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입장벽 높지만, 뚫지 못할 벽은 아니다!”

“여성해기사 수가 늘고 있는지는 정확한 통계 필요해”

 

 
 

HMM에 소속되어 2,200teu부터 1만 6,000teu의 컨테이너 선박을 운항하며 미국, 중동, 인도네시아, 유럽항로 를 항행한 ‘국내 최초 여성선장’ 전경옥 선장이 ‘세계 여성해사인의 날 제1회 IMO 병행행사’에서 해양수산부 장 관상을 수상했다. 본지는 그동안 여성으로서, 해기사로서 살아온 전 선장의 솔직한 이야기를 듣고자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승선생활 중 성별을 특별히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점을 알리며, 사회가 자신을 조명하는 이유에 대해 고심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결론으로 전 선장은 “저를 통해 후배들의 상상에 한계가 없어졌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낀다”며 “진입 장벽이 매우 높지만, 뚫지 못할 벽은 아니다!” 라고 미래 여성해기사들을 위한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선장님의 해기사 경력은?

“2005년 현대상선(현 HMM)에 3항사로 입사하여 약 5년간 해상근무 이후 2009년 육상의 컨테이너 운항팀으로 전보 발령받아 약 2년 정도 근무했다. 그러던 중 ’10 년 말에 ‘내가 진짜로 원하는 삶이 무엇인가’에 고민이 생 겨 퇴사했지만, 나름대로의 결론을 찾은 후 2012년 다시 바다로 돌아왔다. 가장 직전에 승선했던 선박은 1만 6,000teu의 ‘컨’선박 ‘HMM DAON호’로, FE3항로(Far east Europe 3)를 운항했다. 3항사 시절 승선했던 광석 선 2척을 제외하고는 주로 컨테이너선에 승선했다” Q

▲처음 해사업계에 발을 들이게 된 계기와 최초 여성선장 으로서 소감은?

“제복에 대한 동경으로 해양대학교를 선택하면서부터 시작된 것 같다. 또한 ‘최초의 여성선장’이라는데 개인적 인 감흥은 크게 없는 편이다. 스스로가 이룬 것에 큰 의미 부여를 하지 않을 뿐더러, 제 자신의 여성성에 대한 인식도 뚜렷하지 않은 편이다. 다만, 사회에서 저를 계속 호명하는 이유를 생각해본 결과, ‘사회적 통념을 깨는 역할’을 했다는 점이 주목된다고 생각한다. 이 점에 있어서는 나름 ‘뿌듯함’을 느낀다”

▲그동안의 승선업무 중 애로사항이나 보람을 느꼈던 경험이 있나요?

“육상에서는 승선생활의 ‘스펙타클함’을 기대하겠지만, 승선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벤트’가 사고를 의미하기 때문에 좋아하지 않는다. 통상적인 애로사항으로는 개인적인 인간관계가 불가능하다는 점과 업무 외 원하는 특수한 학습이 불가능하다는 점, 육상에서 자연스러운 IT통신이 원활하지는 않다는 점을 꼽을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불편하게 느끼지는 않는 편이다”

▲IMO는 글로벌 여성해사인이 30%, BIMCO와 ICS에서 는 전 세계 여성선원이 1.2%에 불과하다고 집계하고 있다. 현장에서 체감하는 수치는 어떠한가?

“직전 선박인 ‘HMM DAON호’에서 총 23명의 승조원 중 2개월은 저를 포함해 2명의 여성해기사가 근무했지만, 한 명이 하선하며 저 혼자가 됐으니 그 선박을 기준으로 본다면, 약 8%에서 4%로 줄었다. 그러나 여성해기사가 한 명도 없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약 2%라는 수치는 체감상으로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여성해기사 통계가 유의미해지기 위해서는 모집단의 숫자부터 확보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례로 HMM의 ’22년 여성해기사 총비율이 3%로 올랐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는 제가 입사하던 2005년 65명의 초임사관 중 여성이 저 한 명이었던 당시와 비교해 2배가 오른 것이니 크게 증가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러한 맥락으로 저는 과연 여성해기사가 증가추세인지에 대해 정확한 통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대외적으로는 상위직인 선·기 장이 드러나고 있지만, 전체 통계는 제가 처음 승선할 때와 별로 차이가 없다고 느낀다. 제가 실습항해사로 선박에 처음 승선했을 당시 20여명의 승조원 중 이등항해사와 저 이외는 모두 남성이었으니, 직전 선박의 비율과 비슷했다. 2017년 말부터 한국에 여성선장이 등장하면서 저를 포함해 현재까지 3명의 여성선장이 출현했다. 여성에게서 승선기회 자체를 박탈하던 과거에서 여성선장이 출현하는 현재까지를 생각해보니, ‘닭이 천이면 봉황이 한 마리 있다’라는 속담이 떠오른다. 여성해기사들의 수도 가치있는 선·기장 비율을 집계할만한 숫자에 다가가고 있다고 믿고 있다”

▲해기사의 장기간 승선을 위한 복지를 제안한다면?

“’3on 3off’라고 생각한다. 승선의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이가정성(離家政性)’을 든다. 선진국 반열에 든 대한민 국 선원들에게 6개월 이상의 분리는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본다. 선원은 직업만의 특수성을 십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로 한 특수직업 종사자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땅위에 발 딛고 있는 ‘사람’으로서 자신을 규정할 기준은 ‘3on 3off’라고 생각한다”

▲미래 여성해기사 육성을 위해 멘토링과 장학프로그램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멘토링과 장학프로그램을 시작하시게 된 계기가 있다면?

“스스로가 ‘여성’임을 굳이 인식하지 않음에도 생물학적이나 사회학적으로 ‘여성’에게 연대감을 느끼곤 한다. 해 사업계에 진입하고 난 이후 개인적으로 성차별을 느끼지 는 못했지만, 여성해기사가 진입 자체에서 제한되어 있음에 분노를 느끼기도 한다. 어렸을 때는 좁은 문을 뚫은 스스로가 대견해 구조적인 문제에 깊이 생각하지 않았지만, 사회에 의미있는 일을 해야 할 나이가 되면서부터 풀리지 않는 의문들을 처리해나가고 싶어 멘토링을 시작하게 되었다. 특히 장학사업은 한국해양대 57기 여동기들과 같이 진행한 일임을 부각시키고 싶다”

▲이번 해수부 장관상 수상을 축하드린다. 수상 소감은?

“표창장에 적힌 ‘해사분야 양성평등 실현을 위해 기여한 공이 크다’라는 문구에서 저는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을 뿐이었지만, 이를 기특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신다고 생각된다. 누군가는 제가 야망을 가져 선장으로 올랐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제 스스로는 선장이 된다는 걸 상상하지 못했다. 제가 입사했을 당시 여성으로서 최고급 사관은 일등항해사가 유일해 무의식적으로 그 지점을 한계로 여긴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번 표창으로 제 존재가 외부에 알려지며 미래 후배들의 상상에 한계가 없어질 것이라는 부분에서는 보람찬 일로 느껴진다”

▲장차 여성해기사가 되기를 희망하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메시지는?

“다른 곳에서도 자신들의 손으로 미래를 개척해낸 멋진 여성해기사 후배들이 많이 있다. 그들과 대화를 하며 느낀 바를 전하자면, ‘진입 장벽이 매우 높지만, 뚫지 못할 벽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눈앞의 높은 벽 앞에 미리 포기하지 말고 옆도 보고 뒤도 보다 보면 의외로 벽이 넓지 않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또한 벽이 문일 수도 있다. 계속 소리 치고, 두드리다 보면 안에서 열어주기도 할 것이다. 물론, ‘왜 나만 이렇게 힘들게 벽을 넘어야 하나’라고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인생사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잃는다’ ‘어렵게 쟁취한 다이아몬드가 진짜임을 스스로는 알아본다’는 만고의 진리도 있다는 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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