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종길 성결대학교 교수
한종길 성결대학교 교수
지난 주, 동일본대지진의 생생한 현장사진이 담긴 특집기사가 실린 잡지를 일본의 항만관계자가 보내주었다. 불타는 정유시설, 컨테이너 하나가 들어갈 정도로 갈라진 부두, 흔적도 없이 사라진 철도역사, 바다 속에 가라앉은 항만 크레인, 안벽위로 올라가버린 벌크선, 지붕위에 자리 잡은 대형어선, 두 동강으로 쪼개진 조선소의 도크설비, 자욱한 연기 속에 불타오르는 폐허만 남은 항만, 2만명 이상의 사망자를 찾아 헤매는 무기력해 보이는 사람들. 사진으로 본 피해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쓰나미에 방사능 오염이라는 최악의 재해는 동일본 지역항만의 기능 정지, 일본을 넘어 동아시아 공급사슬의 단절과 같은 많은 과제를 우리 앞에 던지고 있다. 그러나 지진이나 쓰나미는 우리에게는 생소한 재해이기 때문일까 우리와 무관하다는 풍조가 우리에게 만연해 있다.
그러나 항만기능을 정지시키는 재해는 지진이나 쓰나미 이외에도 우리에게 익숙한 태풍 등의 자연재해와 해난사고와 같은 사건사고도 있다. 지구차원의 기후변화로 인하여 대형자연재해는 더욱 빈번하게 발생할 것이다. 만약 방사능 유출사고가 발생한다면 국내 최대항만인 부산항은 매우 어려운 위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일본은 환태평양 지진대에 위치한 경우라고 하더라도 지진 못지않은 위력을 가진 자연재해는 우리나라에도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자연재해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왔는가? 2003년 태풍 매미로 인하여 부산항의 갠트리크레인이 붕괴되고 항만기능이 부분적으로 일시 정지되었다. 하지만 필자의 정보가 부족해서인지 그 이후로 관계당국이 갠트리크레인을 비롯한 항만하역기기의 안전기준을 강화하였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고, 태풍과 같은 대규모 자연재해로 인한 항만기능 정지에 대비하여 항만당국이나 해당업체가 매뉴얼을 마련하고 정기적인 대비훈련을 실시하였다는 뉴스를 들은 적이 없다. 그런 상태에서 방사능 오염이나 쓰나미 대비책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상이변으로 인하여 대규모 자연재해가 더욱 빈발할 것이 예상되는 현실에서 재해에 강한 해상수송 네트워크의 구축과 지역의 방재능력 향상을 도모하여야 한다. 대규모 재해 발생시, 항만이 수행하여 하는 방재기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자연재해나 사건사고에도 불구하고 항만기능이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BCP(사업계속계획, Business Continuity Planning)을 책정하고 항만의 다음과 같은 방재기능을 강화하는 시책을 강력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재해복구를 위한 방재거점 기능의 강화이다. 재해발생시 항만은 선박에 의해 긴급물자와 이재민 등을 수송하는 거점 기능과 함께 이재민 구호 등에 필요한 광장이나 긴급물자 보관기지 등의 방재거점으로서의 기능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둘째로, 피해지역을 위한 물류거점 기능강화이다. 피해지역의 조기 부흥과 산업의 국제경쟁력 유지란 관점에서 국제 해상컨테이너 수송의 중단 없는 지속 등, 경제나 산업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물류거점 기능의 정지가 발생하지 않도록 할 필요하다.

셋째로, 교통수단간 연계를 통한 대체수송 지원기능의 강화이다. 대규모 자연재해로 피해지역을 관통하는 육상교통 기능이 저하된 경우, 해상수송을 이용한 피해지역 우회수송을 지원하는 기능이 필요하다. 또 특정항만이 피해를 입어 해상수송이 행해지지 못하는 경우, 제 3국 항만으로 물동량이 이동하지 않도록 국내 대체 항만간 연계 수송네트워크 구축이 요구된다.
넷째로 쓰나미나 태풍과 같은 재해에 대한 방호기능의 강화가 필요하다. 쓰나미의 내습이나 태풍의 통과가 예상되는 지역의 항만은 재해로부터의 항만기능 및 항만노동자 등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대책을 조속히 수립해야 한다.
항만은 국민생활, 산업활동을 지탱하는 중요한 물류, 생산기반으로서 경제 발전에 크게 공헌해왔다. 나아가 지역경제를 위한 가공 및 수송 거점으로, 또 낙도 등을 위한 생활항로 거점으로, 항만은 지역의 활력과 생활을 지탱하면서 지역과 함께 발전해 왔다.

그러므로 대규모 재해로 인한 항만기능의 정지 내지는 저하는 금번 동일본 대지진의 사례에서 보듯이 선박에 의한 긴급물자수송 차질은 피해 재난지의 복구 지연뿐 아니라 산업에 커다란 영향을 미침과 동시에 항만과 함께 발전해 온 지역의 활력과 시민 생활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
마지막으로 ‘자연재해에 강한 항만’이라는 이미지는 국내항만이 동아시아의 주요항만과 비교하여 경쟁우위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미 우리는 서일본 지역의 물류망을 붕괴시킨 한신 대지진의 영향을 학습한 바 있다. 지진, 해일이나 잦은 태풍 등의 위협에 상시 노출되어 있는 중국, 타이완, 일본의 항만과 비교하여 국내 항만은 자연 환경적 경쟁우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는 아직 내진설계 5% 수준에 지나지 않는 항만관련 시설을 강화하는 하드웨어적인 측면과 함께, 재해대비 훈련과 매뉴얼 수립, 항만 종사자의 안전의식 강화 등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의 노력이 통합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동일본대지진을 타산지석의 계기로 삼아 대규모 재해에 대한 항만정책당국과 관련종사자의 인식전환과 위기를 기회로 삼는 철저한 대응책 마련을 기대한다.
 

저작권자 © 해양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