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신 한국선박금융(주) 대표이사
김연신 한국선박금융(주) 대표이사
요즈음 가요에 익숙해져 있는 신세대는 동의하지 않을런지 모르겠으나, 필자가 평가하기에는 우리 가요 50년의 역사에서 가장 애절하고, 노랫말이 선명하여, 널리 애창되는 가요는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 ’로 시작하는 ‘봄날은 간다’가 아닐까 싶다.

 

사랑을 나누던 임은 떠나고 봄날은 다시 왔는데 가 버린 님은 소식이 없다. 청노새 방울 짤랑거리면서 마을로 들어서지만 편지 한 통 없고, 님에게 부치려고 써두었던 편지는 부질없이 강물에 띄어 보내고 만다. 그런 가사이다.

 

이 노래의 주인공인 여자가 이렇게 애를 태우고 있는 이유는 가버린 남자를 다시 돌아오게 할 강제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석 달 이내에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경우에 해당 지역의 경찰서에서 그 남자를 찾아서 기차에 태워 보낼 것을 내용으로 하는 보증서 같은 것을 쥐고 있다면, 느긋하게 석 달을 기다린 후에 석 달 하루 되는 날 보증서 내용대로 해당지역 경찰서에 통보하기만 하면 아마 늦어도 사흘 뒤에는 그 남자를 눈 앞에 볼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남녀상열지사의 특징 중 하나는 이런 강제 장치가 없다는 것이고, 그래서 애간장 녹이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므로 위의 예시는 어디까지나 금융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만화같은 상상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각설!

금전의 대출이라는 행위는 항상, 언제나, 절대적으로, 예외없이 상환을 전제로 한다. 쉽게 말해서 돈을 빌려줄 때에는 돈을 되돌려 받을 것을 전제로 한다는 당연한 말이다. 반면에 돈을 꾸어가는 사람은 성인군자를 제외하고는 될 수 있으면 돈을 오래 지니고 싶어 하고 거의 내 돈 같이 사용하고 싶어하므로 갚지 않기를 바라는 것도 인지상정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래서 고안되어 있는 장치가 담보이다.

 

돈을 꾸어간 사람이 갚지 않을 경우에 다른 사람이 대신 갚도록 하는 것을 인적 담보라 하고, 다른 물건을 대신 가져 오는 것을 물적 담보라 한다. 미리 무슨 물건을 맡겨 두고 돈을 갚지 않을 경우에 마음대로 처분해도 좋다고 미리 승낙해 두는 것을 질권이라고 부른다. 물적 담보의 한 종류이다.

지금도 존재하는지 모르겠으나 예전의 전당포가 바로 이 질권을 바탕으로 영업하는 영세 금융업이었다.

 

집을 담보로 거액의 돈을 대출해 주었는데 집값이 계속 하락하여 빌려준 원금에도 미치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은행들은 새로운 담보를 더 내어 놓든지 돈을 일시에 갚으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소위 Loan to Value 혹은 담보가치 하락의 문제이다. 돈을 꾸어간 사람의 처지에서는 가뜩이나 불경기에 담보를 추가로 내어 놓든지 돈을 일시에 갚으라고 하니 이런 청천벽력이 없고, 돈을 빌려준 사람 입장에서는 경기가 나빠져서 돈을 잘 갚지 못할 것으로 보여서 마음이 조마조마하므로 원금을 무사히 회수하기 위해서는 다른 담보를 받아두든지 아니면 돈을 회수해버리는 것이 안전하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금융 기법이라는 것은 계속 발달하기 마련이어서 위에 적은 단순한 거래 형태에서 점점 복잡한 형태로 나아가는데, 선박금융도 예외가 아니다. 선박을 담보로 잡고 돈을 빌려 주는 것은 일반 부동산 담보 대출과 크게 다를 것이 없으나 일반 부동산에 비하면 선박의 가치라는 것은 늘 변하기 쉬우므로 다른 보장장치가 필요하게 된다. 그래서 선박을 사용하여 무슨 사업을 할지 관심을 가지게 되고, 제법 번듯한 회사에 장기적으로 배를 빌려 주거나, 대량의 화물을 오랜 기간 운송하도록 되어 있는 거래에 대출하여 주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근자에 해운 경기가 회복되어 선박을 사들여서 단기 운송에 투입하면, 장기적으로 큰 회사에 선박을 대여하는 것 보다 돈을 더 벌 수 있는 것이 명백해 졌다. 돈을 꾸어가는 쪽에서는 선박을 사용하여 한 푼이라도 돈을 더 벌 수 있는 사업을 하려고 하는 것이 당연한 선택이고, 금융기관의 입장에서는 일시적으로는 높은 운임을 향유할 수 있겠으나 지속성이 없으므로 이것을 싫어하는 것도 당연하다. 솜씨 좋은 중재자가 나서서 잘 조율하는 것 외에는 특별한 방법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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