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교 법과대학의 해상법 교수인 김인현씨가 안식년을 맞아 올해 1월부터 싱가폴 국립대학의 펠로우 및 방문교수로 싱가폴에 체류 중이다. 싱가폴 현지에서 그곳의 해상법과 해운산업을 체험하고 있는 김인현 교수에게서 ‘싱가폴 해상법 교실’이라는 주제로 싱가폴 현지의 생생한 관련 이야기들을 기고받아 연재한다. 김 교수는 이전(2003-04년)에도 미국텍사스대학(오스틴)에서 석사과정을 이수하던 시절 ‘미국해상법 교실’이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한 바 있다.                                  -편집자 주-

 
 
들어가며
필자는 1월 18일부터 싱가폴 국립대학(National University of
Singapore:NUS)에 펠로우(fellow: 교수대우)로 와있다.
교수들에게는 6년에 1년간 혹은 3년에 6개월간 안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말하자면, 3년 혹은 6년간 강의하고 연구하느라고 지친 몸과 마음을 식히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가오는 3년과 6년에 대비하여 새로운 학문을 익히고 준비하라는 의미도 포함된다. 필자는 영국, 일본, 싱가폴을 두고 고민을 하게 됐다. 친구인 일본 동경대학교의 후지다(藤田) 교수에게 연락했지만, 학장이 허락은 하지만 법대건물이 수리 중이라 4월말까지 연구실을 줄 수 없다고 했다. 영국의 캠브리지 대학의 말콤 클락(Clark)교수를 접촉하였으나 이미 은퇴하여 방문교수를 더 이상받지 않는다는 답이 왔다. 그는 보험법과 운송법에 조예가 깊은 분이기 때문에 연구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으나 이러한 답을 받고 보니 아쉬움이 컸다.

NUS가 후보지의 하나가 된 것은 거빈(Girvin)교수의 존재이다. 나와 그는 이미 여러번 만나서 해상법에 대한 열정을 공유하게 되었다. 그를 통하여 NUS가 해상법에 대한 다양한 강좌를 개설하여 동남아는 물론 유럽 등의 학생들을 유치하면서 해운무역관련 법률 서비스의 중심지가 되고자 노력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나라와 유사한 환경에 있으면서도 해상법이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이 나라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가 법과대학 및 로스쿨에서 대륙법을 바탕으로 한 해상법과 해상운송법(영어강좌)를 개설하고 있지만, 실무에는 영국법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기 때문에 NUS에서 개설되는 영국법 중심의 다양한 해상법 강좌를 벤치마킹할 필요성을 느꼈다.

싱가폴의 물가가 엄청 비싸기 때문에 혼자 있어도 한달에 200만원은 든다고 하고 또 날씨가 너무 더워서 견디기 힘들다는 주위의 조언도 있었다. 지도 교수님께서는 해상법의 종주국이고 정통인 영국을 가야지 왜 변방인 싱가폴을 가느냐고 반대의 의사를 표시했다. 그러나 필자의 견해는 달랐다. 영국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다녀왔고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여야 한다. 지리적으로도 인종적으로도 가까운 싱가폴에서 해상법을 공부하는 것이 미래의 해상법 학도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해기사 출신들이 현재 100여명 이상이 싱가폴에서 해운조선 관련업무에 종사하고 있다면 이는 필경 무언가 좋은 점이 있기 때문이고 이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충동이 많이 일었다. 이렇게 하여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싱가폴에서의 해상법 공부를 하러 떠나는 프론티어가 되었다.  

펠로우와 방문교수 신청과 선정  
2011년 9월 중순 드디어 방문교수를 신청 하게 됐다. 2012년 학기가 1월달에 시작하여 4월말에 종료되어 방문교수는 1월 중순부터 4월말까지 가게 된다. 9월 30일 새벽에 일어나보니 갑자기 NUS 법과대학의 아시아법연구소(ASLI)에서 Fellow 초청제도가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래서 홈페이지에 들어갔더니 그날이 마지막 서류 제출일이었다. 비록 기간은 1개월간이지만 왕복 항공권, 아파트 제공, 연구실제공, 연구비 제공 등 꽤 좋은 조건이 걸려 있었다. 불이나케 서류를 작성하여 보냈다. 10월 중순이 되자 운이 좋게도 Fellow로 선정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그리고 곧 방문교수도 결정되었다. 그러니까 2012년 1월 18일부터 2월 17일까지는 펠로우의 자격으로 그 다음부터 4월 28일까지는 방문교수(visiting professor)로 NUS 법과대학에서 연구도 하면서 해운·조선산업을 둘러보고 또 쉴 수도 있게 되었다.

대학교수가 좋은 점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5년 혹은 6년에 1년을 연구년 혹은 안식년을 할 수 있는 것은 큰 혜택이다. 이러한 제도 중에 맹점도 있는 것이 학교를 이동하게 되면 새로이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필자는 목포해양대학 교수시절 미국에서 2003년 8월부터 2004년 6월까지 텍사스 대학 오스틴에서 LLM 과정을 밟은 적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2009년 9월부터는 다시 1년간의 연구년을 가졌어야 하지만, 2007년 9월부터 부산대학으로 이동하고, 또 고려대학에 2009년 3월부터 근무하였기 때문에 그 사이에 있었던 근무기간에 대한 것은 모두 자격을 잃게 되었고 2009년 3월부터 계산이 시작된 것이다. 제도의 보완이 아쉽다.

해상법 수업
소중한 기회를 얻은 것인데 밋밋하게 안식년을 보낼 수는 없었다. 연구하는 것은 나름의 계획이 있지만, 개설되는 수업을 들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외국학생들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영어로 강좌가 운영되는 해상법전문 석사과정이 개설되어야만, 한국 해상법이 세계 속에 우뚝 설수 있기 때문에 한국의 해상법 교수로서 필자에게는 더욱 영어강좌가 간절하게 다가왔다. 연락을 했더니 정식으로 등록해야 한다고 한다. 얼마인가 물었더니 한 강좌에 90만원 정도 한다는 것이다. 교수한테 너무한다 싶었다. 대상과목을 보니 5-6개 강좌가 된다. 그 중에서도 용선계약(Charter Parties)과 해상보험(Marine Insurance Law) 두 과목을 택하였다. 용선계약에 대하여 우리나라의 법과대학에서는 사실상 당사자와의 법률문제는 가르치지 않는다. 그런데 항해용선 및 정기용선계약을 둘러싼 선박소유자와 용선자 사이의 법률분쟁이 심심치않게 발생한다. 용선계약의 준거법이 영국법이기 때문에 필자로서는 이번 수업은 부족한 부분에 대한 보완이 될 것이었다. 그리고 해상보험수업은 영국 해상보험법을 실무변호사를 통하여 들어보는 것도 많은 공부가 될 것 같았다. 

싱가폴에 대한 첫 인상
정교수로 재임용이 되었다는 기분좋은 통보를 받은 다음 1개월의 Fellow기간을 보내기 위해 1월 17일 비행기를 타고 숙소에 도착했다. 비서들이 나와서 오리엔테이션을 하여주었다. 동료교수가 세명이 더 있다. 서울대학교의 조홍식 교수(공법), 말레이시아의 충 및 쥬 교수이다. 클레멘티 역전에 가서 에어콘이 없는 식당, 슈퍼마켓 등을 가르켜 주고 간단히 저녁식사를 하였다. 굉장히 덥고 습도가 높다. 하필이면 가장 더운 3시경에 우리를 데리고 에어콘도 없는 곳에 가서 다녔다. 큰일났다 싶었다. 너무 더웠다.

NUS는 캠퍼스가 둘로 나위어 있다. 하나는 대규모의 캔트리지(Kent Ridge) 캠퍼스이고 하나는 부킷티마(Bukit Tima) 캠퍼스이다. 원래는 말레이시아 대학 싱가폴 분교로서 현재 부킷티마 캠퍼스만이 있었다. 그러다가 학교가 팽창하면서 캔트리지에 새로운 건물을 지어서 모두 이사왔다가 다시 법과대학과 행정대학은 부킷티마로 이동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다음 날 부킷티마 캠퍼스로 가기 위하여 학교 버스인 BTC1을 탔다. 30분 정도 가니 학교건물이 하나 나왔다. 영화에서 봄직한 낮은 지붕에 주황색 색깔의 지붕을 가진 페드럴(Federal) 빌딩은 고즈늑한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사람을 편안하게 하였다(첨부 사진참조). 4각형의 건물이 두 개가 붙어있는 형식이다. 여기가 아시아의 최고의 명문이라는 NUS의 법과대학이다. 나중에 현지인의 말을 들어보니 우리나라에서는 NUS 경영대학이 최고로 알려져 있지만, 법과대학이 더 우수한 학생들이 선호하는 곳이라고 한다. 여기에서도 의대와 법대가 단연 최고의 학부라고 한다. 법대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상위 1-2%에 속하는 학생들이라고 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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