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연 신한국선박금융(주) 대표이사
김 연 신한국선박금융(주) 대표이사
 “장미꽃은 다른 이름을 붙여도 똑같이 향기로울 게 아닌가? 로미오 역시 로미오란 이름이 아니라도, 그 이름과는 관계없이 본래의 미덕은 그대로 지닐 게 아닌가? “


몬타규 가문의 로미오를 한 번 보고는 사랑에 빠져 버린 캐퓰렛 가문의 줄리엣이 창가에서 내뱉는 대사이다. 첫 눈에 사랑에 빠진 대상인 아름다운 청년이 하필이면 왜 원수 가문의 성씨가 들어 있는 이름인 ‘로미오 몬타규’라는 이름을 가졌는지 한탄하는 내용이다.
이름은 대상을 정확하게 나타내려고 만들어진 것이기는 하나, 줄리엣과 같이 사물의 본질만 꿰뚫어 보는 아름다운 처녀에게는 혼란스러운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과연 모든 이름들이 다 그럴까?


선박펀드는 일정한 양의 돈의 합계액을 뜻하는 이름이다. 개인이나 기관 투자자들이 서로 선박을 구매하고자 출연한 돈의 집합체를 뜻하는 말이다. 이 돈은 선박을 구매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모인 돈이므로 법체계상 활동 가능한 일정한 성질을 부여받아야만 한다. 이것을 법의 영역에서는 법인격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 선박투자회사법은 이 돈의 모임에 ‘주식회사의 출자금’이란 법인격을 부여하였다. 선박투자회사법 제 3조 1항은 그래서 ‘선박투자회사는 주식회사로 한다’라고 선언하고 있다.


선박펀드에 투입한 돈은 주식회사의 주식에 투자한 돈이므로 ‘투자한 자금’이다.  투자한 자금은 ‘배당’이라는 과실을 얻는다. 이를 소득세법에서는 ‘배당소득’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투자한 자금이 그 투자자들의 투자 행위 이후에 움직이는 형태는 투자라는 원래의 개념과 다르게 움직인다. 즉, 선박투자회사는 자신의 자본금 전액을 자기가 설립한 해외자회사에 모두 빌려 주는 일을 한다. 즉, 대출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해외자회사는 이렇게 대출받은 돈과 은행으로부터 별도로 대출 받은 또 다른 돈으로 선박을 구매하게 된다. 대출이라는 행위는 돈을 빌려주는 일이다. 빌려 준 돈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이자를 창출하게 된다. 고로 해외자회사는 선박투자회사로부터 돈을 빌리고 이자를 지급하는 일을 한다.


투자라는 행위는 원금 손실까지도 각오하여야 한다라는 기의(記意)가 함축되어 있고 대출이라는 말은 일정기간 후에는 조건없이 이자를 받아야만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투자한 돈을 대출하는 방법으로 사용한다고 해서 투자의 본래적 성질, 즉 일정한 위험성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불행하게도, 시중의 많은 개인 투자자들이 이러한 구조를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들은 선박펀드에 ‘투자’한 것이 아니라 선박펀드를 통하여 실선박회사에 직접적으로 ‘대출’한 것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그들이 받아야 할 것은 ‘배당금’이 아니라 ‘이자’라고 믿는다. 투자한 돈을 대출하여 이자를 얻는 것과 투자 행위를 통하여 배당을 받아가는 것은 매우 다른데도 불구하고 이런 오해가 생겨나는 것이다. 


오해의 결과는 매우 무섭다. 개인 투자자들에게 아무리 설명해 주어도 그들은 투자, 배당, 투자에 따른 위험, 이런 말들을 받아들이기 보다는, 예금, 대출, 이자, 대출에 따르는 적은 위험, 이런 말들을 받아들이고 싶어 한다.


2003년 초기에 선박펀드제도가 처음 도입되었을 때 시중 일간지들이 조금 지나치게 선박펀드의 안정성을 홍보해준 것도 이유의 일단이겠지만, 더욱 많은 이유는 증권회사 창구에 있다. 운용사에서 두껍게 만들어 준 사업설명서중 두 세 페이지만 발췌하여 별도의 팸플렛을 만들고는, “선박펀드는 무조건 안전하다. 적금이나 예금보다 안전하니 어서 가입하라”고 권하는 일이 많았다. 더구나 선박펀드의 판매에 따른 성과 수당도 일정비율로 증권회사가 지급하게 되니 일선 창구에서는 당연히 안전성을 강조하여 판매에 열을 올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면, 이제부터는 누가 무슨 일을 하여야 하나? 운용사는 당연히 사업설명서를 더 주의깊게 만들 뿐만 아니라 증권회사 직원을 상대로 설명회라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 이것은 매우 어렵다. 증권회사 창구 직원을 한 날 한 시에 집합시키기가 쉽지 않다. 증권회사에서는 사업설명서를 발췌하여 예비투자자에게 제공하는 대신 전체 분량을 모두 제공하여야 한다. 그래야 투자자들이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 개인들은 어렵지만 투자할 대상에 대한 공부를 좀 하여야 한다. 자기가 남에게 돈을 맡기면서 정기예금을 할 것인지 선박에 투자할 것인지도 모르면 곤란하다.


로미오는 몬타규 로미오가 아니라도 줄리엣이 죽음에 이르도록 사랑하겠지만, 돈의 영역에서는 ‘배당 소득’과 ‘이자 소득’은 이름이 다른 것 만큼 성질도 다르다. 판이하게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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