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펀드운용회사를 떠맡은 지 일 년이 지난 2003년 초 어느 날이었다. 일년 동안 배당소득 비과세 문제를 당시 해양수산부와 긴밀히 협조해 가면서 풀어가는 한편 선박투자회사법을 조금 손보아서 그 해의 정기국회에 수정안을 올리는 작업을 돕는 등 나름대로의 정지 작업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현대상선의 고위급 담당 임원에게서 저녁이나 같이 하자는 전화가 왔다. 만나서 그는 차분하게 말했다. ‘선박펀드 방식으로 신조금융을 조달하고 싶다. 해운회사로서도 처음이고 귀사도 처음 해보는 일이다. 상호 미숙한 점이 있더라도 서로 믿고 좋은 결과가 나오도록 같이 노력해보자.’ 훌륭한 시작이었다. 제 1호 선박펀드를 탄생시킨 말로 그것보다 더 적당한 말이 없었다. ‘서로 미숙하겠지만 서로 믿고 끝까지 가자.’ 필자는 그 말을 아직도 가슴에 새기고 있다. 그날 저녁의 술은 매우 달았다.


그 날 이후로 매일 가슴 설레는 어려운 일들이 닥쳤다. 일을 몰라서 어려웠지만, 도와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어서 어려운 줄 몰랐고, 하나하나 풀려 나가는 재미가 매일 아침 가슴을 설레게 했다. 선박펀드제도는 정부가 금융시스템을 설계하고, 민간이 이를 넘겨 받아서 구조를 짜 나가는 제도였다. 당연히 설계자의 의도를 확인해야 했다. 당시의 해양수산부 해운 물류국장은 사람을 편안하게 해 주는 부드러운 풍모와 달리 일처리 솜씨가 매우 신속하고 매서웠다.  머뭇거리는 일 없이 해운과 선박펀드제도의 발전을 위하여 가장 적당한 해법을 발견하고 이를 실천해 나갔다. 참된 공무원의 전형이었다. 그분이 해양부문의 정점까지 승진하여 지난 금융위기를 무난히 돌파한 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믿는다.


현대중공업에서 건조할 초대형 유조선의 전체 건조금액 약 6,500만불 중 수출입은행과 기업은행에서 4,800만불의 대출을 일으켰고 선박펀드가 1,600만불을 맡았다. 은행들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좋은 조건을 제시해 주었고, 이제 후순위금융으로 작용할 선박펀드의 년간 이자율, 년간 배당횟수를 정해야 되었다. 일반적으로 주식을 발행하는 형태로 자금을 모집하는 다른 펀드들은 년간 1회 배당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깊히 생각할 것 없이 그 관행에 의존해도 아무 일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조금더 생각해 보았다. 선박 펀드는 기간이 길고, 매년 정액의 배당을 한다는 채권적 성질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를 살리면서 다른 펀드들과 차별화된 요소가 있어야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년 4회 매분기말에 배당을 지급하는 것으로 정했다.

 

 다음은 연간 이자율 즉 배당률을 정해야 했다. 자금의 모집을 담당하기를 희망하는 증권회사 직원들은 선박펀드 운용사가 정하면 된다고 했다. 배당률이 높으면 돈이 많이 모일 것이나 해운사에게는 부담이 될 것이고, 배당률이 낮으면 돈을 모으는 작업이 힘들 것이나 해운사에게는 부담이 적어질 것이었다. 균형 감각이 필요했다. 어디에 기준을 두어서 어떻게 균형을 잡을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며칠을 고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길에 문득 생각이 떠올랐다.


‘배당율은 즉 이자율이다. 이자란 돈을 빌려 쓰는 대가로 지불하는 돈의 값이다. 즉 돈의 가격이다. 모든 가격은 시장에서 정해진다. 우리 선박펀드의 값도 시장에서 정해져야 한다. 그런데 시장은 무형의 존재이므로 시장을 가장 잘 아는 증권회사의 의견을 들어서 정하면 될 것이다.’


입찰을 하기로 했다. 가장 낮은 이자율로 1,600만불에 해당하는 원화를 모집할 증권사에게 일을 맡기겠다고 발표했다. 신생의 조그만 실물자산운용사가 거대한 증권사에게 입찰하자고 나선 모양이었었다. 해운과 금융사이에서 공정성을 잃지 않으면서 균형을 잡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입찰 즉시 증권사가 정해졌다. 최저 이자율 년간 6.5%를 적어낸 증권사에게 일이 돌아갔다. 당시 최고 9%를 넘어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한 회사도 있었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신문광고 후 모집을 실시했다. 청약 배수 8배를 기록하는 대성공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합심해서 일구어 낸 해운업계의 성공이었다.


동북아 1호 선박투자회사는 이제 11월에 원금을 상환함으로써 그 기능과 수명을 마친다. 그간 어떠한 문제도 없었다. 개인 투자자 675명은 지난 8년간 편안하게 매분기 배당을 지급 받아왔다. 감회가 다시 일어나고 이 일에 관여한 모든 분들이 다시 생각난다. 모두 고마운 분들이고 모두 열정에 가득찬 일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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