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소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원장
김학소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원장

전쟁의 기술이라는 책을 읽어 보면 대전략과 대정책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소규모 전투에는 지더라도 전쟁에서는 이길 수 있도록 전략과 정책을 큰 틀에서 가져가야 한다는 것이다. 궁극적인 승리를 위해서는 더 큰 목표에 초점을 맞추고, 적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하며 상대방의 뿌리를 강타하여야 한다.


최근 해운시황은 1980년 이래로 최악의 상황에 처해 있다. 올해들어 1,624포인트에서 시작된 BDI지수는 최근 3개월간 850포인트 수준에서 머물고 있다. 해운운송 서비스의 원가수준은 BDI기준으로 1,500포인트라고 한다. 현재의 운임수준은 운항원가에 미달하기 때문에 선박을 운항하면 할수록 손해를 보는 상황이다. 해운시황이 최악의 상황에 이르게 된 원인은 미국발 금융위기, 유럽의 재정위기 등으로 세계경제가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2000년 이후 해운시장의 붐을 조성해왔던 중국경제 효과도 그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어 작금의 해운불황이 쉽게 회복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이러한 여파로 우리나라 해운업계도 해운불황기인 지난 4년간 폐업이나 등록을 취소한 회사가 60여개에 이르며 2011년 상반기 이후 법정관리 신청이 증가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해운기업은 운임하락, 유가상승, 현금부족의 3중고를 겪고 있다. 여기에 금융권의 대출축소, 선박금융의 지속적 위축, 선박대출금의 환수 등으로 유동성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과거 해운시황과 관련하여 우리나라와 외국의 선박확보 행태를 비교해보면 우리나라에서는 해운산업에 대한 ‘대전략’과 ‘대정책’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경쟁국들은 선가가 낮은 불황기에 많은 선박을 구입하는데 비하여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선가가 높은 시점에서 더 많이 구입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BDI지수가 1,500이하의 아주 낮은 상황이었던 2000년부터 2002년까지 한국은 51척의 중고선을 확보했으나 독일은 109척, 노르웨이는 122척, 그리스는 714척을 확보하였다. 그리고 2009년부터 2010년간 BDI지수가 2,600에서 2,700수준의 시점에서 우리나라는 73척을 확보하였으나 노르웨이 83척, 그리스 426척, 중국은 365척을 매입하였다. 그러나 BDI수준이 6,390에서 7,070을 기록한 호황시기였던 2007년부터 2008년까지는 우리나라가 163척, 독일이 147척, 노르웨이가 177척을 확보하였다.  


 그 동안 우리나라 해운산업은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룩해왔고 수차례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면서 세계 5위의 해운강국을 달성하였다. 오늘날의 어려움도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한 고통이라고 생각하고 인내하면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해운산업이 세계시장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장단기적인 관점에서 전투에서도 이기고 전쟁에서도 이길 수 있는 대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무엇보다도 현재의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정부의 직접적인 개입과 기업의 시장주도 역량개발이 필요하다. 먼저 초단기적인 대책으로서 해운기업의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기위해 해운기업이 자사의 예상수입을 미리 활용할 수 있는 정책, 즉 운송료 유동화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해운기업이 미래에 확보할 수 있는 운임을 금융기관이 확보하고 이를 담보로 금융기관에서 해운기업이 필요로 하는 운전자금을 제공하여 유동성을 확대해주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채권담보부 증권(Primary CBO)의 발행을 지원하는 것이다.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다수의 해운기업들의 회사채를 하나로 묶어서 증권회사가 인수하고 이를 SPC에 판매하면 SPC가 이를 채권담보부 증권을 발행하여 금융시장에 흡수시키는 것이다. 이 제도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SPC에 대한 정부의 지급보증이 필요하다.


세 번째로는 ‘선박은행(Tonnage Bank)’을 설립하여 운영하는 것이다. 해운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과잉선박을 선박관리회사가 사들여 별도로 관리하면서 처리해나가는 제도이다. 해운기업이 가지고 있는 선박중 손실이 발생하는 선박을 처리하거나 선박금융을 조달하거나 중고선으로 매매하는 사업을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해운기업들이 출연하거나 기금을 조성하여 회사를 설립할 수 있다. 이러한 Tonnage Bank의 설립과 함께 고려해보아야 하는 제도가 벌크선 Pooling 운항제도이다. 우리나라 벌크선대의 세계시장점유율은 16%가 넘는 실정이다. Tonnage Bank(선박은행)에서 확보하게 되는 선박을 운항하는 회사를 만들어 전략적인 운임으로 장기계약을 수주하거나 비용경쟁력의 취약으로 외국에게 빼앗기고 있는 석탄, 철광석, 원유 등의 국내수입을 회복하고 중국, 인도, 일본 등의 원자재확보시장에서 저가경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과 정부는 다음과 같은 정책과제를 수행하여야 한다. 첫째, 우리나라 해운기업이 해운시황을 역이용하는 선박매매 비즈니스를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중고선의 매매뿐만 아니라 장기운송계약과 사모펀드를 이용하여 신조선을 발주하고 건조중인 선박을 매매하는 등의 비즈니스를 통하여 선박매매 차익 등 재무적 건전성을 확보하여야 한다.


둘째, 선박금융 전문기관을 설립하여야 한다. 선박금융기관의 설립에 대해서는 금융권에서 해운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잘 추진되지 않고 있으나 장기적으로 반드시 설립하여 해운업의 안정적인 자금확보 창구가 되어야 한다.


세 번째로는 해운기업은 스스로 사업다각화를 추진하여야 하며 정부는 이를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확보해 주어야 한다. 해운불황기를 견딜 수 있는 사업군을 찾아 사업의 포트폴리오를 새롭게 구성하여야 한다. 선박금융, 선박매매, 선박용선, 해사중재, 선박보험, 해운컨설팅, 해양자원개발, 해양플랜트, 조선, 금융, 무역 등과의 연계 융합전략을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끝으로 현재 불황에서 신음하고 있는 해운산업을 살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유동성위기를 해소시켜주어야 한다. 유동성 위기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은 신용대출과 신용보증이다. 국책은행과 공공기관에서 자금지원과 지급보증을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의지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금융권 해운업계, 정부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특단의 대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과거 그리스 정부에서는 해양부장관과 예산당국이 협조하여 은행권의 대출금회수를 자제하도록 조치한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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