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와 TPP 갈등 시나리오

KOTRA가 76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무역관들의 눈과 귀를 통해 파악한 전세계 경제활동 현장의 ‘90여개 이슈’를 생생하게 전달한 ‘2012년 세계경제’를 발간했다. 현재 전세계 산업계가 바라보고 있는 관심사를 ‘현장감’있게 정리한 이 책은 우리나라 기업들의 비즈니스 동향과 트렌드를 파악하는 나침반 역할을 할만큼 환경과 관점이 서로 다른 85명이 정치, 경제, 기술, 산업, 문화 등을 넘나드는 다양한 주제로 집필한 내용이 담겨 있다. 세계경제 환경의 큰 변동성과 불확실성으로 인해 각종 전망이 맥없이 폐기되는 현실 속에서 현장을 주시함으로써 현실을 헤아리고 미래에 대처하는 능력이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관건이 될 것이다. 이에 광범위한 글로벌 경제이슈를 짚어내고 있는 ‘2012년 세계경제’의 내용(일부)을 KOTRA 측과 협의해 연재한다. 본호에서는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갈등이 빚어지고 있는 FTA와 TPP 갈등을 다룬 베이징 무역관박한진 부장이 쓴 <FTA vs TPP, 갈등 시나리오>와 미국과 중국의 경제 갈등을 다룬 <일촉즉발, G2 무역전쟁 경보>를 편집했다.               -편집자주-

 

                                                                          베이징 무역관 박 한 진 부장

2012년에는 중국과 미국의 FTA-TPP 갈등이 한층 고조될 전망이다. 중국은 2001년 WTO 가입 후 자유무역협정(FTA) 맺기에 공을 들여왔다. 중-아세안 FTA(2002)에서부터 중-타이완 ECFA(2010)까지 때로는 ‘통 큰 양보’를 하면서 10건의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했다. 추가로 6건이 협상 중이며 별도 3건이 연구단계에 있다.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자국 중심의 새로운 국제질서를 구축하려는 전략의 일환이다. 중국은 일찌감치 아세안 10개국을 껴안았다. 이어 한국, 중국, 일본 등 3개국을 추가한 ‘10+3’과 다시 인도, 호주, 뉴질랜드를 추가한 ‘10+6’ 방안을 밝히면서 역내 자유무역협정 경쟁에서 선기(先機)를 잡는 듯했다.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는 2006년 발효된 뉴질랜드, 싱가포르 칠레, 브루나이(P4) 등 4개국의 소규모 자유무역협정이었으나 2008년 미국이 참여하면서 그 위상이 달라졌다. 버락 오바마 미국대통령은 TPP가 아태지역의 경제통합을 위한 가장 강력한 모델로서,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지역과 미국을 연결하는 고리라고 평가했다. TPP는 2011년 11월 APEC 정상회의에서 일본이 참여의사를 밝혀 참여국이 10개로 늘었고 역내 다른 국가들도 관심을 표명하면서 세계 최대의 지역무역협정 (RTA)으로 뗘오르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TPP와 중국이 구상하는 FTA는역내 판세를 볼 때 갈등과 경쟁이 불가피하다. 지금까지 중국이 각종 형태와 각종 수준으로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국가(지역)는 아세안, 파키스탄, 칠레, 뉴질랜드, 싱가포르, 페루, 홍콩, 마타오, 코스타리카, 타이완 등이다. 미국은 캐나다, 멕시코, 호주, 한국, 칠레, 파나마, 페루, 싱가포르, 콜롬비아 등과 자유무역 파트너관계를 구축했다. 중국이 동남아지역에서 미국이 동북아 및 미주에서 우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전체적으로는 미국이 우위에 있다. 이 상황에서 세계 1위(미국)와 3위(일본) 경제대국이 참여하는 TPP가 결성된다면 미중 양국관계는 물론 아태지역 전체의 국제정치경제 구도에도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향후 전개양상에 따라 3가지 시나리오를 가정해볼 수 있다.

시나리오 1: 미, 중국 배제한 채 TPP 출범
미국의 TPP 추진 목적은 표면적으로는 아태지역 경제통합이지만 중국견제를 통한 통상 주도권 강화가 숨겨진 의도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2012년내 TPP 완전 타결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렇게 된다면 아태지역 자유무역제도 경쟁에서 미국은 중국을 저만치 앞서가게 된다. 미국이 TPP 회원국들과는 무역자유화를 실현하고 비회원국인 중국에 대해서는 차별적 조치를 취하게 됨으로써 중국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이 미국의 TPP 카드를 우려하는 이유는 또 있다. 자유무역협정은 통상 국가간 정치 및 안보적 연계와 밀접한 상관성을 가진다. 일례로 미국이 자유무역협정을 맺고 있는 국가들은 대부분 정치적 혹은 군사적 동맹국들이다. 따라서 자유무역협정의 효과가 단지 무역에서 끝나지 않고 정치 및 안보영역으로 확산된다. TPP 탄생으로 미국과 아태지역 국가들의 관계까지 공고해지면 미국의 역내 전략적 존재감이 강화될 것이고 이는 중국의 영향력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다만 미국이 중국 없이 TPP를 출범한다고 해도 중국이 아태지역 경제협력구조에서 실제로 철저하게 배제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중국은 여전히 세계 최대의 생산기지이자 미래 핵심 소비시장이다. 관련국들은 어떤 형태로든 중국과 협력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중국으로서는 대응카드를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보다 많은 국가들과의 양자협상으로 FTA를 체결해 TPP의 충격을 완화하려 할 것이다.

시나리오 2: 중, TPP 참여
중국이 미국과 갈등국면으로 가지 않고 TPP에 참여하는 경우이다. 미국이 아시아 대부분 국가들의 핵심 수출시장이고 중국은 대미수출에서 한국, 아세안, 일본 등과 직접경쟁 관계에 있다. 미국과 역내 주요 국가들이 자유무역체제로 묶여질 경우 중국산 제품은 비용 상승으로 인해 경쟁력 하락이 불가피해진다. 중국이 당장 미국과 경쟁하기 어려운 여건임을 감안하면 내키지는 않지만 TPP 참여를 전격 선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미국은 TPP 과정에서 중국을 배제한다고 명시적으로 밝힌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중국이 TPP에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는 처지도 아니다. TPP의 정부조달, 지재권, 국유기업 관련 조항들은 중국이 앞서 체결한 FTA에 비해 개방수준이 매우 높아서 중국이 선뜻 수용하기 어렵다.

시나리오 3: 한, 핵심변수 등장
미국의 의도와는 달리 2012년 TPP 협상이 각국의 견해 차이로 인해 성과가 지지부진하고 중국은 중국대로 FTA 추진에 탄력을 받지 못하게 될 상황이 생길 수 있다. 특히 TPP 조항은 중국뿐 아니라 다른 참여국들에게도 민감한 부분이 많다. 미국에선 자동차 업계가 일본의 TPP 참여를 반대하고 있고 낙농업계는 뉴질랜드 낙농제품의 대량 유입을 우려하고 있다. 일본은 농업 및 서비스업 개방문제의 타결이 쉽지 않다.

이렇게 된다면 미국과 중국은 경쟁적으로 한국에 손을 내밀 것이다. 미국은 한국의 TPP 참여를 요청할 것이고 중국은 한중 (또는 한중일) FTA 협상개시 선언을 더욱 강하게 요구할 것이다. 한국의 TPP 참여 또는 한중 FTA 선언은 기술적으로는 복잡한 사안이 아니다. 한국은 TPP 참여 10개국 가운데 7개 국 (미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베트남, 브루나이, 칠레, 페루)과 FTA를 체결했다. 한중 FTA의 경우 산관학 공동연구를 마친지 오래이며 협상개시 선언은 시기 결정의 문제로 보인다. 경제적 고려보다는 오히려 정치적 결단과 정치적 과정이 더욱 중요한 문제로 부각될 것이다.
세 번째 시나리오에서는 한국의 몸값이 올라갈 것임이 자명해 보인다. 그러나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득실이 엇갈려 나타날 수 있으며, 따라서 한국으로서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큰 틀의 접근을 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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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촉즉발, G2 무역전쟁 경보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미중 무역 갈등이 설전의 수준을 넘어 치고받는 난타전에 돌입했다. 아직은 미국의 선제공격에 중국이 방어하는 양상이지만 2011년 하반기 이후 집중된 상호 보복관세 공방을 돌이켜보면 2012년 양국 관계는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을 우려하게 한다.
2010년 10월 미국 상원이 환율조작국에 대해 상계관세로 보복할 수 있는 ‘환율감독개협법안(환율법안)’을 통과시키자 중국은 곧바로 위안화 평가절하로 대응했다. 11월에는 미국이 중국산 태양광 패널에 대한 반덤핑 및 반보조금 조사에 착수하자 중국은 미국 재생에너지 보조금 정책의 무역장벽여부 조사로 맞받았다. 양국 간 무역 분쟁이 첨단산업 분야로 까지 확대된 것이다. 12월엔 중국이 미국산 수입 자동차에 대해 반덤핑 및 반보조금 관세징수 결정을 전격 공표했는데 이는 앞서 9월 중국이 미국에 수출하는 타이어와 관련해 세계무역기구(WTO)에서 벌여온 싸움에서 패배한데 따른 보복성 조치로 풀이된다.

 
 
미국과 중국 사이가 이렇게 벌어진 데에는 여러 요인들이 개입되어 있다. 장기 구조적인 측면에서 보면 양국의 위험한 동거관계를 꼽을 수 있다. 성장이 급했던 중국은 오랫동안 값싼 물건을 만들어 미국에 내다팔았다. 수출로 벌어들인 돈으로는 미국 국채를 사 모았다. 미국은 채권을 사주는 중국이 있어 오랫동안 저금리를 유지하며 번 돈보다 소비를 더 많이 했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에 따르면 양자 관계에서 일국의 무역흑자가 교역총액의 25~30%에 달하면 경제문제가 정치문제로 비화한다. 2003년 중미 교역총액에서 중국의 대미 무역흑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50%에 육박하자 양국의 밀월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어 2008년 시작된 글로벌 경기침체가 끝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장기화되면서 양국은 더 이상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단기 갈등요인은 미국의 복잡한 국내 사정이다. 경기회복 부진으로 실업률이 급등한 탓이다. 노조를 주요 지지기반으로 하는 오바마 행정부로서는 2011년 재선 성공을 위해서는 어떻게든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발등에 불이 됐다. 많은 생산시설이 해외로 빠져나간 미국이 경기침체기에 일자리를 늘릴 수 있는 길은 극히 제한돼 있다. 여기서 미국은 수출총력전을 선언하며 대중국 보호무역조치를 통해 불만정서를 완화하려는 방법을 선택했다. 2015년까지 8,500만 개 일자리 창출을 공언한 중국과 바로 부딪히는 대목이다. 중국 역시 내수소비가 부진한 타세 당분간 수출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멀리 하기엔 너무 가까운
만약 미국이 환율법안을 최종 통과시켜 법제화하고 이에 맞서 중국이 대규모 보복에 나서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다면 결과는 양국 모두 큰 상처를 입는 마이너스섬 게임이 될 것이다. 상호보완성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항공기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하면 대중국 수출품이 농산품 위주로 짜인 미국으로서는 수출을 늘리기 위해선 중국의 협조 즉 중국의 대미 공산품 수입확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대중국 보복관세 부과도 무조건 내놓기 어렵다. 미국 소비자들이 중국산 소비재를 더 이상 저렴하게 구입하지 못하게 되어 국내 물가상승이 뒤따를 것이고 동시에 중국의 대미 투자가 급감해 일자리 창출에 악영향을 줄 것이다.
중국도 고민이 많다. 미국은 EU와 함께 중국의 양대 수출시장이다. 2011년 대EU 수출전망이 두 자리 수 감소세까지 예상되는 마당에 대미 수출마저 타격을 받게 되면 역시 정권 교체기에 들어선 중국으로서는 대량실업과 경기 경착륙 등 후폭풍을 감당하기 어렵게 된다.

중국국제정보연구소는 미국의 손실이 70%, 중국의 손실이 30%로 미국이 더 큰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자체 전망을 내놓기도 했지만 승자 없는 게임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결국 양국은 가까이 하기엔 많이 틀어져 버렸지만 그렇다고 멀리 하기엔 여전히 가깝고 서로 너무나 중요한 사이인 것이다.

 
 
2012년 3대 시나리오
현재로서 미국과 중국이 전면전 양상의 무역전쟁에 돌입하는 가능성은 환율법안의 하원 통과 후 오바마 대통령의 비준 여부에 따라 달라질 공산이 크다. 3가지 시나리오를 상정할 수 있다.
첫째 오바마가 거부권을 행사하는 경우이다. 한동안 중국에 대해 으름장을 놓고 압박을 더해가겠지만 마지막엔 법안을 승인하지 않을 것이라는 시나리오다. 미국은 과거에도 중국에 대해 고강도 위안화 평가절상 압력을 넣었지만 결전을 벌이지 않고 뒷수습을 한 전례가 있다. 하지만 이런 용두사미형 사니라오는 그동안 중국과 티겨태격하며 보복관세 공방 등 이미 벌영놓은 일들이 많은데다 2011년 말 대선까지 앞둔 미행정부로서는 선뜻 선택하기 어려운 경우다.

둘째 환율법안이 하원을 거쳐 오바마 대통령이 서명하고 발효로 이어지는 시나리오가 있다. 미국은 중국 측의 덤핑행위 여부에 관계없이 모든 중국 상품에 대해 징벌성 관세를 부과할 수 있고 중국은 맞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양국은 대규모 무역전쟁에 빠져들게 된다. 양국 간 무역전쟁은 다른 나라에도 번지면서 세계경제를 더욱 깊은 수렁으로 몰고 갈 것이다. 2010년 12월 중국이 미국산 자동차에 대해 반덤핑 및 반보조금 관세를 동시에 부과하자 당장 미국에 공장을 가진 독일 자동차업체들이 직격탄을 맞은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 시나리오 역시 글로벌 경기침체 와중에 미국이 섣불리 짚어들 카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오바마가 하원을 통과한 환율법안에 대해 조건부 승인을 하는 시나리오가 있다. 환율법안이 최종 채택되더라도 양국 정부가 한발씩 양보하는 모종의 합의를 모색하는 경우이다. 서로 체면은 살리되 실리도 찾는 것으로 3가지 시나리오 가운데 가능성이 비교적 높아 보인다. 미국은 지난 1990년대에 클린턴 대통령이 의화와의 대립을 불사하면서도  중국에 대한 1년 단위 최혜국대우(MFN) 심사를 영구정상무역관계(PNTR)로 격상한 바 있다. 당시 중국은 미국 기업에 대해 상당 폭의 시장개방을 약속했고 미국은 중국산 수입품에 관세를 삭감하는데 합의를 한 배경이 있다.
2011년 미중 무역기상도는 파국으로 치닫지는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그렇지만, 중국와 미국을 1, 2위 수출시장으로 둔 한국의 입장에서 이 문제는 가장 유의해야할 대외변수 중 하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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