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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사판례 연구
선박 제거를 명하는 행정처분에 따른 인양비용과 관련한 ‘손해’의 의미
[587호] 2022년 07월 28일 (목) 15:06:33 이승엽 komares@chol.com

- 대법원 2020. 7. 9. 선고 2017다56455 판결 -

 

   
이승엽
대구고등법원 판사

사안의 개요
가. 2010. 4. 21. 원고 소유의 아스팔트 운반선인 이 사건 선박이 피고 소유의 선박과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하여 여수시 인근 해역에서 침몰하였다. 여수해양경찰서장은 2010. 8. 24. 이 사건 선박에 대한 구난명령을 하였고, 여수시장은 2014. 4. 3. 이 사건 선박에 대한 제거명령을 하였다.
나. 위 구난명령과 제거명령은 수년간 그 이행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행정대집행이나 그 이행을 강제하기 위한 행정관청의 조치도 없었으며, 원고 또한 이 사건 선박을 제거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다. 원고는 피고를 상대로, 선박 가액, 화물 멸실 비용, 휴업손해, 선박인양 비용 등을 구하는 손해배상 청구를 하였다. 대법원에서 주로 문제가 되었던 부분은 3,000만달러 상당의 선박인양 비용이었다.
라. 제1심은, 원고에게 선박인양 의무가 부과되었다고 하더라도 5년 이상 인양 또는 준비작업에 착수한 바 없고 다른 선박의 항해에 지장이 있거나 환경오염의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보아, 선박인양 의무를 이행하여야 하는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판단하였다.
마. 반면 항소심은, 이 사건 선박에 대한 구난명령 및 제거명령은 여전히 그 효력을 유지하고 있고 당연무효라고 보기 어려우므로, 선박인양 비용 상당의 손해는 현실적으로 발생하였다고 판단하였다.
바. 대법원은 선박인양 비용 상당의 손해가 현실적으로 발생하지 않았다고 판단하여, 항소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항소심 법원에 환송하였다.

 

2. 대법원 판시사항
대법원은 행정처분으로 인한 손해의 발생 여부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최초 판시를 하였다.

가해자가 행한 불법행위로 인하여 피해자에게 어떤 행정처분이 부과되고 확정되었다면 그 행정처분에 중대하고 명백한 하자가 있어 무효로 되지 아니한 이상 행정처분의 당사자인 피해자는 이를 이행할 의무를 부담하게 된다. 따라서 행정처분의 이행에 비용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행정처분 당시에 그 비용 상당의 손해가 현실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행정처분이 있은 이후 행정처분을 이행하기 어려운 장애사유가 있어 오랫동안 이행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해당 행정관청에서도 이러한 사정을 참작하여 그 이행을 강제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불이행된 상태를 방치하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손해가 현실화되었다고 인정하는 데 보다 신중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경우에 행정처분의 이행에 따른 비용 상당의 손해가 현실적·확정적으로 발생하였다고 보기 위해서는 행정처분 당시의 자료와 사실심 변론종결 시점까지 제출된 모든 자료를 종합하여 행정처분의 존재뿐만 아니라 그 행정처분의 이행가능성과 이행필요성이 인정되어야 한다. 특히 당사자에게 부과된 행정처분을 이행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매우 어렵고, 설령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막대한 비용이 예상되어 실현가능성이 희박해 보이며, 행정처분 발령 당시와 달리 사실심 변론종결 시점에는 그 행정처분의 이행을 강행하여야 할 필요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등의 예외적인 상황이 존재하고, 실제로 행정관청에서 장기간 행정처분이 불이행되고 있음에도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제반 사정에 비추어 볼 때 부과된 행정처분이 취소나 철회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경우라면, 행정처분을 받은 당사자가 가까운 장래에 그 행정처분을 이행할 개연성을 인정하기 부족하여 이행에 따른 비용 상당의 손해가 확정적으로 발생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3. 참고 판례
이 사건은 원고가 제3자에게 채무를 부담하는 형태의 손해를 입은 사건이고 참조할 만한 판례는 다음과 같다.

 

가. 대법원 1992. 11. 27. 선고 92다29948 판결
    (이란국 입어계약 사건)

원고가 이란국 수산청과 사이에 입어계약을 체결하고 이란국 영해에서 입어조업을 하고 있었는데, 위 입어계약에는 원고가 납품의무를 이행하지 못할 경우 미납품 식용어 1톤당 미화 500불씩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기로 약정되어 있었다. 피고가 그 소유의 어선 2척을 원고의 어선단에 편입시켜 조업을 하다가 그 어선을 임의로 철수시켰고 원고는 위 약정에 따라 수산청에 대하여 채무를 부담하는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며, 피고에게 손해배상청구를 하였다.
대법원은 원고가 수산청으로부터 입어료에 상당하는 손해배상을 청구당하거나 그 채무의 변제조치를 실제로 한 바 없으므로 손해가 현실적으로 발생하지 않았다고 판단하였다.

 

나. 대법원 2019. 8. 29. 선고 2017다276679 판결
   (포항영일만항 외곽시설 축조공사 입찰담합 사건)

포항영일만항 외곽시설 축조공사 입찰에서 입찰 참가자들이 담합하여 높은 금액으로 낙찰시켜서 낙찰자는 이득을 얻고 나머지 회사들은 설계비를 보상받아 지출한 비용을 회수해 간 사실이 적발되었는데, 대한민국이 낙찰자와의 계약을 취소하지는 않고 입찰 참가자들을 상대로 실제 낙찰가격과 정상적인 낙찰가격과의 차액을 공동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으로 구한 사건이다. 위 공사는 장기간에 걸쳐 대규모로 진행되는 공사로서 최초 총 공사규모에 관한 합의를 총괄계약으로 체결하고, 이후 공사를 실제 진행하면서 각 연차별로 차수별 계약을 체결하면서 진행하였다.
대법원은 손해배상채권의 소멸시효 기산점과 관련하여 총괄계약 체결이 아닌 각 연차별 계약 체결시 공사대금의 범위 등이 구체적으로 확정되므로 각 연차별 계약시점에 손해가 현실적으로 발생하므로 그때부터 소멸시효가 기산된다고 판단하였다.

 

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19. 3. 27. 선고 2018가합
     507764 (체화료 사건)

원고는 피고가 소나무 톱밥을 수입하는 업무와 관련하여 통관대행을 포함하여 운송주선을 맡았는데 원고는 화물 운송을 A상선에 맡겼고 A상선은 화물이 담긴 컨테이너를 인천항에 입항시켜 양하한 후 컨테이너 야드에 적치하였다. 그 후 피고가 화물을 수령하지 않아 프리타임을 초과하여 체화료(Demurrage)가 발생하였는데 A상선은 원고를 상대로 체화료 등을 청구하는 소를 제기하였고 그 소송 중 원고는 A상선에게 체화료 금액에 대하여 합의하고 이를 지급하였다.
이 사건에서 원고는 피고를 상대로 위 체화료 상당의 손해배상을 청구하였고 위 법원은 원고가 A상선에게 지급한 체화료를 원고의 손해로 인정하였다.

 

4. 사건의 검토
가. 이 사건 행정처분과 관련한 법률 규정

이 사건 구난명령은 구 해사교통안전법(2011. 6. 15. 법률 제10801호로 전부 개정되기 전의 것) 제9조 제3항에 따라 다른 선박의 항행 안전에 위험을 줄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아 그 처분이 이루어졌다. 구난명령의 불이행시 구 해상교통안전법에서는 대집행 규정을 두고 있지 않았지만 행정대집행법에 따라 대집행이 가능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위 법이 해사안전법으로 개정되면서 해양수산부장관이 직접 항행장애물을 제거할 수 있고 그 비용을 항행장애물제거책임자의 부담으로 하되, 항행장애물제거책임자를 알 수 없는 경우는 선박을 처분하여 비용에 충당할 수 있도록 하는 대집행 규정을 두고 있다(해사안전법 제28조 제3항, 제29조). 이는 사무관리상 비용상환청구권을 법정 비용상환청구권으로 규정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1) 또한 구난명령의 불이행시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벌칙규정을 두고 있다(구 해상교통안전법 제73조).


이 사건 제거명령은 구 공유수면 관리 및 매립에 관한 법률(2015. 2. 3. 법률 제13186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공유수면법’) 제6조에 따라 수질오염의 발생 위험이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아 그 처분이 이루어졌다. 제거명령의 불이행시 공유수면관리청이 관련 절차에 따라 방치선박을 제거하고 그 비용을 선박의 소유자 또는 점유자에게 부담시키도록 하되, 이를 알 수 없을 경우 선박을 처분하여 비용에 충당할 수 있도록 하는 대집행 규정을 두고 있다(공유수면법 제6조 제3, 7항). 또한 제거명령의 불이행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벌칙규정을 두고 있다(공유수면법 제64조).

 

나. 제3자에 대하여 채무를 부담하는 형태의 손해
손해배상 사건에서의 ‘손해’는 차액설에 따라 가해행위로 인하여 감소한 재산의 가액을 말한다. 제3자에게 채무를 부담하는 경우 실제 그 채무가 이행되지 않는다면 피해자는 재산이 감소된 바 없으므로 손해를 입었다고 할 수 없고, 그럼에도 가해자로부터 손해배상금을 받게 된다면 불측의 이익을 얻게 되는 불합리한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한 불합리를 방지하고자 판례는 손해의 현실적·확정적 발생을 요건으로 하고 있고 제3자에 대한 채무부담이 단순한 가정적 상태를 넘어 확정적 상태에 이르러야 손해가 현실적·확정적으로 발생하였다고 판단한다.2) 일반적으로 채무의 성질, 발생 경위, 집행가능성 등을 통하여 이를 판단할 수 있는데, 법원의 확정판결을 통하여 확정된 경우나 당사자의 약정 또는 사실상의 이유로 의무를 부담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 등에 이르면 손해가 현실적·확정적으로 발생하였다고 볼 수 있다.


앞서 참고한 판례들을 살펴보면, ① 입어계약 사건의 경우 원고가 이란국에게 채무를 변제하지도 않았고 이란국에서 원고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였다는 사정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손해가 확정적으로 발생하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② 입찰담합 사건의 경우 원고가 국가로서 낙찰자에게 공사대금 채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강제집행을 당하지 않을 수가 없고 결국 공사가 진행되면 부풀려진 공사대금을 지급할 수밖에 없으므로 실제 대금을 지급하지 않았더라도 손해가 확정적으로 발생하였다고 본 것이다.3) ③ 체화료 사건의 경우 원고가 운송인으로부터 체화료를 지급하라는 소를 제기 받았고 그 소송 중에 체화료 규모에 대하여 합의하였기 때문에 손해가 확정적으로 발생하였다고 본 것이다.

 

다. 이 사건에서의 손해 발생 여부
이 사건은 제3자에 대한 채무부담이 행정처분에 의하여 발생하여 국가에 대하여 이 사건 선박 인양 의무를 부담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 특수성이 있었다. 손해의 발생에 대한 입증책임이 있는 원고는 행정처분의 존재와 더불어 그 명령이 이행될 가능성과 필요성이 있다는 사정을 추가적으로 밝혀 손해 여부를 입증하였어야 할 것이다.
해양사고 조사기관들에 의하면, ① 이 사건 선박이 수심 90m의 해저 모래에 파묻힌 상태로 침몰되어 있고 이 사건 선박이 침몰한 수심으로부터 여유 수심이 최소 50m 이상 남아 있어 다른 선박의 항행에도 지장이 없고, 선박으로부터 유류나 아스팔트 화물의 누출 흔적이 없고, ② 해저의 온도를 고려할 때 연료유와 아스팔트는 선체 내에 점성화 또는 고형화되어 안정적으로 남아 있을 것으로 보이며, 디젤유는 침몰 직후 해수 등에 흩어지고 증발하여 현재 남아있지 않을 것으로 보이므로 오염물의 유출 등으로 인한 환경오염을 발생시킬 우려도 없고, ③ 인양 시도시 선체가 부서질 수 있고 이로 인하여 선체 내부의 유류나 아스팔트가 해저에 비산되어 추가 오염을 일으킬 수 있다고 보았으며, ④ 이 사건 선박이 침몰한 지점의 해류가 거세고 가시성이 매우 떨어지며 깊은 수심에서의 인양 작업에는 고도화된 잠수기법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선박의 인양을 시도할 경우 선박이 부서질 위험이 있는 등 이 사건 선박을 인양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매우 어렵다고 보았다.


원심은 이 사건 선박의 인양가능성보다 제거명령과 구난명령이 당연무효인지 여부에 주목하여 여전히 원고가 행정처분에 따른 의무를 부담한다고 보아 손해가 현실적으로 발생하였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행정처분의 당연무효 여부보다 위와 같은 사정들을 토대로 이 사건 선박을 실제로 인양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상당히 어렵고 막대한 비용을 필요로 하여 현실적으로 실현가능성이 희박하고, 각 행정처분의 발령을 필요로 하였던 위험요소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아니하여 행정처분이 취소 또는 철회될 여지가 있을 수 있다고 보고, 결국 이 사건 선박에 대한 제거명령과 구난명령의 이행가능성과 이행필요성이 높지 않다는 점에 주목하여 손해가 현실적·확정적으로 발생하지 않았다고 판단하였다.

 

라. 기판력 및 손해액의 입증
원고는 이 사건에서 패소하였지만 이후 원고가 실제 이 사건 선박을 인양하여 비용을 지출하였다면 피고에게 그 비용을 손해배상으로 청구할 수 있을 것이다. 기판력은 전 소송의 사실심 변론 종결시까지 발생한 사유에 미치는데, 사실심 변론 종결 후 인양 비용 상당의 손해가 현실적으로 발생하였다면 기판력이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손해액에 대한 입증 책임은 원고에게 있으므로 제3자에 대한 채무를 부담하는 경우 그 손해액에 대하여도 입증하여야 한다. 제3자와 사이에 소송을 통하여 이미 손해액이 확정된 경우라거나 이미 그 채무를 이행한 경우에는 그 금액을 손해액으로 인정할 수 있을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감정절차 등을 거쳐야 할 것이다.
이 사건의 경우 특히 손해액의 입증이 어려운 사건이었는데, 영국의 해양구난 전문업체 TMC(Marine Consultant) Ltd.를 통하여 최소 약 3,000만달러, 최대 약 4,000만달러의 인양비용이 소요된다고 의견을 제시받아 그 최소액을 손해액으로 인정하였다. 그러나 실제 인양에 위 금액보다 더 많은 금액이 소요될 수도 있고 더 적게 소요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소송 과정에서는 더 많은 금액이 소요될 것을 대비하여 일부청구라는 사실을 밝혀야 기판력으로 인하여 추가비용을 청구하지 못하는 사태를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마. 소결
대상판결은 원고가 실제 이 사건 선박 인양 비용을 지출할 가능성이 없어 그 비용 상당의 손해를 입지 않았다고 판단한 구체적 타당성에 부합하는 판결로 보인다. 대상판결은 행정처분의 이행에 따른 비용 상당의 손해가 발생하였는지 여부에 관하여, 그 행정처분의 존재뿐만 아니라 그 이행가능성과 이행필요성이 인정되어야 한다고 설시한 선례로서 향후 손해배상 사건에서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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