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40주년의 한국해사문제연구소
4월 콤파스는 한국해사문제연구소 창립 40주년 기념일과 중복되어 생략됐다. 한국해사문제연구소의 창립 40주년 행사가 끝났다. 행사를 마치고 보니 왠지 허전하다. 좀더 잘 했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 때문이다. 연구소의 창립에 공이 큰 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는 했다는 안도감도 든다. 대부분의 수상자들이 작고하여 공로패를 직접 전달할 수 없었던 점은 퍽 안타까웠다. 생존시 하도 완강히 사양하여 시행할 수 없었던 까닭이다. ‘삼주 윤상송 자서전’을 발간하여 고인의 해사문제연구소 창립정신을 기릴 수 있던 것도 뜻 깊었다. 참석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진심어린 축하를 해 주었다. 40년전 당시로선 민간연구소를 시작했다는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컸다. 더구나 일반인들의 관심에서 먼 해사관련 민간연구소를 창립했다는 것은 획기적인 일이었다. 그분들은 분명 해사연구와 해운입국의 기초를 닦은 선각자였다.

창립 30주년 행사 때처럼 일본선주협회 회장을 강사로 초청하였으나 일본대지진으로 미야하라 고지 회장(NYK 회장)이 불참하여 대신 오사카산업대학 미야시타 구니오 교수가 강연을 하였다. 해운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자리를 빌 수가 없어 부득이 불참을 통보해 왔고 급히 후임자를 물색하던 중 미야시타 교수의 승낙으로 어렵사리 성사되었다. 신속히 섭외한 자원봉사자 한종길 교수께 감사드린다. 그날 행사 현장을 스케치한다.

2011년 4월 1일 오전 11시, “지금으로부터 재단법인 한국해사문제연구소 창립40주년 기념식을 거행하겠습니다.” 드디어 한국해사문제연구소 창립 40주년 기념식이 강영민 전무의 사회로 시작되었다. 먼저 프리젠테이션 ‘한국해사문제연구소의 40년 발자취’가 상영되었다. 해사문제연구소가 창립된 1971년 4월 1일부터 지금까지 40년간의 사업과 행사가 연혁과 함께 소개되었다. 연구사업, 출판사업, 교육사업에 대한 소개와 함께 연구소의 활동장면이 영상으로 전달되었다.

이어 국민의례, 40년이라는 세월은 국민의례를 정식으로 해야 할 무게를 지녔다.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염원하는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 제창을 할 때 나라를 지키기 위해 온갖 역경을 극복한 선열들이 떠올랐고, 순국선열과 순직선원 및 일본대지진 희생자를 위한 묵념에서는 장내가 숙연해졌다. 행사후에 참가했던 일본인들로부터 감사의 인사를 많이 받았다. 박현규 이사장의 손녀 서울음대 4학년생 박유라 외 2인의 격조높은 피아노3중주도 행사의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이어 기념사, 박 이사장은 “삼주 윤상송 박사님은 40년전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해운입국의 확고한 신념과 숭고한 정신으로 해사문제연구소를 창립하셨다”며, 우리 연구소는 그 창립정신을 계승 발전시켜 우리나라 해사산업이 꽃을 피울 수 있도록 배전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축사가 조정제 전 해양수산부장관과 건설교통부장관였던 여수세계박람회 강동석 조직위원장과 한국선주협회 이종철 회장, 오거돈 한국해양대학교 총장 순으로 행해졌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한국해사문제연구소의 지난 40년을 축하하며 향후 50년 100년을 향해 힘차게 전진하기를 기원했다. 예정되었던 정종환 국토해양부장관 치사는 동남권신공항 선정 건으로 불참하여 “한국해사문제연구소 창립 40주년을 축하하며, 미야시타 교수 초청강연회가 성공적으로 개최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는 축하메시지로 대신하였다.

이어 삼주 윤상송 자서전 ‘바다에 미래를 걸다’의 발간식이 거행되었다. 당초엔 자서전 제목을 ‘바다에서 길을 찾다’로 정했으나 ‘이순신, 바다에서 길을 찾다’라는 역사문화기행 책의 제목과 같아 급히 바꿀 수밖에 없었다. 전 한국해사문제연구소 이원철 전무의 삼주 윤상송 박사에 대한 약력소개에 이어 박 이사장이 윤상송 박사의 부인 전순혜 여사에게 자서전을 증정하였다. 전 여사는 간밤에 흥분되어 한잠도 못잤다며, 윤박사께서 해사문제연구소를 만들 때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고민하여 “집을 잡혀서라도 도울테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했다며 그 때를 회상하며 감격해했다.

공로자 표창 순서가 이어졌다. 다음은 해사문제연구소 창립자 윤상송 박사에 대한 공로패 내용이다. “삼주 윤상송 박사님은 동경상선대학을 나오신 후 한국해양대학 학장, 한국선주협회 이사장을 역임하시며 한국해운 발전의 주역을 하셨으며, 1971년 4월 1일 우리나라 최초의 해사관련 민간연구소인 한국해사문제연구소를 창립하시어 해운입국의 초석을 놓으셨고, 1973년 10월 해사전문지 ‘월간 해양한국’을 창간하시어 해운전문성 제고와 해사언론 창달에도 공헌하셨기에, 이를 기리기 위해 우리 연구소 창립 40주년을 맞아 이 패를 드립니다.” 이어 창립에 큰 도움을 주었음에도 이사직을 사양하여 2대 이사로 취임한 천경해운 김윤석 전회장과 창립이사였던 이맹기 대한해운 전회장, 김재근 서울대 조선공학과 교수와 이준수 한국해양대학교 명예교수에 대한 공로패 증정이 있었다. 이준수 명예교수 외에는 모두 작고하여 가족이 대신 수상하였다. 이어 한국해사문제연구소 설립허가를 위해 적극적인 행정조치(교통부 해항 1521-847호 1971.3.31)를 취하여 다음날인 4월 1일 개소할 수 있도록 지원한 이종순 당시 교통부 해운국 사무관과 40년동안 해사문제연구소의 발전을 위해 지원한 한국선주협회에 대한 감사패 증정이 있었다.

이어 식순에 없는 특별순서를 가졌다. 해사문제연구소 2대 이사장으로서 26년간을 무보수로 봉사한 박현규 이사장에게 “박현규 이사장님께 사랑과 감사의 메달을 드립니다”라는 글과 임직원들의 이름이 담긴 메달을 이경재 소장이 전달했다. 이 소장은 “워낙 사양하시는 바람에 깜짝쇼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축하케익 절단과 기념촬영 및 조정제 장관, 강동석 장관, 이준수 박사, 신태범 회장 순의 건배제의를 거쳐 오찬으로 연결됐다.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오찬을 마친 후 오후 1시 일본 오사카산업대학 미야시타 교수 초청강연회가 열렸다. 통역은 한국해운물류학회 사무국장인 성결대학 한종길 교수가 맡았다. 강연에 앞서 일본해사신문 오야마 다카아키 사장의 축사가 있었다. 오야마 사장은 “한국해사문제연구소 창립 4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작년 오사카에서 열린 일본해사신문ㆍ한국해사문제연구소의 공동주최 일한해사포럼에 이어 오늘 초청강연회를 갖게 되어 기쁘다”며, “이런 교류를 통해 양국의 해운물류업이 발전하고 나아가 동아시아 물류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올해에도 도쿄에서 해사포럼이 개최될 예정이라며 참가를 부탁했다.
이어 “미야시타 교수는 고베대학 경제학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고베대학에서 상학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고베대학 경영학부와 대학원 교수, 유통과학대학 상학부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현재 고베대학 명예교수와 일본해운경제학회 회장에 이어 명예회장도 맡고 있다. 연구분야는 로지스틱스, 국제물류, 국제교통상학, 경제정책, 응용경제학이며, 연구테마는 국제교통업의 규제완화, 일본 국제물류시스템, 일본 물류업의 글로벌경쟁, 일본기업의 글로벌 로지스틱스 경쟁우위, 일본경제의 구조변화와 국제물류 모드의 선택 등”이라는 강사소개가 있었다.

미야시타 교수의 강연제목은 ‘동아시아 해운물류의 현상과 전망’으로, 동아시아의 해운물류 발전의 특징, 해사혁신력의 구축 : SCM 대응모델의 강화, 해운에 있어서의 기업과 국가 및 전략과 정책의 관계, 맺음말 순으로 발표하였다. 미야시타 교수는 한국 해운정책의 우위성은 국가전략이 물류발전을 결정하며, 국가 싱크탱크의 철저한 연구와 대학과의 제휴, 경쟁우위의 해운항만물류정책의 신속한 실시에 있었다고 분석했다.
오후 2시, 박 이사장의 폐회사를 끝으로 당초보다 1시간 일찍 모든 행사를 마쳤다. 오후 6시 10분에 김포공항을 떠나야 하는 미야시타 교수의 일정에도 맞추어야 했지만, 모든 순서가 순조롭게 진행되어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 이제 한국해사문제연구소 호의 닻을 올리고 “해양한국의 글로벌화와 정보기능 강화, 해운경영컨설팅 기능 활성화, 해운물류아카데미로서의 성장 발전, 연구발전기금 조성, ‘한국해사문제연구소 50년사’ 편찬”이라는 5대 비전을 실천하기 위해 출항해야 할 시간이다. “10년 후인 2021년 창립 50주년때에는 더욱 발전된 모습으로 여러분들을 모시겠습니다”라는 사회자의 인사말로 뱃고동을 울렸다.
 
바다살리기운동과 해양사상
사단법인 바다살리기국민운동본부 20011년 정기총회 및 총재 이취임식이 4월 20일 한국선주협회 대회의실에서 해운관계자와 해양가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되었다. 이날 행사는 정기총회와 총재 이취임식 순서로 진행되었는데, 순수 NGO 바다지킴이들답게 소박하게 행사가 치러졌다. 바다살리기국민운동본부 신임총재로 취임한 조정제 전 해양수산부장관과 총재직을 성실히 수행하고 퇴임하는 정태순 장금상선 회장 모두에게 축하를 보낸다. 정태순 전임총재는 격무 속에서도 바다를 살리고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하였다. 앞으로도 고문으로서 깨끗한 바다, 풍요로운 바다를 만드는 일을 계속 도울 것으로 보인다.

정태순 총재는 퇴임사를 통해 “그동안 바다를 지키고 살리는 일에 미력하나마 힘을 보탠 것에 보람을 느끼며, 화려한 경력과 관록에다가 바다를 정말 사랑하는 조정제 장관님을 후임총재로 모시게 되어 마음 든든하다”며, “조 총재님을 중심으로 바다살리기운동본부가 더욱 발전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이어 조정제 신임총재는 “정태순 총재님은 워낙 바쁜 분이라 사업과 다른 일에 전념하실 수 있도록 부득이 총재직을 수락했다”며, “전임총재께서  실행해오신 바다살리기운동을 계승 발전시키는 일에 여생을 바치겠다”는 취임사를 하였다. 또한 우리나라 단체들은 머리만 있고 몸통과 팔다리는 없는 기형조직이 대부분이지만, 바다살리기국민운동본부는 몸통과 팔다리 역할을 잘 해오고 있다고 말하고, 바다 해(海) 자에는 어미 모(母) 자가 들어 있는데, 어머니가 병들고 아프면 온 가족이 아프고 힘들어진다며 어머니인 바다가 건강해져야 함을 강조했다. 해양오염의 70%가 하천으로 인해 발생하므로 원천적으로 하천을 살려야 바다도 살아난다며, 개인적으로 4대강 살리기운동을 적극 지지한다고도 말했다. 

한국해사문제연구소 박현규 이사장은 축사를 통해 “생명의 근원인 바다를 살리는 일은 인류의 생명을 살리는 길”이라며, 바다살리기야말로 미래를 위해 반드시 벌여야 할 국민적운동이라고 말했다. 또한 “격무 중에도 성심을 다한 정태순 총재에 이어 학식과 경륜이 깊은 조정제 장관님이 총재직을 맡아 기대가 크다”고 덧붙였다. 일본의 니기타와 가나자와 사람들은 한국인들이 강과 바다에 버린 쓰레기들이 일본해안으로 흘러들어와 골치가 아프다는 항의를 직접 받았으며, 이번 쓰나미 피해를 받은 센다이의 어민들이 바다와 동떨어져 있는 산에 나무를 정기적으로 심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도 말했다.

바다는 인류의 마지막 남아있는 자원의 보고이며, 우리의 생명과 미래를 지켜줄 소중한 곳이다. 무한한 자정능력과 생산력을 가지고 있는 최고의 보고 바다를 잘 지키고 가꿀 때 우리의 생명과 미래가 보장된다. 2007년 태안해양오염사고와 쓰나미와 후쿠시마원전사고로 인한 해양오염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무한한 바다의 자정능력에도 한계는 있으며, 인간의 잘못으로 바다를 회복불능으로 오염시킬 때 그 대가는 가히 재앙적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1970년 유엔해양법협약에 ‘바다는 인류 공동의 유산’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소중한 바다를 잘 보존하여 후손에게 고이 물려주어야 할 의무가 우리 모두에게 있다는 뜻이다. 후손들에게서 빌려쓰고 있는 바다라는 자원을 오남용한다는 것은 범죄행위와 다름 아니다.
바다살리기국민운동본부의 창립목적은 ‘오염된 바다의 정화사업와 해양오염 방지활동을 통하여 해양환경을 지키고 보전하며, 궁극적으로 풍요로운 어촌건설과 해양과 관련된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함’이다. 바다 살리기는 바다를 바다답게 보존하는 것이다. 조정제 신임총재를 비롯한 회원 모두가 일심단결하여 푸르고 깨끗하고 수산자원이 풍성한, 살아 숨쉬는 바다를 만들어나가기를 바란다. 환경단체로서만 아니라 교육계몽단체, 연구단체로서의 기능에도 최선을 다해 해양과 인류가 조화를 이루며 더욱 발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바다살리기는 범국민운동이다. 바다를 살리고 가꾸는 일에는 너나가 있을 수 없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우리 모두가 이 운동에 적극 동참하여 힘을 모아야 한다. 해양입국은 바다살리기 같은 성숙한 국민운동으로 완성된다. 콤파스클럽의 좌장 조정제 회원의 총재취임을 축하하며, 바다살리기국민운동본부의 발전과 활약을 기원한다.

프라하의 봄, 돌마의 농자(農子)
해사문제연구소 40주년 행사를 마치고 오랜만에 가벼운 마음으로 서점을 들렀다. 여러 종류의 책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 신간을 중심으로 뒤적거리다가 시선을 끈 책은 작가들이 사랑한 도시 ‘프라하’였다. 얼핏 체코 관광청에서 만든 관광홍보 책자 같아 이내 지나쳤지만, 묘한 흡인력에 다시 찾았다. “이 책을 읽다보면 프라하와 온전히 합일되어 가는 느낌이 들 것이다. 문학이 아니라면 그 무엇이 이처럼 신비한 유대감을 만들 것인가”라는 추천글을 읽는 순간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체코, 프라하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국민음악가 드보르작과 스메타나, 박신자 선수의 여자농구 그리고 프라하의 봄이다. 1968년 체코의 자유민주운동과 지도자 두브체크, 시인이자 극작가 하벨 대통령, 그리고 소련을 위시한 바르샤바동맹국의 탱크에 의해 좌절된 프라하의 봄. 독일과 오스트리아, 소련이라는 강대국 틈에서도 마르거나 끊어지지 않는 블타바 강처럼 도도히 흐르는 체코와 프라하 사람들.

이 책에 수록된 단편들을 읽으며 체코 국민문학 창시자 얀 네루다와 카렐 차페크를 만나고 20세기가 낳은 위대한 작가 프란츠 카프카, 근대시의 아버지 야로슬라프 하셰크, 구스타프 마이링크와 시공을 초월해 교감하며 대화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바츨라프 광장에서 어슬렁거리다가 오를로이 천문시계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카를 다리를 건너 말라스트라나를 지나 프라하 성에도 들어가 보았다. 짧은 만남 긴 여운이다. “아름다운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 얽힌 그림 같은 이야기와 함께 이곳을 찾는다면 색다른 감흥의 여행이 될 것이다. 책장을 펼치는 순간 들려오는 체코 작가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라. 체코의 유서깊은 역사와 풍부한 문화유산, 그리고 거리 곳곳에 숨은 비밀의 문이 열릴 것이다.” 주한 체코대사 야로슬라브 올샤의 말과 무혈의 벨벳혁명, “프라하 혁명의 무기는 조롱과 풍자 그리고 농담이었다”는 이반 클리마의 말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잠시나마 체코의 위대한 작가들을 만나 프라하의 거리 곳곳을 마음껏 휘졌고 다니는 독서의 마법에 빠져들었다.

산간벽지 돌마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불효를 각오하고 가출하여 고학으로 학업을 마치고 ‘정치는 절대로 하지 않겠습니다’ 장인에게 약속하여 결혼을 하고 공직자로서 빙공영사(憑公營私) 하지 않도록 다짐하며 살아온 정영훈 의원이 4월 19일 향년 81세로 소천했다. 평생 소신있는 공인으로서 올곧게 살았으며 말년에는 장학재단 하광장학회 이사장으로서 많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수여한 봉사의 사람이었다. 콤파스에 참석하여 경험에서 나오는 사려깊은 발언으로 공감을 주었고, 근자에는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콤파스에 꼭 참석하였으며, 한국해사문제연구소 창립 40주년 기념식에도 참석하여 건배제의를 받았는데......그저 놀랍고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 없다. 하늘나라에서 안식을 누리기를 기원할 뿐이다. 송대의 안기도가 쓴 자고천에 나오는 한시로 송별사를 대신한다.
“리리원상초(離離原上草)/ 일세일고영(一歲一枯榮)/ 우송왕손거(又送王孫去)/ 처처만별정(     滿別情)-무성한 들판의 꽃, 해마다 한껏 시들었다 번성하지, 또 다시 떠나는 귀인 전송하려니, 무성한 들판에 이별의 정이 가득하누나.” 

                                                                                                            <한국해사문제연구소 강영민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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