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와 통상협상
제3의 개국이라고까지 불리는 한미FTA가 밀고 당기는 오랜 협상 끝에 4월 1일 타결되었다. 아직 국회의 비준과 대통령의 서명이라는 절차가 남았으나 큰 고개를 넘은 셈이다. 양국은 이제 이해득실을 따지며 후속조치로 부심할 것이다. 노동과 환경 분야의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미국측 얘기도 나오고 있다. 무역의존도가 큰 우리나라로선 세계의 시장 미국이 중요하므로 경쟁국  일본과 중국에 앞서 이를 체결한 것은 분명 선점효과가 있으며, 면역과 저항력을 키우는 예방주사가 될 것이다.

 

다만, 농수산 분야는 어느 산업보다 종사자가 많고 이것만은 지켜야 한다는 국민정서가 깔려 있어 저항이 거셀 것이고 지원책을 마련하기에 힘도 들 것이다. 그러나 이젠 국민들도 세계경제의 흐름을 이해할 정도로 성숙하여 정부당국이 원칙과 소신을 가지고 진솔하게 설득하고 대처한다면 잘 풀릴 것이다. 이번에 한미FTA 협상과정을 통해 우리의 통상협상능력이 한층 업그레이드 된 듯하다. 강한 상대와 협상할 때 떼쓰기와 우는 소리가 전에는 통하기도 했으나 OECD 국가인 우리나라로선 그 단계를 벗어났으므로 협상을 주도하고 상대를 설득할만한 원칙과 논리를 갖추고 나와야 한다.

 

이번 협상을 끝내고 한미 양국 대표가 서로 수와 A학점이라고 자평했으나 점수는 자신이 아니라 국민이 매기는 것이다. 통상대국 미국의 협상전문가들과 밀리지 않고 대등하게 협상한 우리나라 대표단이 여느 때보다 돋보이긴 했으나 진짜 성적표는 총론보다 각론에서 받을 것이다. 강한 상대와의 손익계산서를 보면 앞에서 이익, 뒤에서는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맘씨 좋은 동네 아줌마 같이 생긴 미국측 수석대표 웬디 커틀러. 실상은 냉정할 정도로 철저히 실리를 챙겼다고 한다. 협상의 달인은 칼을 감추고 웃는다.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잘 마무리해 주기 바란다. 끝내기에서 판을 그르치는 바둑도 많다.


선주협회 박찬재 전무가 한미FTA가 한국해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였다. 해운은 국제산업으로 이미 충분히 개방되어 있어 큰 영향은 없겠지만, FTA가 타결되어 교역량이 늘어나면 해운이 좋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섬유와 자동차 부문이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데, 자동차는 늘겠지만 섬유는 이미 사양화 하여 큰 기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원산지증명 면에서 어디까지 한국산으로 할 것인지가 쟁점으로 부각되었는데, 중국 상품이 파고 들어오는 것을 우려하는 미국으로선 원산지증명을 까다롭게 할 게 뻔하다. 이를 규제하기 위해 환적(TS) 컨테이너 화물을 한국항만에서 확인하도록 요구할 텐데, 그렇게 되면 한국 항만에서의 환적기피가 예상되어 해양수산부로서는 내심 고민을 많이 하였다고 한다.

 

이런 문제가 불거져 FTA가 타결되지 않으면 그 부담을 해수부가 떠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내항과 지정화물에 대한 정부보조를 철폐하였기에 미국측에 내항해운 개방을 강력히 요구하였으나 해안선이 긴 미국으로선 연안해운(cabotage)만은 안되겠다 싶었는지 우리쪽 마지노선인 쌀 문제로 역공을 펴 이를 관철시키지 못했다고 한다. 이참에 내항해운도 개방시키려 했으나 쌀 개방과 맞물려 성사되지 못했다는 뜻이나, 우리측 대표인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미국이 막판에 쌀 문제를 들고 나와 그러면 내항해운도 개방하라고 버텨 쌀 문제를 해결하였다고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발표하였다.


중국도 우리나라와 FTA를 맺기를 원하는 모양이다. 이번에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의 주된 방한 목적이 한중FTA 타진이라고 하는데, 세계의 공장이라는 중국과의 협정은 미국과 차원이 다르므로 그 시기와 범위를 주도면밀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일본과의 FTA도 마찬가지로, 무역역조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인지 심화될 것인지를 잘 따져 보아야 한다. 세계는 WTO 아래 하나의 시장으로 점차 편입될 것이기에 세계시장에서 살아남을 길은 국제경쟁력을 갖추는 것뿐이다. 차제에 한중일 자유무역협정 가칭 코치자(KoChiJa) FTA를 구상해봄직하다.


이번 한미FTA 타결을 계기로 통상과 협상 전문가가 절실하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외국어와 국제 감각이 풍부한 인재를 많이 길러내야 할 것이다. 특히 현지에서 그곳 사정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는 통상협상인력의 양성이 FTA 환경을 우리에게 유리하게 이끌며 세계화로 나가는 첫걸음이다.

 

 

세계 조선시장의 판도
세계 조선시장 호황이 2009년까지는 무난히 이어갈 것으로 보이나 한국조선이 누리고 있는 세계 1위의 지위는 흔들리고 있다. 지난 달 통계에 의하면 신조 수주량 면에서 무섭게 추격하던 중국에게 1위 자리를 내주었다. 머지않아 수주잔량 면에서도 1위 자리를 내놓아야 할 듯하다. 또한 일본도 2010년까지 세계 1위라는 예전의 명성을 되찾겠다고 의욕이 대단하다. 1위라는 자리는 차지하기보다 지키기가 어렵다. 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앞에 목표가 없기에 스스로 목표를 정해 놓고 자신과 싸워야 하는 외로운 싸움이다.


 최근 중국과 베트남에 다녀온 콤파스 참석자의 말을 빌면, 우리나라가 너무 쉽게 조선을 이들 나라에 넘겨주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중국의 상하이와 다롄, 광저우 등에 조선소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고 베트남과 필리핀에도 조선소를 많이 짓고 있다고 한다. 이들 나라들이 도크를 지으려면 몇 년은 걸리리라 생각했지만, 도크도 없이 육상에서 5만톤급 선박을 거뜬히 만들고 있어 놀랐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조선소 못지않은데, 한국의 건조기술이 유출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조선업이 너무 빨리 제3세계로 흘러가고 있어 매우 안타깝다고 말했다. 과거 유태인이 수십년간 벌어먹던 가발산업을 물려받아 우리는 불과 몇 년도 유지하지 못한 전력이 있다. 조선업도 그 길을 걸을까 걱정스럽다. 서울대 조선공학과 김재근 교수가 “우리 민족은 배를 만드는 데 탁월한 재능이 있다”는 말을 하였다. 해상왕 장보고 대사와 불패신화의 이순신 제독을 뒷받침해준 것은 우수한 조선기술이었다고 말하였다. 그 조선기술을 활용하여 조선강국의 위상을 좀 더 오래 유지하였으면 좋겠다.


싱가포르에서 열린 ‘시 아시아(Sea Asia)’ 컨퍼런스에 박찬재 전무가 다녀왔다. 이번 회의에는 아시아 각국에서 8백여명이 참석하여 해운센타를 지향하는 싱가포르의 당찬 계획을 엿볼 수 있었다고 한다. 이번 컨퍼런스에서 논의된 것중 재미있는 사실은, 선박의 건조원가는 철판가와 인건비가 상승하여 올라갔고 이런 배를 가지고 운항하는 선사의 운임도 함께 올라갈 수밖에 없는 구조(fundamental)로 옮겨갔으므로 이런 구조에 맞게 선주들도 해운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해운시황이 좋아져 폐선(scrapping)해야 할 노후선들이 쌓이고 있음에도 폐선할 수 있는 나라가 인도 등 몇 나라에 국한되어 있고 환경오염에 대한 IMO의 규제 강화로 건조과정부터 유해물질에 대한 규제와 폐선규정도 엄격하여 해체를 제대로 못하고 있다. 장차 노후선이 해운시장의 걸림돌이 될 것이라며 폐선을 위한 국제협조방안을 선진국 특히 일본이 제기하였다고 한다. 건조원가와 폐선이 해운시황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확인한 회의였다.


 
제2 파나마운하와 경부운하
이날 콤파스에서는 제2 파나마운하 개설이 해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이 운하가 개통되는 2015년에는 해운계의 판도가 달라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제2 운하는 기존의 파나마운하를 확장하여 갑문을 더 만들어 큰 배들이 통과할 수 있으며, 소요예산은 52억달러에서 80억달러 정도 들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런데 이 운하 건설비를 충당하기 위하여 운하통과료를 5월부터 인상하겠다고 파나마운하관리청(APC)이 발표하였다. 금년부터 3년 동안 매년 10%씩 올리겠다는 것이다.

 

수익자 내지 이용자부담 원칙에서 그렇게 하였는지 모르겠으나 이 운하를 이용하는 모든 나라들이 반대하고 있다. 특히 이용도가 높은 칠레, 아르헨티나 등 남미 국가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7월로 연기한다고 한 걸음 물러섰으나 인상계획을 철회하지  않고 있다. 파나마 정부로선 파나마운하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이므로 무리해서라도 제2 파나마운하를 건설하려고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이 운하가 개통되면 파나막스라는 톤수 개념도 바뀔 것이고 그동안 남미의 푼타아레나스와 남아프리카의 케입타운으로 돌던 많은 선박들이 파나마를 통과할 것으로 보여 해운시장의 판도도 크게 바뀔 것으로 보인다.


요즘 경부운하 얘기가 더욱 힘을 얻어가고 있다. 콤파스 뿐만 아니라 해운물류업계에서 경제성이 없어 타당하지 않다는 신호를 보냈건만 요지부동이다. 심지어 국회에서는 찬성론자들만의 공청회가 열려 그들만의 잔치가 벌어지기도 하였다. 과연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다. 산이 많고 3면이 바다인 반도국가, 조금만 나가도 바다가 보이는 우리나라에 그 높은 백두대간 소백산맥의 조령산을 뚫고 물을 끌어올려 터널식 운하로 한강과 낙동강을 잇겠다는 사람은 낭만주의자이거나 개발론자일 수밖에 없다고 이날 콤파스에서 재확인하였다. 대부분이 평야이며 여러 내륙국가들을 거쳐 흑해와 북해를 연결하는 라인-다뉴브운하와 경부운하를 동일 선상에서 취급한다는 것은 분명 잘못된 시각이므로 국익을 위해서도 이 사실을 한나라당과 이명박 캠프에 알려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그 재원을 도로, 철도, 항만, 공항 같은 물류 인프라 구축에 쓰는 것이 국가발전을 위해 효율적일 것이다. 경부운하는 정치 관점에서는 몰라도 물류 관점에서는 타당성이 없다는 데에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미국과 캐나다의 5대호 운하는 관문이 16개로 수위차(水位差) 15미터 간격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관문을 통과할 때마다 고박작업을 위해 선원들이 내려가 도크당 2~3시간씩 작업해야 하므로 그 일만 해도 하루 반나절이 소요된다고 한다. 이런 불편과 비용을 감수하고 경부운하를 이용하여 화물을 실어 나를 화주가 과연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책을 타고 변화의 파도를 넘어서
‘CEO, 책에서 길을 찾다’라는 책에 콤파스 회원인 대보해운 김창중 회장이 소개되었다. 김회장은 경영자독서모임인 MBS에 11년간 개근할 정도로 독서에 깊이 빠져있고 책에서 배운 것을 경영에 활용하고 있다. 김회장은 독서를 밥 먹는 것에 비유한다. 꾸준히 그리고 골고루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을 읽을 때에는 감성적으로 받아들이고 일을 할 때는 이성적으로 처리하려고 노력한다. 지성인은 감성과 이성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감성만 있으면 감상주의자가 되기 쉽고 이성만 있으면 냉정한 사람이 될 것이다. 책은 감성과 지성을 조화롭게 만든다.


김회장은 삼미해운 용선업무를 맡으면서 해운의 진수와 좌절을 함께 맛보았다고 한다. 상대는 선진국의 해운전문가이고 자신은 영어도 서툰 신입사원인데도 5분 안에 답변을 달라는 식이었다. 오랜 종사자도 판단하기 힘든 과제를 단 5분 안에 처리하라고 하니 죽을 지경이었다. 그의 월급이 20만원이던 시절 순간의 판단 착오로 수억원이 날아가기도 했다. 이런 실수를 범한 날이면 남몰래 숨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결국은 내가 최종책임자이고 철저한 준비와 전문지식이 없으면 이렇게 당하는구나 하며...... 그 후 그는 열심히 전문서적을 뒤지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책만이 나를 도와주고 구원해줄 것이라고 믿고. 내 일에 대해서는 내가 사장이다. 어떤 일을 내가 막지 못하면 뒤에서 봐줄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이제는 오히려 거래상대에게 10분 안에 결정하여 답신하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김회장은 또한 매사를 담담한 마음으로 일하지만 경쟁을 피하지는 않는다. 그는 바다의 비행기라고 불리는 초고속선 코비 5호를 운항하는 미래고속을 경영하고 있는데, 이 배는 평균속력 43노트(시속 80킬로미터)로 부산과 규슈간 210킬로미터를 2시간 50분만에 주파하며 선가가 170억원에 달한다. 이 배를 사서 막상 취항시키려 하니 일본측이 후쿠오카 하카타항에 선석을 제공하지 않아 4년간 무진 고생을 다하였다. 우리나라도 초고속선을 띄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를 악물고 끈질기게 덤벼들었더니 마침내 일본측이 손을 들고 전용선석을 내어 주었고 경쟁을 하던 일본 회사도 공동운항하자고 제안하였다.

 

코비5호가 4월 12일 대한해협에서 고래로 추정되는  부유물체와 충돌하여 사상자가 발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났다. 대한해협은 고래가 지나다니는 길목이어서 살피면서 운항하였고 고래도 위험감지 본능이 있음에도 고래와 선박 모두 피해가지 못한 것 같다. 지금까지 난관을 헤쳐 나온 김회장이 이번에도 잘 극복하리라 믿으며, 충돌방지 장치를 개발하여 근본적인 문제도 해결하기를 바란다. 한번 마음먹은 것은 꼭 해내고 마는 그의 근성을 ‘칼의 노래’, ‘불멸의 이순신’, ‘난중일기’ 같은 이순신 전기를 읽으며 키웠다고 한다. 책은 평생의 스승이다.


우리 해운업계에 몸으로 부딪히며 일하는 CEO들이 늘어나고 있어 뿌듯하다고 어느 해운원로가 말했다. 바다를 향한 그들의 꿈과 열정이 해양대국(海洋大國)으로 가는 디딤돌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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