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사태, 연평도 폭격 이후 남북관계는 급격히 경색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 나진항에서는 새로운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나진항 투자에 앞장서고 있는 것. 2009년부터 시작된 중국 동북3성의 대규모 개발 계획은 나진항 발전에 상당한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흥미로운 점은 나진항 개발에 국내 기업인도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남북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흘러갔던 2010년부터 북한은 중국과 연계된 대규모 프로젝트를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 나진·선봉지구와 신의주 황금평 개발계획은 중국과 북한의 최근 움직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프로젝트이다.


최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행보도 주목할 만하다. 지난 5월 전격적인 중국 방문에 이어, 8월 20일에는 러시아를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당국이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나·선 개발계획을 위한 협의가 이뤄졌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남북교류가 단절된 이후, 북한 나진항에는 이미 중국과 러시아의 상당한 자본이 투자되고 있다.


6월 9일 북한 함경북도 나진항에서는 북한 및 중국 정부 관계자와 현지 주민이 참석한 가운데 ‘중·조공동개발라선경제무역구’ 착공식이 열렸다. 전날에는 단둥에서 ‘황금평·위화도 경제구’ 착공식도 개최되었다.

 

2009년 中 창지투 계획 천명, 나진항 연계된 최대 물류 프로젝트
나진항 개발계획은 중국의 동북 3성 개발계획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2009년 중국 후진타오 총리는 창지투(長吉圖) 계획을 천명했다. 중국의 창춘, 지린, 투먼에 2020년까지 457조원을 투입하는 동 프로젝트는 나진항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중국 정부가 동북 3성의 물류 전진기지로 나진항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가 동북 3성에 과감한 투자를 하는 이유는 풍부한 천연자원과 천혜의 교통여건 때문으로 분석된다. 동북 3성은 지리적으로 러시아, 몽골, 북한 등과 인접하고 이들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향후 동북아 물류거점으로 발전할 수 있는 충분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평가이다. 특히 최근 동북3성을 관통하는 고속철도도 개통되었다. 동 고속철도의 개통으로 연간 5,000톤 이상의 화물이 운송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내륙물류 인프라는 충분한 상태이다.


동북 3성 개발계획이 어느정도 진행되면 나진항의 위상 역시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석탄 등 엄청난 규모의 자원 매장량과 창춘시를 중심으로 한 중화학 공업 및 유통시장, 공산품 등 상당한 물량이 나진항을 통해 운송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 등이 나진항 개발계획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진항 개발은 북한 뿐만 아니라 중국 경제에도 향후 엄청난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대형 프로젝트로 분석된다. 김영윤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중국 동북 3성은 러시아·몽골·북한과의 접경지역으로 바다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이에 나진항을 통해 동북 3성의 자원과 공산품 등을 동남아지역이나 중국 남방지역으로 수송할 수 있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진항, 3개 부두 15개 선석, 11m 수심 확보,
나진-원정리간 도로 공사 연내 완료

나진항은 북한 동해안의 최북단인 함경북도 라선시에 위치해 있는 항만이다. 라선시는 나진시와 선봉시를 합친 지역으로 나진-선봉경제무역지대, 나진-선봉직할시를 거쳐 2000년 8월 라선시로 확정되었다. 현재 나진항의 총 부지면적은 38만㎡으로 총 3개 부두에 5,000~1만톤급 선석 15개를 보유하고 있다. 부두 전면 최대 수심은 11m로 1만톤급 선박이 접안할 수 있으며, 약 300만톤의 화물을 취급할 수 있다.


라선시는 20세기 후반 북한이 사회주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조성한 공업단지로, 동쪽의 두만강을 경계로 중국, 러시아 및 동해와 접한다. 1993년 유엔개발계획(UNDP)의 주도하에 북부 지방의 두만강 지역 개발 계획이 시작되면서 북한이 나진-선봉경제특구에 거는 기대는 매우 컸던 것으로 보인다. 이때부터 북한은 나진항을 부분적으로 개방했지만 최근까지 별다른 소식이 없었다.


그러나 최근 중국과 러시아가 나진항 개발에 경쟁적으로 참여하면서부터 주변국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중국은 나진항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훈춘-나진을 잇는 고속도로와 양국 국경을 잇는 다리를 건설할 예정이다. 또한 나진항 1호 부두 1선석의 보수사업을 마쳤고, 곧 2, 3호 선석공사도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취재에 따르면 원정리세관과 나진을 잇는 50km의 고속도로 공사는 올해 말까지 완료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김영윤 통일연구원 박사는 “원정-나진간 도로공사는 북한과 중국의 육상 연결통로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현재 도로 확장 및 포장공사가 진행 중이며 연내에는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러시아 역시 나진항 개발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2003년 러시아는 나진항 차용 의향을 밝히면서 나진항 개발에 본격적인 관심을 드러냈다. 이듬해에는 시베리아 철도와 나진항을 연결하는 북·러 의정서를 체결했으며, 2008년에는 나진-하산 철도현대화 및 나진항 개보수에 대한 합의를 마쳤다. 이는 나진항으로 유입되는 화물을 시베리아 횡단철도(TSR)를 통해 유럽으로 수송하고자 하는 러시아의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1부두 중국 10년 사용권, 3부두 러시아 50년 장기사용권 확보
현재 나진항에는 3개 부두가 건설되어 있는 상태이다. 이중 나진항 1호 부두는 중국이 10년 사용권을 획득했고, 3호 부두는 러시아가 50년 장기 사용권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6월, 2호 부두를 스위스가 임대했다는 언론보도가 나왔지만 구체적으로 확인된 바는 없다. 아직 미개발된 4~6호 부두에 대해서는 북한당국이 다방면으로 협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대해 국내의 한 연구자는 “최근 북한 나진항에 대한 중·러의 투자는 단순한 항만 인프라 개발로 여겨서는 안될 문제”라면서, “북한의 나선경제무역특구개발사업이 중국과 러시아의 국가 전략에 따라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것으로, 중국과 러시아의 이해에 따라 나진항이 개발되고 있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이 발표한 ‘창지투 계획’의 의도를 살펴보면 이는 더욱 두드러진다. 동 계획은 중국 훈춘을 물류 창구로, 연길-용정-도문을 최전방으로, 장춘-길림을 성장을 위한 버팀목으로 발전시킨다는 구상이다. 또한 동 계획에는 두만강지역 국제자유무역지대 건설, 창지투 국제 내륙항구 건설 등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중국에서 동북 3성의 물류여건을 개선하려는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 나진항 개발을 통해 그간 바다로의 통로가 없어 발전이 지연됐던 동북 3성의 물꼬를 튼 것이다. 국내 한 연구자는 “그동안 동북 3성은 바다로 나가기 위해 러시아 자루비노항이나 대련항을 이용했다. 그러나 나진항이 개발되면 훈춘-나진 도로를 통해 지척의 나진항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나진항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주)매리 정한기 사장(맨 좌측)
나진항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주)매리 정한기 사장(맨 좌측)

(주)매리 나진항 개발 프로젝트 참여 가능? 통일부 “모른다”
나진항 개발 프로젝트에 국내 기업인이 참여하고 있다는 소식은 또 다른 놀라운 소식이다. 그 주인공은 (주)매리의 정한기 사장이다. 정한기 사장이 운영하고 있는 (주)매리는 수산물 유통을 전문적으로 하고 있는 중국 소재 법인이다. 한 소식통에 의하면 정한기 사장은 중국에서 수산물 유통사업을 진행하다 나선지역에 관심을 가진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다가 북한 군부가 운영하는 강성무역과 인연이 닿았다. 수산물 유통을 위해 항구와 가까운 곳에 공장을 지으려던 (주)매리의 목적과 원정리 물류센터를 건설할 계획이 있었던 강성무역의 의도가 맞아 떨어진 것. 이에 지난해 8월 (주)매리가 북한의 원정리 세관에서 대규모 물류센터를 개최하게 되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정한기 대표가 추진한 나진항 1호 부두(2·3번 선석)와 2호부두(1·2·3번 선석)의 개보수 및 20년 이용권, 4호 부두 신규 설립과 50년 독점 운영권, 투먼-나진 간 철도 개보수 및 독점 사용권에 대한 승인이 떨어졌다는 소식이다. 한 주간지(시사in, 185호 ‘나진항 개발에 한국 기업인 도전’)에 따르면, 정대표가 소유한 홍콩법인이 북한 당국과 6:4 비율로 공동 출자해 가칭 ‘동북아 국제물류회사’라는 합영회사를 북한 국내법에 따라 만들고, 이 합영회사가 위의 사업들을 부여받았다는 보도였다. 그러나 이에 대해 명확한 사실관계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다. (주)매리 서울 사무소 관계자에 의하면 “남북경협사업은 중국 현지에서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자세한 사항은 알 수 없다. 그러나 북한에서 사업 승인이 떨어져도 현재 남-북관계로 봤을때 통일부에서 최종 승인이 나기가 어렵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에대해 통일부 남북경협과의 담당 사무관은 “(주)매리에 대한 관련정보는 들은 바 없고 승인신청도 들어온 것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정한기 (주)매리 대표는 SNS를 통해 우리 정부의 특별 조치를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관계자에 의하면, 정한기 대표가 8월 15일 광복절을 맞아 특별한 대북조치가 발표되지 않을까 기대했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특별한 광복절 대북조치는 취해지지 않았다.

 

 
 

‘강건너 불구경’ 우리 정부 대응 없나
나진항 개발 프로젝트가 어느정도까지 파급력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중국의 동북 3성 개발과 맞물려, 국제물류 허브항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아직까지는 걱정할만한 단계는 아니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한 전문가에 따르면 현재 나진항에서 처리하는 물량은 약 20만톤에 불과한 실정이며, 항로도 중국과 연결되는 1개 항로 뿐이다. 다만 발전계획에 속도가 붙으면 동남아와 중국 남방으로 향하는 항로가 추가적으로 개설될 가능성이 있으며, 만약 처리량이 300만teu에 달한다면 미 서안 항만과의 직항 서비스도 개설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영윤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나진항은 아직 구식 항만에 머물러 있으며, 현대화되려면 여러 시설이 추가되어야 한다. 한마디로 가까운 미래에 나진항이 동북아 물류거점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낮다고 예상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또 다른 전문가는 “중국 3성 개발이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나진항 개발에 대한 경계를 늦춰선 안된다. 남북 정보교류가 제한적인 상황에서 구체적인 계획의 진척상황은 아무도 모른다. 가까운 미래에 나진항이 우리나라 항만산업을 위협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지금처럼 아무런 대비 없이 ‘강건너 불구경’ 식으로 바라보는 것은 위험하다”고 밝혔다.


확실한 것은 나진항 개발을 위해 북한과 중국, 러시아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동 개발계획에 소외되어 있다.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비즈니스 기회를 남북관계 악화로 놓칠뿐만 아니라 북한이 중국 경제권으로 편입될 수 있는 상황을 방치하고 있다는 점은 우리 정부가 고민해야할 부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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