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파물 제거와 해사안전법

 
 
난파물 제거의 법적 의의 
난파물(wreck)이란 선박이 기동력을 상실한 상태 혹은 선박에 실렸던 화물들이 바다에 표류하거나 바다에 가라앉아 있는 것을 말한다. 난파물은 선박의 항해에 지장을 초래하므로 적절한 표시와 제거가 문제된다.
난파물은 각종 국내법에 따라 소유자 혹은 점유자가 이를 제거할 의무를 부담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난파물 제거에는 상당한 비용이 소요되므로 제거의무자는 사라지고 현장에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국가가 제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는 경우도 있다. 국가가 비용을 지출하게 되면, 책임이 있는 선박소유자등에게 비용에 대한 구상청구를 해야 하지만 소유자를 접촉할 수 없기 때문에 국민의 세금이 낭비되는 결과가 된다. 2006년 1월에 울릉도 근처에서 발생한 ‘튜멘’호 원목사건은 좋은 예이다.

이에 일본을 비롯한 각국은 난파물제거비용을 보험의 형식으로 처리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개항질서법 등에서 선박소유자 등에게 난파물제거 의무를 부과하고는 있었지만, 제거비용을 확실하게 담보하는 장치는 마련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2011년 해사안전법에
대한 규정을 신설하여 일본 및 국제조약과의 유사한 입장을 취하게 되었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여전히 미비한 점이 있다.

해사안전법 제정 이전의 난파물제거 제도와 그 문제점
난파물에 대한 각종 의무를 부과하고 있는 국내법으로는 개항질서법, 해양환경관리법 그리고 해상교통안전법(현, 해사안전법) 등이 있다.
가장 넓은 적용범위를 갖는 공유수면관리법에 의하면 방치물건 등의 소유자 혹은 점유자가 제거의무를 부담한다(제13조 제1항). 선박에 실려있던 운송물이 난파물이 된 경우에는 운송물 자체의 소유자 혹은 선박의 점유자가 운송물의 점유자로서 제거의무자가 된다. 공유수면관리법의 적용범위는 배타적 경제수역까지 확대되어 있다(제4조). 
난파물에 대한 제거의무를 부담하는 소유자(혹은 점유자)는 무과실의 책임을 부담한다. 소유자는 자신의 비용으로 이를 제거하여야 함에도 이를 제거하지 않는 경우에는 안전항행에 대한 최종적인 의무를 부담하는 국가가 대집행을 하게 된다. 난파물의 제거등과 관련된 비용은 선주책임상호보험(P&I)에서 비용 등을 담보한다.

현행 제도의 문제점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1) 복잡한 제거의무의 부과; 개항질서법, 해양환경관리법, 해상교통안전법, 공유수면관리법 등에 모두 제거의무를 부과하고 있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복잡하다. 더구나 의무부담자도 소유자, 점유자, 운항자, 선장등으로 표시되어있기 때문에 제거의무자를 특정하기가 쉽지 않다. 

(2) 제거비용의 회수문제; 현행법체제하에서 제거명령을 국가가 내린 다음 의무자가 제거하지 않으면 국가가 제거를 한 다음 의무자에게 비용을 구상하여야 한다. 그런데 의무자가 아무런 재산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비용을 구상받을 수 없다. 우리 정부는 1992년 1월 24일 인천 팔미도 근처 씨앙펭호 사건, 2003년 1월 5일 어청도 근처 알렉세이 비카레브호 사건 그리고 2006년 1월 23일 울릉도 근처 ‘튜멘’호 사건 등에서 상당한 비용을 지출하고 구상받지 못했다.

(3) 해양법등 기타 법률의 무효가능성; 공유수면관리법에서 배타적 경제수역까지 제거의무를 부담하도록 한 규정은 ‘튜멘’호 사건에서 그 유효성이 다투어질 정도가 되었다(서울중앙지법 2007년 1월 18일 2006가합36580판결)

(4) 표시, 보고의무 규정의 부재; 난파물이 발생하게 되면 위험성이 있다면 표시를 하고 이를 항만당국에 보고하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항로표지법을 제외하고는 선장 등에게 난파물에 대한 표시의무 및 보고의무를 직접적으로 부과하고 있지 않다.

해사안전법상 난파물제거규정
우리나라는 2011년 6월 15일 해상교통안전법을 개정하여 해사안전법으로 법의 명칭을 변경하고 2011년 12월 16일 시행하게 되었다(제4장 해상교통안전관리에는 제2절 항행장애물의 처리).

(1) 난파물의 정의; 난파물은 항행장애물로 표현되고 있다. “항행장애물이란 선박으로부터 떨어진 물건, 침몰·죄초된 선박 또는 이로부터 유실된 물건 등 국토해양부령으로 정하는 것으로서 선박항행에 장애가 되는 물건”을 말한다(제2조 제17호).

(2) 지리적 적용범위; 적용범위는 내수(일정영역제외)는 물론, 영해 및 배타적 경제수역에도 미친다(제3조 제1항 3호). 이러한 입법태도는 ‘투멘’호 사건에서 문제가 되었던 우리나라 주권의 배타적 경제수역에 있는 난파물에 대한 제거권을 합법화하게 된다.

(3) 적용대상 물체; 제2조 제17호의 정의에서 선박 혹은 선박에서 이탈한 물건이기 때문에 컨테이너, 원목 등도 모두 적용의 대상이 된다.

(4) 보고의무, 표시 및 제거의무; 항행장애물을 발생시킨 선장, 선박소유자 혹은 선박운항자는 위험성을 보고할 의무를 부담하고(제25조), 항행장애물에 표시할 의무도 부담한다(제26조). 이들은 항행장애물의 제거책임을 부담한다(제28조 제1항). 이들이 표시의무 혹은 제거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때에는 국가가 대신하여 행한다(동 제2항).

(5) 비용징수; 국토해양부장관은 제26조 제3항 및 제28조 제3항에 따라 국토해양부장관이 직접 항행장애물의 표시나 제거에 소요된 비용의 징수에 대비하여 필요한 경우에 선박소유자에게 비용지출을 보증하는 서류의 제출을 명할 수 있다(제29조 제1항). 제29조 제1항의 요구에 응하지 않는 경우 선박의 국내입항이 거절된다(제30조). 그런데 구체적인 보장계약최저액수, 보장계약체결에 대한 절차, 보장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선박에 대한 규제 등의 내용이 추가되지 않았다.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에도 이에 대한 규정이 없기 때문에 국토해양부는 본 법이 개정되었다고 하여도 아직 강제조치를 취할 입법의도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해사안전법상 난파물 관련 제도의 보완사항
우리 정부는 개정 해사안전법의 적용범위가 영해를 벗어난 배타적 경제수역에까지 미치기 때문에, 국내법인 해사안전법에 보장계약체결을 강제화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하여 우리나라가 난파물제거조약의 발효까지 무한정으로 기다릴 수는 없다.

그러므로 난파물제거 비용징수에 대한 법규정을 직접 실행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입항하는 선박으로 하여금 보장계약을 강제적으로 체결하게 하고 그렇지 않은 선박은 입항을 거절하도록 해야 한다. 입법례로는 일본 선박유탁손해배상보장법(제39조의5)이 있다. 그리고 난파물제거비용에 대하여 보장계약을 체결한 보험자(P&I)에게 비용청구권자가 직접청구를 할 수 있는 확실한 권리를 부여하여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하여야만 난파물의 소유자가 제거를 하지 않는 경우에 정부가 대집행을 하고 비용을 회수받을 수 있을 것이다. 2007년 5월 23일 제정된 나이로비 난파물제거 협약이 장차 발효되면 이를 비준하여 더 완벽한 체제(배타적 경제수역에서의 난파물 제거권을 연안국인 우리나라가 의문없이 가지게 됨)를 구축하여 나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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