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해운의 ‘보험인프라’인 KP&I(한국선주상호보험조합)가 새해 보험갱신을 목전에 둔 상태에서 CEO(대표이사 전무)직에 대한 외부의 ‘인사압력’에 휘말려 어수선하다. 이에 KP&I의 고객인 해운업계에서는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KP&I의 수장에 공무원의 낙하산 인사는 안될 일”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번 낙하산 인사압력은 고위직 공무원의 퇴직후 일자리보장 압력이 관련업단체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일명 ‘회전문 인사’ 행태를 띠고 있어 더욱 관련업계의 빈축을 사고 있다. 알려진 바와 같이, 최근 주목받고 있는 해운업계 회전문 인사는 해운조합과 KL-Net, 해양환경관리공단, KP&I가 연관되어 있다.

지난해 임기만료된 해운조합의 이사장직에 중앙해양안전심판원장을 지낸 이인수씨가 선임되었고, 이로인해 정유섭씨가 이사장직에서 전격 퇴임했다. 이후 정유섭씨는 KL-Net 이사로 선임이후 동사의 차기 사장직에 내정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로써 KL-Net의 박정천 사장은 1년여의 임기를 남겨둔 상태에서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국토해양부의 내부 승진인사 이동과 연관되어 있다. 퇴직이 예정되어 있는 곽인섭 물류항만실장이 임기 만료되는 해양환경관리공단 이사장직에 내정되었고, 이용우 현직 이사장을 KP&I의 CEO직에 자리이동시킬 의사가 타진되었다는 소문이 돌았고, 이는 사실로 드러났다. KP&I는 공모를 통해 P&I보험 전문가인 박범식 전무를 제 2기 수장으로 선임했으며, 박 전무의 임기는 아직 1년 6개월 정도 남아 있다.

사실 국해부 산하단체장직에 대한 낙하산 인사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최근들어 새삼스런 부각은 임기만료된 자리는 물론 ‘임기가 남아 있는 자리에까지’ 낙하산 인사와 압력이 연쇄적으로 자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퇴직후 임기가 만료된 단체장직에 유임되지 못하고 또다른 퇴직자에게 자리를 내준 경우, 다음 자리까지 보장해주는 형국이 물의를 빚어내고 있는 것이다.

관행처럼 이어온 산하단체장에 대한 낙하산 인사가 임기만료시 이뤄진 경우와 태생적으로 또는 관행적으로 퇴직공무원들의 차지였던 자리에 대해서는 비난을 하면서도 ‘또 그러려니..’ 넘겨왔듯이 ‘그들만의 자리다툼’으로 치부하는 것이 통상적인 반응이다.

해운조합과 환경관리공단, KL-Net 수장의 인사가 그에 해당한다. 해운조합의 경우 30여년동안 줄곧 이사장직은 관련당국 퇴직공무원들의 자리였다. 환경관리공단도 그 태생과 업무성격상 그들의 돌려먹기 자리로 인식되어 있다. KL-Net 역시 정부 주도로 설립된 태생과 정부로부터의 수주사업과 공공성이 강한 사업 성격으로 퇴직공무원들의 경영능력을 펼쳐볼 수 있는 자리로서 인식되어온 측면이 강하다.

이에반해 정책에 힘입어 탄생했더라도 전문성이 강한 기관의 경우, 설립초기부터 전문성이 검증된 관련업계 인물에게 기관의 수장을 맡겨 왔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KP&I이다. KP&I는 한국해운의 보험인프라 역할을 부여해 정부와 업계의 공동출연으로 탄생했고 그간 성장지원도 받아왔다. 그 운영은 해운기업의 CEO로 구성된 이사회에서 맡고 있고, 사무국 수장은 선사의 보험법제부서에서 수십년간 전문성과 인적 네트워크를 쌓은 보험전문인이 선임되어 왔다. P&I보험이 고도의 전문성과 영업력을 요하는 분야임은 정부도 인정했기에 설립기와 성장기의 사무국 수장을 보험전문가로 선임했고, KP&I는 열악한 환경속에서  국제클럽들의 견제와 인정을 동시에 받을 만큼 외형성장과 서비스제고를 이루어내고 있다.

“KP&I만큼은 퇴직공무원의 자리여서는 안된다”고 해운업계가 반발하고 나서는 이유는 ‘고도의 전문성’에 있다. 국제 해상보험 분야는 전문지식은 물론 관련 국내외 인적네트워크 기반을 통해 리딩 국제 P&I클럽들의 견제 속에서도 그들과 협력하며 대응할 수 있을 만한 국제적인 지명도와 관련분야의 역량을 갖춘 ‘맨파워’가 특히 중요하다. 따라서 KP&I 수장자리는 해운보험분야 전문가가 이어가야 마땅하다는 의견이 해운계 안팎의 중론이다.

KP&I는 창립 10년만에 국적 중소형 선사들에게 국제 P&I클럽의 대안으로 자리를 잡았으며, 향후 10년안에 국제P&I 클럽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영업력과 역량을 한층 강화해 글로벌화를 꾀해나간다는 비전아래 거세지는 국제클럽들의 견제를 고도의 전략으로 헤쳐나가야 할 과도기 국면에 놓여있다.

이렇듯 KP&I가 설립 취지대로 한국해운의 P&I 인프라로 정착하고 나아가 국제클럽으로 경쟁력을 갖추어나가는 중차대한 시기에, 박차를 가할 수 있도록 정부가 격려하지는 못할 망정 사무국 CEO직이 퇴직공무원들의 ‘자리다툼 대상’이 되는 것은 결코 적절치 못하고 부당하다. 잔여임기가 1년이상 남아있는 상태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공직출신의 CEO가 탁월한 관리능력이 검증되었더라도 P&I보험에 대한 전문성 결여는 우선 고객으로부터 불안감을 갖게 하고 이는 고객의 이탈로 이어져 KP&I 발전의 기반이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KP&I가 현재의 성장세를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하려면 전문가 기용이라는 당초취지를 유지하는 것이 ‘해운강국’을 지향하는 정부시책에도 부합하는 것이라고 본다. 정부는 KP&I의 설립 당시 초심과 발전방향을 다시금 생각하고 관련인사에 대한 의사를 거두어들임이 마땅하다.
 

저작권자 © 해양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