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날’ 기념   해외취재 / 상해·항주·계림을 가다(2)
■ 해사문제연구소 주최 11차 중국항만·사적시찰과 세미나

 

해외여행을 할 때마다 세계 지도상의 우리나라를 보게 된다. 평소에는 세계전도를 일부러 펼쳐 보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인지 이런 기회에 세계 지도를 보는 재미도 새삼스럽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토가 얼마나 작은지에 대한 씁쓸함도 함께 찾아온다. 특히 중국대륙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국토를 보고 있노라면 정말이지 억울한 심정까지도 든다. 하지만 ‘작은 고추가 맵다’고 비록 국토는 작지만 많은 산업에서 세계 선두를 차지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저력에 자부심도 갖게 된다.

 

1,000원 짜리 우산으로 체험한 중국 서민들의 생활
해사문제연구소에서 주최한 ‘11차 중국항만 및 중국사적 탐방 세미나’를 통해 중국 항주(杭州), 계림(桂林), 상해(上海) 등지를 다녀왔다.
이번 여행의 처음과 끝은 부슬부슬 내리는 봄비로 장식됐다. 5월 18일 인천공항을 떠나 첫 여행지인 중국 항주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생각지 않게 내리고 있는 봄비로 다들 당황했다. 특히 이번 여행지가 우리나라 최남단에 준하는 남쪽지역이라는 점에서 서울의 날씨보다 한 두달 앞설 것이라 생각했던 탓에 더욱 그랬다.
몇 일전부터 항주가 태풍의 영향권에 있다는 것이 가이드의 설명이었다. 여행지의 날씨를 미리 찾아보지 못한 불찰에 아차 싶었다.


이렇게 예견치 않게 내리고 있는 봄비 탓으로 우리 일행은 韓貨 1,000원 짜리 중국 우산을 사서 들었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중국 우산을 써보랴’하는 생각과 한국에 비해 너무나도 저렴한 우산가격에 별다른 거리낌은 없었지만 역시 ‘싼 게 비지떡’이라고 조금 부는 바람에 우산대가 벌써부터 망가지거나 너덜거리는 품질이 조소를 짓게 했다. 중국 서민들의 생활상을 몸소 체험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영은사 內 24.8m의 여래불상 중국의 큰 스케일 절감
이번 일정 중 첫 관광지는 항주 서북쪽에 위치한 영은사(靈隱寺). 비행기가 연착되기도 했을 뿐더러 내리고 있는 비로 영은사에 우리 일행은 관람시간을 넘겨서야 부랴부랴 도착했고 가이드가 미리 전화를 해둔 덕에 헛걸음만은 모면하게 됐다. 그런 이유로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찬찬히 둘러 볼 시간이 없었던 게 아직까지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중국과 일본을 여행하다 보면 사찰을 둘러볼 기회가 많은데 특히 중국사찰에서는 무엇보다 큰 규모에 압도된다. 물론 중국사찰에서 뿐만 아니라 중국문화는 한마디로 ‘큰 스케일’로 대변할 수 있다. 워낙 넓은 국토와 많은 인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 여겨진다.

 

영은사 내의 대웅보전에 있는 24.8m의 여래불상과 비래봉 암벽 상에 오, 송, 원에 이르는 석각조상 330여개가 새겨져 있는 것이 다시 한번 이를 확인시켜 주었다.

이튿날 항주에서의 마지막 일정으로 서호(西湖)를 찾았다. 3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천연호인 서호의 면적인 약 6.38평방킬로미터로 원래는 항주만과 연결된 해만이었으나 토사에 의해 해만이 막혀서 된 석호(潟湖)이다.

일행은 서호를 유람선을 이용해 둘러보았다. 유람선상에서 산수의 절경과 함께 호수를 라 낚시를 즐기는 강태공, 유유히 산책을 즐기는 사람, 중국의 대표적 명물인 자전거를 타는 사람, 도로 위의 자동차 등 일상을 즐기는 중국 사람들을 한목에 엿볼 수 있었다.

 

지각 변동으로 생겨난 계림에는 돌산·동굴 가득
항주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일행은 곧바로 계림으로 이동했다. 항주에서 상해까지 버스로 약 3시간가량 이동한 후 상해 홍교(虹橋)공항에서 국내선을 이용해 약 2시간 20분가량을 가서야 계림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항주에서 상해까지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본 중국의 풍경은 그저 한적했다. 황량하게 느껴질 만큼 널찍한 거리를 두고 지어진 집들과 그 사이사이에 있는 밭들. 도시가 아니여서 인지 스산하게까지 느껴질 만큼 사람들의 움직임은 보기 힘들었다. 
상해에서 계림으로 이동하는 비행기 안. 중국에서도 꼽히는 관광도시인 만큼 계림으로 향한 기내에는 외국인들로 가득했다. 


계수나무가 숲을 이루었다는 데서 지어진 지명, 계림에 도착한 이튿날 계림산수를 본격적으로 볼 수 있었다. 계림은 옛날에는 바다 밑이었으나 지각 변동으로 솟아올라 육지가 된 곳으로 이때 지상으로 나온 석회암이 침식작용을 거치면서 독특한 카르스트 지형을 형성하게 되었다. 그 결과로 생긴 기묘한 형태의 봉우리와 종유석 동굴이 많아 계림을 ‘도시 속에 돌이 있고 돌 속에 도시가 있다’고 표현한다고 한다. 계림은 순수하게 자연을 관광하는 곳으로 중국 내 관광코스 중 다리로 걷는 관광은 ‘북경’, 눈으로 보는 관광은 ‘계림’이라고 일컫는다고.


그런 만큼 계림에서는 고층 건물들로 인해 산수경관을 가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원칙적으로 7층 이상의 건물을 짓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고 한다. 간혹 7층 이상의 건물이 보이기도 하는데 이것들은 모두 산수경관을 헤치지 않는 한에서 허가를 받은 것이라는 게 현지 가이드의 설명이다.


한 폭의 산수유와 같은 요산서 내려보이는 계림 산수
일행은 우선 편도 20분이 넘게 걸리는 케이블카를 이용해 요산(堯山)을 등정했다. 사방이 노출된 채로 공중에 왕복 40분이 넘는 시간동안 떠있는 것은 특별히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오금을 찌릿하게 하는 기분이 들게 했다. 괜시리 일행에 포함돼 있는 어르신들이 걱정스럽기까지 했다.


요산은 계림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로 정상에서 보이는 산수는 멀리 끼여 있는 흐릿한 안개와 함께 한 폭의 산수유와 같았다. 실제로 계림은 예로부터 많은 시인과 화가들의 글과 그림의 소재가 된 곳이기도 하다.


요산 등정에서 재미있었던 것은 산 정상에서 상인들이 가짜 명품가방을 팔고 있는 광경이었다. 멋들어진 산수 앞에 놓여있는 가짜 명품가방이라. 너무나도 ‘쌩뚱 맞은’ 조화지만 중국관광 프로그램 중 가짜 명품상품 쇼핑이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하니 중국다운 발상이라고 여겨졌다.


요산 등정 중 또 다른 재미는 봅슬레이였다. 산 중턱쯤부터 하산시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이 기구로 중국 사람들은 또 다른 수입원을 창출해 낸 셈이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을 케이블카만을 이용하는 관광객들의 지루함을 덜어주기도 하는 봅슬레이는 충분히 괜찮은 아이디어였다.

 

계림서민의 생활상은 떠오르는 중국경제의 ‘裏面’

계림의 이강.
계림의 이강.
계림 관광의 하이라이트 중의 하나로 꼽히는 이강(離江) 유람. 유람선을 타고 이강 인근의 산수를 여유롭게 볼 수 있는 코스이다. 굽이굽이 이강 양안에 솟아 있는 수많은 기봉(奇峰)들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가마우지를 볼 수 있는 것도 이강 관광의 특징이다.
계림의 관광은 중국 남쪽 국경과 맞닿아 있는 베트남과 비슷하다. 이 이강을 끼고 펼쳐져 있는 산수는 물론 관암동굴을 배를 타고 볼 수 있는 코스들이 그렇다. 남쪽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으로 비슷한 기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인 듯 하다.


‘산수갑천하(山水甲天下)’라고 칭하며 중국 사람들조차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하는 곳으로 꼽히는 곳이 바로 이 계림이다. 하지만 그 명성 때문에 너무 큰 기대를 했던 것일까. 아니면 산수를 볼 줄 아는 연륜이 쌓이지 않아서일까. 나에게는 명성만큼의 큰 감동을 가져다주는 곳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강 유람에서 가장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은 선착장에서 물건을 애타게 파는 어린아이들의 모습이다. 배를 타기 위해 선착장에 일행이 모습을 드러내자 주위에서 기다리고 있던 10살 남짓한 여자아이들이 달려들어 호객을 하기 시작했다. 1,000원짜리 한 장을 얻기 위해 그 어린아이들은 배가 떠나기 직전까지 관광객들에게 울다시피 매달렸다. 어린 아이들을 수단으로 돈벌이를 하고 있는 이곳 주민들의 생활이 이후에 찾아간 상해의 화려함에 가려진 중국경제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이러한 중국경제의 양면은 가이드가 해준 이야기를 통해서도 여실히 나타났다. 정책적으로 산아제한을 펼치고 있는 한족(漢族)의 경우 한 명이상의 아이를 호적에 등록시키기 위해서는 인민폐 6,000원이 소요된다고 한다. 이 비용이 없어 둘이상의 아이들을 호적에 올리지 못하는 농촌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아이를 낳기 싫어하는 도시인들은 개를 자식처럼 키우기 위해 인민폐 8,000원을 들여 호적에 등록시킨다고.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사회의 두 가지 모습이다.
하지만 이러한 양극화 현상은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심화되고 있다고 하니 결코 남의 나라 일만으로 여길 문제는 아니다.
 
중국의 잠재력이 여실히 발산된 도시 ‘상해’

상해의 명물이 된 동방명주탑. 맨 아래에 있는 구와 중간에 있는 구 사이에 있는 작은 다섯개의 구에는 5성급 호텔 객실이 마련돼 있다.
상해의 명물이 된 동방명주탑. 맨 아래에 있는 구와 중간에 있는 구 사이에 있는 작은 다섯개의 구에는 5성급 호텔 객실이 마련돼 있다.
이번 여행 코스가 모두 처음 가보는 곳이었지만 그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했던 곳은 다름 아닌 상해였다. 항주도 그랬지만 상해 관광 직전에 갔었던 계림이 워낙 낙후돼 있는 곳이라서 인지 곧바로 접한 상해의 화려한 모습은 다른 세상을 보는 듯 했다.


지금까지의 일정에서와 다른 상해의 풍경은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들어간 식당에서부터 시작됐다. 굉장히 넓은 홀에 사람들로 북적이는 식당 안의 모습이며 식사 내내 한켠에 마련된 무대에서 펼쳐지는 쇼가 화려한 도시 상해에 입성했다는 사실을 각인시켜 주었다.
저녁식사 이후 황포강 유람을 통해 본 중국 상해의 야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오늘날 상해는 아시아 금융 및 무역 경제지구로 떠오르고 있는 만큼 세계 굴지의 기업들에 의해 빼곡히 지어진 고층건물들이 상해를 장식하고 있었다. 종종 TV를 통해 본 중국 상해의 화려함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중국의 놀라운 잠재력과 기세에 눌리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특히 상해에 있는 그 많은 건물들은 그 디자인이 모두 다르다. 이는 중국정부의 방침으로 같은 모양으로 건물을 지울 수 없게 하고 있다. 상해를 낮에는 경제중심지로 밤에는 관광명소로 만들어 가고 있는 중국의 욕심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실제로 중국은 상해의 야경을 하나의 명소를 만들기 위해 정책적으로 저녁 8시부터 10까지 모든 건물에 불을 밝히게 하고 그 전력비를 국가에서 지불하고 있다. 이런 노력 탓에 상해는 아시아에서 홍콩 다음으로 화려하고 아름다운 야경을 가진 도시로 꼽히고 있다.


그리 오래지 않은 수년전에 상해를 다녀간 적이 있는 일행 중 몇몇은 처음 접하는 나와는 또 다른 놀라움이 얼굴에서 배어났다. “허허 벌판이었는데... 정말이지 격세지감을 실감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번 여행을 하기 바로 직전, 영화 ‘미션 임파서블 3’을 보았는데 그 영화의 마지막 부분의 촬영장소가 바로 이 상해였다. 영화 속 상해의 모습 또한 나에게는 새로웠다. 성룡 등 중국 배우가 전혀 출연하지 않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중국 상해를 촬영지로 꼽았다는 것과 도심 한 가운데에서 액션영화를 촬영하기 위해서는 중국 정부의 과감한 양해가 필요했을 법했기 때문이다. 이는 단지 한 편의 영화에 촬영지로 꼽힌 것을 넘어서 중국을 향한 세계의 시선과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외골수 면모가 엿보이는 중국인들의 외국어 사용법
중국 사람들의 특성 중 하나는 모든 외국말을 자기네 식으로 바꾸어 사용하는 것이다. 그 많은 것들을 일일이 만들어 13억 인구 전체에 인식시키는 것도 일이겠다 싶지만 심지어 고유명사까지도 한어(漢語)로 변환해서 부르고 표기한다. 이러한 문화 속에서도 중국 사람들의 무식해보일 만큼 외골수 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중국의 고집스러움에 되레 많은 국가에서 중국식 발음을 따르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순 우리말은 아니지만 긴 세월동안 漢城으로 불렀던 서울의 표기를 首爾(수이; 중국어발음 서우얼)로 바꾼다는 서울시의 정책이 이를 잘 대변해준다. 지하철에서 이 캠페인 광고를 처음 접했을 때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에 고개를 갸웃했다. 


‘지구촌’시대라는 세계화 추세에 맞게 우리나라 역시 세계 속에 융화돼야 하겠지만 우리나라 역시 ‘한국 고유의 색’은 고집스러우리만큼 지켜야 한다는 점에서 중국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우리나라는 중국에 비해 원천적으로 많은 부분에서 열위에 있는 만큼 모든 면에서 더 많은 국가 총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용정차(龍井茶)
원나라 때부터 재배해온 용정차는 항주에서 재배되는 대표적인 녹차이다. 용정이란 명칭은 원래 샘 이름이었고 이어 용정사란 절이 세워졌으며 이절에서 차를 재배한 것이 유래가 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용정차는 짙은 향, 부드러운 맛, 비취 같은 녹색 그리고 참새 혀 모양의 잎새라는 네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어 ‘4절(四絶)’이라 호평 받고 있다. 용정차를 비롯한 중국의 차는 물을 팔팔 끓였다가 그 물을 2-3분가량 식힌 후 70-80도 정도로 식힌 물에 우려서 먹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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