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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해운기업을 위한 넛지
[535호] 2018년 04월 05일 (목) 10:18:08 이태휘 교수 komares@chol.com
   
이태휘 경남과학기술대학교
유통학과 교수

2017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리차드 탈러 교수는 캐스 선스타인과 공저한 ‘넛지(Nudge)’를 통해 행동경제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넛지란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 ‘주의를 환기시키다’라는 뜻으로 이 책에서는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을 의미한다.

넛지에 의하면 인간은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할지 신경 써, 그들의 분노를 피하거나 환심을 사기 위해 타인의 생각이나 행동을 따를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집단 동조는 3인 판사위원회로 구성되는 미국의 연방 판사들의 사례에서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공화당에서 지명한 판사는 민주당 지명 판사 2명과 함께 배석할 경우 자유주의적인 판결을 보이는 반면, 민주당 지명 판사가 공화당 지명 판사 2명과 배석할 경우 보수적인 판결 양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우리 해운물류산업은 유행에 참 민감하다. 10여 년 전, 지금의 4차 산업혁명이 대세인 것처럼 당시에는 ‘녹색물류’가 대세였다. 당시 정권의 분위기 속에서 녹색물류는 학계와 언론을 통해 큰 인기를 얻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당시 친환경적 항만운영방안으로 제시된 육상전원공급설비(Alternative Maritime Power)가 이제야 미세먼지 저감 차원에서 도입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녹색물류 이후 학계와 언론은 북극항로에 초점을 옮겨 갔다. 부산에서 로테르담까지 45일 걸리는 항해가 북극항로를 통하면 15일이 단축된다며 한국의 해운물류학자와 언론은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이들의 뜨거운 관심이 북극해의 빙하를 금방이라도 녹여버릴 것 같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 북극항로도 여전히 상용화되지 않고 있으며, 2013년 현대글로비스의 시험운항 이후 이렀다할 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얼음이 녹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북극항로에 대한 관심이 주춤해질 때 중국의 일대일로라는 이슈가 크게 부각되었다. 일대일로는 중국-중앙아시아-중동-유럽을 관통하는 철도 연결, ‘일대’와 중국-동남아시아-중동-유럽을 잇는 해상루트 연결을 의미하는 ‘일로’의 결합으로 중국 주도의 초대형 국제물류 프로젝트이다. 지난 정권의 유라시아이니셔티브 전략과 맞닿아 큰 관심을 얻었지만 최근에는 4차 산업혁명 이슈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지난 부산항 미래비전 선포식에 문재인 대통령께서 다녀가셨다. 스마트 해상물류 시스템과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세계적인 항만모델을 우리가 선도하자는 메시지도 전달하셨다. 이제 해운항만물류 학계와 언론의 관심은 ‘스마트 해운항만’으로 초점이 맞추어질 것이다. 관련된 다양한 세미나와 학술대회, 그리고 언론보도와 연구용역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학자와 언론인만 유행을 쫓아가는 ‘집단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선사도 선박 매입과 용선에 있어 집단행동을 보이고 있다. 몇몇 전문가들은 군중심리에 의한 선박매입과 용선이 한진해운 사태를 초래한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하고 있다.

2011년, 해양한국에서 보도한 ‘2011년 해운업계 CEO 좌담회’에서 고려해운의 박정석 사장도 우리 선사의 군중집단행동에 의한 의사결정을 지적하였다. 지난 3월, Maritime Policy & Management에 게재된 논문(제목: A cause of oversupply and failure in the shipping market: measuring herding behavior effects)에서 지난 10년 간 증가한 우리 지배선대 중 척수 기준 50.5%, 톤수 기준 30.4%가 군중집단행동에 의해 증가한 선박이라고 제시하였다. 2008년 직전과 같은 비이성적 호황기(irrational exuberance)에 우리 선사의 타사 추종적·맹목적 선박 매입과 용선이 공급과잉 심화를 야기하였고 이는 한진해운 파산을 초래한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는 것이 논문의 핵심 내용이다.

해운은 사이클이 존재하는 산업이다. 지금의 불황도 영원하지는 않다. 호황이 우리에게 찾아올 것이고 또 다시 지독한 불황이 되풀이될 것이다. 호황의 조짐이 예견될 때 우리 선사가 또다시 맹목적으로 선박을 매입하지 않기를 넛지한다. 그리고 호황 이후 이어질 불황에 제2, 제3의 한진해운 사태와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녹색물류-북극항로-일대일로-4차 산업혁명, 이제는 구체적으로 ‘스마트 해운항만’ 시대가 찾아왔다. 때마침 무인선박 이슈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묻지마 스마트 해운항만’의 시대 흐름 속에서 우리 해운기업이 중심을 잃지 않는 정도의 해운경영을 펼쳐나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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