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외환위기를 잘 극복하는 것처럼 보였던 우리 해운업계가 중견기업의 부도로 다시 미래를 걱정하게 되었다. 일부에서는 현재의 위기를 중국경제의 방향 전환을 이유로 하기도 한다. 그러나 해운기업은 환경을 탓할 수 없다. 왜냐하면 전통적으로 긴 불황과 짧은 호황, 급격한 운임변동으로 대표되는 해운경기 하에서 세계적으로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해운기업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살아남는 선사가 강한 해운기업이라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즉, 해운기업은 어떤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기업, 강력한 체질을 가진 기업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현대 해운의 모국이라고 할 수 있는 영국, 미국에 세계적인 해운이 없다. 영국계 선사인 P&O네드로이드가 덴마크 선사인 머스크에, 미국의 APL은 싱가포르의 NOL에, 인수합병(M&A)되면서 영국과 미국에는 이렇다 할 해운선사가 없다. 그러나 이들을 대체할 중국, 인도, 브라질, 아랍권 국가에서 급성장하는 해운 기업을 우리는 찾을 수 있다. 우리는 해방 이후 60년이 넘는 시간 속에서 여전히 허약한 경영기반을 탓하면서 비슷한 여건을 가진 이웃 대만에 에버그린이라는 세계적인 선사가 발전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만 보고 있었다.
하지만 선진국 해운에도 예외는 존재한다. 앞서 언급한 북유럽국가를 제외하면 우리가 참고로 삼을만한 선사들은 바로 일본기업들이다.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NYK, MOL, K-LINE으로 대표되는 세계적 해운기업들은 외부환경 변화에 적극대응하면서 세계해운의 변화를 선도하고 있다. 무엇이 그렇게 강한 일본 기업을 만들었는가? 체질이 강한 기업은 어떤 기업이며 그 비결은 무엇일까? 우리 해운도 여기서 배워야 한다. 어떻게 하면 장기적으로 안정적 지속성장을 가능하게 할 것인가를 배워야 한다.
일본과 비교하면 언제나 등장하는 애기가 있다. 일본은 자국선주만 이용하는 대형 화주가 존재하는 큰 규모의 내수시장이 있고, 선박금융이 잘되어 있어 저금리로 돈을 빌려 쓸 수 있기에 우리에 비하면 땅 짚고 헤엄치기다. 하지만 저금리로 돈을 빌려 쓸 수 있는 나라가 일본만 있는 것이 아니고, 내수시장 규모가 큰 나라가 일본만도 아니다. 우리나라도 타국 입장에서 보면 비교적 큰 내수시장을 가지고 있고 더구나 정부가 앞장서서 다양한 해운지원책을 실시하고 있는 국가이다. 특히 최근에는 국제선박제도, 톤세제도, 국가필수선대 등을 일본에 앞서 실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그렇다면 일본과 우리나라의 대형 해운기업의 경영전략이 크게 다르지 않고, 기업의 구조나 투입 요소 측면에서 일부 차이가 있다고는 하지만 경영성과 측면에서 예상과는 전혀 다른 큰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왜 일본 기업은 잘되고 우리선사는 잘 안될까? 일본선사들이 반짝 성과가 아니라 지속적인 성과를 창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단지 우리보다 먼저 출발했기 때문에 라든지, 일본선사는 우리보다 낮은 금리로 자본조달이 가능하기 때문이라든지, 아니면 단지 운이 좋았다고 만도 할 수 없다.
결국 일본해운기업의 체질이 우리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근본적인 바탕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는 충분한 설명이 어렵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근본이 다른 ‘체질’이 강한 선사가 될 수 있는가? 인간이나 기업이나 시련을 겪은 자만이 강한 체질을 가진다. 일본해운기업의 체질을 강하게 한 것은 무엇보다 일본해운업계 전체가 생존 위기에 빠지고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었던 시련을 겪었기 때문이다. 시련의 경험이 있는 기업과 언제나 편하게 사업을 운영해 왔던 쪽은 근본적으로 체질이 다르다. 일본 선사들이 이런 시련을 경험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무일푼이 되었던 1940년대, 그리고 일본경제의 급성장과정에서 수많은 기업이 통폐합된 1960년대 중반의 해운집약, 그리고 일본경제의 고도성장이 멈추면서 컨테이너선이 일반화면서 3대선사체제로 전환된 1980년대라고 할 수 있다.
업계 전체의 사활이 걸린 시련을 경험하면서 일본 선사의 체질은 10년 이상의 장기적 시야에서 신중한 의사결정을 기본체질로 하고 있다. 일본의 대형선사에 대하여 연구하다 보면 이들은 해운경기가 호황을 구가하는 시기가 구조조정의 적기라고 판단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처럼 너도나도 한 방향으로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미래에 닥칠 위기에 대처하여 균형잡힌 경영을 추구하고 있다. 세계 1위의 선복량을 가진 선사라는 자부심보다 자만하면 하루아침에 망할 수 있다는 인식이 현장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일본선사들은 호황기에도 위기감을 놓지 않고 새로운 도전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세월이 흐르고 빠른 성장을 하게 되면서 시련의 시기를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과거의 시련이 흘러간 이야기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경영자들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새롭고 도전적인 목표를 통해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것을 조직원에게 끊임없이 전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1990년대 후반의 중국호황기에 많은 선사들이 등장했고, 선사에게 더 많은 돈을 빌려주지 못해 안달난 금융기관이 있었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 새롭게 등장한 선사는 극소수였고, 새롭게 선박금융을 시작한 금융기관도 없었다. 우리가 1980년대의 해운산업 합리화시절을 잊어버리고 흥청망청할 때, 일본은 망각의 강을 건너지 않고 대를 이어 위기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 한일 양국 해운업의 결정적인 체질 차이다.
지금 당장의 편한 길을 추구하는 단기성과지상주의만으로 체질이 강한 선사가 될 수는 없다. 지금이야말로 힘들더라고 어렵더라도 신중하게 장기적인 성공의 길을 찾아 성공 체험을 쌓고 더 어려운 목표를 설정하고 자기 스스로를 경계하며 조직 체질의 세밀한 변화를 주도해 나가는 해운경영이 필요하다.
- 기자명 한종길
- 입력 2011.06.01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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