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하인 사기행위에 의한 컨테이너 내품 변경의 건

중고품 거래에서나 보던 황당한 사기수법이 국제무역에서 종종 발생한다. 일부 수입업자가 시세보다 싼 가격에 구리 수백톤을 구입했는데 외국에서 상품이 도착한 뒤 컨테이너를 열어보니 벽돌로 가득한 경우이다. 보통 수출업체는 시세보다 20%가량 싸다, 지금 돈을 보내지 않으면 다른 업체가 사간다며 수입업체를 유혹한다. 수입업자는 직접 해당 국가에 가서 구리가 컨테이너에 실리는 것까지 확인했지만 결국 사기를 당했다.
문제는 이와 같이 수출업체의 사기행위가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수출업체가 연락이 두절되고 행방을 감출 경우 수입업체는 구리가 선적되었다고 기재된 선하증권을 발행한 운송인에게 클레임을 제기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해상화물 운송인은 송하인의 고지에 따라 화물명세를 선하증권에 기입하는데, 특히 FCL 컨테이너화물의 경우 화물 적입작업이 송하인에 의하여 송하인의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으므로, 송하인이 악의로 매매계약과 다른 화물을 제공할 경우 운송인은 동 사실을 사실상 알기 어렵고, 결국 선하증권 발행에 따른 책임을 부담할 수도 있는 위험에 노출된다. 하지만 이처럼 송하인의 사기행위가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과연 운송인이 선하증권에 기재된 화물과 다른 화물을 인도한 책임을 부담해야 하는지 여부가 문제될 수 있다.
이번 호에서는 수출업체가 어떤 방식으로 사기행위를 하는지 알아보고, 이 경우 선하증권을 발행한 운송인의 책임여부에 관한 쟁점과 유사사건 방지를 위한 대책에 대하여 살펴본다.
 

송하인 사기행위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수입업자는 직접 해당국가에 가서 구리가 컨테이너에 실리는 것까지 확인했지만 결국 사기를 당했다. 과연 어떻게 이런 경우가 발생할 수 있는가? 
중국 천진의 경우를 살펴보도록 한다. 중국 천진의 A터미널은 컨테이너가 입고된 후에는 출고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중국 천진 인근 B터미널의 경우 컨테이너의 입출고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따라서 수출업자는 수입업자를 B터미널로 불러 컨테이너에 구리화물이 선적되는 과정 및 seal 번호를 확인하게 하고 봉인 후 터미널로 입고하는 일련의 과정을 모두 보여주었다.
한편, 수입업자는 B터미널이 컨테이너 입출고가 자유롭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수출업자가 보여주는 과정만 보고 아무런 의심 없이 화물대금을 지급하였다. 이후 수출업자는 B터미널로부터 컨테이너를 반출한 뒤 내품 및 seal 번호를 변경한 후 A터미널로 다시 입고하는 식으로 화물을 구리에서 돌로 바꿔치기 하였다.
이 경우 수출업자는 통관절차에 필요한 수출신고서에는 B/L상 기입된 화물 ‘구리’ 대신 ‘돌’을 기입하였는데, 이를 통하여 수출업자의 사기행위 의도를 명확히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수출업자의 명백한 사기행위에도 불구하고 운송인은 송하인이 사기의 목적으로 알려준 허위의 seal 번호를 선하증권에 그대로 기입 후 발행할 경우 과연 운송인의 책임이 인정될 수 있는지 문제된다.

 
운송인 책임 여부
먼저 운송인 면책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한다. 컨테이너 화물을 선적함에 있어 씰(seal)은 화주 측에서 준비하여 봉인하고 씰 번호를 운송인에게 통지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운송인은 송하인이 고지한대로 씰 번호를 선하증권에 기재하게 된다. 따라서 송하인이 악의로 거짓된 씰 번호를 통지하더라도 운송인이 그 진위를 확인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일부 항만 터미널의 경우 컨테이너 입고시 씰 번호를 확인하여 이를 EIR(Equipment Exchange Receipt) 등의 서류에 기재하기도 하나, 일부 다른 항만 터미널의 경우 입고장면을 동영상으로 촬영하여 둘 뿐 따로 씰 번호를 확인하지 않는다. 따라서 컨테이너 입고 시 이미 씰 번호가 변경되었다 하더라도 운송인이 그 사실을 알기 어려운 경우가 발생한다.

상법 제854조(선하증권 기재의 효력)는 선하증권 기재에 관한 추정적, 확정적 효력을 규정하고 있으나 그 객관적 범위는 운송물의 종류, 중량 또는 용적, 포장의 종별, 개수와 기호, 운송물의 외관 상태에 미칠 뿐, 운송인이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도 알 수 없는 컨테이너 내부의 운송물의 상세에는 미치지 않는다.
한편, 씰(seal)은 운송물이 아니고 그 포장도 아니다. 씰은 컨테이너 봉인상태에 의하여 도난 등의 부정행위의 유무를 확인하기 위하여 설치된 기구에 불과하다. 따라서 씰 번호의 기재는 도난 및 부정행위 유무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일 뿐이지, 씰 번호 자체의 기재에 의하여 선하증권 기재사항의 추정적, 확정적 효력에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선하증권 이면약관에 “화주에 의하여 봉인된 컨테이너가 운송인에 인도되는 경우, 선하증권은 오로지 선하증권에 기대된 컨테이너의 개수에 대한 수령의 증거가 될 뿐, 화물의 상태나 기타 상세에 대하여는 책임이 없다”고 규정되어 있을 경우 운송인은 선하증권의 씰 번호 기재로 인하여 어떠한 책임을 부담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운송인은 터미널 입고 전 컨테이너 내품 및 씰이 이미 변경되었고, 동 사건은 송하인의 무역사기로 인한 수출입계약의 문제에 해당되므로 수입업자는 수출업자를 상대로 책임을 추궁해야 하며, 상법 제796조(운송인의 면책사유) 제6호 (송하인 또는 운송물의 소유자나 그 사용인의 행위)에 따라 면책에 해당됨을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수출업자의 사기행위가 명백하더라도 운송인은 선하증권 발행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할 수 있다. 운송인의 책임구간은 CY-CY이므로 선적지 CY에 컨테이너 입고 시부터 운송인은 선량한 관리자로서 관리, 감독 의무를 부담하기 때문이다.
즉, 운송인은 컨테이너 입고 시점인 선적지 CY에서 별도의 검수인 선임 등을 통하여 수출업자의 사기행위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다.

일부 항만 터미널은 컨테이너 입고 시 씰 번호를 EIR(Equipment Exchange Receipt) 등의 서류에 기재하므로 운송인은 필요 시 항만 터미널을 상대로 구상 클레임을 제기하는 방안이 고려된다.
소송제기 시 주요쟁점 및 법원 태도 검토
소송제기 시 법원에서 다툴 주요 쟁점은 송하인의 사기행위가 명백하므로 운송인이 면책에 해당하는지 또는 송하인의 사기행위가 명백하더라도 운송인의 선하증권 발행에 대한 책임을 근거로 선적지 CY에 컨테이너 입고 시부터 선량한 관리자로서 관리, 감독의무를 부담하는지 여부일 것이다.
과연 법원이 운송인의 책임을 인정할지는 의문이 든다. 왜냐하면 송하인의 사기행위가 명백하고, 화물 멸실이 운송인의 책임구간에서 발생한 것도 아니며, 씰 번호가 선하증권에 잘못 기재되거나 운송인이 이를 확인하지 못한 데에 설사 어떠한 과실이 있더라도, 이는 이미 컨테이너 내품이 변경된 이후의 사정이므로 동 사건과 어떠한 인과관계도 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송하인의 사기행위가 명백하고 운송인의 씰 기재경위 등 해상 실무를 고려하였을 때 운송인에게 모든 책임을 부담할 경우 이는 신의칙 위반에 해당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수하인의 입장에서 보면, 송하인의 사기행위가 있었더라도 운송인의 선하증권 발행에 따른 책임 및 화물 수령 시 선량한 관리자로서 관리, 감독의무를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송하인의 사기행위 여부를 떠나 수입업자는 운송인에게 해상운송계약에 따른 책임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사건이 소송으로 제기된다면 앞서 언급한 당사자 간의 주장이 대립되어 법원이 과연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지는 쉽게 예측하기 어려운 문제로 보인다.
 

운송인의 사고예방대책
전술한 유형의 사고예방대책을 위하여 다음 3가지 사항이 고려된다.
첫째, 절차 점검 및 수립이다. 신규고객에 대한 조사, 기존고객의 신규화물에 대한 조사 등을 통한 고객신원확인(Know Your Customer) 절차를 수립하고 공급사슬(Supply Chain, 송하인 창고, 육상운송, 터미널 포함)의 조사, 모니터링 및 위험평가 시행이 필요하다. 또한 북킹(Booking) 시스템상 모든 관계자 (booking agent, freight forwarder 등)를 위한 문서화된 절차, 지침 및 교육이 시행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Supply Chain 각 단계 즉, 송하인에 의한 화물 적입 단계부터 컨테이너 트럭킹(trucking) 운송과정, 컨테이너 CY 보관과정, 컨테이너 선적과정까지 모두 컨테이너 외관 및 무게를 모니터링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방법이다. Seal, rivet 등 door locking arrangement 상태 (신규 용접, 교체, 페인팅 여부) 등 컨테이너 외관을 확인하고, 컨테이너 무게 모니터링(VGM : Verified Gross Mass 규정 이용)이 필요할 것이다.

셋째, 컨테이너 내부 혹은 Seal에 추적장치, 자동알람장치 등(GPS Container Lock Tracker)의 도난방지 설비 도입이다. 이러한 설비가격은 개당 대략 USD 100~150선으로 알려져 있다.
비슷한 수법의 무역사기는 주로 중국과 파키스탄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동 지역에서 컨테이너를 다루는 운송인은 특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특히 송하인의 사기행위가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이미 잠적해버린 송하인으로부터 손해를 배상 받지 못한 수하인이 운송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운송인은 고객신원확인 절차 수립, 서플라이 체인 각 단계에서 컨테이너 외관 및 무게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방안 모색, 컨테이너 내부 및 씰 등의 도난방지 설비 도입을 통하여 사고예방대책을 미리 강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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