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12조원 시대 돌입, ‘종합 중공업 그룹’으로 도약

 

대우조선해양이 독립경영 10주년을 맞아 ‘세계 최고의 종합 중공업 그룹’으로의 야심찬 새 출발을 선언했다.


대우조선해양의 남상태 사장은 회사 창립기념일인 10월 11일 전사 임직원들에게 보내는 ‘CEO 레터’를 통해 독립경영 10주년을 맞는 감회와 각오를 밝혔다.


이 레터에서 남사장은 지난 2000년 10월 대우중공업으로부터 분리된 이후 10년 간의 노력 끝에 대우조선해양이 조선업계 정상의 위치에 자리잡게 된 것을 축하하면서, 동시에 2010년을 ‘세계 최고의 종합 중공업 그룹’ 도약을 위한 새 출발의 원년으로 선포했다.

남사장은 먼저 “모든 임직원들이 땀 흘려 노력한 결과, 독립경영 10년 만에 조선해양부문 매출 세계 1위 100억 불 수출의 탑 수상 등 눈부신 성과를 달성할 수 있었다”고 임직원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하지만 “이번 10주년 기념일은 샴페인을 터뜨리는 날이 아닌 신발끈을 다시 고쳐 매는 날”이라며 “현재의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세계 최고 중공업 그룹으로의 도약을 적극 추진해 나갈 것”임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남사장은 ▲세계 최고의 종합 중공업 그룹 위상 확립, ▲사업 생산 인력의 글로벌 최적화 구축, ▲주인의식이 충만한 생기있고 능동적인 조직으로의 혁신 등 세 가지 목표를 제시했다.


먼저 근본적인 사업 구조를 혁신하여 조선 해양 분야 뿐 아니라 풍력발전, 육상플랜트, 신재생에너지 등 다양한 분야로의 사업 다각화를 이뤄낸다는 것이 대우조선해양의 1차적인 목표다. 동시에 현지 인재 채용, 글로벌 아웃소싱 등의 컨트리 비즈니스(Country Business)를 통한 세계 역량 강화와 글로벌 최적화를 구축하여, 2020년까지 매출액 40조 원, 영업이익 10조 원의 세계 최고 종합 중공업 그룹으로 도약한다는 것이 대우조선해양의 최종 목표다.


마지막으로 남 사장은 “대우조선해양은 수많은 위기를 특유의 결집력으로 극복해온 자랑스런 전통을 가진 회사”라고 언급하면서 “어떤 문제에 봉착하든 주인의식을 가지고 협력한다면 창의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며 직원들의 적극적 업무자세와 팀워크를 주문했다.

 
한편 최근 회사와 관련된 의혹들에 대해 남 사장은 “이번 일은 수많은 협력업체 중 하나에서 벌어진 일일 뿐이며, 검찰 수사 결과 대우조선해양은 단 한 점의 의혹도 없음이 밝혀졌다”고 이야기하면서 “오히려 근거 없는 의혹을 말끔히 해소함으로써 당사의 경영 투명성을 증명하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었다”고 설명했다.

 

2020년 매출 40조원, 영업이익 10조원 목표

임진왜란 첫 승전지인 거제도 옥포만에 자리잡은 대우조선해양은 1973년 제 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따라 건설 중이던 조선소를 1978년 대우그룹이 인수하면서 탄생하게 됐다.


처음 옥포조선소의 출발은 순탄치 않았다. 1970년대 초 정부의 경제개발 계획으로 대한조선공사 주관 하에 건설이 시작된 이래, 1978년 오일쇼크로 인한 조선경기 불황과 자금 부족으로 인해 옥포조선소 건설이 중단될 위기를 맞은 적이 있다. 위기에 빠진 옥포조선소를 구원한 곳은 다름 아닌 대우그룹이었다. 당시 대우그룹은 조선업의 성장과 가능성에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 대우조선공업주식회사를 설립했다.


한국 조선업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목표 아래 대우조선은 아낌없는 투자와 기술개발로 조선업의 선두주자로 도약했다. 대우그룹 인수 5년 만인 83년, 대우조선해양은 당시 상공부로부터 1억불 수출탑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어냈다. 자금부족으로 건설 중단까지 고려됐던 회사가 불과 5년만에 한국의 일류기업으로 거듭났다.


이후 대우조선해양은 1993년 한국 최초로 전투잠수함을 건조하고 선박수주 세계 1위를 달성하는 등 눈부신 성공가도를 달리게 됐다. 1999년 워크아웃을 통해 그룹에서 독립한 이후 새롭게 출발한 대우조선해양은 ‘신뢰’와 ‘열정’이라는 핵심가치 아래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힘찬 항해를 하고 있다.


과거 한적한 어촌이었던 옥포만은 현재 세계 최고의 종합 조선소로 탈바꿈했다. 옥포조선소는 130만평의 대지 위에 세계 최대 크기의 900톤 골리앗 크레인과 정규축구장 8개 넓이의 100만톤급 드라이 도크 2개, 성인 남성 200만명이 한꺼번에 올라도 끄떡없는 초대형 플로팅 도크 4개 등 초대형 최신 설비들을 갖추고 있다.


또 현재 약 2만 8,000여명(협력사 포함)의 직원들이 연간 300만 총톤(G/T)의 각종 대형 상선과 해상방위의 첨병인 7,000톤급 이지스함, 209톤급 전투잠수함, 시추선을 비롯한 각종 해양플랜트 등을 높은 품질과 기술로 건조, 대부분을 해외로 수출하고 있다.


특히 대우조선해양은 고기술 고부가가치선박의 대명사인 LNG선과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건조에서 세계 제일의 경쟁력과 기술을 갖추고 있다. 또한 일반 상선뿐만 아니라 복잡한 기술을 요구하는 해양플랜트와 오프쇼어유닛 건조분야에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2009년까지 매출액 12조 4,400억원, 영업이익 6,845억원을 기록한 대우조선해양은 동년도 10월에 ‘100억불 수출탑’을 수상하는 영예도 안았다.


또 조선업체 최초로 선진경영 시스템인 PI(Process Innovation)를 도입하여 초우량 조선소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동안 추진해온 투명경영과 윤리경영의 성과를 인정받아 5년 연속 지배구조 우수기업으로 선정됐고, 경제 5단체장이 수여하는 투명경영 대상도 수상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이런 성장세에 힘입어 2020년까지 매출 40조원의 ‘종합 중공업 그룹’으로 거듭난다는 계획이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대우조선해양은 올해 초 ‘F1전략’ 2기를 출범시켰다. 앞으로 대우조선해양은 지속적인 원가절감과 고부가가치선 위주의 선별수주를 통해 경쟁우위를 확보하는 동시에 풍력발전 같은 미래 신성장 동력을 개발, 향후 조선·신재생에너지·육해상플랜트 분야를 아우르는 종합 중공업 그룹으로 발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우조선해양 연혁

▶ 1973년 대한조선공사 옥포조선소 건설 착공
▶ 1978년 대우조선공업주식회사 설립, 옥포조선소 인수
▶ 1979년 화학제품운반선 첫 호선 수주/건조
▶ 1981년 옥포조선소 종합준공식
▶ 1983년 No.2 Dock 준공
▶ 1984년 선박해양기술연구소 설립, 각종 국제인증 취득
▶ 1985년 MAST 경영혁신운동, 30만톤 VLCC 건조
▶ 1987년 대우조선 노동조합 설립, 노사분규
▶ 1989년 조선산업 합리화 업체 지정, 희망 90s 경영혁신운동 출범
▶ 1991년 희망 90s의 성공으로 첫 흑자 전환
▶ 1992년 경영 정상궤도 진입, ISO 9001 인증 취득
▶ 1993년 선박수주 세계1위, 한국 최초 전투잠수함 건조
▶ 1994년 대우중공업 종합기계부문과 합병
▶ 1997년 ISO 14001 환경경영 인증 획득, DMHI 설립
▶ 1998년 구축함 건조, 전투함/여객선 첫 해외 수출
▶ 1999년 대우그룹 구조조정으로 워크아웃 돌입
▶ 2000년 10월 대우조선분리독립, 12월 출자전환
2001년 8월 23일 워크아웃 졸업, 대우조선해양사옥 이전, LNG선 수주 세계1위 달성, 한국증권거래소 상장
▶ 2002년 기업핵심가치 ‘신뢰’와 ‘열정’ 선정 및 PI 프로젝트 착수
▶ 2003년 LloydsList 세계최우수조선소로 선정, 해외주식예탁증서(GDR) 발행
▶ 2004년 세계조선업체 최초 PI System 가동, Future Leadership Center 개원
▶ 2005년 세계최초 LNG-RV 건조/인도, 경제5단체로부터 투명경영 대상 수상, 대한민국 최고기업 월드 베스트 기업 대상 수상, 대한민국 10대 신기술(LNG-RV) 선정, 산동유한공사(DSSC) 설립
▶ 2006년 DSME건설주식회사 설립, 수주 100억불 달성
▶ 2007년 투명경영 대상, 한국노사협력 대상, 지배구조 우수기업상 5년 연속 수상
▶ 2008년 학교법인 세영학원(거제대학) 설립, 매출 11조시대 돌입
▶ 2009년 100억불 수출탑 수상,드윈드사(풍력사업)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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