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호 출항식에 참석한 윤보선 대통령(중앙)과 윤상송 학장(왼쪽)
반도호 출항식에 참석한 윤보선 대통령(중앙)과 윤상송 학장(왼쪽)
지난 7월말 한국해양대학교와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한국해양연구원을 통합해 ‘해양과학기술원’을 설립하는 내용의 ‘한국해양과학기술원법안’이 국회의장을 포함한 21명의 국회의원에 의해 발의되었다. 국회가 ‘아닌 밤중에 홍두깨 내미는 격’으로 예상치도 못했던 통합 법안을 느닷없이 내놓은 것이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법안의 발의 사유는 국가 해양과학기술의 발전과 국제사회에서의 선도적인 국가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함이라 하고 있다. 그러나 핵심 내용은 부산으로 이전되는 한국해양연구원(KORDI),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를 한국해양대학교와 통합하여 해양관련 과학기술원을 하나 만들자는 것이다.


이에 대해 당장 폐교 위기에 몰린 한국해양대학교는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설립법안 저지를 위한 한국해양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총장 명의의 법안 반대 성명서를 냈다. 국토해양부도 한국해양과학기술원법 발의와 관련하여 법 추진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국토해양부는 무리하게 통합을 할 경우 연구 및 해기사 교육의 위축으로 전반적인 국가 해양경쟁력의 저하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해운항만업계에서도 반발을 보였다. 한국선주협회는 한국해양과학기술원법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정리했으며 특히 한국해양대학교 폐지와 관련하여서는 강력한 반대 움직임을 보였다. 정부출연 연구기관인 KMI와 KORDI는 통합법안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국책연구기관이라는 성격상 국회의 법안 추진에 대해 대놓고 반대의견을 내기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된다. 


해당 연구기관과 한국해양대학교 및 해운항만물류업계의 통합반대에 직면하여 국회의장실은 8월 초 법안 철회 수순을 밟고 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앞으로도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해양대학교, 국토해양부 등이 합의하지 않으면 법안을 추진하지 않고 철회할 방침이라고 한다. 이로써 한국해양연구원,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한국해양대학교 등의 통폐합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는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설립은 해프닝으로 끝나고 법안폐기가 기정사실화 된 듯하다.


이러한 해프닝을 접하면서, 해운항만, 해양산업에 대한 정책적 원칙이 정부나 국회에 있는 것인가부터 살펴보아야 할 것 같다. 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정부출연연구원들의 지방이전 결정부터, 그리고 이번 통합법안이 제안되는 과정을 보면서, 우리 정부와 국회가 진정으로 해양입국의 원칙을 갖고 국민과 국가의 미래를 위해 이러한 의사결정들을 하였는지를 알고 싶다.


인문사회분야 24개 국책연구기관 중 21개 기관은 각 행정부처와 함께 세종시로, 또는 충북,  수도권으로 이전한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부산), 한국농촌경제연구원(나주), 에너지경제연구원(울산) 등 나머지 3개 연구원만 지방혁신도시로 분산 이전된다. 이들 세 개 연구원들은 모두 해당부처와의 접근성이 떨어지면서 싱크탱크의 기능이 저하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하고 있으며, 타 국책연구기관들과의 교류협력 기능이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 또한 지방으로 내려가야 하는 현실에서 우수 신규인력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왜 이들 3개 국책연구기관만이 세종시가 아닌 개별 지방으로 이전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원칙이 없다는 점이다.


특히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은 전국 규모의 해운항만, 해양수산, 물류정책을 개발하는 곳이다. 굳이 부산이라는 지역에 있어야 할 당위성이 부족하다. 마치 국토연구원이나 한국교통연구원이 특정도시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 당위성이 없듯이 말이다. 문제는 KMI를 정책연구원으로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하기 위해, 이전과 관련하여 어떠한 의사결정이 옳은 것인가 하는 원칙을 고민했는가 하는 점이다. 혹시 일부의 이익을 위해 국책연구기관을 특정지역으로 보내는 당위성만 만들기 바빴던 것은 아닐까?

 


이번 해양과학기술을 연구하는 KORDI와 해운항만물류 등의 정책을 개발하는 KMI와의 통합 아이디어는 그 필요성이나 효과성을 전혀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불가론조차 언급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문제는 이 두 연구원이 나름 세계적인 연구소로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데도, 마치 구조조정이 필요한 기관들인 것처럼 통폐합 대상 기관으로 거론하는 의사결정을 한 점이다. 과연 어떤 원칙에서 이러한 의사결정을 한 것일까? 이 역시 일부의 이익을 위해 특정지역에 또 하나의 과학기술원을 설립하기 위한 시도가 아닐까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다. 


이러한 의구심을 떨치기 위해서는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법안 폐기만으로는 부족하다. 해양개발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하고, 해양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개발을 하고, 우수한 해양 전문인력을 양성할 수 있도록 정부의 정책적 원칙부터 다시 세워야 한다. 정부와 국회는 국가해양정책의 고도화라는 정책적 원칙에서 그동안 행해진 조치들을 재검토해야 하며, 또한 해양행정, 해양연구, 해양정책, 수산어촌 등 해양에 관한 미래지향적인 비전도 새롭게 제시해야 할 것이다.


해양수산부 기능의 복원을 요구하는 의견도 청취하고,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을 타 국책연구기관들과 함께 세종시로 이전하여 지방 연구소로의 위상추락을 방지해야 할 것이며, 한국해양연구원도 세계적인 해양과학기술 연구원으로 확고한 자리매김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바다의 날을 유명무실하게 치루고, 해양수산부를 해체하고, 해양관련 대학, 연구기관까지 통폐합 대상으로 보는 시각으로는, 국제적인 해양질서 급변과 해양과학기술 및 국제물류 경쟁을 헤쳐 나갈 올바른 국가해양정책을 추진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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