아야 시험을 볼 수 있는 도선사. 그 도선사와 도선업무에 대해 알아보자. 

 

서양 최초기록 서기 64년경 무역상안내서 ‘에리트라해 안내기’
우리나라는 조운제도에서 기원 찾을 수 있어


지금까지 알려진 도선 업무에 대한 서양에서의 최초 기록은 서기 64년경에 저술된 북인도양과 홍해(Red Sea)를 왕래하는 무역상들의 안내서인 에리트라해 안내기(The Peripulus of the Erythraena Sea)에서 그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강어귀의 물살이 빨라 배의 운항이 어렵다. 이 때문에 원주민 어부들이 해안을 통해 배에 오른 후 조타하여 만조 시에는 올라가고, 간조 시에는 정박하며 배를 정해진 장소로 끌고 간다”
위 기록을 통해 우리는 약 2천년 전부터 도선 업무가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전문 직업이 의사, 군인 그리고 매춘부라고 하는데, 그 다음으로  도선사도 한자리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도선의 기원은 언제부터일까? 
아마도 조운제도(漕運制度)에서 그 기원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조운은 쌀과 같은 곡물이나 특산물(공물)을 각 지방에서 세금으로 징수하여 중앙으로 수송하는 것으로 당시에는 육지교통이 발달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전국의 주요 강가나 바닷가에 조창(漕倉: 조세로 거둔 현물 보관 창고)을 만들어 세금을 모았다가 배를 이용하여 중앙으로 이송하였다. 
이때 필요한 것이 현지의 물길을 잘 아는 사람이었고 이것을 도선사의 원형으로 추정한다. 
기록(동국이상국집, 고려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조운제도는 고려시대에 성립되었다고 나와 있으나, 실제로는 지방에서 징수한 물자를 중앙으로 운반하는 일이 국가 경영상 대단히 중요한 일이었고, 이러한 중앙집권적 정치체제는 삼국시대부터 유지되었으므로 우리나라  조운의 원형은 이미 삼국시대부터 있었다고 추정되며, 도선 업무 역시 삼국시대(4세기 이후)부터 기원한다고 추정해볼 수 있겠다.

 

일본승려 엔닌의 ‘입당구법순례행기’에 신라인 배길잡이 도움..
우리 ‘경국대국’ 2권 호전(戶典)편, ‘만기요람’ 재용편 도선 기록


기록에 나타난 우리나라의 도선과 관련된 최초의 기록은 일본의 승려 엔닌(圓仁)이 쓴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
求法巡禮行記)’로 알려져 있다. 엔닌은 838년 견당사선(遣唐使船: 당나라에 파견하는 사신을 태운 선박)을 타고 불교 연구를 위해 당나라로 들어갔는데 신라인 배 길잡이의 도움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17일에 운반할 기념품을 제2선에 싣고, 판관과 함께 배에 탔다. 9척의 배에 관리들을 나누어 각각 배 앞쪽에서 지휘 통솔하게 하고, 본국(일본)의 선원 이외인 자들도 감독하게 하였다. 또 바닷길을 잘 아는 신라사람 60여명을 고용하였는데, 한 배에 5~7명을 태웠다” 
우리나라의 자료로는 1460년(세조 6년)에 발간된 조선법령의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 2권 호전(戶典)편에 도선에 대한 기록이 있다.

“각 도의 조세창은 11월초 1일에 세(稅)의 수납을 개시하고 그 다음해 5월에 수납을 마친다. 관원은 운송을 시작하기에 앞서서 선박의 척수를 점검한 뒤에 조운(漕運)을 하며, 먼저 물길을 잘 아는 자로 하여금 선박 운행에 위험의 우려가 있는 곳에서 선박의 진퇴를 지휘하게 한다”
이외에도 1808년 발간된 조선후기의 재정과 군제를 설명한 「만기요람(萬機要覽)」 재용편(財用編)에서도 다음과 같은 구절을 볼 수 있다. 
“각 읍은 그 지역 내의 작은 섬들과 험한 여울목에 특별히 표(標)를 세우고, 수로를 익숙하게 아는 자로서 길을 인도하게 하여 서로 교대로 전달해 가는데 군관이 없는 읍은 지방관(地方官)이 주관하고, 각 지방 행정구역의 관할 내에서는 면의 군관이 이를 거행한다” 

또한 1865년(고종 2년)에 발간된 조선 최후의 통일법전인 「대전회통(大典會通)」 호전(戶典)편의 배 길잡이 규정에는, “연안의 수령(守令)은 매 선박마다 2, 3인의 배 길잡이에 능숙한 자를 승무하게 하여… 운항중 기항하거나 정박지에서 교대하고 그 사실을 기재한 증거문서를 교부하여 그 책임을 명백히 한다”라고 쓰여 있어, 우리나라의 도선 업무는 4세기 이후부터 일제의 침략 이전인 조선 후기까지 꾸준하게 계속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계속)  

저작권자 © 해양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