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예측못한 해외 조선소 진출, 골칫거리?

우리조선업이 세계 1위를 차지하기 시작한 즈음 국내 대형조선사들은 앞다투어 해외 조선소 인수·건설에 나섰다. 값싼 노동력과 넓은 부지로 인한 생산성 강화 및 포트폴리오 다변화가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러나 2008년 말부터 시작된 글로벌 경기침체와 선박 공급과잉으로 시작된 조선업계의 오랜 불황으로, 국내 조선사들은 과감한, 혹은 무리한 해외투자의 부담을 끌어안고 있다. 아직 성패를 논하긴 이르다. 하지만 국내 조선사의 해외 법인들은 투자한 만큼 결과를 내야할 시기가 왔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조선 1위’ 자리를 지키기 위한 국내 조선사들의 노력은 해외 조선소 설립 등 해외진출로 이어졌다. 현대미포조선의 비나신조선소(베트남), STX 그룹의 대련조선소(중국), 한진중공업의 수빅조선소(필리핀)를 필두로, 삼성중공업은 중국 닝보에 선박블록 공장을 운영하고 있고, 대우조선해양은 루마니아에 대우망갈리아조선소를, 옌타이에 선박블록 생산기지인 DSSC를 가동 중이다. 현대중공업은 중국 칭다오에 칭다오현대조선소와 브라질 EBX사의 조선소 건설에 참여하고 있고, STX그룹은 세계 7개국에서 17개 조선소를 운영하는 등 국내 조선사의 해외진출은 활발하게 이뤄졌다.

우리 조선사의 해외진출은 중국과의 패권다툼하에 높은 인건비와 협소한 부지로 인한 운영비 부담이 가장 큰 이유였다. 대표적으로 현대미포조선의 비나신조선소, 현대중공업의 칭다오현대조선소, 대우조선의 망갈리아 조선소 및 DSSC, 삼성의 닝보 선박블록 공장은 핵심 기술력을 국내에 남겨두고 기술적 난이도가 낮은 블록 및 수리조선 부문을 해외 조선소를 통해 해결하고 있는 예이다. 반면 한진중공업의 수빅조선소와 STX조선의 대련조선소는 국내 야드의 협소함으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책이다. 설계 등 각종 기술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야드의 협소함으로 인해 건조선종과 크기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2006년부터 활발하게 이어져온 해외진출이 08년 이후 예상치 못한 글로벌 경기침체, 중국 조선소의 과다 발주로 인한 선박 수주급감 등 악재를 만나면서 일부 해외법인이 ‘골칫거리’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해외진출로 인한 혜택을 충분히 누리기도 전에 부랴부랴 정리부터 해야할 상황에 놓인 회사도 있다.

STX OSV에서 건조하는 해양작업지원선
STX OSV에서 건조하는 해양작업지원선
STX조선의 알짜배기 ‘STX OSV’ 유동성 확보위해 결국 매각?
국내 대형 조선사 중 가장 많은 해외 조선소를 갖고 있는 STX 그룹은 현재까지 7개국에 17개 조선소를 운영하고 있다. 주요 해외 계열사는 STX 대련과 STX 유럽으로 STX 대련은 중국 대련시에 550만㎥의 조선해양생산기지를 운영하고 있고, STX 유럽은 노르웨이(쇼빅니스, 브랏바그, 브레빅, 플로뢰, 오크라, 랑스텐), 루마니아(브라일라, 툴체아), 핀란드(라우마, 투르크, 아크렉헬싱키), 프랑스(생나제르, 로리앙), 브라질(프로마, 니테로이)에서 조선소를 운영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진해, 부산, 고성 조선소를 운영하고 있으니 총 8개국에 20개 조선소를 운영하는 셈이다.

STX 대련은 세계 최대규모의 해양플랜트 생산시설과 연간 100만톤을 처리할 수 있는 강재처리 가공공장을 갖고 있을 정도로 거대한 시설을 지니고 있다. STX 유럽은 크루즈 및 페리선, 해양특수선 등을 건조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크루즈와 페리선은 핀란드와 프랑스에서, 해양특수선(OSV)는 노르웨이에서 건조되고 있다.

STX대련 조감도
STX대련 조감도
STX그룹은 대련조선소 건설에 3,000억원을, STX 유럽 인수에는 약 1조 8,000억원을 투자하는 등 대규모 인수작업을 실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STX 대련의 경우 기술 인력 및 노동력 확보에 유리하며 인건비가 저렴하다는 것이 장점이다. 또한 넓은 부지의 이점으로 극초대형 컨테이너선에서 대규모 해양플랜트까지 건조가 가능해 다양한 선종을 건조할 수 있다. STX 유럽은 고부가가치 선박을 중심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STX 핀란드는 세계 3대 크루즈 메이커이자 쇄빙선 부문에서 세계시장의 60%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고, STX OSV는 세계 시장 점유율 1위의 해양시추지원선과 해양작업지원선을 생산하고 있다. STX 그룹 관계자는 “한국의 경우 생산 효율성과 고부가가치 상선 및 해양플랜트 분야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고, 대련은 가격경쟁력과 일관생산체제의 장점이 있다. STX유럽은 크루즈 및 해양특수선 분야의 독보적인 점유율과 기술력으로 STX그룹 조선분야의 시너지 극대화에 기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 조선소를 인수하고 투자하면서 생긴 재무부담과 조선시장의 불황이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STX가 이들 조선소를 인수한 시점은 2006년(STX 대련), 2008년(STX 유럽)으로 조선사의 초호황시기이자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이었다. 이후 불어닥친 금융위기와 수주감소로 인한 실적 저하로 인해 모회사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발간된 ‘조선사해외진출현황(하나금융경영연구소)’에서는 “조선시황 악화로 인해 해외조선소 정상화 시기가 지연되고 있다”면서, “금융위기 이후의 수주가뭄과 호황대비 20~30% 하락한 선가는 해외조선소 인수시 고려되지 않았던 부문이고, 낮은 인건비로 수익성이 극대화될 것으로 예상했던 바와는 달리 낮은 생산성에 따른 적자 누적은 모회사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지적됐다. 또한 “최근까지 누적된 적자로 인해 부채상환이 어렵게 됨가 동시에 대규모 차입에 의한 이자비용 또한 향후 수익성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여기에 맞물려 업계에서는 ‘STX OSV 매각설’이 나돌고 있다. STX OSV는 해양작업지원선과 해양시추지원선 등 향후 발전가능성이 높은 특수선을 건조하고 있으며,  지난해 STX 조선해양의 실적개선에도 상당한 역할을 했다. STX 대련이 상선 수주감소와 저가 수주로 인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가운데 STX OSV는 동 그룹 조선분야의 ‘알짜배기’ 노릇을 한 것. 한 관계자에 의하면 “STX OSV는 이탈리아 조선소인 핀칸티에리-칼라일 컨소시엄에 매각될 것”이라면서, “대규모 투자와 수주 부진으로 인한 유동성 해결을 위해 OSV를 1조원 가까운 금액에 매각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전했다.

대우조선 망갈리아 조선소
대우조선 망갈리아 조선소
대우조선
망갈리아, 산둥유한공사 수주 중단
대우조선해양은 현재 루마니아의 대우망갈리아조선소(DMHI)와 중국 옌타이에 산둥유한공사(DSSC)를 운영하고 있다. 망갈리아조선소의 경우 약 92만㎡의 부지에서 중소형 ‘컨’선과 벌크선을 위주로 사업을 진행했으며 DSSC는 동사의 블록생산을 목적으로 2005년 설립돼 지난해부터는 신조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대우조선해양의 두 해외 법인도 지난해부터 극심한 수주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망갈리아조선소의 경우 작년(’11년) 5월 이후 수주실적이 ‘제로’이며, 지난해 신조사업을 시작했던 DSSC도 최근 신규 선박수주를 잠정 중단했다.

이와같은 해외 법인의 부진은 대우조선해양의 실적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개된 대우조선해양의 1분기 영업이익을 살펴보면, 국내법인의 별도 영업이익은 1,837억원인데 비해 연결 영업이익은 1,812억원이다. 한 조선사 관계자는 “해외법인의 손실이 계속 늘어나고 있고, 망갈리아 조선소의 경우에는 총 자산보다 부채가 많은 상태”라고 지적하며, 대우조선해양의 해외법인의 부진을 전했다. 하나금융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해외법인은) 단순한 비용 문제외에도 기업가치 하락으로 인해 모회사의 골칫거리로 전락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대우망갈리아조선소는 현재 대우조선해양 M&A 시장에서 최대 디스카운트 요인”이라고 평가했다.

한진중공업의 베트남 수빅조선소
한진중공업의 베트남 수빅조선소
한진重,
영도조선소 정상화 언제쯤?
수빅조선소 저가수주 우려
STX와 대우조선이 해외 조선소의 부진에 시달리고 있는 것에 반해 한진중공업은 수빅조선소로의 수주 쏠림이 우려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진중공업은 영도조선소의 지리적 협소함으로 초대형선 건조가 힘들어지자 필리핀 수빅에 조선소를 건립하며 해외진출에 나섰다. 2006년 5월 총 12.8억불을 투자해 착공된 수빅조선소는 중국보다 싼 인건비, 넓은 부지가 강점으로, 한진중공업은 대형 선종 및 상선을 수빅조선소에서 건조하고, 특수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을 집중 건조하겠다는 포트폴리오를 내놨다.
문제는 애초의 포트폴리오와는 달리 영도조선소가 거의 ‘폐업상태’에 있다는 점이다. 2010년 이후 영도조선소의 수주실적은 지난해 군수지원정 2척을 수주한 것 빼고는 전무한 실정으로, 2008년 이후 상선수주는 ‘제로’에 머물고 있다.

한진중공업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은 영도조선소의 정상화이다. 지난 3년간 큰폭으로 하락한 실적은 수빅조선소의 수주잔고로 버티고 있지만, 영도조선소의 정상화없이는 예전의 명성을 되찾기 힘드리라는 분석이다. 우선 한진중공업은 LNG선박과 특수선 수주를 통해 영도조선소 살리기에 힘을 쏟는다는 계획이다. 그러기 위해선 일감부족으로 휴업상태인 600여명의 근로자 문제를 우선 해결해야한다는 지적이다.

한편에선 수빅조선소의 저가수주에 대한 우려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 한진중공업은 유럽 소재 선주사와 5,000teu급 컨테이너선 10척을 4억 5,000만불에 계약했다고 밝혔다. 침체 상태에 있던 한진중공업 수주 상황에서 간만에 들려온 반가운 소식이었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다. 업계 한 관계자는 “5,000teu급 컨선을 4,500만불에 수주했다는 것은 그만큼 저가 수주가 이뤄졌다는 것”이라며, “5,000teu급 ‘컨’선의 마지노선은 5,000만불인데, 500만불이나 적은 금액에 수주한 것은 한진중공업이 당장의 마진보단 기업 이미지 개선과 수주잔량 부족 해결을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현대미포조선의 비나신조선소
현대미포조선의 비나신조선소
현대重·삼성重,
조선분야 해외진출 최소화..
비조선은 해외에서
STX, 대우조선, 한진중공업이 해외 조선소를 인수한데 비해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은 조선분야에서는 최소한의 해외진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중국 닝보에서 선박블록 공장을 통해 블록 및 수리조선 부문을 해결하고 있으며, 주요 선박건조는 국내 조선소를 통해 진행하고 있다. 지난 2008년에는 브라질 조선소인 EAS에 10% 지분투자에 참여한 바도 있지만 최근 EAS가 경영위기에 봉착하자 지분을 매각하기도 했다.
현대중공업도 칭다오에 위치한 현대칭다오조선소를 통해 수리조선업과 블럭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브라질 최대 민간기업인 EBX사의 조선소에 10% 지분참여로, 2014년 완공될 예정인 동 조선소에 설립 기술을 전파하는 등 최소한의 조선분야 해외진출을 진행하고 있다.

반면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은 비조선 부문의 역량을 해외 사업을 통해 육성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브라질에 건설장비 생산법인을 설립하고 올 하반기 준공식을 가질 예정이다. 동사는 총 1억 5,000만달러를 투자해 리우데자네이루에 설립하는 이 공장을 통해 연간 2,000여대의 굴삭기와 지게차, 백호로더 등을 생산할 계획이다. 또한 러시아에서는 고압기 공장을 건설 중이다. 동 공장은 연간 110kv~500kv급 고압차단기를 250여대 생산할 수 있는 규모로 지난해부터 러시아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전력시스템 현대화 정책을 보조하고 있다. 이외에도 지난해 11월에는 중국 산둥성에 휠로더 공장을 준공했으며, 미국 현지에 변압기 공장을 준공해 세계 최대 변압기 시장인 북미지역 공략을 꾀하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풍력발전설비사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삼고 유럽시장 공략에 적극 나서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올 2월말 스코틀랜드 국제개발청 및 파이프(Fife)주의회와 해상풍력 발전 사업 협력에 관한 의향서(MOU)를 체결하고, 파이프주 해안에 7㎿급 해상풍력발전기와 송전망 시설도 건설할 예정이다. 스코틀랜드 해안은 바람이 강하고 균일하게 불어 해상풍력발전의 천혜 요지로 알려져 있다. 삼성중공업은 이번 스코틀랜드 풍력발전시장 진출을 발판 삼아 향후 해상풍력발전기 제품 국제인증을 획득, 유럽 해상 풍력시장의 30%를 차지하고 있는 영국 풍력발전시장 진출을 달성한다는 목표다.

삼성중공업은 해외 조선소 지분 투자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남미 시장 공략을 목표로 2006년 브라질 아틀란티코조선소 건설에 참여했다. 당시 체결한 전략적 제휴계약으로 삼성중공업은 이 조선소에 △조선소 건설기술 지원 △선박건조 도면을 제공하는 한편 지분 10%를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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