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관 KMI 연구위원
임종관 KMI 연구위원
미국 주택금융의 부실로 시작된 금융위기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경제·교역·해운이 마비되어가고 있다. 금융위기로 은행들이 재무구조 추스르기에 급급하자 제조업체의 조달금융과 무역업체의 신용장 개설이 어려워짐으로써 해상교역 물동량이 크게 위축되고 있다. 파스칼 라미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에 의하면 세계교역의 90% 정도가 단기금융에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작금의 금융위기가 세계무역에 얼마나 충격을 주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화물이 이동하지 않으니 주요국 항만에는 닻을 내리고 쉬는 선박이 늘어가고 있다.

 

지난 5월 20일에 11,793을 기록하였던 건화물운임지수(BDI)가 11월 20일에는 847로 하락하였다. 6개월만에 92.8%나 폭락한 것이다. 화물이 움직이지 않으니 선박의 용대선이나 중고선 거래. 신조선 발주 모두 실종되었다. 상황이 이러니 선사들은 빌려온 선박을 반선하고 싶고, 조선소에 주문해놓은 선박도 취소하고 싶을 것이다.


답답한 것은 이러한 어려움이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세계은행(IBRD)의 발표내용에 의하면 미국, 일본, EU 등의 2009년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이라고 한다. 세계 소비의 80%를 담당하는 선진국 경제가 모두 침체에 빠지면 국제교역도 침체에 빠질 수밖에 없다. 로버트 졸릭 세계은행 총재는 11월 9일 “2009년 세계교역이 27년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이다”라고 예견하였다.

 

또한 졸릭 총재는 금융위기와 경기침체의 영향이 개발도상국에서 더 크게 나타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이처럼 선진국, 개도국 가릴 것 없이 모두 침체에 빠진다는 전망에 어느 전문가도 토를 달지 않고 있다. 각 국의 기업들은 이미 종업원 감원방침을 속속 발표하고 있는 실정이다. 해운도 예외가 아니며, 우리 해운업계도 초비상이다. 


글로벌경제가 이처럼 어려워지자 중국에 대한 기대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의하면 2007년 중국의 경제성장이 세계 경제성장에 27%를 기여함으로써 세계 최고의 기여국가가 되었다고 한다. 미국마저 중국에 대한 기대감을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동안 중국에 대해 비판을 일관해오던 헨리 폴슨 미국 재무장관은 11월 21일 뉴욕에서 행한 연설에서 “중국 또한 금유위기의 여파가 미치고 있지만 향후 글로벌경제의 중요한 성장엔진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고 평가하였다.


세계 해운업계도 중국시장에 거는 기대가 매우 크다. 4년 전만 하여도 중국의 물동량 파워를 인정하지 않던 서구의 해운전문예측기관들이 이제는 중국을 과신하고 있는 듯하다. 1992년 미국 항만에서 처리된 컨테이너물동량이 1,690만 TEU인데 반해 중국 항만에서 처리된 물동량은 200만 TEU에 불과하였다. 이처럼 16년 전에 미국 물동량의 1/8에 불과하던 중국의 컨테이너물동량이 이제는 1억 TEU를 넘어서서 미국의 2배나 되는 거대시장이 되었다.


컨테이너 정기선사들이 중국에 희망을 거는 것도 결코 무리가 아니다. 건화물선업계의 중국에 대한 기대는 더욱 절박하다. 이 분야 종사자들의 상당수는 금융시스템만 재가동되면 곧바로 시황이 회복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BDI가 1만1,793까지 오르는 과정에서 중국의 철강산업은 월평균 4,000만톤의 철광석을 소비하였으니 현재 중국 항만에 쌓여있는 7,000만톤의 재고는 두 달분도 안된다는 것이다.

 

유조선분야는 더욱 낙관적이다. 중국의 에너지소비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데 반해 VLCC의 상당수가 벌크선으로 개조되었고 또 2010년까지 단일선체 유조선이 모두 퇴출되어야 하기 때문에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유조선부문이 컨테이너선부문이나 건화물선부문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라는 인식이다.


중국이 미국과 함께 세계경제의 중요한 성장엔진으로 부상한 것은 확실하다. 많은 석학들이 중국의 잠재력에 대해 여전히 높이 평가하고 있다. 특히 중국 정부가 최근 경기회복을 위해 2010년까지 4조 위안(775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하였으니 중국에 대한 희망이 커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 1980년 개혁·개방이 시작된 이래 중국경제가 구조조정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다는 점이다.

 

즉 28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중국경제에는 성장통이라는 찌꺼기가 계속 누적되어 왔으며, 한 번도 속시원하게 청소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실 중국경제는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소비시장이 건전할 때 수술을 받았어야 했다. 그런데 전 세계 금융과 실물경기가 한꺼번에 망가지는 이 시점에서 중국경제가 구조조정이라는 큰 수술을 받게 된다면 수술시간도 길어지고 아픔도 클 수 밖에 없다.


중국이 세계 최대의 해운시장으로 성장했지만 구조적으로 취약한 점도 많다. 그동안의 중국경제 성장은 막대한 외국인투자에 의한 것이었다. 그래서 수출의 55% 정도가 외자기업의 물량이다. 또한 수출의 50% 정도는 임가공무역이다. 따라서 선진국의 소비시장이 회복되어야 중국의 수출이 되살아날 수 있다. 설혹 되살아나더라도 중국의 생산비가 상당히 높아졌기 때문에 향후 선진국 소비의 중국 수출물동량 창출효과는 과거보다 약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중국보다 더 낮은 생산비를 제공하는 국가가 있다면 외자기업의 임가공부문은 중국을 떠날 것이다. 임가공산업의 중국탈출은 이미 2007년부터 시작되었고, 계속 확산되고 있다.


또한 중국이 4조 위안을 투자하여 인프라건설을 계속한들 해상물동량 창출효과는 예전만 못할 것이다. 중국의 생산공장은 지리적으로 해안지대에 밀집되어 있는데, 이 해안지대에는 고속도로, 항만, 공항, 아파트, 오피스빌딩 등이 이미 포화상태이다. 선진국 소비가 회복되지 않는 한 중국 해안지대경제가 다시 불붙기는 쉽지 않을 것이고, 중국의 추가 인프라투자는 해상물동량 창출효과가 약한 내륙지역에 집중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항만, 도로, 철도시설이 완비되어갈수록 항만의 화물적체가 해소되기 때문에 입출항 선박의 가동률이 높아지고, 그 결과 항만적체에 따른 선박수요는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상과 같이 해상운송수요 창출에 있어서 중국경제의 역할이 예전과 다를 수밖에 없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높아진 생산비로 인해 수출증대의 물동량 창출효과가 약해지고, 항만과 연계운송의 개선으로 물동량의 선박수요 창출효과도 예전만 못할 것이다. 장기적으로 볼 때 중국경제의 물류수요 잠재력이 막대한 것은 부인할 수 없으나 조정기간이 길어질 수 있음을 주시해야하고, 또 물류수요 창출효과가 점점 약해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다시 말해 중국경제에 대한 과잉기대는 해운시황 판단의 오류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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