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해적행위의 극성으로 우리나라 국적 선박도 피해를 보면서 세간에 많은 관심을 끌게 되었다. 선박이 해적에 의하여 납치되어 선박이나 화물이 오랜 기간 억류되는 사태가 발생하고 이들을 구하기 위한 석방금이 지급되는 일들이 반복된다. 생포한 해적의 형사처벌 등 형사법상의 문제도 있겠지만 여기서는 해상운송법과 해상보험법의 문제만을 간단히 다루고자 한다.

 

<해적의 정의>
정의규정은 일견 간단한 것 같으면서도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어떤 사실이 법적 효과를 갖는다면 그 사실이 법률이 정한 정의에 해당하지 않으면 법적 효과를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해적은 상법 해상편에서 직접적으로 규율하면서 정의규정을 두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해적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를 차용하여 사용하여야 할 것이다. 영국해상보험법 부칙에 따르면, 해적이란 폭동을 일으킨 여객이나 육상으로부터 선박을 공격하는 폭도를 포함한다.

 

<용선계약>
선주로부터 선박을 용선하여 운항하고 있던 중에 해적을 만나 선박이 1개월간 운항을 못하게 되었다고 하자. 정기용선중의 용선료는 일당으로 계산된다. 그렇기 때문에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1년 동안 매달 용선료를 지급하여야 한다. 해적을 만나 선박을 사용하지도 못하였는데 용선료를 지급하여야 한다면 정기용선자는 불만이다. 이러한 경우에는 선주와 정기용선자 사이에 용선계약에 이에 대하여 미리 합의를 하면 될 것이다. 표준 서식인 NYPE등에 있는 일반적인 용선료 지급중단약관(off-hire clause)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고, 별도로 정기용선 계약서에 빔코해적조항(BIMCO piracy clause)를 추가하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다. 특별한 약정이 없고 우리 법이 준거법이 된 경우에는 상법이 적용될 것이지만, 우리 상법에는 이에 대하여는 규정된 바가 없다. NYPE가 그대로 사용된 경우에 해적을 당한 기간이 용선료 지급중단이 되는 기간이 될 것인지가 문제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판례가 없지만 영국에서는 최근 이에 대한 영국법원의 판례가 나왔다. ‘살다나(Saldanha)’호는 소말리아 해적에 의하여 약 2개월간 납치되었다. 정기용선자는 납치기간동안 자신은 선박을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용선료지급은 중단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영국 상사법원은 2010.6.11. NYPE 제15조(off-hire clause)에서 용선료 지급중단 사유로 정하고 있는 (i)선박 혹은 화물에 대한 단독해손사고에 의한 지체, (ii) 선원의 과오, 그리고 (iii) 선박의 완전한 가동을 방해하는 기타 다른 원인중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고 따라서 용선료지급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i)은 물리적 손해를 동반하는 충돌, 좌초 혹은 선박상의 화재를 말하고 (ii)는 정기용선자의 지시에 선장 등이 따르지 않는 경우이고 (iii)은 선박, 선원, 화물 등의 상태와 관계있는 내적인 것만 해당된다고 보았다. (iii)의 경우에 '기타 다른 원인중'의 다음에 whatsoever라는 단어를 추가하면 용선료 지급중단 사유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운송계약>
운송계약은 운송인과 화주(송하인, 수하인 혹은 선하증권소지인)와의 문제이다. 운송인은 약정된 장소와 시간에 운송물을 화주에게 인도하여야 한다. 그런데 해적을 당하게 되면 약속된 장소와 시간에 선박이 도착할 수 없다. 인도 지연으로 인하여 운송물은 부패될 수도 있고, 납기에 운송물을 공급하지 못한 수하인은 제3자로부터 손해배상청구를 받을 수도 있다. 이러한 경우 원칙적으로는 운송인은 운송계약상 채무불이행이 될 것이다. 그런데 채무불이행이 되기 위하여는 운송인에게도 과실이 있어야 한다. 과실이 인정된다면 다음 수단으로 유력한 것이 상법이 허용하는 면책사유에 해적행위가 해당될 것인가에 있다.


상법(제796조 제4호) 및 헤이그 비스비 규칙(제4조 제2항 f호 Act of public enemies)에서는 해적으로 인한 운송물손해에 대하여 운송인은 면책된다고 규정한다. 선하증권에도 면책사유임을 정하고 있다. 당사자 자치의 원칙상 상법의 규정보다 선하증권의 내용이 우선적으로 적용된다.  화주는 자신이 과실이 없는데도 손해를 보아야 하는가? 운송물의 소유자로서 화주는 운송물의 손상에 대하여 적하보험자와 적하보험을 체결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운송인의 면책과 무관하게 자신은 적하보험자에게 손해배상청구를 하여 보험금을 지급받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 적하보험자가 화주가 운송인에 대하여 가지는 청구권을 대위행사하게 된다. 이 때 운송인은 적하보험자에 대하여 면책주장을 하게 되는 것이다.

 

<공동해손>
해적을 당한 상태에서 혹은 해적을 피하기 위하여 운송인이 석방금을 지급하거나 무장경비원을 채용하면 상당한 비용이 발생하게 된다. 만약 화물이 적재되었다면 그러한 선장 혹은 운송인의 행위가 공동해손으로 인정된다면 운송인은 화주에게도 비용의 분담을 청구할 수 있다. 공동해손이 성립하기 위하여는 공동해손의 성립요건을 충족하여야 한다(상법 제865조). 우리 상법이 준거법이라면, (i) 선박과 적하의 공동위험의 존재 (ii) 선장의 선박 또는 적하에 대한 의도적인 처분 (iii) 선박이나 적하의 잔존이라는 요건이 필요하다. 약정으로서 요크 안티워프규칙(YAR)을 적용하기로 하였다면 당사자 자치의 원칙상 규칙의 내용이 우선 적용될 것이다. 통상의 선하증권과 용선계약에는 동 규칙이 추가되어있다. A조에 의하면 “공동의 안전을 위하여 의도적으로 정당하게 비정상적인 희생을 일으키거나 비용을 지출한 경우에 성립한다”고 하여 우리 상법과 달리 선박 혹은 적하에 대한 직접적인 처분을 요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해적을 당하여 석방금을 지급하였다고 하자. 선박과 화물에 대한 공동의 위험이 존재하였고, 그리고 공동의 위험을 피하기 위하여 선장 혹은 운송인의 의도적인 결정과 행동이 있었다. 그러한 행위의 결과로서 선박과 화물이 무사히 풀려나게 되었다. 좁은 의미로는 선박 혹은 화물에 대한 직접적인 처분이 있어야 하지만(예컨대, 풍랑을 만난 선장의 적하 투하행위), 넓게 보아서는 석방금의 지급이라는 간접적인 행위도 공동해손행위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지만, 아직 이에 대한 판례는 없다.

 

<보험>
해적에 납치된 선박이 전손이 되거나 수리비가 발생한 경우에는 선박보험에서 부보가 되는 위험인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해적위험은 소위 해상고유의 위험인 충돌, 화재, 좌초, 침몰 등의 위험은 아니지만, 현재 선박보험인 ITC(Hull) 제6조와 적하보험인 ICC(A)에서는 해적위험을 담보한다.


영국상사법원 2010.2.18. Masefield Amlin사건에서 ICC(A) 보험증권이 사용되었다. 소말리아 해적에 의하여 선박이 나포되었다. 선주와 화주가 해적들과 협상을 하면서 원고(화주)는 추정전손을 위하여 운송물에 대한 위부통지를 보험자에게 하였고 (얼마 후 석방금을 지급하고 선박은 풀려나 운송물이 양륙되었다), 추정전손으로 인한 보험금 청구를 하였다. 법원은 MIA 제60조하의 추정전손이 되기 위하여는 위부의 진정한 의사를 가지고 보험의 목적을 위부하여야 하지만, 원고는 위부통지만을 하고 석방을 위한 협상을 계속하고 있었기 때문에 위부의 진정한 의사가 없었다고 보아서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음으로, 석방금에 대하여는 이를 손해방지비용(sue & labor)로 보아 보험자는 보험금을 지급하여야 한다는 영국의 판례가 있다(쿠웨이트를 침공할 때 발생한 사건으로 인질석방을 위하여 비용청구권을 선주인 피보험자가 포기한 사건에서 이는 손해방지비용이라고하여 보험금을 지급받았다)(영국 항소법원, 1997.2.28., Royal Boskalis Westminster NV v Mountain,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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