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재해 불구, 바다는 변함없는 생존기반이다-

한 종 길 성결대학교 교수
한 종 길 성결대학교 교수
3월 11일 발생한 역사상 미증유의 동일본 대지진은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몸서리가 칠정도의 큰 재앙이었다. 1990년대에 유학, 그리고 2000년대에는 다시 연구원으로 일본에서 생활했던 필자에게는 결코 남의 일로 치부할 수 없는 곳이다. 햇수로 십여 년의 일본생활로 스승과 많은 지인들이 살고 있고 지금도 일년에 수 차례 연구와 강연 등 개인적인 유대가 깊은 곳이기도 하다. 특히 금번 지진으로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발생한 후쿠시마는 유학시절 초기에 살았던 이바라기현에서 한 시간 남짓한 곳으로 많은 지인들이 이재민이 되었고 무엇보다도 한 일본친구는 동생이 쓰나미의 피해를 입어 행방불명 되는 등, 남의 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 많다.

본고에서는 금번 지진의 엄청난 위력으로 인한 피해를 해운물류산업으로 한정해서 살펴보고 우리의 해운항만산업에 주는 교훈은 무엇인지를 논하고자 한다. 일본속담에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3가지는 지진, 화재, 아버지”라고 할 정도로 지진은 일상적인 자연재해로 평소에도 철저하게 대비하여 왔다. 예를 들어 금번 피해가 집중된 일본 동북지방은 1970년 칠레 대지진으로 인해 발생한 대형 쓰나미로 인하여 큰 피해를 입었던 곳으로 높이 10미터의 방조제를 마련할 정도로 평소부터 지진에 대한 경계를 철저히 하였다. 필자가 근무하던 해양정책연구재단의 동료연구원 중에는 쓰나미를 주 전공으로 하는 연구자도 있었는데 그가 20미터 높이의 쓰나미를 대상으로 한 방재시스템개발을 연구할 때 필자는 실제로 그런 일이 있을까 하는데 회의를 품었다. 하지만 금번의 지진으로 인한 쓰나미는 18미터에서 최대 23미터의 높이였다고 하니 그 가공할 위력으로 인한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 수준이다. 더구나 일반적으로 지진 후에 발생하는 화재, 쓰나미 이외에 원자력발전소의 파손으로 인한 방사능 오염이란 문제까지 발생하였다.

해운항만산업의 피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항만분야에서는 부두의 붕괴, 항만시설의 파손, 석유탱크와 곡물 사이로 등 대형저장시설의 파손 및 화재, 육상에 장치되어 있던 컨테이너의 유실 등을 들 수 있다. 둘째로 선박 및 해운분야의 피해는 대형선박도 육상에 좌초할 정도로 큰 피해가 발생하였고, 무엇보다도 해당지역항만이 재해를 입어 해당지역으로 향하는 화물수송항로 네트워크가 붕괴된 점을 들 수 있다. 또 피해지역으로 통하는 도로와 철도도 크게 파손되어 피해지역으로 향하는 생명선이 절단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본원양어업의 전진기지인 게센누마, 이시노마끼 등의 항만이 큰 피해를 입어 일본의 원양어업도 큰 손실을 입었다.

그렇다면 이번 지진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어떤 것이 있을까? 첫째로 쓰나미 피해에 대비하여 항만과 원자력 발전소 등의 시설보강과 활성단층에 대한 철저한 조사로 주요시설의 입지정책을 보완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일본 지진이 빈발하는 북해도 서부지방에서 발생하는 지진으로 인한 쓰나미는 과거에도 우리나라 동해안의 항만에 피해를 주었다. 동해, 포항, 울산, 부산항 등 동해안 항만은 쓰나미의 잠재적 위협에 노출된 항만임을 인정하고 국내항만도 쓰나미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점에서 쓰나미에 대응할 수 있도록 시설을 보강하여야 할 것이다.

둘째로 금번의 사례에서 보듯이 아무리 철저하게 대비하여도 쓰나미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항만이란 있을 수 없다는 점에서 일극집중 항만정책의 보완이 필요하다. 금번 사고에서도 센다이항은 동경과 요코하마항의 피더항만으로 개발되어 일본을 종단하는 네트워크만이 중점개발되면서, 가장 가까운 인근 서쪽 야마가타나 아키타의 항만에서 동쪽 이와테와 미야기를 연결하는 횡단 도로가 없어 재난복구와 구호물자를 위한 수송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동경으로 집중하는 국토종단의 도로와 철도 개발의 폐해가 드러난 것이라고 할 것이다. 따라서 국토횡단 도로망 항만과 항만간 연결망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우리도 특정 항만에 집중하기보다는 적어도 두 개 이상의 허브항만을 개발하는 현행의 부산과 광양의 투 포트 시스템을 보완하면서 두 항만사이의 육해상 네트워크 연계 방안을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

둘째로 쓰나미와 같은 자연재해 및 긴급사태시에 물류네트워크가 완전 붕괴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대응매뉴얼 개발 및 인원확보 방안을 물류업계와 정부가 공동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방사능 오염에 물류종사자가 노출될 위험 때문에 트럭운전자들이 운송을 거부하고, 선박은 항로를 변경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하지만 선사나 트럭회사들이 방사능 피해에 대비할 수 있는 대체항로를 개발하고 선원들에게 방사능 노출 대응 매뉴얼을 전달, 교육하였는지는 의문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선사가 지진 빈발지역인 일본에 취항하는 선박과 선원에 대하여 쓰나미 발생시 정박중인 선박의 긴급 대응요령을 교육하였다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다.

셋째, 일본 동북지방의 항만과의 연계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1995년 한신 대지진으로 인하여 기존에 코베항을 허브항만으로 하던 서일본 지역의 국제물류네트워크 붕괴는 부산항이 동아시아의 허브항만의 지위를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의 동북지방은 전통적으로 요코하마를 허브항만으로 이용해 왔지만, 장래적으로는 부산, 광양항 등으로 허브항만을 변경할 가능성도 있다. 비록 일본 동북지방이 물동량 측면에서는 그리 많지 않으나 국내항만의 동아시아 허브항만 기능의 강화라는 측면에서 코베항의 사례와는 다른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일본 동북지방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토지가격과 인건비로 해외진출 일본기업의 국내 유턴입지로 각광을 받았으나 금번의 지진으로 일본 동북지방에 집중되던 일본기업의 신규입지가 변화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지진과 쓰나미의 피해가 적은 지역, 또 국내 산업입지와 연계가능한 해외입지를 찾아 이동할 것이 예상된다. 따라서, 현재 비어 있는 국내항만 배후단지에 이들 기업을 유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이에 대비하여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금번의 엄청난 자연재해로 인하여 바다가 무섭다는 어리석은 생각에 바다로 향한 문을 잠그고 임해산업단지를 중심으로 한 국토정책을 수정하자는 위정자의 출현을 경계한다. 바닷물은 경계없이 흘러 이쪽 해안에 부딪히고 저쪽 항구로도 흐른다. 쓰나미와 같은 큰 재해도 있지만 문화와 경제도 이끌어내고 바다에서는 경계를 뛰어넘는 해운활동이 이루어진다. 아담 스미스는 1776년에 유명한 국부론에서 ‘한 나라의 침체는 해외무역을 중시하지 않는데 그 원인이 있으며, 쇄국은 반드시 망국으로 향하게 된다'고 했다. 자연재해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바다는 변함없는 생존의 기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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