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운노조 상용화 원년, 시행과 경과, 의미

 

해운선진국 상용화 시행후 약 50%의 인력절감 효과

부산항에 이어 인천과 평택도 상용화 급물살

 

지난 해 여름 개봉했던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에선 고등학생인 주인공이 항구에서 짐을 나르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엄밀히 이야기 하자면 이 상황은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가능하게 되었다. 지난해 11월 9일 ‘부산항 인력공급체제 개편을 위한 노․사․정 세부협약’이 체결된 데 이어, 같은 달 17일에 이에 대한 노조 찬반투표에서 77.1%의 지지를 얻어 항만인력공급 상용화가 최종 확정되어 올해 1월 1일부터 시행되게 되었기 때문이다.

 

100여년에 걸친 독점적 항만인력 공급 체제

우리나라 항만 노동의 역사는 19세기 후반 개항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1800년대 말 우리나라에 진출하기 시작한 일본의 항만하역업체들은 부산과 인천 등지에 ‘창신조’나 ‘수신조’같은 노동공급거간기관을 설립하고 이를 통해 일본 하역회사에 노동자들을 공급하였다. 이러한 항만하역노동력 공급형태는 거의 제 모습을 유지한 채 이어져 오늘날 항운노조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 때문에 지난 1897년 청진항에서 노조가 결성된 이후 100년간 이 같은 노무공급체계가 유지돼 이번 항만 상용화가 100년만의 노무제도 개편이란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현재 전국 항만근로자는 약 2만 2천여명으로 집계되고 있는데, 이들은 소속에 따라 크게 하역업체 소속의 근로자와 항운노조 소속의 근로자, 이 두 집단으로 나눌 수 있다. 하역업체 소속의 근로자들은 전체 근로자의 절반정도인 1만1천여명 정도이며, 주로 장비 운용이나 현장관리와 같은 전문적인 분야에 종사 중이며, 나머지 절반인 약 1만1천여명은 항운노조 소속으로 단순 노무 작업위주로 종사하고 있다. 그리고 항운노조 소속의 근로자들을 하역업체에서 고용하려면 필요한 건마다 노조측에 수시로 인력 요청을 해야만 했다. 또한 항운노조는 ‘클로즈드숍(Closed shop)’형태로 운영되고 있는데, 이는 일정 분야의 노동시장에 취업하기 위해선 노동자가 반드시 노조에 가입해야 하는 규정으로 노조가 노무 공급을 독점할 수 있도록 허용한 제도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독점을 인정해 주는 일은 흔치 않아서 다른 노조에는 이 제도가 금지되어 있으나 항운노조만은 노동부로부터 ‘근로자공급사업허가(직업 안정법)’를 취득하고, 항만물류협회와의 단체협약을 통해 이 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는 항만하역노동이 파동성과 계절성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이를 해소하고 안정적인 노동력 공급을 위해서 영국이나 미국 등지에서도 실시되어 왔다. 이 때문에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의 주인공이 공식적으로는 항만에서 노동 아르바이트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 항만노무공급 관련규정 >

󰋮 직업안정법 제33조제1항 (근로자공급사업)

­ 노동부장관의 허가를 받지 아니하고는 근로자공급사업을 하지 못한다.

󰋮 직업안정법시행령 제33조제2항 (근로자공급사업 허가대상)

­ 국내공급사업 :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에 의한 노동조합

­ 국외공급사업 : 제조업․건설업․용역업 기타 서비스업을 행하고 있는 자

․ 허가의 유효기간 : 3년 (만료일 30일전까지 갱신)

 

이러한 역사적․제도적 상황으로 인하여 사실상 항운노조는 독점적 지위를 확보한 인력공급회사 역할을 하고 있었다. 물론 법률상으로는 복수 항운노조의 설립을 통해 독점을 해소하는 것도 가능했다고는 하지만, 기존 노조의 뿌리 깊고 막강한 영향력으로 인해 복수노조의 실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이와 같이 항운노조에 귀속되어 있던 일용직 인력을 하역업체에서 정규직으로 고용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항만노무인력 상용화’의 주 골자이다.

 

새 시대에 맞는 노무공급체제 개편 필요성

과거 항만 하역이 전적으로 인력 중심이었던 때에는 항운노조가 필수적이었으며, 많은 긍정적 역할을 맡아왔다. 불규칙한 하역물동량에 대해 노․사가 위험을 공유할 수 있어 항만하역노동력의 안정적 공급과 고용안정에 기여해 왔으며, 항운노조가 노무관리에 관한 전반적인 사항을 관장함으로써 하역업체에서는 노사협상 부담이 경감되는 효과도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화물이 컨테이너 등의 규격화된 형태를 띠면서 하역작업 또한 기계화․현대화되었기 때문에 새로운 항만물류환경에 발맞추어 현행 항만노무공급체제에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중심으로 ‘항만노무공급 인력 상용화’는 1990년대부터 꾸준히 논의되어 왔다.

 

현재 항운노조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받는 것은 바로 비효율성이다. 독점적 노무공급권으로 인하여 항운노동조합은 여러 항만물류기업들보다 우위적 지위를 가지게 되어 항만물류기업의 자율적인 고용권을 제한하게 됨으로 인해 합리적인 경영을 저해하는 문제도 야기하였다. 또한 신설부두에 대한 노무공급권 손실보상금이나, 현대화 및 자동화를 위한 장비 도입시 실업보상금을 요구하는 등 항만 발전에 역행하는 비합리적 관행도 이어졌다. 이런 상황은 항만 노무 인력의 지속적인 투입을 위해 항만의 현대화와 기계화를 늦추고 과잉인력을 하역작업에 투입시켜 여러 가지 불필요한 추가 비용을 발생시킬 뿐만 아니라 항만의 생산성을 저하시키고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주요한 원인이 되고 있었다. 또한 해외기업의 국내진출과 외국자본 투자에 있어서 주목하는 부분 중 하나가 바로 노사문제인데, 현행 항만노무공급체제의 이러한 문제점은 외국자본 투자에 있어서 불안요소 중 하나로 지적되어 외국선사 및 다국적 물류기업 유치에 난항을 겪게 하는 장애요인이었다. 뿐만 아니라 클로즈드샵 형태로 인하여 비리 발생 우려가 심화되던 가운데, 2005년 3월에는 실제로 항운노조 비리 문제가 여론의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항만 노무 공급체제 상용화의 필요성은 우리와 같은 항운노조 체제에서 상용화 체제로 변경한 많은 국가들의 사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영국과 프랑스는 각각 1989년과 1992년에 항만노무법과 항만 개혁법을 도입하여 법률로 기존 항만노조 위주의 노무공급 독점권을 폐지하고 정부가 항만파업 등에 강력히 대처해 항만 상용화를 정착시켰다. 호주는 1996년 노동시장 개혁수정법을 도입하면서 노무공급독점권을 폐지하고 하역회사에게 항만노무 관리 책임을 이양하였으며, 아시아권에서는 대만이 1997년 항만 운영자체를 민영화시키는 작업과 더불어 민간 하역회사가 고용을 보장해주는 방식으로 상용화를 이루었다.

 

상용화를 도입한 국가들은 정부를 중심으로 상용화를 추진하였으며, 상용화로 인하여 발생하는 문제점들은 노․사․정 합의를 통해 해소함으로서 현재 운영인력 감소와 물류비용 절감, 항만 생산성 향상 등의 큰 효과를 누리고 있다. 상용화 이후 영국은 52%, 호주 50%, 뉴질랜드 33%의 인력절감 효과를 나타내고 있으며, 항만시설 확충과 장비 현대화를 통한 생산성 증대로 선박의 항내 체류시간이 최소 14%에서 최대 100%까지 단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사례들로 미루어 보아도 항만 상용화는 피할 수 없는 현안이 되어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항만상용화의 진행 경과

이러한 개편의 필요성에 따라 항운노조, 하역업체, 해양부 등 항만분야의 노․사․정은 오래 전부터 항만노무공급체제의 상용화에 대해 논의해왔으나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항운노조의 채용비리 문제가 불거지면서 상용화 여론은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다각적인 협의 끝에 2005년 5월 6일 노․사․정 협약을 통하여 항만별로 노․사․정 합의에 의한 체제 개편과 부산․인천항에 우선적으로 도입한 후 단계적으로 확대한다는 방안을 협의하였다. 같은 해 6월 임시국회에서 박승환 의원(한나라당)을 통해 특별법안을 제출했으나, 항운노조의 반발 등으로 심사가 보류되고 항운노조측의 입장을 반영한 김재원․배일도 의원(한나라당)의 법안이 제출되는 등 많은 재고 끝에 12월 1일 특별법이 제정되어 고용․정년・임금 등 근로조건을 법률적으로 보장하고 생계안정지원금 및 부족퇴직금을 융자 받을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게 되었다. 2006년 6월에는 시행령을 제정하여 미보장 업체 제재조치 등 근로조건 보장 방안을 구체화하고 최대45개월, 15년미만 연간 6%차감을 기본으로 하는 생계안정지원금 지급기준과 개편위원회 구성 및 의결 등 운영방식 규정하였다.

이어서 7월에는 부산항 인력공급체제개편위원회와 실무개편협의회를 구성, 세부 협상의제에 대해 노․사․정간에 15차례에 걸친 협상을 거쳐 같은 해 11월 9일 임금방식과 근로형태 변경, 근로조건 보장 등을 골자로 한 세부협약이 체결되었다. 세부 협약서에서는 상용화되는 인력에 대해서는 완전고용과 정년(만60세)을 보장함으로써 특별법 상의 근로조건 보장사항을 구체적으로 재확인하고, 상용화되는 인력에 대한 임금수준은 올해 4월~6월 3개월간 월평균임금으로 하고 월급제 형태로 지급하기로 했다. 또 현행대로 반별 순번제와 현 작업장을 유지키로 해 상용화 초기 체제 개편으로 인한 노․사 양측의 변화를 최소화하고, 퇴직금 지급기준 조정, 항만현대화기금을 통한 지원, 대체부두 제공 등 상용화 인력의 후생복리 및 고용안정을 위한 지원방안도 마련되었다. 아울러 상용화 체제의 안정적인 정착과 상용화 인력의 고용안정을 위해 필요시 부두임대기간 연장, 부두임대료 감면 등 부두운영회사를 지원하는 방안도 마련되었다.

 

부산항운노조는 세부협약이 체결된 달 17일 상용화 대상인 북항 중앙과 3, 4, 7-1 부두, 감천항 중앙부두에서 일하는 항운노조원들을 대상으로 찬반 투표를 실시해 1022명중 97.8%인 1000명이 투표에 참가하고 77.1%인 777명이 협약서에 찬성하여 세부협약 내용이 통과되었다. 11월 세부협약이 통과된 이후 각 부두회사와 노조지회는 구체적인 임금수준과 후생복리, 작업형태 등을 확정하기 위한 개별협상을 벌여 12월 말일까지 전체노조원 퇴직금 지급 문제와 희망퇴직자 신청 및 생계안정지원금 제공, 그리고 업체와 고용계약을 체결하는 등의 세부절차를 완료시킨 뒤 2007년 1월 1일부터 정규직인 하역회사별 상시고용체제를 본격 도입하였다.

 

상용화에 따른 기대효과와 향후 진행 방향

먼저 항운노조원은 일용직 근로자에서 항만물류기업의 정규직원이 되므로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련 법령의 적용 대상이 되어 고용보험 등 4대 보험, 유급휴가 혜택 등을 받게 되었으며 종종 발생하던 인사 관련 비리도 일소되게 되었다.

그리고 항만물류기업은 인력관리와 관련된 부문에서 부두운영에 대한 자율성이 확대되므로 물류비가 절감, 장비현대화 촉진 등을 통해 항만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게 되었다.

국가적 시각으로 보면 우리항만에 대한 대외신인도가 향상돼 외국선사의 신규유치는 물론 다국적 물류기업의 투자유치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며, 구체적으로 항만하역에 투입되는 인력이 향후 30~40% 절감될 것으로 예상해왔는데, 현재 부산항의 퇴직신청자가 실제로 30%수준이라 고무적인 상황이다. 이러한 인력 감소는 항만물류기업과 해운기업 및 화주의 물류비용 절감으로 연결된다. 부산․인천항의 경우 30%의 인력이 감소되면 연간 약 351억원의 물류비용이 절감된다. 또한 기계화를 통해 선박의 항만 내 체류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게되는데, 현재 상용화를 도입한 국가 중 최저의 감소치를 보인 대만처럼 14%만 감소된다고 가정해도 선박운항비용 연간 263억원, 항만시설사용료 연간 8억원 등 연간 271억원의 비용절감을 예상하고 있다. 또한 신설부두 개장시마다 항운노조와의 협상 지연 등으로 발생하던 사회적 부담이 해소된다. 이를 통해 현재 진행 중인 부산항 신항 개장과 북항 재개발의 최대 현안이었던 항운노조 보상 문제가 사전에 해결되어 원활한 사업 추진이 가능해졌다.

 

부산항의 상용화와 함께 인천항도 상용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2006년 9월 4일에는 인천항운노조에서 항운노조원의 고용안정 보장과 회사별 인력배분문제, 노․사․정 공동인력관리기구 설립, 근로감독 실시, 현대화 기금을 통한 항운노조원들의 권익 보호 등을 골자로 한 ‘항만인력공급체제개편 세부협상을 위한 노․사․정 합의서(안)’이 해양부와 잠정 합의되었으며 같은 달 14일 임시대의원 대회를 개최하여 대의원 46명의 찬성으로 합의서를 의결시키고 8명의 협상단을 선출하여 노․사․정 협상에 대비하고 있다. 이어서 19일에는 인천항 인력공급체제 개편을 위한 노․사․정 기본 합의서에 노․사․정 대표가 각각 서명하고 이어 효율적인 개편위원회 진행을 위해 노․사 양측의 합의로 개편위원회 운영규정을 확정시켰다. 또 항만인력공급체제의 개편협상 실무를 담당할 개편협의회를 협의회장(인천청 항만물류과장)을 포함해 노측 위원 8명, 사측 위원 8명, 공익 위원 2명 등 총 19명으로 구성하여 상용화 대상 부두 확정 등 본격적인 협상을 진행 중이다.

 

또한 평택항도 2006년 8월 18일 강인남 평택해양청장을 위원장으로 정부측 1인과 노사측 각각 4명씩 총 9명으로 이루어진 ‘항만인력공급체제개편위원회’를 구성하여 향후 인력배분방안, 임금지급방식, 근로자 권익보호 방안 등 상용화의 세부 쟁점사항들에 대한 협의를 본격화하고 있다.

 

지금도 각 항만의 항운노조 홈페이지에는 조속히 항만 상용화를 도입해 달라는 노조원들의 게시물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띄고 있다. 경영의 자율성과 항만 생산력 증대를 원하는 하역물류업계, 외국의 투자를 위해 국제적인 신뢰도를 높이려는 정부, 고용보장과 비리척결을 바라는 근로자 모두가 원하던 제도가 무리 없는 합의 하에 도입되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이대로 순조롭게 더 많은 항만에 상용화가 도입되어 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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