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연 신한국선박금융(주) 대표이사
김 연 신한국선박금융(주) 대표이사
사하라 사막을 발굴하던 고대 동물학자들은 산같이 쌓여있는 동물의 뼈를 보고 숨이 막혔다. 전설로만 내려오던 고래의 무덤을 발견한 것이다. 모래 속에 묻혀있던 그 뼈들은 시간의 순서에 따라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맨 위층의 뼈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고래의 뼈와 다를 바 없었으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아래로 내려 갈 수록 조금씩 모양이 변했다. 고래의 뒷발이 점점 짧아져 가고 콧구멍이 위로 옮겨지는 등의 놀라운 진화 과정이 확인된 것이다. 그러나 머리 뒤의 특수한 뼈는 변하지 않고 후대로 내려왔다는 것도 발견했다. 그러한 뼈를 가진 육지 동물은 늑대밖에 없다는 것도.

 

결론을 말하면 이렇다. 먼 먼 옛날, 바닷가를 어슬렁거리던 늑대는 바다 속에 풍부한 단백질을 가진 동물 즉 물고기가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육지 동물을 잡아먹는 수고의 절반도 기울이지 않아도 바닷가에서 물고기들을 사냥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잠깐씩 물에 들어가던 것이 백 년이 지나고 천년이 지나면서 오래 들어가 있을 수 있게 되었다. 콧구멍의 위치도 점점 이마 쪽으로 옮겨가서 지금과 같이 눈 뒤에 위치하게 되었다. 바다를 발견한 늑대는 고래가 되었다. 어마어마한 몸집을 가지게 되었고, 인간 이외에는 감히 대항할 동물이 없게 되었다. 바다를 발견하지 못한 늑대는 여전히 작은 몸집의 늑대로 남아 있다. 비슷한 육식동물이 많으므로 늘 고단하게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산업의 발달 과정도 위의 늑대이야기와 많이 다르지 않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발전 가능성이 큰 분야로 옮겨가야 하고, 옮겨간 분야에서 점점 진화 발전하여야 한다. 더구나 기존 시장에서 자기의 시장 지위를 위협하는 집단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우리나라의 조선산업이 지난 7월을 기점으로 중국에게 모든 지표가 뒤져서 이제 세계1위가 더 이상 아니라는 보도가 나왔다. 예견했던 일이나 가슴 아프다. 1위에서 2위로 내려앉은 것이 가슴 아픈 이유가 아니다. 예견하고서도 아무 대책 없이 몇 년을 지나온 결과가 나타났다는 것이 가슴 아픈 이유이다. 

 

해운업의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중국의 선복량 증가 속도를 누가 견제할 수 있는가? 중국의 조선업이 중국 정부의 막강한 지원 아래에서 급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은 중국 해운업에 선박을 공급하여야 한다는 명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즉, 해운과 조선의 연계 발전이라는 목표와 그 달성 수단으로서의 금융 지원이라는 세 가지 축이 정밀하게 짜여서 상호 발전하여 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조선 산업은 해외 선주들 스스로 금융을 마련한 다음 발주하기에 선박금융의 중요성을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 우리나라 해운업은 선박금융이 너무나 절실하지만,  외국의 은행과 맞상대할 수 있는 회사가 몇 안된다. 따라서 신조의 경우 금융을 제공해 주는 중국조선소로 쉽게 방향을 바꾸게 되는 것이다. 신조선가 저렴하고, 금융선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데 중국으로 방향을 바꾸지 않을 이유가 없다.

 

두렵다. 이제 이런 상태로 이십 년만 지나면 중국의 금융 사정에 따라 우리나라 선복량이 좌우될 것이고, 중국의 금융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우리 조선소(그 때까지 생존해 있다면)의 작업물량을 좌우하는 문제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 조선 산업과 해운 산업은 고유한 경쟁력 즉, 생산성이나 건조기술, 항해능력, 화물 취급능력, 선박관리능력 등이 뒤쳐져서 쇠락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금융을 얻지 못하여 쇠락해 갈 것이다.

 

이런 눈썹 끝이 타들어가는 듯한 절박감 속에서 선주협회 등에서 선박은행을 만들어야 한다고 큰 깃발을 들고 나선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저번 달의 세미나에서 선주들이 한 목소리로 선박은행 설립일자를 더 앞당겨야 한다고 말한 것도 시의적절하다.

 

세계는 일찍이 지금과 같이 급변한 적이 없었다. 유럽 중심의 세계에서 아시아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다. 아시아라 해서 우리나라가 자동적으로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우선 중국과 인도가 중심이다. 우리는 변방일 뿐이다.

 

공장이 해외로 나가도 이를 개탄하는 목소리가 없고 중국의 선박금융이 급성장하는 데도 우리 해운업계 밖에서는 그 심각성을 모른다. 이러고도 청년 실업만 걱정하니, 뿌리가 썩고, 잎이 시든 것을 보면서도 열매가 열리지 않는다고 한탄하는 어리석은 농부와 무엇이 다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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