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종 관연구위원/연구본부장해운산업연구본부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임 종 관연구위원/연구본부장해운산업연구본부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전 세계적으로 녹색(green)이라는 용어가 유행하고 있다. 녹색성장, 녹색산업, 녹색포럼 등등의 단어가 미디어, 정부정책 홍보자료, 기업전략 홍보자료, 기타 각종 세미나 안내자료에서 핵심개념으로 등장하고 있다. 해운도 예외가 아니다. 녹색해운(green shipping)이라는 용어가 보통명사로 사용되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처럼 보편적으로 회자되고 있는 녹색해운의 구체적 내용을 살펴보면 체계적이지 못하고 단편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우선, 최근에 나오는 녹색해운관련 자료들을 보면 그 내용의 초점이 온실가스에 집중되어 있어 마치 온실가스관련 내용이 녹색해운의 전부인양 오도될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뒤집어 말하면 해운에서 오래전부터 이슈화되어 온 유류오염이나 해양생태계 파괴문제는 친환경 녹색이슈에서 소외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일반시민의 일상생활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해양의 오염문제보다 모든 사람의 생활과 건강에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는 대기의 오염문제가 쉽게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르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대기오염문제가 국가적·정치적 이슈를 점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상황이고, 따라서 선박운항으로 인한 대기오염이 부각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새로운 이슈가 오래된 이슈의 앞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누구도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뒷자리로 밀려난 오래된 이슈가 간과되거나 무시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특히 해운관련 업계나 정책당국에서는 선박의 대기오염 이슈 때문에 선박의 해양오염문제를 소홀히 다루는 일은 없어야한다.


녹색해운의 개념이 체계적이지 못한 두 번째 현상은 해운의 환경오염관련 많은 이슈들이 개별적으로만 처리되고 있을 뿐 종합해서 처리되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이슈들에 대한 종합접근이 시도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대기오염관련 이슈들이 너무 뜨겁게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으나, 지금까지 해양오염관련 국제협약들에 너무 단선적으로만 대응해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해운의 환경이슈가 선박운항사고에 국한되어 있어서 국제협약의 수와 종류가 많지 않았을 시기에는 해양오염이라는 개념만 존재하였기 때문에 녹색해운의 개념은 아예 출현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해운관련 환경이슈가 운항사고에 의한 오염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운항과정에 나타날 수 있은 수질오염, 해양생태계 파괴문제로 확산되었고, 선박의 건조·관리·해체 과정에서 축적되는 유해물질의 안전한 관리 즉 선박의 재활용(recycling)문제도 국제규범으로 제정되었다. 선박의 온실가스 배출에 의한 대기오염문제에 대해서도 국제협약이 모색되고 있으며, 조선업계에서는 아예 무공해선박의 상용화도 시도되고 있다. 선박에 적용될 국제해사기구(IMO) 협약만도 일일이 열거하기 불편할 정도로 많아졌다. 많은 나라의 항만당국은 입출항 선박에 적용할 환경관련 규정과 기준을 내놓고 있다.

 

이제는 국제적으로 많은 협약과 기준, 가이드라인, 그리고 관리정책이 현실화되고 있다. 그런데도 이러한 국제규범들에 대한 종합적인 접근이 등한시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녹색해운이라는 개념이 단편적으로 출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유류오염 규제기준이 적용되는 선박, 발라스트수 관리기준이 적용될 선박, 선박재활용기준이 적용되는 선박, 온실가스배출 규제기준이 적용될 선박이 마치 서로 다른 별개의 선박인 것처럼 착각될 정도이다.


녹색해운의 개념이 체계화되지 못하는 세 번째 현상은 환경관련 해운규범이나 이슈들을 규제장치로만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환경이슈를 비즈니스에 방해되는 그래서 수익성을 악화시키는 부정적인 요인으로만 인식하기 때문에 이러한 이슈들을 종합하는 작업은 비용만 확대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비즈니스에 도움이 되는 이슈들에 대해서는 종합작업이 적극적으로 시도되지만, 사업에 방해되는 이슈들에 대해서는 취합작업에 대한 거부감이 커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해운의 환경관련 이슈가 비즈니스에 긍정적일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녹색해운의 체계화작업은 늦어질 수밖에 없다.


해운의 환경이슈에 관해서 수많은 국제협약, 그리고 많은 나라들의 법규와 기준, 정책들이 생성되고 있다. 그러므로 녹색해운은 이 모든 규정과 기준이 어우러지는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개별 협약별로 대응하는 각론적 접근만으로는 부정적이고 피동적인 시각을 벗어나기 어렵다. 종합해보면 새로운 것이 보일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온실가스 이슈가 중요하고 급하다 하여 다른 수많은 이슈들을 간과하면 녹색해운이라는 새로운 비즈니스 세계가 포착되기 어렵다. 환경관련 이슈들이 경쟁의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고, 나아가 새로운 사업을 잉태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녹색해운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입체적 그림을 그려야 녹색해운이라는 거대한 코끼리를 탈 수 있는 것이다. 꼬리만 만지는 장님은 꼬리에 치일 것이 걱정되고, 다리만 만지는 장님은 발로 차일 것이 겁나게 된다. 거대한 코끼리를 타고 정글을 호령할 수 있는 그림이 있어야 한다. 녹색해운이라는 새로운 코끼리의 등에 올라타려면 녹색해운을 입체적으로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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