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유로구제 하나

KOTRA가 76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무역관들의 눈과 귀를 통해 파악한 전세계 경제활동 현장의 ‘90여개 이슈’를 생생하게 전달한 ‘2012년 세계경제’를 발간했다. 현재 전세계 산업계가 바라보고 있는 관심사를 ‘현장감’ 있게 정리한 이 책은 우리나라 기업들의 비즈니스 동향과 트렌드를 파악하는 나침반 역할을 할만큼 환경과 관점이 서로 다른 85명이 정치, 경제, 기술, 산업, 문화 등을 넘나드는 다양한 주제로 집필한 내용이 담겨 있다. 세계경제 환경의 큰 변동성과 불확실성으로 인해 각종 전망이 맥없이 폐기되는 현실 속에서 현장을 주시함으로써 현실을 헤아리고 미래에 대처하는 능력이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관건이 될 것이다. 이에 광범위한 글로벌 경제이슈를 짚어내고 있는 ‘2012년 세계경제’의 내용(일부)을 KOTRA측과 협의해 연재한다.
본호에서는 최근 재정위기로 흔들리는 유로지역의 이슈를 다룬 브뤼셀 무역관 의 <유로는 어디로 가는가?>를 편집했다.                                                                                      -편집자주-


                                                                                브뤼셀 무역관 최 광 희

2010년 이맘때에 만일 어떤 신문이 1면지에 “유로가 이번 겨울을 지낼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면 누구든지 하찮은 말이라고 부인했을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프랑스 신문 “le Canard Enchaine"(풍자적 신문으로 간주되고 있음)가 그런 제목을 사용한 기사를 1면이 실었다. 물론 그 내용이 진지한 논제나 전망의 성격을 띤 것은 아니었지만 그러한 의문이 최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측근 사이에서 제기되었다는 것이 기사의 골자였다. 그리고 프랑스 정부를 포함한 누구도 이 신문 기사의 내용을 부인하지도, 비난하지도 않았다.

이 기사의 핵심은 유로의 불황이라는 사실이 아니라 유로가 무너진다는, 또는 언젠가 무너진다는 가정에 대비하여 프랑스가 취해야 할 조치에 대해 프랑스 대통령 측근이 머리를 짜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가 하면 현재 유럽 언론에서는 유로에 머물 것인가 또는 탈퇴해야 할 것인가라는 의문과 함께 유로에 대한 찬반의 의견이 우후죽순으로 나돌고 있다.

문제는 유로가 상징적인 존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유로는 이제 유로존 일반인의 개인생활은 물론 은행 등 경제주체의 생활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유로가 외부적 또는 내부적으로 폭발한다면 유로연합이 살아남을 것인가도 의문이다.

중국이 유로 구제에 나서고 있다
이 같은 위협 앞에서 중국이 유로 구제 의사를 표명하고 나섰다. 유럽에서는 기대와 동시에 중국이 유럽을 구제하려는 동기에 대한 여러 분석이 제기되었다. 중국이 지난 2달 동안 주저하는 태도를 보이기는 했지만 일단 유럽구제 기금의 메커니즘이 완전히 설립될 때를 기해 유럽구제기금에 투자할 것은 확실시되고 있다.

중국은 유럽구제기금에 전부 투자하기 보다는 일부는 유럽구제기금에, 일부는 유럽 은행 및 기업에 나누어 투자하기를 원하고 있다. 이는 중국이 자국의 대 유럽 직접 투자의 문을 여는 기회를 원하면서도 그에 앞서 유가증권으로 돈을 벌자는 전통적 투자가의 전략적 태도를 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유럽 채무와 관련, 중국은 손실 위험을 줄이기 위해 EU국가의 국채보다는 유럽재정안전기금(European Financial Stability Facility)을 통한 유로존의 공동부채 투자를 강력히 선호하고 있는 한편 IMF를 통한 지원을 선호하고 있다. 그 이유는 우선 보장수준이 높고 국제적 지원시스템의 합리화 기회가 될 뿐 아니라 IMF 내에서 중국의 입김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이는 1997년 당시 아시아 금융위기 때 미국과 유럽이 IMF의 지원으로 아시아 재정기금 창설을 막고 IMF내에서 위치를 강화하려 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중국이 왜 유로를 구제하려는 것일까? 중국은 무엇보다도 유럽이 심각한 경제불황에 빠질 것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은 중국의 1위 교역 파트너이다. 유로가 무너진다면 중국경제가 타격을 받게 될 것임은 불 보듯 뻔하다. 또한 중국은 경제적으로나 전략적으로 미국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 미국과 유럽 간 균형을 유지하고자 하는 것도 중국이 가진 하나의 동기이다.
또한 국제통화시스템의 측면에서도 중국와 유럽은 유사한 비젼을 가지고 있다. 즉 중국은 달러와 유로, 위안을 기초한 다수 국제 통화 시스템을 원하고 있는데 이런 가능성을 살리고 전적인 달러 지배를 피하기 위해서는 유로를 구제하는 것이 중국에게 유리한 것이다. 즉 중국이 유로를 구제하려는 이유를 요약하면 우선적으로는 대유럽 투자개방을 노리고 있으며, 동시에 미-중국 간 맹렬한 대결에서 유럽의 지지를, 유럽인들로부터 중국에 대한 호의를 얻고자 하는 것이다.

중국의 유럽 구제 움직임을 가로막는 요인
그러나 중국이 유럽을 지원하는데 여러 가지 제어 요인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우선 중국은 유럽채무 리스크뿐만 아니라 향후 유로 환율 저하에서 올 수 있는 손해 투자를 두려워하고 있다. 2008년에 미국 투자에서 본 손실을 또 다시 경험하지 않으려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제어요인은 미국이다. 미국과의 관계는 아직도 중국의 최우선 전략으로 남아있다. 더불어 중국은 미국을 중국의 수출 요새로 간주하는 상황이다. 중국의 대규모 유로존 투자는 미국부채에 부정적 영향을 의미하고 미국 우선주의에 반대되기 때문에 미국의 입장에서는 유로존이 부채구조개혁을 단행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또 다른 요인은 내부 문제이다. 2012년 가을에 중국 공산당 지도자들 교체를 앞두고 현행 지도자 사이에 내부권력 투쟁이 일고 있는데다가 중국정권은 대중 언론 반응에도 민감하기 때문에 유로지원 협상에서 확실한 입장을 내세우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처럼 유로존 구제 결정을 둘러싸고 중국정부 내에서 찬반의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중국이 유럽을 돕는 것은 중국이 강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약하기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마저도 존재한다.

이 같은 복잡하고 까다로운 상황에서 유럽에서는 중국의 도움을 새로운 위협으로 보지 말고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나아가 세계경제 지배문제에 있어서 핵심적 주제에 대해 중국과 은밀한 합의가 있도록 관계를 강화해나가야 할 것이라는 권고의 목소리가 높다.

유로환율 강세 유지
한편 유로존의 채무문제로 인한 불안이 일기 시작한 지 1년 반이 넘은 오늘날 유럽경제는 여전히 약한 상태에 있지만 유로는 놀랍게도 강세를 유지하고 있다.1) 채무문제로 유럽이 난항에 처해 있지만 유로가 비교적 강세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유로가 강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실은 달러가 약세이기 때문이다. 유로가 달러에 비해 강세일 수 있었던 비밀은 ‘금리’에 있다. 즉 현재 유럽중앙은행의 기본 금리는 1.25%인데 반해 미(FED) 금리는 0.25%인 상황에서 낮은 금리의 달러를 빌려 금리가 높은 유로로 예치하여 돈을 버는 ‘carry trade’의 금융행위에 기인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FED는 이같은 저금리를 앞으로도 상당 기간 동안 고수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의 목적은 금리를 높여 인플레를 막는 것이고 미 연방은행은 경제성장, 고용창출을 위해 낮은 금리 정책을 고수할 것이다. 한편 미국경제가 유럽경제보다 오히려 더 어려운 상황에 있기 때문에 사실상 달러가의 하락이 유로가의 하락보다 더 크며 이또한 유로 강세의 버팀목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유로는 죽지 않을 것이다.
유로의 종말은 유로라는 화폐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화폐의 붕괴는 어느 순간에 인플레가 치솟아 화폐의 가치가 땅으로 떨어져 화폐소유자가 망하는 것을 말한다. 역사상 화폐가 붕괴하여 많은 사람들을 패망으로 몰아넣은 사례들이 많이 있다. 반면에 현재의 상황에서 그리스, 포르투갈, 스페인에서 채무문제의 여파가 크다해도 유로 소유자가 그런 리스크를 경험하지는 않을 것이며 다시 말하면 유로는 붕괴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왜냐하면 유로라는 화폐는 독일, 프랑스를 포함한 여러 유로 국가에서 막대한 자산위에 세워진 화폐이기 때문이다. 유로는 인플레를 일으키면서 발행된 화폐가 아니라 오히려 인플레를 억제하는 요소로 기능하는 셈이다.

유로가 유로 탄생 이전의 회원국 화폐로 분열될 가능성은 있으나 그같은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국가 화폐가는 유로 대비 화폐가가 기준이 될 것이며 유로의 가치는 살아남을 것이다. 다만 유로의 분열이 일으키는 진동은 엄청나게 클 것이다. 이는 기술적인 문제보다는 정치적 또는 심리적 진동에 해당하며, 이러한 측면을 진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금까지 유로만을 붙잡고 있던 유럽 지도자들은 갈팡질팡할 것이며 금융시장에서는 패닉이 뒤따를 것이다.

이러한 일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국가정상들이 이데올로기에 매달리지 않고 합리적으로 해결하고자하는 태도를 취한다면, 그리고 중앙은행 총재 등 이해당사자들이 현실에 입각해 사전에 협력하여 해결책을 찾는다면 유로는 분열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아직까지는 대다수 옵서버들의 의견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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