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옮기는 마음’으로  중장기 관점에서 차근차근 진행해야

 

 

황진회 박사
황진회 박사
8월 1일은 ‘남북해운합의서’ 발효 1주년이 되는 날이다. 최근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남북이산가족면회소 건설인력 철수 요구 등으로 남북관계가 ‘잔뜩 찌푸린 날씨’처럼 보이지만, 남북해운합의서에 대한 의미를 생각하고 향후 과제를 다시 한번 고민해야 할 때이다.


남북해운합의서는 남북한간의 해상항로를 복원하고, 남북해운을 공식화하여 남북해운을 민족내부항로로 천명했다는데 의의가 있다. 그리고 남북해운합의서는 국적선 운항체제를 확립하고, 남북 경협물자의 안정적 수송으로 남북간 교류확대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를 통해 남북 해운항만산업의 상호발전, 더 나아가 남북통일기반 조성에 기여할 것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남북해운합의서 체결 이전의 남북간 해상운송사업은 운항여건이 열악하고 불안정한 상황이었다. 운항선박 및 선원의 안전보장에 관한 합의가 없는 상태였고, 북한 해역 항해 중 직접 교신이 불가능하여 해양사고시 신속한 대응이 곤란한 실정이었다. 물론 북한과 구조·구난에 대한 합의도 없었다. 남북해운합의서는 이와 같은 남북한간의 해운여건을 개선하고 ‘남과 북 사이의 해상운송 및 항만분야의 발전과 상호협력을 도모하기 위하여’ 체결된 것이다.


최근 북한의 이해하기 힘든 행동으로 남북한간의 해운전망에 대해서도 우려의 시각이 많다. 북한산 반입 모래 외에는 수송수요가 특별히 증가하지 않는 것도 이러한 인식을 증폭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그리고 대북관련 수송사업의 성공사례가 주변에 많지 않은 것도 걱정의 도미노를 만들고 있다. 여기에 이념적인 색깔까지 추가되면 남북한간의 해운사업은 ‘정답이 없고 이익도 없는 일’이 된다.


그러나 남북관계는 다양한 사건과 우여곡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진전되고 있으며, 남북교류협력사업도 계속 확대되고 있다. 1972년의 ‘7·4 남북공동성명’ 이후 1988년의 ‘7·7 선언’으로 시작된 남북교역은 지난 1991년 1억 달러를 돌파한 뒤 2005년에는 10억 달러를 달성했다. 동시에 남북교역물량도 1989년 첫 해 4만 6천톤으로 시작하여 2005년에는 730만톤으로 증가했다. 또 같은 기간 동안 교역건수도 67건에서 21,215건으로 급증했고, 교역에 참가하는 업체도 19개사에서 523개사로 확대되었다. 연간 선박운항횟수도 307회에서 4,497회로 늘어났다.


남북교류협력사업이 남북한간의 정치사회적인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과거와는 달리 북한의 정치적 태도변화에도 불구하고 남북교류협력사업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는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 과거에는 정치적 사건이 발생하면 교류가 중단되고 선박이 억류당하는 상황이 발생했지만, 지금은 남북교류협력사업이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북핵위기, 미사일 발사 정국에도 남북한간에는 다양한 사업이 민간의 참여로 진행되고 있다. 북한산 광물자원을 공동으로 채취하기 위한 협의도 추진되고 있다. 북한산 모래를 선적한 선박이 운항하고 있고, 부산-나진간 컨테이너 선박도 물자를 수송하고 있다.


남북해운합의서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북경제교류협력사업의 확대가 7·4 남북공동성명, 7·7 선언, 6·15 남북공동선언 등에 힙입어 조금씩 발전해온 것과 같이 남북해운합의서도 남북한 해운협력 사업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이제 남북해운합의서가 발효된지 불과 1년을 맞이하고 있다. 많은 기대에 비해 성과가 부족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우리들의 성급함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과거 서독에서 동독과의 통일을 위해 추진한 ‘동방정책’과 같은 ‘작은 발걸음’ 정책이 필요한 때이다.


이와 같은 견지에서 우리가 남북해운협력사업을 한단계 발전시키고,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필요한 과제를 제안한다.

첫째, 남북한 해운당국간 대화채널을 가동해야 한다. 해운당국간 대화채널이 가동되어야 현안사항의 협의는 물론 남북해운협력사업을 구상하고 추진할 수 있다. 지난 2005년 8월의 제5차 남북한 해운당국간 실무접촉에서 합의한 내용, 즉 선박에 설치된 설비를 이용한 장거리 직접통신, 남북해사당국간 통신망 연결, 남북해운협력협의회 개최 등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대화채널의 복원이 시급하다. 그리고 대화채널 가동을 통해 남북해운협력협의회가 가동되면 이를 상설조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남북한 대화채널 복원은 남북해운합의서의 정신을 계승하는 가장 긴요한 과제이다.

 

둘째, 남북한 해운·항만 상호시찰사업을 전개해야 한다. 현재 남북한 간에는 각 분야별로 다양한 사업이 전개되고 있다. 옥수수 농장, 우리말 사전 편찬사업, 태권도 확산사업, 국제체육행사 공동참가 등은 남북한간의 이질감을 해소하고 상호이해 속에 협력을 증진시키는 좋은 사례이다. 해운항만분야의 남북 협력사업은 대규모 예산이 수반되는 특성으로 추진이 용이하지 않지만, 해운항만상호시찰사업은 상대적으로 작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사업이라 판단된다. 현단계에서 해운항만분야 종사자의 상호간 이해와 협력 증진을 위한 절실한 사업이다. 그리고 이런 사업을 정부에서 직접 추진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면 남북해상수송지원센터 등과 같은 민간기구에서 사업을 제안하는 등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남북한 상호시찰사업은 ‘접촉을 통한 변화’를 위한 중요한 과제이다.

 

셋째, 북한 모래의 공영개발 및 공동수송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현재 북한산 모래반입 물량은 남북한 해상수송에서 가장 중요한 사업이다. 그러나 북한 모래 도입과정에서 업체간의 과당 경쟁으로 인해 필요 이상의 ‘조직비(모래 수입 승인 기부금)’ 지출이 늘어나고, 승인 건당 기부금도 상당액도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북한 모래를 수입하는 경우 북한의 거래관행과 운송실태를 몰라 피해를 입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이와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북한 모래 공영개발 및 공동수송사업이 필요하다. 개별기업에서 북한 모래를 도입하는 것보다 정부와 민간단체(기업)로 구성된 협의체를 통해 사업을 전개하는 경우 그간의 여러가지 문제점이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 협의체에서 북한 모래 부존량 조사, 환경문제 조사, 합리적인 수송 및 하역 시스템 구축방안 등을 마련하고, 북한당국과의 직접 교섭도 추진해야 할 것이다.

 

넷째, 남북공동이 참가하는 해운물류항만산업 중장기 발전계획 마련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우리는 한반도의 남쪽만을 고려한 중장기 발전계획을 만들어왔다. 북쪽지역을 고려했지만 북쪽의 참가에 의한, 북쪽의 의견을 반영한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동북아물류중심화전략을 비롯하여 국토개발계획, 국가교통계획 등은 한반도의 북쪽을 사업계획에 반영해야 완결성을 높일 수 있고, 향후 발생할 통일비용을 줄일 수 있다. 따라서 남북한간의 해운협력이 어느 정도 진전되면 남북 공동이 참가하는 해운물류항만산업 중장기 발전계획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남북관계는 많은 부침이 있었고, 북한의 정책과 태도, 국제사회의 분위기 등에 따라 대북사업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다. 그러나 개혁과 개방으로 표현되는 역사적인 흐름은 바꿀 수 없을 것이다. 이 속에서 남북교역물량도 증가하고 해운협력사업도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사건 하나하나에 일비일희(一悲一喜)하기 보다 산을 옮기는 마음으로 중장기 관점에서 차근차근 사업을 진행해 나가면 어느 날 갑자기 새로운 기회가 우리에게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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