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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조 실습선 세계로호에서 1박 2일
[549호] 2019년 06월 03일 (월) 17:24:35 이재우(李再雨) 목포해양대학교 명예교수 komares@chol.com
   

이재우(李再雨)

목포해양대학교 명예교수

세계로호의 특강 초청을 받고.
2019년 4월 30일, 목포해양대학교 신조 실습선 세계로호에서 실습생을 위한 특강을 할 기회가 미수米壽인 나이에 주어졌다. 목포역에 마중하러 나온 출람出藍의 졸업생, 선장 겸 실습감(Captain-Superintendent) 신호식 교수의 안내를 받아 목포 신항으로 개발된 외항 부두에 이르러 보니, 아이러니컬하게도 인양된 앙상한 몰골의 세월호와 마주하여 계류하고 있었다.


세계로호는 총톤수 9,196톤,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가장 새로운 교육훈련용 선박이다. 목포해양대학교가 주관하여 「국립대학 노후 실습선 대체 선박 공동 건조(5척: 수산계 3척, 해양계 2척/총사업비 2727억원) 사업으로 2015년 12월에 (주)한진중공업과 건조계약을 맺고 G마린서비스의 기술감리로 36개월의 건조과정을 거쳐 2018년 12월 인수하고, 2019년 1월 21일에 명명식을 거행했다. 대학내 부두에 접안 계류할 수 없어서 지금 부두의 확장 공사가 진행 중이고, 당분간 외항 부두시설을 이용하고 있다.」
세계로호는 같은 크기의 한국해양대학교의 신조 실습선 한바다호(9,196톤)와 더불어 5대 해양강국인 대한민국의 자랑이요, 자존심이다.

 

   
 

목포해양대학교 해기 지정 교육학과(항해 및 기관) 학생들의 연근해와 국제 항해에서 승선교육훈련을 통하여 해운과 해양산업 발전에 공헌할 우수한 인재양성을 목적으로 설계·건조했으며, 국제해사기구(IMO)가 각국에 권장하고 있는 실습선의 모델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4월 19일, 처녀항해인 마닐라 항까지의 왕복 항해를 마치고 귀항했는데, 필리핀 국가의 교통부 차관이 참석한 성대한 입항식을 거행했고, 역사가 깊은 필리핀 상선사관학교(PMMA)와 친선교류 행사도 있었다고 전해 들었다.


2017년 12월에 목포해양대 실습선 새누리호에서 특강을 한 일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조국의 장래가 바다에 있다. Down to the sea, young man! 해운업은 나의 천직(My Business is Shipping)」의 연제로 강의를 했다. 영문으로 구성된 내용이어서 유인물 교재를 나누어 주고, 세계로호의 취항을 축하하는 헌시獻詩 「항해하라! Sail on, Sail forth!」를 수록한 「존 메이스필드 해양명시선」(서거 50주년 기념 출판)을 실습생 200명에게 방선기념으로 나누어 주었다. 또한 「재경 동문 해운 CEO CLUB(회장 황재웅 에스티엘 글로벌(주) 대표)」에서 신간 졸저 「영미 해양문학 산책」 100권을 구입하여 특강 기념 선물로 기증해 주었다. 그간 발간한 「이재우 해양문학시리즈 7권」을 목포해양대학교 재경동문회, 재경 해운동문회, 재경동문 ‘하자’회, 목해대 출신 도선사 모임, 총동창회 등 졸업동문들이 세계로호 도서실에 기증해 주었다.
「바다, 위대한 생명」 제하의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나누어 주고 읽어 보도록 했다.

 

   
 

....바다는 국경에 관계없이, 민족의 구별없이 영원히 숨 쉬며 생동하고 있다. 바다의 전통에는 생명이 있다. 이 생명력, 이것은 무엇인가. 영미英美의 뱃사람들이 흔히 인용하고 있는 성서 시편 107편 23∼24절, 즉 ‘선척을 바다에 띄우며 큰 물에서 영업하는 자는 여호와의 행사와 기적을 보나니라.’, 이 한 구절의 계시啓示가 보여주고 있는 것, 이것이 아니겠는가. 이 계시에서 느껴지는 것은 한없이 다정하고, 그러면서도 준엄해서 항거하는 일을 용서치 않는 무한한 ‘바다의 힘’이다. 피와 땀 그리고 눈물을 흘리면서 고생하지 않고서는 도달할 수 없는 피안彼岸인 것이다.


뱃사람들은 생업으로 바다에 배를 띄우며 떠나간다. 희로애락 그 밖에 때로는 생명을 걸고서 항해해야 한다. 만일에 뱃길이 고난과 위험으로 끝나고 마는 것이라면 뱃사람들에게는 구원은 없다. 하지만 바다는 비정하고 가혹한 시련 끝에는 뱃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풀어 주는 다정한 손짓을 잊지 않는다. ‘폭풍이 지나가면 찬란한 햇살이 비추인다!(Bright sunshine after the storm!)’ 그래서 뱃사람들은 원망하지 않으면서 바다에서 삶의 보람을 찾으며 가슴이 부풀게 된다. 고비를 넘긴 고난이 크면 클수록 해방감과 만족감도 깊은 것이어서, 이러한 감정이 바다와 일체감一體感을 이루게 되고, 이런 일이 되풀이 되는 가운데 일체감은 더욱 깊어 간다. 구미에서는 사람들은 어린 소년시절부터 배를 타기 시작해서 선장으로 승진하는, 이른바 호스파이프(hawsepipe) 출신이 많았다. 닻줄이 감기며 들어가는 구멍, 호스파이프로 기어 올라오듯이 승진의 길이 어려움을 비유한 말이다. 졸오기신卒伍起身주의라고나 할까.


바다는 젊은이가 앞에서 말한 성서 시편의 구절을 굳게 믿고 도전할 만한 곳이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에 바다에 도전하며 진출한 민족은 크게 융성했다. 반면에 징기스칸이 세운 몽고는 세계를 제패했지만 바다에 진출 못한 민족이어서 쇠퇴하고 말았듯이 바다에 도전하지 않는 민족은 융성하지 못했다. 과연 “바다를 지배하는 자는 세계를 지배한다(He who rules the waves rules the world)”라는 말은 오늘날 우주 시대에도 역시 불변의 진리가 아니겠는가.


1494년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세계양분조약(Tordesillas treaty)을 맺고 스페인은 대서양과 태평양을 점유하고, 포르투갈은 인도양을 점유할 것을 주장한 일이 있다. 또 “영국은 해양을 지배한다(Britania rules the waves)”라고 호언장담하게 되었다. “독일의 장래는 해상에 있다”고 독일 황제 윌헤름 2세는 절규하고 해상 세력의 발전에 대한 국민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독일의 경제학자 리스트(F. List)는 “해운을 갖지 않는 국민은 날개없는 새와 같다”라고 갈파한 바 있다. 이러한 말들은 바다의 중요성을 여실히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이 전 해운을 총동원하여 자국과 연합국의 위급을 면하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아직 선박이 부족하여 고통당한 나머지 당시의 수상 로이드 조지로 하여금 “첫째도 배, 둘째도 배, 셋째도 배”라고 통탄케 하였다. 요컨대 해운의 흥망성쇠는 한 나라의 국운國運의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나라는 육당 최남선의 ‘해양민족론’에서의 주장을 빌지 않더라도 해양 민족임은 틀림없다. 우리의 경제 터전은 바다를 이용하는 일이라는 점에 대한 인식을 우리는 같이 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적인 추세라고는 하나 점점 젊은이들이 바다에 진출하려고 하지 않는다. 바다는 우리 인류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요, 생명이 돋아나고 문명이 자란 곳이다. 바다는 삶이며(sea is life), 그 무한한 가능성과 자원을 찾아서 그 장대섬미壯大纖美한 자연에 마음을 심고, 인류 행복의 근원을 캐어내는 곳이다. 그래서 바다는 미래가 아닌가. 다시금 우리는 “젊은이여, 바다로!(Down to the sea, young man!)”를 외칠 수 있어야 한다. 21세기는 해양 개척 시대라고 말하고 있다.
 

성서에서 인용한 위의 말은 우리에게 해양 진출에 대한 국가정책의 일대 전환을 다시 한 번 고려해 보게 한다. ....
강의에 앞서, 선장 겸 실습감 신호식 교수와 기관장 임명환 교수에게 취임 축하 기념패를 전달했다. 방선시에는 꽃다발 증정은 삼가하는 것이 선원사회의 전통적인 관습이다(불길한 장례가 된다는 미신). 빈손으로 방선을 하지 않는 것도 역시 전통적인 관습이어서 기념패 증정으로 대신했다. 국제항해하는 실습선 선장, 기관장의 집무실에 비치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영문으로 축찬祝撰의 글을 새겼다. 실습항해사, 실습기관사 두 명의 여학생이 실습생 전원 앞에서 기념패의 글을 낭독했다.


 
미래의 해사기술 전문인 양성에 관심을!

특강을 하오 4시에 시작하여 5시 30분에 마쳤다. 저녁식사 시간이 되어서 연장을 할 수 없다. 사관식당(saloon)에서 저녁식사를 같이 하고, 선장 집무실(Captain's Day Room) 바로 앞쪽에 있는 <VIP Room>에서 하룻밤을 묵고, 아침식사는 부원식당(mess·room)에서 했다.
실습생들의 급식비는 1일 6,000원, 한 방에 4명씩 배치, 하루 기름 소비량은 3,000만원어치, 앞으로 약 2개월 동안의 세계 일주 장기 원양실습을 위한 경비는 20억원 정도, 실습생 1인당 해외 상륙 수당은 50불 정도(2개 항 기항 기준)….
앞으로 많은 예산이 필요하니,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1900년에 영국 해양문학 작가, 콘래드(J. Conrad) 선장은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소설 <로드 짐 Lord Jim>에 다음과 같은 글 한 줄을 남기고 있다. “해상생활보다 더 마음이 끌리고, 꿈에서 깨어나게 해주고, 노예처럼 예속시키는 것은 없다.(There is nothing more enticing, disenchanting, and enslaving than the life at sea.)”


범선시대가 배경인 소설이지만, 오늘날의 선원사회에서도 이 표현은 적절하다. 선원은, 어떤 종류이든 모험(adventure)을 위해서 선원직업을 택하는 경우가 많고, 기대했던 바와는 달리 가혹한 현실을 겪으면서 환상적인 꿈에서 깨어난다. 기술이 급진전하고 있는 이 시대에 항내 정박시간(port time)은 극도로 제한되고, 선원들은 몇 시간만이라도 상륙할 수 있다면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배에 예속되어 출항할 때까지 꼼짝 못하고 보니 노예나 진배없다. 이러한 예속상태(enslavement)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조기에 하선하고, 선원사회를 떠난다. 그래서 지금 해운국가들은 상급 해기사를 양성 못하고 있다.
 

콘래드가 그의 중편소설(청춘 Youth)에서 “아아, 그리운 그 시절-그리운 좋은 시절, 청춘과 바다, 매혹의 바다!(Ah! The good old time- the good old time. Youth and the sea. Glamour and the sea!)”라고 말미에 적은 구절처럼, 선원정신의 찬가를 읊는 선원사회가 지금은 아닌 것 같다.
실습생들의 1년간의 승선경험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장래 해기직업을 지속할 것인가, 의무 연한만 채우고 나면 떠날 것인가.(Whether to leave the sea, or not)를 고려해 보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장기간 폐쇄적인 선내 사회에서 24시간 생활하고(24-hour society), 근무해야 하는 선원들을 위하여, 사회적(social), 정서적(emotional)인 측면에서(인간성 회복면에서) 배려와 지원이 절실히 요청된다. 선내 생활에 적응하고(adaptability), 영양상태가 좋으며(well-fed), 충분히 휴식하는(well-rest) 선내 생활환경을 조성하는 일이 선박의 안전 운행에서 고려해야 할 중요한 요소들이다. 선원의 건강, 안전, 복지의 향상책 강구는 선원 이직이 심각한 이 시점에서 시급한 과제들이다.
 

[STCW협약(1995년 개정) 결의서 12], 선원직업의 신참新參의 유입과 선원의 해상직 유지(Resolution 12, Attracting new entrants to, and retaining seafarers in the maritime profession)]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선원직업을 선택하고자 하는 젊은이들과 승무 중인 선원을 선원직에 머물게 하는 것을 저해할 잠재성이 있는 일체의 차별적인 법령과 관습을 인식하고」, 「젊은이들이 해상직업을 선택하도록 하기 위한 해운산업의 전반적인 노력」을 위한 조치를 취하도록 다음과 같은 권고 사항을 제시하고 있다.

 

·해상경력이 제공하는 기회에 대한 폭넓은 인식·지식의 제고
·해륙호환성(海陸互換性 Afloat-Ashore link type)이 가능한 인사관리
·초급해기사의 선내 훈련 지도
·실습생의 거주 설비를 갖추는 일
·선원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길러주는 일


이와 같은 권고 사항을 잘 검토해 보고 계획을 수립, 실천하고, 실습생들이 실망하지 않고 승선실습을 마친 후 해상직업에 진출할 수 있도록 관련 분야에서는 최선을 다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지금 우리는 삶의 질(QOL, quality of life)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저출산 소자주의(小子主義, One is enough)와 DINK족(Double Income No Kid)이 증가 추세에 있으며, UN University의 미래학자들이 발표한 「미래보고서 The State of the Future」에는 2035년에 한국의 대학은 절반이 줄어들고, 2300년에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첫번째 민족으로 한국을 들고 있다. 근거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국민소득 3만불을 넘는 국가는 선원사회가 붕괴하고, 선원양성기관은 축소 또는 폐교된다고 말하고 있다. 20세기 후반의 선원문제를 필자의 저서 「주요해운국의 선원교육제도」에서 이미 이러한 동향을 다루었고, 20세기에 겪은 선원문제는 「선원문제의 연구Ⅰ」로 정리했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급변하는 국제사회의 선원문제를 졸저 「선원문제의 연구Ⅱ, 바다와 사람」에서 정리해 보았다.
 

1970년대까지 선원직업은 매력적인 요소가 많았기에 선원직 고용기회를 얻기 위해 높은 경쟁률을 보였고(How to join), 1980년, 90년대에는 어떤 조건부 승선생활을 하는 경향(Whether to leave the sea)이 보였다. 지금은 기한부 승선생활(when to leave the sea)의 경향이 짙다. 지난 20세기 중엽 이후 구미 선진해운국들이 겪은 현상을(시간차는 있으나) 지금 우리나라는 겪고 있다.
 

일본은 1990년대 11명 정원의 근대화선인(Pioneer Ship) 취항에 성공했지만, 당시 P선의 연간 선원비는 190만불이었다. 24명 전승의 경우 중국인 고용시 25만불, 필리핀인 고용시 45만불, 한국인 고용시 60만불이었기에 근대화선 연구 추진은 중단하고 대신 외국인 선원을 고용하는 「곤긴센 混近船」 운항체제로 나가게 되었다. 재래선시대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일본 해운노조全日海는 6,000명 일본인 선원 확보를 위해 투쟁했지만, 2015년에는 2,000명선, 앞으로는 일본인 1명만 승선하는 일인일선주의一人一船主義 체제로 방향을 바꾸었다. 140년 전통있는 명문 도쿄상선대학東京商船大學은 도쿄수산대학과 합병하여 도쿄해양대학으로 개편하고, 해양공학부를 두고 항해사 교육은 해사시스템공학과에서 65명, 기관사 교육은 해양전자공학과에서 65명, 입학 정원 체제로 축소했다. 해기사 면허 취득을 위해서는 승선실습과(6개월)에 진학해야 하는데, 지원자는 합계 40명 정도이다. 11개의 해원학교도 3개교만 남고, 상선고전(5.5년)의 재학생은 도중에 대학 편입생의 증가 등 선원사회는 붕괴되었다. 미국의 킹즈포인트에 있는 미연방상선사관학교(USMMA)도 재학생 정원 1,000명에서 500명으로 감축되었다. 유럽해운국들의 경우도 모두 폐교 내지 축소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두 곳 해양대학교가 모두 입학 경쟁률 약 <5:1>을 유지하고 있고, 입학정원은 한국해대 560명, 목포해대 690명, 합계 1,250명으로 자유진영국가에서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다. 국민소득 3만불을 넘겼지만 선원사회는 외항선원 9,000명선에서 6,500명선(공식 발표통계는 아니고, 관계기관에 문의해서 얻은 2018년말 기준 통계)으로 감축되었고, 아직 붕괴는 되지 않고 있다.
필자는 세계로호에서 1박을 하면서 실습생과 가장 가까운 선배 3등항해사와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세번째로 「선원문제의 연구」 책을 출판할 예정이어서 실정을 알고 싶은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곧 출간 예정인 필자의 졸저는 「선원사회는 존속할 것인가.」 「A Study on CDF, CPD and MET for Maritime Profession」으로 할 생각이다.
A smooth sea never makes a skillful mariner.   (평온한 바다는 결코 유능한 뱃사람을 만들 수 없다.)   Practice makes perfect.(배우기보다 익혀라)
악조건 밑에서 파도와 싸우며 해기海技를 연마하고 있는 실습생들!
지금 초등학생이 10년 뒤에 세계로호에서 또 승선실습을 하게 될 것이다. 해양정신(Mer Esprit)이 강한 젊은이들이 해상직을 선택할 수 있도록 차원 높은 선원정책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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