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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사판례 연구(3)
항해용선계약상 공적운임 약정의 법적 성질
[546호] 2019년 03월 04일 (월) 11:10:05 이필복 komares@chol.com
   

이필복

울산지방법원 판사

1. 서론
항해용선계약이란 특정한 항해를 할 목적으로 선박소유자가 용선자에게 선원이 승무하고 항해장비를 갖춘 선박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제공하기로 약정하고 용선자가 이에 대하여 운임을 지급하기로 약정함으로써 그 효력이 생기는 계약을 말한다(상법 제827조 제1항). 항해용선계약의 법적 성질은 해상물건운송계약으로 보는 것이 국내의 통설이고,1) 항해용선계약에 관한 상법 제841조는 상법 총칙편의 운송업에 관한 규정들과 해상편의 개품운송계약에 관한 다수의 규정을 항해용선계약에 준용하도록 정하고 있다. 항해용선계약이 체결되면 선박소유자는 용선자를 위하여 배선(配船, Vessel Nomination/Assignment)할 의무를 부담한다. 배선이란, ‘해상운송 목적물의 선적 및 양하를 위하여 화물의 형태나 일정 등에 부합하는 선박을 지정하여 선적항에 입항 및 양하항으로 출항하게 하는 일련의 행위’를 말한다.2)

 

구체적으로, 선박소유자는 용선계약에서 약정한 선박을 약정한 일시에 선적항에 입항시키고(선박제공의무), 운송물을 선적함에 필요한 준비가 완료된 때에는 지체 없이 용선자에게 선적준비완료의 통지를 하여야 하며(선적준비완료 통지 의무, 상법 제829조 제1항), 용선자가 운송물을 선적하도록 선적항에서 일정기간 동안 선박을 정박하였다가(정박의무, 상법 제829조 제2항 참조), 운송물의 선적·적부 등 항해의 준비가 끝난 경우에는 지체 없이 선박을 발항시킬 의무 등을 부담한다(발항의무, 선원법 제8조).3) 선박소유자는 운임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위와 같이 운송을 위한 준비를 하고 그에 따른 비용을 지출하게 되는데, 적재화물의 수량에 따라 운임이 계산되는 유형의 계약(아래 5.항에서 설명하는 ‘운임용선계약’을 말한다)에서 용선자가 발항 전 배선취소를 요청하는 등으로 아예 화물을 적재하지 않거나, 약정된 양의 화물에 미치지 못하는 화물만을 선적하는 경우에는 선박소유자가 뜻밖의 손실을 보게 된다. 당사자들은 위와 같이 용선자의 운송물 제공의무의 불이행으로 인해 선박소유자가 손해를 입게 되는 경우에 대비하여, 용선자가 해당 선박에 선적할 책임이 있는 화물 수량의 하한을 설정하여 이를 채우지 못하면 해당 화물의 선적이 없거나 부족하여도 해당 부족 부분에 상응하는 운임(또는 일정 비율로 감액된 운임)을 지급하도록 정하는 약정을 두게 되는데, 이러한 유형의 약정을 ‘공적운임(空積運賃, Dead Freight)’4) 약정이라고 한다. 
과거 대법원 1993. 12. 7. 선고 93도1064 판결, 대법원 1994. 11. 25. 선고 93도3274 판결에서 운임용선계약상 공적운임 약정의 법적 성질을 손해배상액의 예정이라고 판단한 바 있었다. 그리고 최근 선고된 2018. 10. 25. 선고 2017다263543 판결(이하 ‘대상판결’이라고 한다)은 우리 판례상 오랜 기간 잠들어 있었던 공적운임 약정의 법적 성질에 관한 쟁점을 오랜만에 다시 다루었다.   


 
2. 사실관계
가. 수출업자인 피고는 운송주선업자로서 개입권을 행사하여 운송인이 된 원고와 수출설비인 헐 샵 패키지 시스템(Hull Shop Package System) 1식을 우리나라에서 브라질까지 운송하는 해상운송계약(이하 ‘이 사건 운송계약’이라고 한다)을 체결하였는데, 그중 벌크(bulk)화물은 마산항에서 브라질 비토리아(Vitoria)항으로 3차에 걸쳐 운송하고, 해상운임은 계약 수량을 기준으로 하되 물량 변경 시 1CBM(Cubic Meter)당 미화 93달러로 산정하기로 하였다.


나. 이 사건 운송계약에 의하면, 원고는 수출해상화물의 운송주선업무에 최선을 다할 것을 목적으로 화물운송에 관하여 책임지고 안전운송을 하여야 하고(제1조, 제2조), 화물운송과 관련하여 특이사항이 발생한 경우 이를 즉시 피고에게 통지하고 피고의 지시에 따라야 하며, 피고의 별도 지시가 없을 경우에는 운송 대상 화물을 분할 운송해서는 아니 된다(제3조 제1항, 제3항). 
다. 이 사건 운송계약은 공적운임(Dead Freight)과 관련하여, 원고는 피고의 배선요청일 14일 이전에 선박일정을 통보할 의무가 있고, 피고는 배선 14일 이전까지 선박일정을 확정 받은 이후에 확답을 주어야 하며, 출항예정일로부터 14일 이전에 배선취소를 요청하는 경우에는 95%의 공적운임(Dead Freight)을 지불하여야 하고, 물량(Volume)이 감소하였어도 계약된 운임을 지불하도록 규정하고 있다(이 사건 운송계약 제3조 제7항, 제8항). 


라. 이 사건 1차 선적분은 예정된 일정대로 쎄나페이스 호(Cena Faith, 이하 ‘CF’호라고 한다)에 선적되어 마산항에서 브라질 비토리아 항으로 운송되었다. 이 사건 2차 선적분 벌크화물을 선적하기 위한 선박으로 ‘소피아 알’호(Sofia R, 이하 ‘S-R’호라고 한다)가 예정된 선적일자인 2013. 6. 10.에 입항하여 2013. 6. 18.까지 화물의 선적을 마쳤는데, 선장이 선박 손상을 우려하여 2차 선적분 전부를 싣고 출항하는 것을 거부하였다. 이에 원고와 피고는 2013. 7. 4. 2차 선적분 벌크화물 중 일부인 갑판적(on Deck) 화물을 다른 선박인 ‘스카이 하이’호(Sky High, 이하 ‘SH’호라고 한다)로 운송하기로 합의하였고, S-R호는 2013. 7. 6. 2차 선적분 벌크화물 중 일부만 싣고 마산항에서 출항하였다.  
마. 원고가 새롭게 배정한 SH호가 2013. 7. 16. 마산항에 입항하였는데 이는 당초 예정된 2차 선적일자로부터 한 달 정도 늦은 시점이었고, 입항 다음날 선박상태를 검사한 결과 SH호에 이미 선적되어 있는 화물 때문에 2차 선적분 벌크화물 중 S-R호에 선적하지 못한 나머지 화물 전부를 SH호에 선적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바. 한편, 원고는 2013. 7. 15. 피고에게 3차 선적분 벌크화물을 운송할 ‘문 브라이트’호(Moon Bright, 이하 ‘MB’호라고 한다)의 입항예정일을 2013. 7. 20.로 통지하였다. 
사. 피고는 2013. 7. 17. 원고에게 「이 사건 2차 선적분 벌크화물 일부가 지연 출항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재선적하기로 한 SH호에도 나머지 화물 전부를 선적할 수 없는 등 반복되는 운항지연으로 인해 납기지연을 초래하였으므로, 2차 선적분과 3차 선적분 벌크화물의 선적을 불허하며, 향후 화물의 선적과 관련하여 피고의 별도 지시가 있을 때까지 전면중단하라」는 통보(이하 ‘이 사건 통보’라고 한다)를 하였다. 
아. 피고는 2013. 10. 24. 다른 회사와 위와 같이 S-R호에 선적하지 못한 나머지 2차 선적분 벌크화물과 3차 선적분 벌크화물에 관하여 운송계약을 체결하였고, 위 계약에 따라 위 화물의 운송이 완료되었다. 

 

3. 사건의 경과 
가. 원고는 피고를 상대로, 피고가 SH호와 MB호의 배선을 무단으로 부당하게 취소하였음을 이유로 이 사건 운송계약에 따라 산정한 공적운임의 지급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이에 대하여 피고는, ① 이 사건 운송계약은 원고의 계약상 의무불이행을 이유로 이 사건 통보로써 해지되었으므로, 피고가 원고에게 계약상 공적운임을 지급할 의무가 없고, ② 원고가 나머지 2차 벌크화물 선적분 전부를 선적할 수 있는 선박을 투입하기로 하였음에도 이를 이행하지 못한 잘못으로 인해 피고가 SH호의 배선을 취소한 것이므로 SH호와 관련된 공적운임 청구는 위 운송계약의 해지 여부와 무관하게 이유 없으며, ③ 설령 피고가 공적운임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하더라도 위 공적운임은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서 부당히 과다하므로 적당히 감액되어야 한다고 다투었다. 


나. 제1심 법원은 우선 피고의 이 사건 통보의 내용에 비추어 이를 이 사건 운송계약 해지의 의사표시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피고의 ① 주장 배척). SH호의 배선 취소와 관련한 공적운임 청구에 관하여는, 원고가 나머지 2차 벌크화물 선적분을 모두 선적할 수 있는 선박을 섭외할 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이행하지 못한 것이므로, 피고가 위 선박의 배선을 취소한 데에는 적법한 취소사유가 존재한다고 판단하여 피고의 ② 주장을 받아들이고 원고의 이 부분 청구를 기각하였다. MB호의 배선 취소와 관련한 공적운임 청구에 관하여는, 피고가 원고에게 해당 공적운임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한 뒤, 공적운임 감액에 관한 피고의 위 ③ 주장을 배척하여, 결국 MB호의 배선취소에 관련한 공적운임 청구 부분을 인용하였다.5)


다. 원고와 피고는 모두 제1심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하였는데, 항소심은 제1심 판결을 파기하고 원고의 청구를 전부 기각하였다. 항소심 법원은 피고의 이 사건 통보의 내용에 비추어 이를 이 사건 운송계약 해지의 의사표시로 볼 수 없고, 피고의 SH호 배선 취소에 정당한 사유가 있으므로 SH호의 배선 취소와 관련한 원고의 공적운임 청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데에 제1심과 같은 판단을 내렸다. 그러나 MB호의 배선 취소와 관련한 공적운임 청구 부분에 관한 판단은 제1심과 달랐다. 항소심은, 이 사건 운송계약 제3조 제8항에서 정한 ‘출항예정일’은 ‘선박의 운항일정 등에 비추어 실제로 출항할 가능성이 있는 날’이어야 할 것이고, 원고나 피고 일방의 임의적인 통보만에 의하여 출항예정일이 정해질 수는 없다는 법리를 전제로, 원고가 피고에 대하여 이 부분의 공적운임을 청구하기 위해서는 피고가 이 사건 통보를 한 2013. 7. 17.이 출항예정일까지 14일 미만인 시점이어야 하고, 이렇게 되려면 MB호의 출항예정일이 2013. 7. 21.부터 같은 달 31.까지 사이이어야 하는데, 원고가 입항예정일로 통지한 2013. 7. 20. MB호가 실제로 마산항에 입항할 가능성이 있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고, 그 입항 이후 그 이전의 CF호나 S-R호의 경우와 같이 선적 등을 마치고 8일째 되는 날에 출항하거나 선적을 마칠 가능성이 있었다고 인정할 증거도 없으므로, 결국 피고가 출항예정일까지 14일 미만인 시점에서 MB호의 배선취소를 하였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여 원고의 이 부분 청구 역시 기각하였다.6) 원고는 대법원에 상고하였으나,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하여 위 판결은 그대로 확정되었다. 

 

4. 대법원의 판시사항
대법원에서는 공적운임 약정의 법적 성질 및 그와 관련한 증명책임의 법리를 분명하게 선언하였다. 이는 SH호의 배선 취소와 관련한 공적운임 청구에 관한 제1심과 항소심의 판단에서 당연하게 전제되어 있었으면서도 모호하게 다루어졌던 법리를 선명하게 한 것이다.

 

가. 운임용선계약은 특정한 항해를 할 목적으로 운송인이 용선자에게 선박의 전부 또는 일부를 화물의 운송에 제공하고 용선자가 이에 대하여 운임을 지급하기로 약정하는 항해용선계약의 일종으로, 운임이 화물의 수량에 따라 계산된다. 이러한 운임용선계약에서 운송인에게 최저한의 운임액을 보장해 주기 위하여 용선자가 해당 선박에 선적할 책임이 있는 화물 수량의 하한을 설정하여 이를 채우지 못하면 해당 화물의 선적이 없거나 부족하여도 지급하기로 한 이른바 공적空積 또는 부적不積 운임(Dead Freight, 이하 ‘공적운임’이라 한다)은 그 실질이 운임이 아니고 운임용선계약의 해당 내용을 불이행한 데 따른 손해배상이라 할 것이고 그 지급약정은 일종의 손해배상액의 예정이다(대법원 1993. 12. 7. 선고 93도1064 판결 등 참조)
나.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액이 예정되어 있는 경우에는 채권자는 채무불이행 사실만 증명하면 손해의 발생과 그 액을 증명하지 않고 예정배상액을 청구할 수 있다. 채무자는 채권자와 채무불이행에 있어 채무자의 귀책사유를 묻지 아니한다는 약정을 하지 아니한 이상 자신의 귀책사유가 없음을 주장·증명함으로써 예정배상액의 지급책임을 면할 수 있다(대법원 2007. 12. 27. 선고 2006다9408 판결 등 참조).

 

5. 검토
가. 항해용선계약의 종류

항해용선계약은 용선료 결정 방식에 따라 운임용선계약 또는 물량용선계약(Freight Charter, 이하에서는 대법원이 사용하는 용어에 따라 ‘운임용선계약’이라고 한다), 선복용선계약(船腹傭船契約, Lump Sum Charter), 일대용선계약(日貸傭船契約, Daily Charter), 비율운임용선계약(pro-rata Charter) 등으로 나뉜다.7) ① 운임용선계약은 국제해운실무에서 가장 많이 이용되는 방식으로서, 1회의 특정항해구간을 단위로 하여 운송물의 실제 선적량을 기준으로 운임을 계산하는 방식이다. ② 선복용선계약은 운송물의 선적량에 관계없이 선박의 전부 혹은 일부에 대하여 용선료를 결정하는 방식으로서, 이때 지급되는 용선료를 선복운임(Lump Sum Freight)이라고 한다. 선복운임은 제공된 선박의 실제의 입방미터(cubic)로 계산되며 선박소유자에게 인도된 운송물의 실제 수량과는 관계없이 특정항해를 위한 선박의 이용에 대해 지급되기로 합의된 명확한 금액으로서, 선박소유자에게 공적(空積, dead space)이 발생하지 않는 장점이 있다. 주의할 점은, 이 맥락에서의 ‘선복용선계약’은 정기선사들이 확정된 선박일정을 가지고 운항하는 경우, 용선자인 슬로트용선자가 다른 운송인이 운항하는 선박의 일정 선복을 빌려 운송인으로서 영업활동을 하는 슬로트(스페이스)용선(Slot Charter/Space Charter)과 구별되는 개념이라는 것이다.8)

 

슬로트용선계약은 ‘선복용선계약’으로 일컬어지기도 하는데, 항해용선계약의 한 종류로서 논의되는 ‘선복용선계약’과는 개념적으로 구별할 필요가 있다.9) ③ 일대용선계약은 용선료를 선적항에서 운송물을 선적한 날부터 양륙항에 양륙할 때까지의 날짜를 1일 단위로 계산하는 용선계약이다. 이는 정기용선계약의 용선료 계산방법과 유사하게 보이나, 용선선박의 선적항과 양륙항이 정해져 있고, 용선선박의 일체의 운항비를 선박소유자가 부담한다는 점에서 정기용선과 구별된다. ④ 비율운임용선계약은 선박소유자의 귀책사유 없이 항해를 완성하지 못한 경우, 선박소유자가 운송한 거리의 비율에 따라 용선료를 정하게 되는 경우의 용선계약을 말한다.10) 

 

나. 공적운임(空積運賃, Dead Freight) 약정의 법적 성질
1) 대법원 1993. 12. 7. 선고 93도1064 판결은 위와 같은 분류를 기초로 운임용선계약에서 인정되는 공적운임 약정의 정의와 법적 성질에 관한 법리를 최초로 선언하였다. 대법원은 위 판결에서, “특정의 항해를 이용기간으로 하는 항해용선계약에는 용선료가 화물의 수량에 따라 계산되는 운임용선계약과 화물의 수량에 관계없이 본선의 선복을 중심으로 운임을 정하는 선복용선계약이 있다고 할 것이다. 운임이란 운송의 대가로서 운송인에게 지급되는 보수를 말하는 것으로서 넓은 의미로는 용선료까지도 포함하여 운임이라고 하고 있으나, 선복船腹의 이용을 계약대상으로 하는 용선계약중 적재화물의 용적이나 중량의 다과를 불문하고 일정액의 운임을 지급하는 이른바 포괄운송임(Lump Sum)방식의 선복운송계약에 있어서는 적재화물의 많고 적음이 문제되지 아니하나, 적재화물의 수량에 따라 운임이 계산되는 이른바 운임용선계약에 있어서는 운송인에게 최저한의 운임액을 보장해 주기 위하여 용선계약서에 용선자가 당해 선박에 선적할 책임이 있는 적하량積荷量의 하한을 설정하여 이를 채우지 못함으로 인한 운임감소액을 용선자에게 부담시키는데, 그 부담액을 공적운임(空積運賃, Dead freight)이라고 하는 것이다.”라고 설시하여 공적운임 약정은 운임용선계약에서 문제되는 것임을 밝히고, 이어 “이와 같은 공적운임은 그 실질이 운임이 아니고 용선계약조건의 하나인 선적수량의 부족이라는 계약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이라 할 것이고 그 지불약정은 일종의 손해배상액의 예정이라고 볼 것이다”라고 하여 그 법적 성질이 손해배상액의 예정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운임용선계약에서 선박소유자가 배선 등 화물의 운송을 위한 준비를 할 의무를 부담하는 데 대응하여, 용선자는 선박소유자의 선적준비완료 통지에 따라 바로 선적이 가능하도록 부두 등 선적을 행할 장소에 합의된 종류와 수량의 운송물을 준비·제공할 의무를 부담한다(용선자의 운송물 제공의무).11) 용선자가 합의된 운송물을 제공하지 못하면 이는 중대한 계약위반이 되어 선박소유자는 계약의 이행을 거절할 수 있고, 용선자에 대해 손해배상청구권과 계약해제권을 가지게 된다.12) 공적운임은 운임용선계약에서 우선 용선자로 하여금 운송물 제공의무를 이행하도록 심리적인 압박을 가하고, 용선자가 합의된 운송물을 제공하지 못한 경우에, 선박소유자의 손해액에 대한 입증곤란을 덜고 손해배상에 관한 법률관계를 간명하게 처리할 목적에서 두는 손해배상액의 예정이라고 보는 것이 당사자들의 의사에 부합한다. 따라서 선박소유자가 용선자의 운송물 제공의무 위반으로 인하여 생긴 선복에 추가로 다른 운송물을 적재하여 실질적인 손해가 공적운임보다 적었다고 하더라도 용선자는 약정된 공적운임을 지급하여야 한다.13) 또한 공적운임 약정이 있는 이상, 예컨대 화물의 부족분에 상당한 저하(底荷: ballast)를 채우기 위한 부수적인 비용을 지출하는 등 상실된 운임 외의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하더라도, 선박소유자가 이를 별도의 손해배상으로 구할 수는 없다고 함이 타당하다.


2) 이와 관련하여 주의할 점은, 여기서의 공적운임 약정은 상법 제832조 내지 제835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항해용선자의 발항 전 임의해제 또는 해지에 뒤따르는 공적운임과는 그 법적 성질을 달리 한다는 것이다. 상법 제832조, 제833조에 의하면 항해용선자는 선박의 발항 전에는 임의로 용선계약을 해제 또는 해지할 수 있는데, 전부용선자 또는 다른 용선자와 송하인 전원과 공동으로 용선계약을 해제·해지한 일부용선자는 운임의 반액 또는 2/3를, 다른 용선자나 송하인 전원과 공동으로 하지 않고 계약을 해제·해지한 일부용선자는 운임의 전액을 선박소유자에게 지급하여야 한다(부수비용, 체당금 및 선적·양륙비용 또한 용선자가 부담한다). 국내의 통설은 위 공적운임의 법적 성질을 손해배상금이나 위약금이 아니라 법정해약금法定解約金이라고 본다.14) 상법이 규정하는 공적운임은 용선자의 임의해제·해지에 뒤따르는 법률효과로서 발생하는 해약금이라면, 대상판결에서 다루는 공적운임 약정에 따른 공적운임은 용선자의 운송물 제공의무 불이행에 뒤따르는 손해배상액의 예정이라는 측면에서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15)    


3) 한편, 상법 제836조는 “용선자가 선적기간 내에 운송물의 선적을 하지 아니한 때에는 계약을 해제 또는 해지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여, 용선자가 운송물의 제공의무를 전혀 이행하지 않은 때에는 계약이 해제 또는 해지 간주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은 임의규정이므로(상법 제839조 참조), 만약 당사자간에 이와 달리 정하는 약정이 있으면 그 약정이 우선한다. 운임용선계약에서 공적운임 약정이 포함되어 있고 그 공적운임 약정이 용선자가 운송물을 전혀 선적하지 않는 경우까지 포섭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는 경우에는, 해당 공적운임 약정이 상법 제836조에 우선하여 적용된다고 할 것이다. 대상판결에서 법원은 SH호와 MB호에 운송물이 전혀 적재되지 않았음에도 이 사건 운송계약이 해지되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공적운임의 지급요건이 충족되었는지 여부에 관하여 심판하였는데, 이러한 해석이 전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 대상판결의 분석
이 사건 운송계약 제3조 제8항은 “피고는 배선 14일 이전까지 선박 일정을 확정받은 이후에 확답을 주어야 하며, 출항예정일로부터 14일 이전에 배선취소를 요청하는 경우에는 95%의 공적운임(Dead Freight)을 지불하여야 하며, 물량(Volume)이 감소하였어도 계약된 운임을 지불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용선자인 피고가 배선취소를 하여 선박에 운송물을 전혀 적재하지 않는 경우에는 ‘출항예정일로부터 14일 이전에 배선취소를 요청하는 경우’에 한하여 원고에게 운임의 95%에 해당하는 공적운임을 지급할 의무가 있고, 운송물의 물량이 감소하는 경우에는 약속된 운임을 그대로 지급하여야 한다. 피고는 원고에게 이 사건 통보를 한 뒤 원고가 배선한 선박인 SH호와 MB호에 운송물(S-R호에 선적하지 못한 나머지 2차 선적분 벌크화물과 3차 선적분 벌크화물)을 전혀 적재하지 않았으므로, 과연 이 사건 통보가 ‘출항예정일로부터 14일 이전에 배선취소를 요청하는 경우’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관건이 된다. 이에 관한 증명책임은 원고에게 있다. SH호의 배선취소로 인한 공적운임 청구와 관련하여서는, 이 사건 통보가 SH호의 출항예정일로부터 14일 이전에 배선취소를 요청하는 경우에 해당한다는 점은 별다른 의문이 없다. 다만 대상판결은 위 공적운임 약정이 손해배상액의 예정임을 전제로, ‘피고가 자신의 귀책사유가 없음을 주장·증명함으로써 예정배상액의 지급책임을 면할 수 있다’는 손해배상액 예정의 일반적 법리에 따라 피고가 스스로 배선취소에 관한 귀책사유 없음을 증명하였다고 판단하여 원고의 이 부분 청구를 기각하였다. MB호의 배선취소로 인한 공적운임 청구와 관련하여, 제1심에서는 이 사건 통보가 ‘MB호의 출항예정일로부터 14일 이전에 배선취소를 요청하는 경우’에 해당한다는 점을 별다른 의문 없이 인정하였으나, 항소심에서는 이 사건 운송계약 제3조 제8항에서 정한 ‘출항예정일’은 ‘선박의 운항일정 등에 비추어 실제로 출항할 가능성이 있는 날’이어야 할 것이라는 법리를 전제로 그에 관한 입증이 부족하다고 보아 원고의 이 부분 청구 역시 기각하였다. 대상판결은 이와 같은 항소심의 판단에 대하여 이 사건 운송계약에서 규정한 ‘출항예정일’의 의미 해석과 증명책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하여 그 정당성을 수긍하였다.   
  
6. 결론
종전의 대법원 판결은 관세법위반 여부가 쟁점이 된 형사사건에서 공적운임 약정의 법적 성질을 다룬 것이었다. 즉 운임용선계약상 공적운임 약정에 따른 공적운임의 실질은 운임이 아니라 손해배상이므로,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위 공적운임은 수입물품의 과세가격을 결정하는 데 가산하여야 할 구 관세법 제9조의3 제1항 제6호(현행 관세법 제30조 제1항 제6호) 소정의 “운임·보험료와 기타 운송에 관련되는 비용”에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16) 대상판결은 민사사건인 공적운임 청구의 소에서 운임용선계약상 공적운임 약정의 법적 성질을 재확인하고 그와 관련된 입증책임의 법리를 다룬 것으로 의미가 크다. 공적운임 약정은 다양한 유형의 문언으로 작성될 수 있을 것인데, 실무상으로는 공적운임 약정의 법적 성질 등을 고려하여 당해 계약관계에 적합한 공적운임 조항을 두는 데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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