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태 한국해기사협회 회장
김종태 한국해기사협회 회장

공정위의 외항정기선업체에 대한 과징금 부과로 지난 한해는 매우 시끄러웠다. 아직 법정다툼이 끝나지 않았지만 공정거래위원회가 이번 기회에 해운업을 제대로 이해하고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정기선해운에 대한 공정위의 판단은 첫째, 해운업체의 공동행위로 해운사가 이득을 보는 것이 아니라 화주들이 이득을 보았기 때문에 제재대상이 잘못되었고, 둘째, 일본 등 외국정부가 한국선사의 공동행위가 해운뿐만 아니라 이용자인 화주에게 더 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는 등 해운업계의 담합행위는 실체가 없고, 셋째, 한일항로는 제재를 하면서 한중항로는 정책적 판단으로 면제하는 등 휘어진 잣대로 판단을 내린 점 등 이미 다른 지면에서 그 잘못에 대해 지적을 했기 때문에 여기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하지만 지금까지 해운에 대해 전혀 관심을 두지 않던 공정위가 그 본연의 목적인 공정거래질서를 확립하여 경제주체들의 불공정행위를 뿌리 뽑겠다고 한다면 해운업의 공정거래질서 확립을 위해 무엇보다 노력해야 하는 분야는 바로 내항화물운송분야이다. 내항화물운송분야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넘어 화주의 횡포로 존재조차도 사치가 되어버려 공정거래질서 확립을 위한 정책적 관여가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내항해운은 2021년 현재 812개업체가 1,955척이 연간 1억 1,512만톤을 수송하고 7,300여명의 선원이 종사하고 있다. 하지만 25년 이상의 선령을 가진 선박이 55%인 1071척에 이르는 등 노후선박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는 적기에 선박교체를 할 수 없는 어려운 경영환경이라는 것이다. 소형선사가 대부분인 업계로서는 이미 글로벌화된 대형화주와 공정한 운임교섭을 할 수 없는 상태이고 화주가 제시한 원가이하의 운임을 받아들이다 보니 노후선박으로 선원은 저임금의 외국인 선원으로 운항할 수 밖에 없는 악순환의 구조가 정착되어 버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노후선박으로 인한 사고 및 해양오염에 대한 우려가 끊이지 않는다. 해사고를 졸업한 우수한 청년해기사는 내항선 승선을 기피하다보니 70세 이상의 고령 선·기장들이 한계수준의 급여를 받으며 종사하는 산업이 되었고 필요한 선박은 일본에서 수익성이 떨어지는 중고선박을 도입해서 투입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일본에서 배워야 한다. 일본의 내항해운은 2020년 현재, 3억톤을 5,136척(396만총톤)이 수송하고 있다. 국토면적이 우리보다 넓고 섬으로 이루어진 국가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일본의 내항해운은 어렵지만 공정거래질서가 제대로 확립되고 영세선사도 공정거래를 담보받을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어 있다.

공정거래질서 확립을 위해서는 표준계약서의 활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일본 내항해운은 용선계약, 운송계약, 용대선계약 등에 일본해운집회소가 만든 내항정기용선계약서 및 내항탱커정기용선계약서, 내항운송계약서 및 내항 탱커항해용선계약서, 내항성약각서, 내항운송기본계약서, 내항운항위탁계약서, 내항선박관리계약서 등을 활용하고 있다. 일본해운집회소는 해운사업자, 화주기업, 보험업자, 변호사 등으로 구성된 서식위원회를 두고 정기적으로 해운관련 국제조약이나 국내법 개정상황을 반영하여 서식개정을 실시하여 공정한 거래질서가 이루어지도록 하고 있다. 최근에 실시한 서식개정에서는 문제발생 소지가 큰 하역책임에 대한 규정을 실무관행에 기초하여 하역책임을 명확히 하는 조항을 신설 및 개정하였다.

일본해운집회소의 내항해운에 관한 주요서식 제정과 개정의 목적은 화주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약한 산업적인 지위에 있는 중소선주를 보호하고 공정한 거래가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함에 있다. 또 새롭게 변화하는 환경규제, 노동규제 등에 대응하여 계약이 공정하게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함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내항해운은 국가물류의 중핵을 담당하고 있음에도 이 분야에 대한 공정거래질서 확립을 위한 어떠한 노력도 찾아볼 수 없다. 대형 화주의 불합리한 계약 요구에 대하여 어떠한 견제장치도 마련되어 있지 못한 실정이다. 공정한 거래질서를 확립하지 못한 채 화주의 요구에 대응한 저비용 구조의 산업체계가 형성되어 있다.

우리도 화주와 선사, 화주를 대표하는 산업자원부와 선주를 대표하는 해양수산부, 공정거래를 담당하는 공정거래위원회, 그리고 법조계가 참여하여 내항해운 거래에 관한 표준계약서식을 제정하고 이를 산업계가 적절하게 활용하도록 행정지도가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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