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의 차가운 기단이 남하하여 한강은 꽁꽁 얼어붙고 연일 영하의 날씨가 계속되면서 생활에 큰불편을 끼치고 있다. 하지만 지구온난화로 인해 북극해의 얼음이 녹으면서, 북극항로의 상업적 이용가능성도 높아가고 있고 북극의 자원개발도 활발해지고 있다. 북극해에 관한 연구로 우리가 가장 손쉽게 접할 수 있고, 체계적이고 방대한 자료가 축적되어 있는 곳은 필자가 2년간 몸 담았던 일본의 해양정책연구재단(OPRF)이다. 이 연구재단은 1980년대 말부터 북극해에 관하여 방대한 연구를 실시하였다. 일본의 선진적인 연구나 정책자료는 그런 경험을 가지지 못한 우리나라가 손쉽게 선진국을 따라잡을 수 있도록 참조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 주었다. 


아사아경제학에서는 이를 안행형 발전론이라고 하여 동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산업화에 성공한 일본을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각국이 따라잡는 형태를 기러기의 비행에 비유하여 설명한다. 타 산업분야와 마찬가지로 해운, 항만, 조선 등의 해사산업도 해운산업합리화, 계획조선, 대형항만개발 등 일본의 정책을 벤치마킹한 것이 매우 많다. 정책뿐만 아니라 법률, 교육제도 등도 일본의 것에서 따온 것이 많고 기업경영에서도 배운 점이 많다.


우리나라와 유사한 사회문화적 환경을 지닌 일본의 시스템은 구미의 것에 비하여 우리나라에 이식하기가 비교적 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의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성공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이 글에서는 얼마 되지 않은 일본 해운조선산업의 실패의 사례를 소개함으로써 우리나라 해운조선산업계가 이와 비슷한 실패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하는 데 자그마한 보탬이 되고자 한다.  


 
일본 조선산업의 인재 확보 실패
한국이 건조량에서 일본을 확고하게 추월한 시기는 원화의 평가절하가 있었던 일시를 제외하면 2002년부터인데 이 때는 한국 조선업과 일본 기업의 인건비 차이가 거의 없어진 시기이다. 무엇이 이를 가능하게 했을까 하는 관점에서 분석한 미래에셋의 ‘일본조선업을 분석한 보고서 (Lessons from Japanese Yards, 2011, 1.6)’가 최근 주목을 받고 있다. 이 보고서는 1980년대부터 급성장한 한국의 조선업과의 경쟁에 직면한 일본 조선업계가 범한 실수에 대하여 분석하고 중국조선업과의 경쟁에 직면한 한국 조선업에 주는 시사점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일본 조선업은 저임금을 무기로 하는 한국의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인건비의 억제가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보고 가장 비용이 많이 드는 설계부문의 자동화를 추진하였다. CAD, CAM를 도입하고 선주의 요구에 대응하기 위한 표준선형을 고안한 다음, 설계인력의 구조조정을 실시하였다. 지식경영에서는 일본기업이 자랑하는 모노즈쿠리(장인정신으로 혼신을 다해 최고 품질의 물건을 만든다는 뜻이 담겨 있는 일본의 독특한 제조문화)에 담겨있는 암묵지를 형식지로 변환한 사례로 소개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표준선형으로는 대응할 수 없는 새로운 디자인이 필요한 수요가 많아졌다. 1만TEU급의 초대형 컨테이너, FPSO 등의 해양개발수요가 왕성해졌지만 일본 조선업은 이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였고, 한국의 조선업은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이는 일본 조선업이 생각한 것처럼 인건비가 경쟁우위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아니었다는 점에서 일본 조선업의 실패라고 할 것이다.


한국 조선업은 1990년대 초반에 일본 조선업을 따라 잡아야 했고, 중국 조선업은 한국을 추월해야만 한다. 그러나 낮은 인건비는 낮은 선가를 의미한다, 실제로 중국의 선가는 한국에 비하여 20%정도 싸다. 중국 조선업은 아직 한국 조선업과 경쟁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 이 보고서의 주장이다. 이는 1990년 대 초반 일본의 조선 전문가가 한국은 싸구려 배를 만들어 건조량은 매년 증가하고 있지만 부가가치가 높은 선박은 여전히 일본이 만들고 있고, 인도시기와 다양한 고객의 요구에 부응하는 일본 조선업이 결과적으로 건조량에서도 절대우위에 있다고 말한 것과 거의 동일하다. 즉, 조선업의 경쟁력은 인건비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개발, 특히 다종다양한 선형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설계능력에 있다. 이는 우수한 인재의 확보로 귀결된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일본 조선업이 1990년대에 취한 전략은 상당한 규모를 가진 국내수요를 배경으로 이를 위한 표준선형을 만들고 자동설계기술만 있으면 인건비를 억제하고 한국을 비롯한 후발주자에 대하여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는 안이함이었다고 할 것이다. 실제로 일본 선사도 1990년대 말까지는 자국 조선소만을 사용하고 한국을 비롯한 외국 조선소는 거의 이용하지 않았다.


한국 조선업은 일본의 실패에서 배웠는지 최근 2-3년간, 신조발주가 줄어드는 어려운 환경하에서도 인재확보를 중시하고 있다. 조선업의 경쟁력은 집약된 기술과 풍부한 설계능력으로 나타나는 지식의 양과 질에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밸러스트수 배출규제와 같은 환경문제는 조선에 큰 변혁을 가져올 것이다. 나아가 전기자동차의 출현은 전기를 동력원으로 하는 전기선박도 가까운 장래에 현실화될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기술환경에 일본 조선업이 대응할 수 있는가는 의문이다. 1990년대에 일본조선업이 택한 결과는 조선업체 내부에만 머물지 않았다. 동경대학에서 조선공학전공이 학부에서 없어진 것도 1990년대 후반이다. 이는 현실적으로 우수한 졸업생이 활약할 수 있는 장이 조선산업에서 없어졌기 때문일 것이고 결과적으로 우수한 젊은 인재확보를 제대로 하지 못한 일본 조선업의 경쟁력도 약화시켰다고 할 것이다.


 
일본 해운업의 해기인력 양성 실패의 사례
인재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고 경쟁력의 일부를 잃어버린 일본에서 한국이 배워서는 안 될 사례는 조선뿐만 아니라 다른 부문에도 있다. 해운업의 경우, 경쟁우위를 결정하는 요인으로 인적자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다. 그리스의 이오니스 테오토카오(Ioannis Theotokao) 교수 등은 그리스해운이 국제시장에서 경쟁우위를 확보한 과정을 분석한 ‘Leadership in World Shipping-Greek family firms in International Business’라는 책을 2009년 출판하였다(개요는 한국해운물류학회 2010년 12월호의 서평란을 참조). 그에 따르면 그리스해운은 영국과 같이 기댈수 있는 자국화물이나 자금이 없고 풍부한 해상경험을 가진 인재가 경쟁우위의 원천이 되었다는 것이 주된 요지이다. 그리스 해운의 경우, 인적자원 지식, 경영능력의 3가지가 경쟁력의 원천으로 해운에 관한 노하우를 장기에 걸쳐 축적하고 이를 적절한 타이밍에 살린 것이 오늘날의 경쟁우위를 가져왔다. 그리스 선주의 상당수는 해상경험을 가진 선장 출신자로 그들의 자제들은 방학기간 중 승선경험을 쌓아 해상과 육상의 현장을 아는 해륙공용의 인재육성이 그리스 해운의 계속적인 발전을 가능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해운이 경쟁력의 원천이 되는 인재확보에 관하여 조선업과 같은 실수를 범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분야가 해기사의 육성이다. 일본은 세계 최대규모의 상선대를 갖고 있지만 일본인 선원은 계속적으로 줄어들어 천연기념물로 불릴 정도의 수준인 2,000명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이 배경에는 해운업에 필요한 화물은 풍부한 국내수요에 의존하고 필요자금은 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수준인 일본의 금리수준을 가진 국내에서 조달하면 되고 선원은 저임금의 외국인 선원을 고용하면 된다는 안이한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우수한 해기인력의 부족은 장래적으로 일본선사의 경쟁력을 낮출 것이다. 승선경험에서 쌓을 수 있는 것은 선박조종능력뿐 아니라 신조선의 결함관리, 연비관리와 같은 선박의 경제성향상, PSC 등의 법적 대응능력, 외국선원과의 협동 등, 무엇보다도 다양한 국제적 경험을 가진 해사관리 전문가를 키울 수 있다.


일본인 해기인력 급감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하여 전일본해원노동조합은 “천연기념물 두루미가 된 일본선원”이란 문구를 이용하고 있지만 해결을 위한 정책은 아직 마련되지 않고 있다. 그 배경에는 일본인 선원(해기사)의 필요성을 정부, 선사, 교육기관 등 해사사회를 구성하는 산학관의 주체들이 해기사를 해사산업의 균형잡힌 발전을 위해 불가결한 필수인재라는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해기사가 해운, 조선, 항만, 플랜트, 해군 및 해상안전 등 다양한 해사관련 분야의 발전을 가능케 하고 결과적으로 경쟁력 있는 해운산업의 기본이 된다는 것은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사례가 입증해 주고 있다. 이들 국가는 우수한 청년인재가 해사부문에 진입하고 보다 높은 지위를 추구하는 환경을 정비하는 해기사의 캐리어패스(Carrier Path)를 고려한 선원정책을 실시하고 산학관 공동의 노력을 시행하고 있다.


일본 해운의 주요한 경쟁력 원천 중의 하나이던 일본 화주의 화물량이 산업구조의 변화로 인하여 서서히 줄어들고 있다는 현실을 고려하면 일본 해운은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고 할 것이다. 영국이나 미국해운과 같이 자연 소멸할 것인지, 북유럽 국가와 같이 해사관련 지식을 경쟁우위의 원천으로 하여 앞으로도 세계해운을 선도할 수 있을 것인지의 기로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후자의 길을 선택한 일본이 우수한 해기인력 확보를 위하여 어떤 대응을 하는가는 지금부터 우리나라 해운업이 주시하고 벤치마킹 할 필요가 있다.


다행히도 한국은 아직 해운조선산업에 풍부한 인력이 공급되고 있다. 양 해양대학이 어려운 여건에서도 꾸준히 지원자의 수가 늘고 있고, 지원자의 질도 개선되고 있다고 한다. 또한 각 대학의 조선공학과도 조선산업의 호황에 더불어 우수한 인재들이 모이고 있다. 그러나 양 해양대학에 우수 인재가 모인다고 해서 안이하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조금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양 해양대학 지원자의 압도적 다수는 병역 혜택이 없어지는 순간 사라지는 뜬구름 같은 것일 수도 있다. 그동안 우리 선사들은 해기인력 양성에 얼마나 무관심 했는지는 재삼 얘기할 필요가 없다. 최근에야 몇몇 선사들이 예비 양 해양대학에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지만, 이것은 자신들의 미래 예비해기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선행적 투자라고 해야 할 것이다. 조선산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목포 지역의 경우 대한조선과 C&중공업의 도산으로 지역내 조선관련 학과 전공학생들의 진로가 불투명해지고 있다는 얘기가 들리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 중국의 조선산업이 수주량과 건조량 등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함과 동시에 이러한 추세와 장기적으로 오래갈 것이라는 전망과 맞물려 조선공학계열의 인기가 시들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산업의 발전은 결국 사람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한국의 해운조선산업이 현재의 위상을 유지하고 조금씩 전진하기 위해서는 인력 양성에 결코 소홀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인식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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