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문제를 묻어버린 사회

한국로지스틱스학회 이헌수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한국로지스틱스학회 이헌수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국제연합해양법 조약상 선박의 법적 지위
지난 호에는 우리나라에서 편의치적선 문제와 국적취득조건부 나용선이 사법당국에 의하여 위법성 시비가 벌어졌던 사례 중 필자가 경험한 것에 대하여 간단히 언급하였고, 그 결론으로 이제는 명쾌한 결론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필자의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이번 호에는 선박, 특히 국제항행에 종사하는 선박(상선)의 국제법상의 법적지위가 어떤 것이며, 그 의의가 무엇인지와 이 법적 지위를 교묘히 이용하여 만들어진 편의치적선제도와 이 제도를 이용한 외항해운업의 다국적 기업화의 특성을 검토해 보고자 한다.

굉장히 중요한 문제를 묻어버린 사회
이 문제를 이해하는데 가장 핵심적인 사항은 선박(특히 국제항행에 종사하는 선박 : 상선) 의 국제법상 특수한 지위를 이해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이 문제에 대하여 깊이 언급한 교과서 같은 것도 별로 없을 뿐만 아니라 국제항행에 종사하는 선박인 외항상선을 다루는 주무관청이라 할 수 있는 관할해운관청도 이 문제에 대하여 별로 관심을 안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국가란 무엇인가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일반국민들이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아니한 것과 유사하게 하도 상식화된 것이므로 일반국민들이 미주알 고주알 알 것이 없다는 것과 유사한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이 중대한 문제일 경우에는 이 문제를 심사숙고하고 대응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지난 호에 발표한 바와 같이 이 사안이 사법당국에서 수사할 정도로 중대한 문제가 되었다면 당연히 신중하고 깊이 있는 검토가 있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상선의 국제법상 법적지위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학자 간의 논쟁조차 거의 없었다는 것은 매우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이번 호에서는 우선 현재 발효되어 시행 중인 유엔해양법 조약상의 선박관련 조항과 이 조약이 규정하고 있는 선박의 국제법상 법적지위의 특성을 설명하고, 그 법적지위에 관한 필자의 견해를 피력해보고자 한다.

해양법조약 관련조항
제90조(항해의 권리) 모든 국가는 연안국 내륙국을 막론하고 공해상에 자국의 국기를 게양한 선박을 항해하게 할 권리를 가진다.
제91조(선박의 국적) ① 모든 국가는 선박에 대하여 자국의 국적허용, 자국 영해 내에 있어서의 선박의 등록 및 자국의 국기를 게양할 권리에 관한 조건을 정하여야 한다. 선박은 그 국기를 게양할 권리를 가진 국가의 국적을 가진다. 국가와 선박 간에는 진정한 연계관계가 있어야 한다.
② 모든 국가는 자국의 국기를 게양할 권리를 허용한 선박에 대하여 그 증명서(국적증서, 필자주)를 발급하여야 한다.
제92조(선박의 지위) ① 선박은 1개국만의 국기를 게양하고 항해하여야 하며, 또한 국제조약 또는 본 조약에 명백하게 규정된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공해상에서 그 국가의 배타적관할하에 있는 것으로 한다. 선박은 소유권의 진정한 양도 또는 등록변경의 경우를 제외하고 항해 중 또는 기항 중에 그 국기를 변경할 수 없다. 
② 2개국 이상의 국기를 편의에 따라 게양하고 항해하는 선박(2중국적선, 필자주)은 다른 국가와의 관계에서 그 어느 국적도 주장할 수 없으며, 또 무국적선박과 동일시될 수 있다.

제93조(UN 등의 기구기를 게양한 선박) 그러한 선박은 상선이 아니므로 여기서는 생략

제94조(기국의 의무) ① 모든 국가는 행정적, 기술적 및 사회적 사항에 관하여 자국의 국기를 게양한 선박에 대하여 자국의 관할권과 통제권을 효과적으로 행사할 수 있다.
② 특히 모든 국가는 다음 사항을 실시하여야 한다(의무조항 필자주)
가. 국제법이 적용 안 되는 소형선을 제외하고는 자국기 게양 모든 선박의 등기, 등록부의 유지의무
나, 자국기 게양한 선박 선원 등에 관한 행정적, 기술적 및 사회적 사항에 대한 국내법에 의한 관할권의 행사의무
③ 모든 국가는 자국기를 게양하는 선박에 대하여 해상에서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하여 필요한 다음사항에 대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 내용은 안전과 관련된 것이므로 생략
④⑤도  ③과 관련된 안전 조치이므로 생략.
⑥ 선박에 관하여 적절한 관할 및 통제가 행사되지 아니하였다고 확신되는 명백한 근거를 가지고 있는 국가는 기국에 그 사실을 통보할 수 있다. 이러한 통보를 접수한 기국은 그 사실을 조사하여야 하고, 필요할 경우 이에 대한 시정을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⑦ 각국은 자국의 국기를 게양한 선박이 연루되고, 타국의 국민에 대한 인명손실이나 중대한 상해, 타국의 선박, 시설 또 해양환경에 대한 중대한 손해를 끼친 공해상의 항행에 관한 모든 해상사고나 재난에 관하여 단수 또는 복수의 유자격자에 의하여, 또는 그의 참가하에 조사를 행하여야 한다. 기국 및 기타국가는 그러한 타국가가 상기 해상사고나 재난을 조사를 실시함에 있어서 상호 협력하여야 한다.

<핵심사항에 대한 요약>
국제항행에 종사하는 선박이 갖추어야할 조건
국제항행에 종사하는 선박은 다음과 같은 조건을 갖추어야한다.
① 모든 국가는 선박에 자국기를 게양하고 공해상을 항행할 수 있도록 할 권리보유
   (주권국 고유의 권리)
② 선박에 국기를 게양할 권리를 부여하는 전제로 등록조건을 국내법으로 제정할 의무
③ 선박은 특정국에 등록하고, 그 증명서(국적증서)를 가져야만 해당국가 국기 게양가능
④ 2개국 이상의 국기를 게양하는 선박 금지 및 무국적선 간주(선박 2중국적 엄금)
⑤ 기국은 자국기게양 선박에 대한 배타적 관할권 보유 
 
이상요약 중 ①~④는 해운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거의 일상화되어 있는 업무이므로 구태여 설명하지 아니하여도 잘 이해할 것이다. 가장 핵심적인 사항은 ⑤ 기국은 자국기 게양 선박에 대한 배타적관할권을 보유한다는 조항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이 자국기 게양선박에 대한 배타적 관할권을 인정하는 국제법상의 원칙을 다른 말로 기국(旗國)주의라고 한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일단 배타적 관할이 무엇이며, 이 기국의 배타적인 관할권이 문제가 된 본건과 어떻게 연관될 것이며, 국제적으로 이 문제가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어떻게 되고 있는가, 그리고 이러한 우리나라의 관행이 적정한 것인지에 대한 검토를 해보고자 한다.

배타적 관할권(exclusive jurisdiction)이란?
배타적이라는 말의 국어사전적 의미는 다른 사람을 배척하거나 권리 같은 것을 독점하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즉 그것만을 인정하고 그 외의 것은 부정하고 배제한다는 뜻이다. 영어의 exclusive도 역시 배타적인 : 양립할 수 없는 : 독점 등의 의미로 사용된다고 되어있어 국어사전의 정의와 비슷하다. 다음으로 관할권에 관하여 보아도 관할권은 권한을 가지고 지배할 수 있는 권리라고 되어 있고, 영어의 jurisdiction도 관할권 재판관할권 등으로 예시하고 있는데 국어사전의 용어풀이와 같다.

그러므로 배타적관할권이란 그 권리를 가진 사람(혹은 기관이나 조직)만이 관리하고 감독하고 통제할 수 있는 권리라고 해석하여야 할 것이며, 여기서 강조하여야 할 것은 그 권리를 가진 사람(혹은 기관이나 조직) 이외에게는 그러한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국이 자국기 게양선박에 대한 배타적관할권”을 갖는다는 것은 “기국만이 자국기 게양선박에 대한 관할권을 갖고 그 이외의 어떤 국가도 관할권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여기서 특히 유의할 것은 기국의 배타적 관할권에 더하여 다른 어떤 국가의 관할권이나 당해선박에 대한 관여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기국의 배타적관할권의 구체적인 내용
그렇다면 기국의 배타적인 관할권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1) 기국의 법령만 적용
① 가장 중요한 것은 기국의 법령만 당해선박에 적용되고 그 국가이외의 국가의 법령은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당해선박과 관련된 모든 법률적인 문제는 기국의 법률만 적용된다. 선박의 등록요건이나 절차는 물론 본선의 안전과 관련된 제 규정도, 선원노동과 관련된 법령과 해기사의 면허와 관련된 제 문제도 기국의 법령만이 적용된다.

② 물론 그 예외는 있을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으로 타국의 영해를 무해통항하여야 할 경우에는 당해국의 영해관련법령이나 안보관련 법령과 규제에 따라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는 타국의 영해에 들어갈 경우이므로 기국의 법령만이 적용된다는 원칙에 위반되는 것이 아니다. 해양법 조약은 영해의 무해통항과 관련되어 연안국이 공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안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해양법조약에서 규정한 사항이거나, 이에 근거한 연안국의 법령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연안국의 법령의 적용도 배제된다고 보아야 한다.  

③ 본선이 타국의 영해를 무해통항할 때, 연안국 법령의 적용 면제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미국적의 상선이 우리나라 영해에 들어왔다. 그때 그 상선에 승선근무중인 선원들은 미국법률에 의한 자격과 노동관계법에 의하여 승선한 선원들일 것이다. 그러므로 아주 엄격하게 해석하여 영해와 영토를 같은 개념으로 해석할 경우 우리나라 영해 내에서는 우리나라 선박직원법과 선원법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논리가 나온다. 이는 아주 번거로운 일이다. 만약 실제로 그렇게 하기를 강제할 경우, 해양을 이용한 국제 교류가 사실상 마비되고 말런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고 그대로 원활하게 외국선의 입출항이 가능한 것은 △기국의 법령에 의하여 승선한 해기사와 선원이 승선하고 있는 선박은 일단 무해통항의 범주에 속한다고 해석하여 따로 이 문제를 시비하지 않기 때문이며, △국제사회가 발전하면서 해상교통안전과 관련된 국제조약들이 잘 정비되고, 이 국제조약들이 강제 규범화됨으로써 대부분의 상선들이 이 국제기준을 준수하고 있고, △이러한 일반화된 국제기준에 미달한 선박(기준미달선 : sub standard vessel)에 대하여는 연안국이 규제하도록 되어 있다. 이는 기준미달선은 무해통항이 아니라 유해통항으로 해석하려는 국제적인 경향을 수용한 것이다.
    
2) 선박은 기국에게만 납세할 의무
이것 또한 배타적관할권에 의한 기국의 법령만 적용되는 사례이지만 중요하므로 부연설명하면, 본선과 관련된 세금은 기국만이 부과할 수 있고, 다른 국가는 이를 부과할 수 없다. 이 특성을 이용하여 저렴한 세금만 부과하도록 법률을 제정하여 자국으로 선박등록을 유치하는 국가도 있다. 대부분의 편의치적국이 선박등록 유치를 통하여 국가세수입을 올리는 정책을 사용하는데 선주가 편의치적을 선호하는 첫 번째 이유가 제3국선원의 고용을 통한 선원비의 절감이라면, 두 번째 이유는 바로 이 선박관련 세금이 저렴하다는 점이다. 세금이 저렴하다는 것은 편의치적을 제공하는 국가의 입장에서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고객유치를 위해서는 불가피한 고육지책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거의 모든 편의치적국가는 조세도피처(tex heaven)로서의 기능을 겸하고 있다. 이 조항과 관련해서 강조할 두 가지 사항을 보면 첫째, 조세도피처는 조세가 싼 곳으로 도망가는 미운 짓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현행의 국제법 체계상 절세수단은 될지언정 위법은 아니라는 점이다. 다른 한 가지는 여기서 설명하는 선박 관련조세는 선박과 직접 관련되는 세금이므로 우리나라에서는 선박 수출입과 관련된 관세, 지방세인 취득세, 재산세 등록세 등이고, 그 선박을 이용하여 얻는 소득이 만약 국내활동에 의한 것이라면, 그 소득과 관련된 세금(부가가치세나 소득세 혹은 법인세)은 면제대상이 아니다. 이 구분의 기준은 세금의 성격이 그 선박의 재산적 존재가치를 중심으로 부과되는 세금은 선적국의 배타적 관할권에 속하고, 그 외의 활동에 수반되는 것은 제외된다고 생각하면 대체로 틀리지 않을 것이다.

3) 영해내에서의 재판관할권 
배타적관할권의 기본적인 성격이 바로 본선 선적국의 법령만이 적용되고 그 외 국가의 법령은 적용이 배제된다는 것이므로 공해상에서 본선의 활동과 관련된 민, 형사상의 재판관할권이 당연히 기국의 배타적인 관할에 속하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선박이 기국이외의 국가(이것을 연안국이라고 한다)의 영해를 무해통항하는데 따른 재판관할권에 대하여도 해양법 조약은 특별규정을 두고 있다.

형사재판관할권
제19조 ① 연안국의 형사관할권은 영해를 통과중인 외국선박에서 선박내에서 발생한 어떠한 범죄와 관련된 사람의 체포 또는 그 선박내에서 수사를 행할 수 없다. 다만 다음의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범죄의 결과가 연안국에 영향을 주는 경우
ⓑ범죄가 연안국의 평화 또는 영해의 질서를 교란하는 성질의 것인 경우
ⓒ그 선박의 선장 또는 기국의 영사가 지방관헌의 원조를 요청하는 경우
ⓓ마약의 불법 매매를 진압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
② ③ ④ ⑤은 ①항을 수행하기 위한 절차규정내지는 해석규정임.
위와 같이 규정한 취지는 영해는 연안국의 주권하에 있는 공간이기는 하지만 선박의 특성을 고려하여 연안국에 직접 피해를 주는 경우가 아니라면 형사사건에 관여하지 않고 기국의 주권하에 둠으로서 기국의 배타적인 관할권과 연안국의 영해에 관한 배타적관할권간의 충돌을 회피하고자 한 조항이라고 할 수 있다.

민사재판관할권
제20조 ① 연안국은 영해를 통과하는 외국선박에 있는 자에 관한 민사재판관할권을 행사하기 위하여 그 선박을 정지시키거나 항로를 변경시킬 수 없다.
② 연안국은 선박이 연안국의 수역을 통과하는 항행도중 또는 항행할 목적으로 또는 항행할 목적으로 선박 스스로가 부담 또는 인수한 의무 또는 채무에 관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민사소송절차를 위하여 그 선박에 대하여 강제집행을 행하거나 또는 압류할 수 없다.
③ 전항의 규정은 연안국의 영해에 정박 중이거나 내수를 떠난 후 영해를 통과 중인 외국선박에 대하여 자국의 법령에 따라서 민사소송 절차를 위하여 강제집행 또는 압류를 행하는 권리를 행하는 것은 아니다.
위 규정에 의하여 상선의 영해 무해 통항권에는 연안국의 민사재판관할권의 일부도 제약을 가하여 외국 상선이 연안국의 영해를 무해 통항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는 전술한 형사재판관할권과 함께 연안국의 영해에 대한 배타적관할권과 기국의 국기게양선박에 대한 배타적인 관할권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조항이다.
그간 우리나라에서 편의치적선을 우리나라 해운회사가 활용하는데 따른 사법당국의 문제제기는 바로 이 해양법 조약에 의한 재판관할권과 관련해서 신중하고 깊이있는 검토가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4) 기국의 자국기 게양선박에 대한 배타적 관할권과 영토에 대한 배타적관할권과의 비교
영토에 대한 배타적관할권
국제법상 배타적관할권이 가장 강조되는 분야중의 하나가 영토에 대한 배타적인 관할권일 것이다. 국제법상 국가의 성립요건으로는 흔히 영토와 국민, 그리고 이 영토와 국민을 지키고 다스리고 보호할 수 있는 힘인 주권이 있어야 한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주권이고 두 번째가 영토, 세 번째가 국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중 영토에 대한 배타적관할권은 절대적이고 예외가 없다. 국제법상 예외가 있다면 제국주의가 횡행하고 열강이라는 이름의 강대국들이 세계를 지배하던 시대, 약소국이 영토의 일부를 다른 강대국에 할양하거나 조차(租借)를 해주는 경우가 영토에 대한 배타적관할권 예외의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전쟁 또는 이에 준하는 비상사태에서 있는 것이고, 그리고 일단 형식은 조약의 형태로 합법화시키고 있다. 영토에 대한 배타적관할권의 또 하나의 예외는 외국대사 등이 머무는 공간인 외국공관1)과 우리나라와 미국과의 합의에 의한 주한미군의 주둔과 같이 상호합의하여 외국군대가 주둔하는 공간 등이 영토에 대한 배타적관할권의 적용이 유보된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중 외교공관의 경우, 국제사회가 형성된 이래로 형성된 관행이고 상호주의적인 것이다. 외국군대의 주둔의 경우도 어떤 형태로든 합의하여 예외를 인정할 뿐이다.

영토에 대한 배타적관할권은 거의 절대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이것을 무시하고 상대국의 영토권(영토에 대한 배타적관할권)을 침해할 경우, 상대국에 대한 주권의 침해로 간주되고, 자주 전쟁의 빌미가 되어왔다. 예를 들어 한나라에서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외국으로 도망하였을 경우, 그 범인을 체포하기 위하여 그 국경을 넘어 범죄인을 체포할 경우, 중대한 영토침범이 되므로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행위다. 다만 할 수 있는 것은 범인이 도망한 상대국에 외교 경로를 통하여 범죄인을 인도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에서 권위주의적인 정권시절 정치적인 이유로 반정부적인 언동을 일삼던 정치인을 강제로 납치해오거나 외국체류 한국인들이 북한과 왕래하였다는 이유로 불법 체포하였다가 외교적으로 우리나라가 대단히 궁지에 몰린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사례들이 크게 문제가 된 것은 바로 다른 주권국가의 영토에 대한 배타적관할권을 침해하였기 때문이다.

선박에 대한 배타적 관할권          
해운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면 “배는 움직이는 영토”다 라는 말을 자주 들었을 것이다. 이는 바로 자국기를 게양한 선박에 대한 기국의 배타적관할권과 영토에 대한 배타적관할권이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말이다. 그러므로 타국의 영토주권을 침해하지 말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공해상을 항행하는 선박에 기국이외의 국가는 어떤 공권력 행사도 해서는 안 된다.
선박은 영토와는 달리 움직이는 물체이고, 선박의 기능상 타국의 영해를 통항하여야 할 경우가 많이 발생하는데, 이 경우 영토에 준하는 배타적관할권이 인정되는 영해에 대한 연안국의 배타적관할권과 자국기 게양 선박에 대한 선적국의 배타적관할권이 충돌할 염려가 있으므로 해양법조약은 이에 대하여도 특별한 규정을 두고 있다. 그 요지를 보면 ① 모든 선박은 타국의 영해를 무해통항할 수 있고(제 17조), ② 연안국은 특정한 사항에 대하여는 연안국의 법령으로 무해통항과 관련된 법령을 제정 시행할 수 있고(제21조), ③ 외국선박에 대한 형사재판관할권과 민사재판관할권에 대한 특별 규정을 두고 있다(제27조 및 28조). 이 규정들의 상세한 해석은 상당한 지면이 필요하고, 본건과 직접 관련된 사항이 아니므로 생략한다.

선박에 대한 기국의 배타적관할권과 관련된 사건 예-1812년 영미전쟁
1812년의 영미전쟁의 하나의 원인으로 아래와 같은 사례가 있다.
전쟁의 하나의 원인이 미국상선에 대한 공해상에서의 영국군함의 임검과 영국선원의 납치가 있었다. “영국해군이 만성적인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하여 공해상에서 상선은 물론, 때로는 군함까지도 임검하여 영국적 선원을 모조리 납치한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1만명이상의 미국선원이 영국해군에 강제 입대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하여 전쟁발발 이전에도 1807년의 레오파트사건2)이라든지, 1812년의 프레지던트/리틀벨트 사건3) 등 쌍방의 군함이 포화를 앞세워 대립한 경우가 있었는바,  이로 인해 영국인에 대한 미국민의 감정이 극도로 악화되었다. 이런 일도 하나의 원인이 되어 1812년에 영미전쟁이 일어났다.4)

1856년의 아로호 사건
1856년, 청의 광주(廣州)에서 청의 관헌이, 영국 국기를 게양하고 있던 아로호의 선내에서 중국인 용의자 한명을 체포하였다는 소위 아로호 사건이 일어나자, 영국은 이것을 절호의 구실로 삼아 청에게 압력을 가하고자 하였다. 프랑스도 선교사를 살해한 것을 이유로 영국과 연합하여 청에 간섭하여, 1858년에 화북에 침입하여 청군을 격파하고, 천진(天津)조약을 체결5)하여 중국이 큰 손해를 감수하여야 하였다.           
위 사례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선박에 대한 기국의 배타적 관할권을 침해하는 행위는 중대한 국제법 위반으로 여겨졌고, 심할 경우, 이를 구실로 전쟁을 불사하였음을 알 수 있다.

21세기초  편의치적선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4~5년 전 일본선사인 NYK사가 실질선주인 편의치적선(파나마적) 선내에서 항해중 살인사건이 발생하였다. 범인은 필리핀 부원선원이었고, 피해자는 일본인 항해사였고, 범행장소는 공해상이었다. 이 사건의 개요를  간단하게 정리하면, 3개국이 일단 관계국이라 할 수 있다. 첫째는 일본인데 일본인(NYK)이 실질선주이고, 피해자가 일본인이므로 일본이 가장 이해 관계에 민감하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범인의 국적국인 필리핀이 있을 수 있다. 자국민의 보호도 국가의 중요한 임무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는 당해선박의 등록국인 파나마국이다. 이 중 파나마의 경우 당해선박이 파나마 국기를 게양한 파나마국적선이라는 것 외에는 직접 이해관계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현행 국제법은 이런 경우, 일본도 필리핀도 아닌 당해선박의 국적국인 파나마국이 모든 것을 처리하도록 되어 있다. 누누이 강조하여 설명한 자국기를 게양한 선박에 대하여 선적국은 배타적관할권을 갖기 때문이다.

이하 당해사건의 처리 경위를 요약한다.
① 사건이 발생하자 선장의 직권에 의하여6) 범인을 체포하여 선실에 감금하고 항해를 계속하였다. 
② 당해선박이 목적항인 일본항만에 도착하여 일본경찰에 사실을 보고하고 범인을 인도하려 하였으나 본선의 국적국인 파나마에 배타적관할권이 있음을 이유로 범인인수를 거부하였다.
③ 본선선장은 다시 파나마 대사관과 영사관에 통보하고 범인을 인도하려 하였으나 파나마대사관(영사관)에서는 예산도 없고 별관심도 없으므로 일본에서 알아서 처리하라는 입장을 취하였다.
④ 그러나 일본경찰당국은 국제법을 들어 파나마국에 인도가 원칙이라는 입장을 고수하였다.
⑤ 우여곡절 끝에 선박의 실질소유주인 NYK가 비용을 부담하고, 파나마측이 범인을 인수하여 본국으로 보내 그곳에서 재판을 하도록 하고 사건이 종결되었다.
⑥ 이 사건의 처리과정에서 서로 미루는 통에 본선은 일본항만에 한달 이상 계류하고 있어야 하였기 때문에 범인 인도비용을 포함하여 경제적 손실이 막대하였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편의치적국은 자국기를 게양한 선박에 대한 배타적 관할권에 대한 행사를 거의 포기한 상태이고, 자국 등록에 의하여 파생되는 조세수입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악법도 법이다”라는 격언과 같이 비록 실효성이 거의 상실된 선박국적제도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국제법의 기본원칙만은 기국의 배타적인 관할권은 거의 예외가 인정되지 않는 국제법상 기본원칙이다. 그리고 이 제도 덕분에 2차 대전 후 세계해운업은 다국적 기업의 대표적인 모델로 자리잡아 세계해운이 건강하게 운영되는데 크게 도움을 주고 있다. 여담으로 국적국의 배타적관할권 행사에 대한 무관심에서 일어나는 안전과 해양환경 보호상의 문제점들은 해양법조약외의 다른 IMO 조약들에 의하여 보완됨으로서 문제점이 많이 커버되고 있다.
다음 호에는 위와 같은 원칙에 반하는 우리나라 국내조치들에 관한 필자의 의견을 피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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